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 4일. 당시 공로명 주 브라질 대사는 이범석 외무부 장관에게 'IMO(국제해사기구) 이사회 및 북괴 가입문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송한다. 당시 문서는 3급 비밀로 취급됐다.

보고서는 브라질 주재 대사관 참사관이 브라질 외무성, 영국대사관 등과 접촉한 내용을 언급, "지난번 IMO 이사회에서 북괴 가입안이 연구시간 부족을 이유로 검토 연기하였던 점을 상기하면서 11.5-6 런던에서 개최될 금차 IMO 이사회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하고 아측이 취하고 있는 조치를 물은 바 있다"며 "상기 북괴 가입 기도에 대한 새로운 진전 유무와 기타 관련 첩보가 있으면 통보바람"이라고 명시했다.

정부의 북한 IMO 가입 저지 특명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남북은 각국과 수교, 국제기구가입 등을 두고 양적 경쟁을 벌였다. 실제 북한은 1983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13차 IMO 총회에 참가해, 가입을 요청, 영국과의 수교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 외무부가 주영국대사관에 보낸 북한의 국제해사기구 가입저지 지침.[캡처-외교문서]

이와 관련, 외무부는 강영훈 주영국대사로부터 "IMO 총회 의사규칙 제4조에 의하면 사무총장은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국가에 대하여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총회에 업써버로 초청할 수 있는 바, 이사회가 북괴의 옵써버 초청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이럴 경우 영국정부로부터 북괴대표의 영국 입국사증을 거부할 수 없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어 강영훈 대사는 "그간 북괴의 동향에 비추어 당관 판단으로는 주제네바 북괴대표부의 진충국 대사 및 관련 공관원 1-2명이 참석할 것으로 일단 관측된다"며 "이들의 활동을 철저히 감시하여 여사한 특이활동이 포착되는 경우 즉각 추방조치를 취해주도록 아울려 요청함"이라고 건의했다.

뒤이어 10월 19일 강영훈 대사는 영국 외무성 한국담당관으로 부터 북측 인사들의 영국입국 비자신청을 제보받고 IMO 이사회의 공식 결정이 있기까지 비자발급을 보류시킨다는 영국 정부의 조치사항을 보고했다.

당시 영국에 비자신청을 한 북측 인사는 박경손 주오지리(오스트리아) 대사, 박창림 주유엔 대표부 3등 서기관, 최진생, 정창수, 안명길 등 5명이었다.

하지만 영국정부는 IMO 이사회가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하는 국가를 거부할 수 없다는 조항으로 막무가내로 이들 북한 인사에 대한 비자발급을 거부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주 영국 대사관 측은 "현재 버마사건의 수사발표가 조만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 북괴의 혐의가 밝혀질 경우, 북괴대표를 옵서버로 초청함은 테러집단을 불러들이는 것과 같으므로, 이사회에서 이점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영국정부에 협조를 요청한 뒤, 본부의 지시를 기다렸다.

당시 이원경 외무부 장관(10월 15일 임명)은 강영훈 대사에게 "북괴가 IMO가입을 통해 영국에 진출할 목적으로 제13차 IMO 총회 옵저버 자격 참석을 책동하고 있음에 비추어 아래의 단계적 목표하에 정부는 이를 저지 또는 견제하고자 한다"는 방침을 하달했다.

하달된 방침은 △이사회에 의한 북괴 초청 승인 저지, △이사회에서 북괴 초청이 결정될 경우 참가 인원 제한(1명), 영국 체류기간 및 활동 엄격 제한 등이다.

그러면서 "본부로서도 북괴의 옵저버 자격 참가 자체를 저지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특히 버마 암살폭발사건에 관련된 북괴의 범행을 영국정부에 상기시키면서 북괴의 영국진출을 위한 정치적 기도를 저지하는데 영국측이 적극 협력해주도록 특별 교섭을 전개하기 바람"이라며 결과를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IMO 이사회는 북한에 옵저버 대상국 중 하나로 초청장을 발송했고, 영국 정부도 △IMO는 비정치적이고 기술문제를 토의하는 기구라는 점, △버마 아웅산테러사건과 관련한 공식 발표가 없다는 점을 들어 북한 인사들의 입국 거부 명분이 없다는 입장을 주영국 한국대사관 측에 전달했다.

북한의 IMO 총회 참가 자체를 무산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른 외무부는 북한의 가입 저지 협조 지시를 각국 주재 대사관에 지시했다.

지시결과, 미국, 일본, 칠레, 사우디아라비아, 서독, 이탈리아, 파나마, 브라질,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모로코, 인도네시아, 그리스, 캐나다 등으로부터 북한 가입 저지를 확답받은 반면, 프랑스, 이라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방글라데시로부터는 확답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네덜란드 정부는 △국제기구는 모든 나라에 개방되어 있다는 원칙하에서 북괴의 가입을 수락하며, △금번 IMO 북괴가입을 아측(한국)이 저지코자하는 배경은 미상이나 최근 버마사건 등으로 감정적(emotinal)인 것으로 추측되나 고려하겠다는 한국정부의 입장과 다른 견해를 내놨다.

그러나 13차 IMO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 측에 비자를 신청한 북한 인사들이 비자 발급서를 반환, 참석하지 않았으며, 결국 1983년 북한은 IMO에 가입되지 않았다.

이후 북한은 1986년 4월 우편투표 결과 1백28개 회원국 가운데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IMO에 정식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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