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원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pbpm@chollian.net)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북한을 방문해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남긴 게 말썽이 되어 구속되었다. 나도 3년 전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도대체 만경대가 어떤 곳이며 "만경대 정신"이 뭐길래 그까짓 글 한 줄로 구속까지 된단 말인가.

북한 당국에 따르면, 만경대는 김일성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며 "혁명의 큰 뜻"을 키운 고향집으로, 그곳에는 그의 아버지 김형직이 일제를 몰아내고 조선의 독립을 이룩하자는 결의를 다지면서 심었다는 나무도 있다. 그러나 그가 1925년 "조국 광복의 길"에 오르기 위해 집을 떠난 뒤에는 거기에 살지 않았고, 1994년 죽어서도 조부모와 부모가 묻혀있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직 금수산기념궁전에 누워있을 뿐이다.
 
따라서 김일성이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10-20년대 만경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품었다는 "혁명의 큰 뜻"은 그가 1930년대 펼쳤던 항일 빨치산 투쟁에서 나타나듯, `민족 해방`과 `조국 광복`이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강정구 교수가 쓴 "만경대 정신"이란 `항일 투쟁 정신` 또는 `반제국주의 자주 독립 정신`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김일성이 `가짜`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그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크게 해방 전과 후의 활동으로 나누어 봐야 할 것이다. 해방 전의 항일 빨치산 투쟁이 오래된 일이고 대단한 것도 아니라며, 해방 후의 6.25나 주체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김일성을 평가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만경대와 결부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그가 1910-20년대 고향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20-30년 뒤의 남북 분단까지 점치고 이른바 남침을 통한 적화 통일을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는 말은 우리가 몸서리치는 적화 통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항일 정신 또는 반제국주의 정신으로 통일하자는 뜻일 테니 처벌은커녕 오히려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만경대 정신`을 `김일성 주의` 또는 `주체 사상`으로 받아들이려는 것은 수구 세력의 북한에 대한 편견과 왜곡 그리고 무조건적인 반북 반공 정신이 빚어낸 억지일 뿐이다.
 
항일은커녕 친일에 앞장섰던 수구 족벌 신문들이 세무 조사와 사주 구속에 분풀이 보복이라도 하듯,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하기 위해 방북단의 언행을 과장 왜곡 보도하며 여론을 호도하는 가운데, 강정구 교수가 구속되었으니 통탄할 일이다.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이에 덧붙여 연방제 통일 방안에 대해서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따져보며 건전하게 토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까지의 연방제는 궁극적으로 남한을 적화하기 위한 `공세적` 통일 방안이었다고 해도, 1980년대 이후의 연방제는 남한에게 흡수당하지 않으려는 `수세적` 통일 방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통일 방안은 첫째 바람직해야 하고 둘째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방안일지라도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가 뭐래도 남북한은 한 핏줄이니 한 울타리 안에서 하나의 체제와 하나의 정부를 갖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남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본주의를 지켜야 된다는 반면 북한은 죽어도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못하겠다니, 그러한 완전 통일이 합의에 의해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은가.
 
따라서 당분간 서로의 체제와 이념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여, 남한은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북한은 사회주의를 지키며, 한 지붕 아래 두 집 살림을 차리는 식으로나마 통일해보자는 게 연방제다. 이를 북한이 먼저 제안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반대하거나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만들기 전에, 과연 이보다 바람직하면서도 동시에 실현 가능성이 높은 통일 방안이 있는지 궁리해보자.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자본주의를 좋아하든 사회주의를 좋아하든, 진정으로 이 땅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을 바란다면.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