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 (본사 상임고문, 재미 통일연구가)


지난 연말 “통일의 문을 여는 진짜 대통령을” 모셔야 한다는 글을 썼더니, 이에 화답하듯(물론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연초에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자 마치 통일논의의 백가쟁명 시대가 열린 것처럼 시끄러워진 것이 최근 한국의 분위기이다.

그런 배경 하에 독일을 방문 중 지난 28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박근혜 박사가 그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란 것을 발표했다. 그녀는 (1) 인도주의(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산모나 유아에 대한 지원 등), (2) 공동번영(복합농촌단지 지원, 인프라 건설 투자, 중.러 등과의 공동투자 등) 및 (3) 동질성회복(공동 역사연구, 문화 및 스포츠 교류와 국제사회 공동 진출 및 교육 프로그램 공동개발 등)의 3개 분야에 걸친 여러 사업을 열거하고, 이를 실행하는 “남북교류협력사무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또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과 국제투자유치도 도울 것이며 동북아개발은행을 만들어 북한을 지원할 수 있다고도 했다. 더 나아가 동북아 다자안보협의체를 만들어 북한의 안보도 지켜주겠다고 언명했다.

박 박사의 이러한 구상에 대해 한국의 전문가들의 평가는 잘했다는 측과 미흡하다는 쪽으로 엇갈리고 있다. 북한의 공식 반응은 아직 보도된 바 없다. 그러나 같은 28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3일 전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두고, “조선반도와 주변에서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군사적 도발을 계속 강화할 기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우선 이번 박 박사의 한반도 평화통일구상 속에는 귀에 익은 "DMZ세계평화공원”안이 또 들어 있는데, 1953년의 한국휴전협정에 의해 북한을 포함한 협정체약국들이 공동 관리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비체약국인 한국이 어떻게 제멋대로 세계평화공원으로 개조하여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또 박 박사는 이번 연설 중 줄곧, 뒤지고 가난한 북한을 앞서고 잘사는 남한이 아량을 베풀어 도와줄 용의가 있다는 자세를 취했는데, 이는 틀림없이 자존심 강한 북한의 비위를 몹시 상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박 박사는 이 모든 제안에 “북한이 핵을 버리는 결단을 한다면”이란 전제를 달았다. 그것은 결국 북한이 미국 앞에 백기를 들고 나온다면 도와주겠다는 말과 같은 것이었으며 나가서 그녀가 결국 스스로 미국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힌 결과가 되고 말았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 간의 문제였지만 1950년 6.25전쟁 발발로 여러 나라 군대가 끼어든 국제문제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 후 다른 나라 군대들은 다 떠나갔지만 미군만 아직도 한반도에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 문제는 아직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상 남북·미 3자간의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남한군은 미군의 작전통제 하에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특히 군사적 의미에 있어서, 한국문제는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 간의 문제로 되어있다 해서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맞서 있는 작은 나라 북한이, 전 세계는 물론 중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최후수단으로 개발하고 보유하고 있는 것이 핵무기인데, 북한이 미국의 수중에서 노는 박 박사의 회유에 넘어가 그것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미국이나 한국은 물론 중국마저도 북핵은 절대 불용이라는데 북한은 절대 핵개발을 고집하고 있으니 해결의 길은 전혀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와 북핵 포기를 맞바꾸는 협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첫째 근거는 2005년의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이다. 그때 북한은 미국의 무력침공 위협이 제거되고 전한반도의 비핵화를 포함한 일정한 조건이 보장되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한다고 문서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미국의 불투명하고 의심스런 후속조치 진행태도에 불안을 느껴 북은 핵개발을 재개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작년(2013) 6월 21일의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대사의 기자회견이다. 이때 신 대사는 그 며칠 전(6월 16일)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북미 간 고위급 회담으로 군사적 긴장완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및 유엔사 해체 등, 조치를 강구하자고 제의한 일을 상기시키며, 미국이 유엔사를 해체하고 대북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은 핵 억제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명했다.

박근혜 박사가 자기가 발표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의 성사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덮어놓고 북한의 핵 포기를 전재로 내 걸 것이 아니라, 먼저 미국을 설득하여 주한미군을 내 보내든가, 아니면 적어도 주한미군의 존재가 절대 북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없는 묘안을 고안해 내든가 해야 할 것이다.

남편의 축첩으로 망가진 부부관계는 첩을 내보내지 않고 정상화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의 적이었으며 영원히 북한의 적이고자 하는 미국을 그대로 둔 채 남북관계가 어떻게 정상화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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