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겸 / 동국대학교 북한학 석사 졸업
 

<새연재> ‘북한 산책길: 지리 ․ 산 ․ 시장 ․ 축제’를 연재하며

오늘부터 동국대학교에서 북한·통일을 고민하고 있는 신진연구자들(일명 목멱사람들)이 ‘북한 산책길: 지리 ․ 산 ․ 시장 ․ 축제’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리(이종겸) ․ 산(박소영) ․ 시장(한재헌) ․ 축제(한승대)라는 주제를 통해 저희 4명의 필자들이 나름대로 북한을 인식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새로운 관점을 찾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어딘가를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저희와 함께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각 주제별로 한 번씩 매주 화요일에 만나고자 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목멱사람들 주

우리의 북한의 지리에 대한 이해는 우리에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정도 혹은 그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 북한 땅을 직접 밟아 볼 기회도 매우 부족하고, 그 공간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자료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그간 남한에서 북한의 지리에 대한 연구는 꽤 많이 나왔다. 그렇지만 북한의 지리를 인민과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장(場)으로서 초점을 둔 것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국가의 통치와 동원·규율 속에서 인민들은 어떠한 감정을 갖고 어떠한 생활을 영위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북한의 땅과 지리를 생각한다면, 북한 지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는 다양한 정보를 여러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와키바야시 미키오라는 일본 학자는 『지도의 상상력』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의 방식을 지도의 ‘표현’을 통해 살펴보고자 했다. 이 책은 지도를 통해 근대적 세계와 국경, 국민의 등장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지도 그리고 그와 관련된 지식들은 사회를 공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물론 미키오와 같이 거창한 시도를 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의 연재 제목을 “북한의 지리 읽기”라고 지었다. 지리를 인간사회와의 연관성에서 본다는 것은 인문학적 시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북한의 지리 ‘읽기’인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지도와 텍스트를 함께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필자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지리라는 과목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과 세계 각지의 지도와 지형, 기후, 자원 등을 배우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오질 않았다. 이제 와 돌이켜 보건데 당시 필자는 지리를 인간 삶의 세계로서 실감하지 못했고, 그래서 지리과목이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지리는 인간사회와의 연관성 속에서 실감나고 흥미롭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과감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지리적 공간을 나와 같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써 이해할 때만이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없겠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필자의 이러한 생각에 조금이라도 공감해 주거나 관심을 가져준다면 매우 다행일 것이다. 또한 지리를 전공하지 않은 필자가 북한의 지리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자칫 무모해 보일 수 있다. 다만 북한의 지리를 통해 북한사회의 이면(裏面)과 인민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공유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독자제현(諸賢)의 질책과 조언을 바란다.

앞으로 실릴 글들을 ‘스케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미완성의 스케치일 것이고, 부족하게나마 그 ‘질감’을 표현하고자 한다. 회화에서 질감(matière)은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시각적·촉각적 재질감으로서, 대상의 평평함, 매끄러움, 울퉁불퉁함 등의 감각이다. 간략한 스케치를 통해서 질감을 조금이나마 표현하고 싶은 것이 필자의 욕심이다. 그 재질은 우리와 비슷한 외모와 본성, 습속을 가진 북한의 인민들이 살아가는 생활세계의 느낌이다.

필자가 앞으로 어떠한 재료와 도구로 북한지리에 관한 스케치를 그릴 것인지가 그 ‘질감’을 느끼는 데 중요할 것이다. 북한지리를 스케치하기 위한 ‘재료’로써 북한에 관한 각 소주제들을 몇 가지 선정할 것이고, 그 시각은 인민들의 삶을 중심에 두면서 균형감각을 취하고자 한다. 소주제들은 다소 수정될 수 있지만, 북한의 방언과 경제(공업, 교통 등), 민속 등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도구’로써 글을 쓰는 자료들은 북한에서 발간된 자료들을 중심으로 할 것이다. 북한자료에서 지도자에 대한 찬양과 체제를 옹호하는 논리를 답습하기 보다는 호기심 어린 시각과 인문지리적 해석으로 그 맥락(context)을 보고자 할 것이다.

앞으로 연재될 글들이 이와 같이 다소 거창한 머리말에 비해 초라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필자의 의도가 북한지리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공유하고, 이를 ‘스케치’하는 것에 만족하고자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애정 어린 질정을 바란다.

북한 방언지리의 발견: 조선언어지리학시고

▲ <그림> 조선 방언의 기본구획
김병제. 『조선언어지리학시고』
이후 3-4편이 연재될 북한의 방언지리에 대한 화두를 하나 던지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작년에 우연히 흥미로운 북한서적을 발견했다. 『조선언어지리학시고』라는 책이 그것인데, 처음 제목을 읽고는 과연 무슨 내용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몇 장 넘기면서 이 책이 북한의 방언, 즉 사투리에 대해 다룬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북한의 획일적 이미지와 함께 언어도 ‘문화어’가 북한 언어생활에 전부인 양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1988년 평양에서 출판된 이 책은 북한의 방언과 그 지리적 현상에 대해 담담하고 솔직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북한의 표준어는 문화어로서 북한의 언어생활 조직화에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를 알고 있으며 이에 관한 연구도 그동안 많이 축적되었다. 반면 북한의 방언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약하여 몇몇 언어학자들 위주로 진행되었다. 한편, 다행히도 그동안 북한 방언 연구가 소수로나마 면면히 진행되어왔던 것인데, 북한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에 대해 무지했다는 점이 부끄러웠다. 북한 사회와 언어생활의 이면(裏面)으로서 방언의 중요성과 토속적 가치 등을 생각하면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필자는 방언의 지역적 분포와 그러한 분포가 가능했던 지리적 요인들에 관심을 갖는다. 이 연재를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앞에서 언급한 『조선언어지리학시고』(김병제 저,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8)는 북한의 방언 연구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필자에게는 행운이었는데, 이 책은 그 나름의 실증적 분석과 함께 북한 방언현상의 실체로 우리를 인도한다. 조선말 방언의 구획은 기본적으로 그림과 같이 구분된다. 이는 행정구역의 역사, 자연지리적 조건, 교통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다음 연재부터 이에 대한 하나씩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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