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전통무예인 태권도를 두고 세계태권도연맹(WTF)과 국제태권도연맹(ITF)으로 각기 분리, 경쟁적으로 홍보에 주력해왔다.

외교부가 26일 공개한 1982년과 1983년 외교문서에는 남북이 태권도의 각 국 진출을 두고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1982년 파키스탄에 북한 ITF가 시범단을 파견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정부는 맞불작전으로 WTF 시범단을 파견키로 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가 북한 태권도 시범단을 초청할 예산이 부족하고, 한국정부도 예산부족으로 시범단을 파견하지 못해 남북의 파키스탄 태권도 진출이 좌절됐다.

1982년 11월 8일 당시 김치홍 주 이스라바마드 총영사는 11월과 12월 중 북한 태권도 사범 1명, 시범단 15명이 파키스탄 정부의 체재비 부담 조건으로 파견된다는 정보를 입수해, 외무부에 보고했다.

그러면서 김치홍 영사는 △남한 태권도 시범단 파키스탄 즉시 제의, △파견시기는 북한과 유사한 12월, △비용 및 항공여비는 정부 부담, 체재비는 파키스탄 정부 부담 등을 건의했다.

▲ 1982년 북한이 파키스탄에 태권도 시범단을 보내려고 하자, 이에 정부도 대응책을 마련했다. [캡처-외교문서]

이에 이범석 외무부 장관은 이원경 체육부 장관에게 관련 내용을 건의, 1982년 11월 15일 '북괴 태권도의 해외동향에 따른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다. 당시 회의에는 체육부, 안기부, 외무부, 세계태권도연맹 관계자가 참석했다.

당시 회의결과, 정부는 파키스탄, 요르단, 스리랑카, 수단, 이집트, 오트볼타(현 부르키나파소)에 태권도 순회 시범단을 파견하기로 결정, 총 8천만 원으로 예산을 책정했다.

이와 함께, 대책회의에서는 ITF 세력 흡수 적극 추진, WTF 활동 지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에 북한의 스포츠에 대한 정치개입 규탄 성명 등을 보내고, 중동지역 축구계의 북한 침투도 저지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외무부는 각 국 주재 대사들에게 WTF에 가입 요청 협조를 지시했다.

하지만 책정된 예산편성이 난항에 부딪히자, 정부는 파키스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 15명의 시범단을 파견, 약 2천4백만 원의 예산을 가안으로 제시했다. 해당 비용에는 시범단의 항공료, 체재비 등이 포함됐다.

뒤이어 외무부는 11월 27일 예산 사정 등을 이유로 4명으로 시범단 규모를 대폭 축소해 파키스탄에 보낼 계획임을 주 이스라마바드 총영사에게 전달하고, 북한의 태권도 시범단 파견을 저지시킬 것을 지시했다.

당시, 파키스탄 정부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받고, 북한 태권도 시범단 파견 문제를 논의, 북한 측에 시범단 파견을 예산부족을 이유로 거부할 뜻을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북한은 시범단 인원을 대폭 축소하고 체재비 자부담을 조건으로 파견하겠다고 수정제의했지만, 이미 파키스탄 정부 예산이 부족한 터라 북한의 수정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 정부도 파키스탄에 태권도 시범단을 파견할 예산이 삭제돼, 무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외무부는 이듬해인 1983년 1월, 주 이스라바마드 총영사에게 "태권도 시범단 파견은 금년도 해당 예산의 삭제로 추진이 어려운 실정인 바, 북괴의 태권도 시범단 파견을 저지할 수 있는 여타 방안을 강구, 노력바란다"며 답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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