김진환(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그렇잖아도 바람잘 날 없던 남북관계에 폭풍우를 몰고 왔다. 김 대변인은 12일 “북한이란 나라 자체가, 나라도 아니지 않느냐. 빨리 없어져야 된다”는 요지의 말로 북한을 비난하더니, 13일에도 “북한은 인권도 없고 인권유린을 마음대로 하고, 요즘 세상에서 지구에서 그런 나라가 있느냐”라며 대북 비방을 이어갔다. 북한은 13일 국방위원회 ‘중대보도’를 발표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동족대결로 악명을 떨친 이명박 역도도 감히 우리에 대해 이처럼 험악한 악담까지는 내뱉지 못하였다”면서 김 대변인의 12일 발언을 “극단의 도발”로 규정한 것이다.

남북관계가 화해.협력 국면이 아닌 대결 국면에 있을 때 양측 군부가 전면에 부각되는 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외적으로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총체적으로 나빴던 1990년대 중반 ‘선군정치’를 실행했고, 이 결과 북한 군부의 대내외적 위상이 빠르게 높아졌다. 남한에서도 남북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접어든 2008년 이후 군부가 남북관계 전면에 서 있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단, 군부 ‘전면배치’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조건이 하나 있다. 군부의 행위가 군 통수권자의 의도에서 절대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2년에 군부의 경제사업 권한을 내각으로 이관하는 과정에서 반발하는 일부 군부를 제압한 것도 군부에 대한 자신의 통제를 명확히 하려던 조치로 볼 수 있다. 남한의 경우 국민이 주권을 위임한 최고 관료인 ‘대통령’의 군부 통제는 한국 민주화가 거둔 업적 중 손에 꼽힌다. 남북관계가 대결 국면에 있든, 화해.협력 국면에 있든 간에 민주화된 한국에서 군부는 철저히 대통령의 의도와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만 한다는 뜻이다.

실례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군부는 대통령과 일관되게 뜻을 맞춰 움직였다. 이 대통령이 대결적 대북 태도를 고수하면 군부도 대결적 대북 태도를 고수했고, 이 대통령이 2011년 7월 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5기 출범식 축사에서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태로 불안한 정세가 조성됐지만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며 두 달여 동안 대북 유화책을 펼칠 때는 군부도 자중했다.

그렇다면 현재 대통령과 군부의 관계는 어떨까? 대통령의 군부 통제는 잘 이루어지고 있을까? 만약 현재 국방부의 뜻이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같다면 대통령의 군부 통제만큼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박 대통령이 주권을 위임 받은 최고 관료로서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제대로 살피며 군부를 움직이고 있는지는 따로 따져볼 문제다. 엄연한 주권자로서 나는 박 대통령과 군부의 대북 태도가 대결일변도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자극하면 할수록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테고, 그 탓에 항상 안보불안을 안고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현재 국방부의 뜻이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다르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불러도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박 대통령은 올해 1월 초부터 3월 말까지 이른바 ‘통일대박론’을 국내외에 설파하고 다녔다. 3월 말 독일에서는 다양한 남북교류·협력 방안을 담은 ‘드레스덴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남북관계를 대결 국면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한 화해.협력 국면으로 전환하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뜻이라면 최근 군부는 분명 대통령의 의도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대통령의 뜻과 군부의 뜻이 다르다면, 군부는 왜 이 시점에서 북한을 강하게 자극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일까? 설령 그것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면이 있더라도, ‘주적’인 북한의 동태를 열심히 살피고 북한 도발에 대응한다는 군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무인정찰기 침투를 막지 못한 ‘안보실패’,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준 무능함 등으로 군부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대통령마저 이를 질책하자 온 국민의 시선을 남북대결로 돌리려는 책략일까?

사실 앞에서 했던 질문들은 일차적으로 박 대통령의 대북 태도가 모호한 탓에 생겨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 대통령의 대북 태도가 분명하다면 애당초 이런 질문들은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3월 말 ‘드레스덴 구상’을 내놓던 박 대통령과 4월 말 한.미정상회담 때 북한의 ‘핵무력 경제발전 병진노선’을 또 다시 비난하던 박 대통령을 겹쳐 보면,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과연 어느 국면으로 이끌고 가려는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니 현재 국방부의 뜻이 대통령의 뜻과 같은지, 다른지도 궁금해지는 것이다.

북한은 1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민석 대변인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괴뢰 국방부는 물론 청와대도 무사할 수 없게 될 것이며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한다. 성명 내용으로 볼 때 북한은 박 대통령과 국방부의 뜻이 다르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정말 궁금하다. 국방부의 뜻은 대통령의 뜻인가? 입에 담지도 못할 험구를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박 대통령과 함께 남북관계를 풀어가 보려는 의사를 갖고 있는 걸까?


 
동국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밖에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경실련 통일협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같은 통일 관련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평화와 통일의 사건사』(2014, 공저), 『동북아시아 열국지 2: 팍스 아메리카나의 뒤안길』(2013), 『동북아시아 열국지 1: 북·미 핵공방의 기원과 전개』(2012), 『구술사로 읽는 한국전쟁』(2011, 공저), 『북한위기론: 신화와 냉소를 넘어』(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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