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부 국장급협의가 16일 열렸고 후속 회의도 다음 달 열린다는 소식이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 이전에 양국 정부가 속시원한 해결책을 낼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뒷짐지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지 3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한국정부는 피해자들을 위해 성의있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2000년 초반 미국법정에 일본기업과 일본국가를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해 소송을 한창 벌이던 시기, 일본 측의 변론은 지금까지도 초지일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그 때도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개인 피해자들이 제기할 수 있는 모든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입장이었다.

미국 재판부는 이에 대한 한국 외교부의 공식 입장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우리 변호인단은 외교부의 입장 천명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외교부가 한 달 반이 넘도록 응답을 미루며 애를 태우다가 우리 원고 측이 극적으로 받아낸 한국 정부의 입장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위안부’문제가 논의된 적이 없다. 그러나 배상 대신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 정부입장”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답변이었다.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미국 법정에서 일본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전개하던 우리 변호인단이 2001년 7월 19일 한일청구권 협정과 관련해 외교부로부터 받은 답변. 정부가 1965년 청구권협정을 피해나가면서 나름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자료사진 - 정연진]

이승만 정부도 14년간 한일회담을 진행하면서 100억불을 요구했던 대일배상 문제였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국민들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유상, 무상 합해서 5억불에 한일청구권 협정을 졸속으로 타결해버렸다. ‘위안부’ 문제는 직접적으로 청구권 협상에서 거론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피해자들이 분명 ‘정당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기에 정부가 어떻게 한일청구권 협정을 고집해온 일본 정부를 설득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일본과거사 문제 활동을 하면서 과거 느낀 체험에 의하면, 일본과의 문제는 정부의 힘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일본과의 새로운 역사의 장은 정부의 외교력과 풀뿌리 시민의 역동적인 활동이 결합되어 상승효과를 낼 때 가능하리라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할까.

한류를 활용한 일본 여성들과 다차원적인 연대

일본에서도 시민활동가, 인권변호사들이 20여년 간 한국,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피해자들을 도와 자국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고 일본 의회에 피해자 보상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부단히 애써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역부족이었다. 양심적인 일본인들은 결코 적지 않지만, 이들이 일본 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일본 법정에서 양심적인 판사들이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우호적인 판결을 내주려고 해도 그러한 판결을 가능케 하는 법이 없었다. 일본의 ‘위안부’ 문제 활동가들은 10여년 전부터 자국 의회에 ‘전시성폭력피해자보상법안’을 상정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으나, 자민당 정부에서는 실현되기 힘들었고, 민주당 정부 시기도 놓치고 말았다.

그러한 법안이 일본 의회를 통과하려면 일본 정계가 움직여야 하고 일본의 정치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일본 유권자들 아니겠는가. 일본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지금까지 이 문제에 헌신적인 열정을 보여준 시민활동가와 지식인 그룹 위주에서 좀 더 폭넓게 대중적으로 파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에서 일본 여성들이 ‘위안부 문제에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집회를 열고 있다. 2012. 8. 14.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두 해 전 광복절, 서울 시청 앞에서 500여명의 기모노와 한복을 차려입은 일본 여성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사죄합니다’라면서 머리를 숙인 적이 있었다. 이러한 일본 여성들의 집단적인 사과 집회가 광주, 대구 등 다른 도시에서 열렸다는데, 이러한 일본인들을 적극 끌여들어야하지 않을까?

이들 집회에 대해 일본이 ‘중국의 부상을 우려해서 한-일간 화해를 통해 중국에 대처해 보자’라는 의도로 정치적으로 동원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 여성들 중에 ‘위안부’ 문제에 공감하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한류에 대한 인기가 일본 정국이 급보수화 되면서 혐한 분위기로 인해 전보다 위축되긴 했지만, 그래도 한류시장의 60%이상은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 한류에 감동하는 일본 ‘아줌마’들의 에너지는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한류를 통해 한국에 대한 문화 호감도가 높아진 일본 ‘아줌마’들을 적극 끌여들일 방안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이제는 한류에 각광하는 일본 여성들이 한국 역사에도 관심을 갖고 한일 간 역사갈등에 대해서도 눈뜨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일본 여성들이 ‘위안부’문제 해결에 자국의 정치인들을 움직일 수 있도록 이들과 연대와 협력을 시도해보았으면 한다. 지난 4월 5일 ‘위안부’ 바로 알기 컨퍼런스를 주최한 코윈(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과 같이 세계적인 조직망이 있는 여성단체가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 문화적 교류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아줌마’의 힘이 결집된다면, 지금까지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본 보수우익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힘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소프트 파워, 미디어의 힘을 적극 활용해야

▲ 애니매이션으로 만들어진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어느 소녀이야기 Her Story’
2011년. 감독 김준기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동영상에 피해자들의 육성을 넣어 감동적인 단편 동영상을 만들어냈다. 한국어판과 영어 자막 동영상이 유튜브로 배포되었다. [캡쳐사진 - 정연진]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 영화와 미디어 같은 소프트파워를 본격적으로 활용해 나갔으면 한다. 우리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보다 나찌의 유대인 박해를 더 잘 알고 있는 것도 역시 미디어의 힘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논리적 주장보다는 결국 감동의 힘이다.

특히 동양에는 ‘백문이 불여일견’, 서양에는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공통적인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시각적 효과가 중요하다. 국내에서도 문화콘텐츠의 힘으로 ‘위안부’문제에 대해 더욱 폭넓은 공감대를 쌓아가려는 노력이 만화, 애니메이션, 사진, 다큐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고 있는데, 이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미주한인 2세 중에서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인재들이 많이 있다. ‘쉰들러 리스트’와 같이 지구촌이 감동할 만한 세계적인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미디어 분야에서 활동하는 차세대들이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최근 남가주대학교(USC)의 영화학 전공자가 일제 ‘731 부대’의 만행을 졸업작품으로 제작하겠다고 기획했고 여기 한국의 유명한 영화배우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참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무척 고무적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해 나가야

‘위안부’문제에 대한 국제 컨퍼런스, 심포지엄 등은 일본의 히로히토 국왕을 전범으로 유죄를 선고한 2000년 도쿄 민간법정을 비롯해서 많이 열렸다. 이러한 국제 행사들이 행사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국제적 인맥으로 쌓여 축적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나비 모임이 주도하고 있는 베트남전쟁 민간피해자 돕기 사업, 역사 NGO 포럼이 벌이고 있는 아시아 각지의 역사 갈등 해결에 대한 모색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에 대한 공감대를 높이고 한국의 입지를 더욱 높여줄 것이라 기대된다.

▲ 2012년 8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역사 NGO 대회의 ‘역사적 화해를 위한 동아시아 청년 포럼’에서 나눔의 집의 김정숙 간사가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있다. [사진제공 - 나눔의 집]

시각차를 좁히는 한-일 시민사회의 공동 노력 모색

일본인들이 국군주의와 전쟁범죄가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얼마만한 큰 희생이었고 주변 나라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를 깨달아야 역사 화해가 이루어 질 수 있을 텐데,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은 자꾸 거꾸로 가고 있다.

결국은 역사 인식의 문제이다. ‘위안부’ 문제가 한국에게는 일본정부가 ‘시인하고 사죄하고 배상해야 할’ 문제이나, 당사국 일본은 (특히 우익의 입장은) ‘사죄하고 배상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고, ‘위안부’의 동원에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의 간격을 어떻게 좁혀가야 하는가.

일본 정부의 태도를 성토하고 규탄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차원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보다 냉철하게 세계인이 공감하는 인류 보편성이라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일본 시민사회를 화해의 참여자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겠다.

▲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한-일간의 인식 차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2005). 아버지의 야스쿠니 합사를 취하해 달라는 한국 측 피해자 이희자 여사와 일본의 시민활동가 후루카아 마사키 씨의 만남을 통해 한일 간의 차이를 소통해 나간다. [사진출처 - 영화 소개 웹페이지]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한 한일 간의 시각차이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가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해방과 종전 60주년을 기해 2005년 한일 시민단체가 공동제작한 영화이다. 태평양전쟁으로 전사한 아버지가 야스쿠니신사에 전범들과 합사되어 있는 이희자 여사와 일본인 시민활동가 후루카와, 두 주인공의 합사취하소송 과정을 통해 한일 간의 역사 화해와 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고민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 참여한 일본 측 감독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한일 간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함께 작업을 하려고 했던 것은 어렵더라도 가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관계 회복을 이뤄 보자는 취지에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 시민단체의 10년 동안의 신뢰가 있었고 그들이 함께 하는 작업이라면 힘들더라도 풀 수 있는 공감이 있다고 믿었다. 함께 하면서 이해하는 게 많아졌다. 다시 뭔가를 함께 도모한다면 또 갈등과 대립을 겪겠지만, 차이를 좁히든 그대로 인정하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daum 영화 소개]

일본의 변화를 촉구하는 미정계의 노력, 지속되어야

작년 7월 30일 LA 인근 글렌데일시 공공 도서관 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싸고 미주한인들의 소녀상을 지키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 커뮤니티의 보수 단체는 글렌데일 시를 상대로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 모두 대형 법률회사가 변호를 맡았고 열띤 법정공방이 예상되고 있어서 미국에서 한일 간 역사전쟁은 앞으로도 계속 뜨거워질 전망이다.

▲ 글렌데일 소녀상과 헤어지기 싫어하는 한 어린이의 모습. 인류보편적인 인권문제인 ‘위안부’ 문제가 일본계의 반발로 인해 글렌데일 주민들에게 자칫 한일 간의 분쟁으로 비추어지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그러나 소녀상은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2014년 3월. [사진 - 정연진]

2007년 미하원 결의안이 통과한 이 후에도 일본 정부의 근본적 태도 변화가 없자, 하원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앞장섰던 마이크 혼다 의원이 다시 나섰다. 2014년 1월 하원과 상원에서 일본 정부가 7년 전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LA 한인타운에서 열린 한 후원모임에서 마이크 혼다 의원은 “본인은 교사 출신이었기에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떠한 역사를 가르쳐야 할지를 고민하다 보니 일본과거사 문제를 바로 잡는 일에 뛰어 들게 되었다”고 하면서, “일본이 미래 세대에 진실을 가르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위안부’문제를 앞으로 계속 이슈화 해나가겠다”고 다부진 결의를 보였다.

미국의 개입이 일본의 입장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겠다. 미국 정계에 소신있고 용기있는 정치인들이 지속적으로 일본정부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도록 이들을 성원하고 독려해 나가야 하고 미 정계에 새로 배출되는 한국계 정치인들도 역사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미주동포사회의 풀뿌리 시민의 역량을 더욱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 미주한인들이 이번 6월 선거에 8선에 나선 마이크 혼다 연방하원의원을 돕기 위해 후원모임을 열고 있다. 4월 11일 중원포럼이 마련한 후원모임에서 한인들과 담소하고 있는 혼다의원 [사진 - 정연진]

남.북.해외 공조의 중요성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청산 문제는 남과 북이 국제무대에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민간의 노력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역사문제를 기반으로 해서 남북 간의 공감과 소통을 늘려나가면서 통일에 필요한 민족정체성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의 공조를 통해 통일시대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별도의 기사로 다루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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