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출범시켰습니다. '6.4지방선거'에서 독자생존이 어렵다고 본 새정치연합과 3자 구도 하에서는 필패라는 민주당의 위기의식의 산물입니다. 통합신당합의에서 창당대회까지 한달도 채 되지 않다보니 그 과정에 잡음도 적지 않았습니다. '4월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을 정강정책에 명시하지 말자는 새정치연합 측 제안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이번주 '친절한 통일씨'는 햇볕정책(화해협력정책) 계승자를 자처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통일외교안보정책을 짚어봅니다.

○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배경

지난 2일 새벽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제3지대 신당 창당을 통한 통합'에 합의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기초공천 폐지'를 약속했음에도 사과 한 마디 없이 뭉개고 있는 정부.여당의 "거짓의 정치를 심판하고 약속의 정치를 정초하기" 위해서, 나아가 "2017년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거대여당의 폭주로 인해, 국민의 정치혐오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엄중함이 있었습니다"며 "파격적 쇄신을 통해 과거로 돌리려는 물줄기를, 미래로 흐르게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이 처한 '위기'는 우선 여론조사 추이를 통해 확인된다.

지난해 6월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 설립 직후 '안철수 신당'에 대한 지지는 25%(<한국갤럽> 2013. 6.28자, 새누리당 30% 민주당 9% 의견 유보 41%)로 나타났다. 안철수 신당을 배제한 기존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37%, 민주당 18%, 의견 유보 34%였다. 따라서 "안철수 신당이 출현할 경우 기존 민주당 지지자와 무당파의 상당수를 흡수해 20~40대에서는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전망이 나왔다.

11월 28일 창당준비기구 '국민과 함께 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 출범 직후와(<한국갤럽> 2013.11.29자, 새누리당 35% 안철수 신당 25% 민주당 11% 의견 유보 27%), 올해 2월 17일 '새정치연합' 발기인대회 직후에도(<한국갤럽> 2014. 2.20자, 새누리당 39% 새정치연합 26% 민주당 12% 의견 유보 22%)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2월 마지막주 변화가 나타났다. <한국갤럽> 2월 27일자 발표에 따르면, 새정치연합 지지율이 1주일 만에 8%(새누리당 40% 새정치연합 18% 민주당 15% 의견 유보 25%) 폭락했다. 새정치연합 참여 인사들의 중량감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안철수 지지층 일부가 새누리당과 민주당, 무당층으로 각각 이탈한 것이다.

안 의원 측이 독자생존하기 어렵다고 절감한 보다 직접적 계기는 '6.4지방선거' 광역시도지사 후보자 영입 무산이었다. 안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합류를 기대했으나 민주당 소속이던 박 시장은 난색을 표했다.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에서 야권 후보로 인식되면 망한다'는 현실론을 내세워, 여도 야도 아닌 무소속 후보를 고집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은 '야권단일후보'를 주장하며 새정치연합 합류를 거부했다.

대선 패배 이후 10~20% 지지율에 허덕이던 민주당은 안철수 의원 측에 '3자 구도에서는 공멸한다'며 구애를 계속했다. 김한길 대표가 당 내 현역 기초단체장과 기초 의원 및 출마 예정자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초공천 폐지'를 고리로 통합신당 창당을 밀어붙힌 배경이다.

통합신당 합의 직후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한국갤럽> 3.7자에 따르면, 통합신당 지지율은 31%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은 39%, 의견 유보는 26%였다. 김한길 대표의 책사인 민병두 의원은 "지지율의 내용이 좋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야권이 강세인 수도권뿐 아니라 2012년 총선 및 대선에서 박근혜 지지세가 강했던 충청.강원에서 현역 야권 단체장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 정강정책 합의 과정에서의 논란 : 정체성 문제

창당발기인대회(3.16)를 거치며 순항하던 '통합신당'은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18일 '정강정책분과위' 회의에서 새정치연합 측이 신당의 정강정책에서 '4월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을 넣지 말자고 제안한 까닭이다. "과거의 소모적, 비생산적 이념 논쟁은 피하는 게 좋다(윤영관 새정치연합 측 정강정책분과위원장)"는 이유에서였다. 민주당은 물론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시민사회까지 반발했다. 전통적 야권 지지층의 이탈조짐도 나타났다.

19일 아침 김한길 대표는 "어제(3.18) 밤에 안철수 위원장과 밤늦게 만나서 정강정책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며 "안철수 위원장은 4.19와 5.18은 물론이고, 6.15와 10.4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데 대해서 이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강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저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안철수 의원도 이날 "어제 새정치민주연합 정강정책분과회의 전후로 뜻하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면서 "제 역사인식은 확고하다"고 밝혔다.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명확한 역사의 평가가 이뤄진 한국 현대사의 성과이자 이정표"이며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 역시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 문제가 정체성 논란으로 커진 데에는 특정 문구를 넣고빼는 기술적 문제로 봤던 새정치연합 측의 안일함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안 의원 참모들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인혁당 사건'으로, 문재인 후보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으로 공격받은 점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대권으로 향하는 안 의원의 앞길에서 논쟁거리가 될만한 것들을 미리 제거하자는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김한길 대표의 지속적인 '우클릭 행보'도 정체성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올해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오자, 1월 13일 김 대표는 "대북정책이 더 이상 국론분열의 빌미가 돼서는 안된다"며 "국민통합적 대북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직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의 책사인 민병두 의원은 1월 15일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데 (새누리당과) 똑같이 '지지자 중심 정치'를 한다면 여러 선거의 결과는 뻔하다"며 "우리가 전선을 오른쪽 중간에 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화해협력만 얘기하면서 안보는 소홀히 한다'거나 '경제민주화만 중시하면서 성장은 소홀히 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대북정책 관련해서는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는 변화한 환경하에서 새로이 다듬어지고 작동 가능한 햇볕정책 2.0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북한의 인권실상에 대해서 민주주의를 제1의 가치로 여기는 민주당이 지적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통일의 원칙이자 가장 필요한 정책"이라고 반발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도 "토론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정강정책분과위 민주당 측 위원장인 변재일 의원이 국회 정론관을 찾아 전문과 13개 중범위 분야별 정책을 담은 A4 용지 19쪽 분량의 새정치민주연합 정강정책 최종안을 발표했다.

논란 많았던 '역사적 정체성'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항일정신과 헌법적 법통, 4월혁명.부마민주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을 계승하고, 경제발전을 위한 국민의 헌신과 노력,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을 존중한다"고 정리했다. 변 의원은 "상해 임시정부의 헌법적 법통부터 (...) 민주화운동을 계승하"고 "산업화 과정의 긍정적 측면인 압축성장의 성과를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실 인식'과 관련, 변 의원은 "1997년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편입됨에 따라 (...)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국민의 삶은 피폐해지고 불안해지고 있으며, 정치경제사회 부문별 권력부패 담합구조가 한국정치를 승자독식의 정치로 만들어 민주주의의 기본인 권력분산과 상호견제의 원리가 무시되고 삼권분립의 원칙마저 도전받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4대 가치로서는, 중산층과 서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정의, 통합, 번영, 평화'를 새 정치의 4가지 시대적 가치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26일 창당대회에서,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는 '새정치'와 '민생제일주의'를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치로 내세웠다. 아울러 '튼튼한 안보'와 '혁신적 성장경제'도 강조했다.

○ 통일외교안보 분야 정강정책 : 몇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통일외교안보정책은 큰 틀에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 등 남북한 기존 합의 존중.계승,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추진, △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를 통한 번영된 통일국가 건설을 명시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대화를 통한 협력과 평화정착의 노력을 지속해나가고 남북한이 발전시켜온 분야별 협의체를 복원하고 더욱 발전시켜 제도화함으로써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추구한다"며 화해협력정책의 뼈대인 교류협력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박 대통령도 지난 28일 '드레스덴 연설'에서 '교류협력 확대'를 천명했다. '통일대박론에 과정이 없다'는 비판을 일부 수용한 것이나, 교류협력의 걸림돌인 '5.24 조치', 규모있는 지원과 협력의 전제인 '비핵화 진전'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대북정책에서 동북아 정세와 남북 관계, 국내정치 환경 변화에 맞게 '업그레이드(또는 우클릭)'된 측면도 눈에 띈다. 이는 2009년 박모씨 피살사건,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 2013년 상반기 북한의 거친 대남 발언과 위협,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등으로 인한 국민들의 대북 인식 악화와 관련이 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2012년 말까지 '대북 인식 및 대북 정책 방향' 관련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들이 '안보' 보다 '평화'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15~20% 이상의 차이로 '평화 중시' 여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2013년 초 '한반도 위기'를 거치며 흐름이 바뀌었다. '평화 중시' 대 '안보 중시'가 4:6으로 역전된 것이다. 아울러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도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비슷하게-최근에는 아베 보다는 김정은 위원장이 좋다는 응답이 더 많게 나오기는 하지만- 한 자리 수준으로 떨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변수'를 내정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새정치민주연합이 대북정책에서 강조점 변화를 꾀하는 배경이다. 2013년 초와 같이 북한의 대남 위협이 부각되면 안보를 강조하는 보수층의 목소리가 커지고, 개성공단 재개에서와 같이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야권의 대정부 비판이 무뎌지는 흐름이 되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한반도 위기' 직후에는 '이석기 사태'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등 '종북몰이'에 주력했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채동욱 찍어내기, 간첩증거조작사건 등으로 국정원과 공안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하고, 야당과 시민사회의 대정부 비판이 강화되던 시점에는 '통일대박론'을 본격적으로 들고나왔다.

◇ 통일정책 강화 : 변재일 의원은 "현재 시대적 관심사가 집중돼 있는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새정치연합의 초안이나 민주당의 강령에서도 외교안보통일이 한 개의 항목으로 속해 있었으나 이번에는 외교안보분야에서 분리해서 별도 항목으로 설정하고 단순히 통일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방경제문제를 포함해서 통일문제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한국경제의 신성장 동력이자 통일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북방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전통적 보수의 의제인 '성장'과 '안보(또는 흡수통일)'이 수렴하는 곳에서 '통일대박론'을 들고나왔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 북한 인권 문제 : 보수층으로부터 '북한 인권' 관련 입장 표명을 요구받아온 민주당과 안 의원 측은 "북한 주민의 인권과 민생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다. "남북 협력과 국제협력을 통해 북한주민의 실효적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안정적이고 전달체계가 투명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실시한다"는 것. 이는 "남북 협력과 국제 협력을 통해, 북한 주민의 인권을 단계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증진"하고 "분배투명성에 대한 협력 하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확대해나간다"는 안 의원 측 초안을 다소 순화시킨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또 "이산가족들의 전원 상봉을 위해 상봉의 상시화를 추진하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적 책임을 다한다"고 했으며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 정착과 사회통합을 위한 지원을 확대해 나간다"고 밝혔다. 26일 창당대회에는 탈북자와 대북지원단체 활동가를 초청해 이같은 의지를 뒷받침했다.

◇ 안보 중시 : 지난 2일 창당 합의 발표문에는 "신당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고 통일을 지향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튼튼한 안보'는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의 '컨센서스'인 셈이다.

2013년 초 '한반도 위기'는 남북관계와 대북정책 방향을 2000년 이전으로 되돌려놨다. '안보 중시 대 평화 중시'가 6:4로 역전됐다는 건 대북정책의 당면 초점을 '평화만들기'가 아닌 '평화지키기'로 이동하라는 여론의 압력에 직면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던 6.15공동선언 직후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 이전으로 남북관계가 되돌아간 것이다. 6.15공동선언 이후 10여년에 걸친 남북 간 교류협력의 성과들이 물거품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외교안보 정책은 이같은 '대북 인식 악화'를 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주변국과의 적극적 협력관계를 심화시켜" 나가는 한편, "미래지향적 방위역량 강화와 선진병영문화 조성으로 국민이 신뢰하는 튼튼한 안보태세를 확립한다"는 것이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26일 새정치민주연합 창당대회 직전에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참배하고 '천안함 4주기 추모식'에 나란히 참여했다. 또, 창당대회장에는 천안함 희생자들을 위한 빈 좌석을 설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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