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그는 왜 갑자기 자살을 택했나?

국민의 눈과 귀를 장악한 공중파와 수구보수언론이 꽁꽁 숨겨서 그렇지, 사실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해 중국의 정부공문을 3건이나 위조했다가 그 중국정부에 덜컥 들켜버린 사건은 국정원의 그 넓은 ‘오지랖’으로도 다 덮을 수 없는 광폭의 문제, 국제적 사태다.

“한국 검찰이 제출한 위조공문은 중국 기관의 공문과 도장을 위조한 형사범죄 혐의를 받게 되며, 중국은 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범죄 피의자에 대한 형사책임을 규명하고자 하니 위조문서의 상세한 출처를 제공해 달라.” 2월 13일 주한중국대사관이 우리나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서’다.

공문이 위조된 사실을 알리는 ‘외교문서’를 전하면서 그걸 위조한 자를 찾아내라는 창검을 우리정부에 겨눈 것이다. 이걸 무슨 수로 덮는단 말인가? 하여 저들은 중국에 내밀 재물, 그 ‘꼬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협조자’ 김 씨는 자기가 서걱, 식칼에 베이는 비운의 꼬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분식집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데 국정원에서 ‘봉급’까지 받는 ‘고정 협조자’가 그 정도 이치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서울 오는 비행기에 선뜻 오른 것은 나름 무기를 비장했다는 뜻일 터. 그가 검찰 조사(‘수사’가 아니라 ‘진상조사’였다)에서 견지한 입장은 대략 두 갈래였다.

첫째는 ‘비장의 무기’를 적절히 과시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김 씨는 검찰 조사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문서를 구하기 힘들다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국정원측에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검찰, 국정원 직원들 사법처리 겨냥’ 한국일보 3월 8일 기사 인용)> 국정원이 주범, 자기는 종범이니 검찰이 칼을 빼면 국정원을 먼저 찌르게 된다는 식이다.

또 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과 오래 관계를 맺어온 김 씨가 상당히 많은 양의 진술을 했다”면서 “충격적인 내용의 진술도 있다”고 밝혔다. ‘첫 문건엔 1000만원 준 국정원, 두 번째엔 지급 안 해... 왜?’ 동아일보 3월 8일 기사 인용)>. 자기를 건드리면 내부 고발자로 확, 변신할 수 있다는 투다.

둘째는 국정원의 거짓말에 장단을 맞춰 그럴싸하게 포장해주는 것이다. <김 씨가 입국하기 전 국정원이 그와 말을 맞췄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정원은 지난달 문건 위조 의혹이 불거지자 “선양총영사관을 통해 정식으로 발급받았다”(2월 16일)고 밝혔다. 그러다 같은 달 25일 검찰 진상조사팀에 보낸 답변서에서 “제3의 직원이 제3의 협조자를 통해 중국 측으로부터 입수했고 선양총영사관의 이모 영사는 이를 검찰에 전달만 했다”고 말을 바꿨다. 김 씨도 처음에는 “현지인을 통해 싼허 세관 측으로부터 입수한 것”이라고 국정원의 입장을 반영한 진술을 했다. (‘국정원이 간첩 증거조작 지시했다면 국보법 처벌’ 중앙일보 3월 8일 기사 인용)>.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철썩 같이 믿었던 검찰이 다른 데도 아닌 국정원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 즉 자신의 진술을 다 뭉개며 공격 자세로 돌변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검찰이 김 씨의 통화 기록과 금전 거래 명세 등을 제시하자 2, 3차 조사에선 “중국에 있는 A 씨로부터 B 씨를 소개받았고 돈을 얼마간 줬더니 문건을 가져왔다”고 말을 바꿨다. 문서에 쓰인 내용을 누가 작성했는지에 대한 진술도 “위조한 사람이 만들어 왔다”에서 “내가 문구를 써줬다”로 달라졌다. (위 동아일보 3월 8일 같은 기사 인용)>

협조자 김 씨는 이제 기로에 섰다. “(실체를 알 수 없는 - 아니, 가상의) A 씨와 B 씨가 꼬리가 되어 (가공으로) 잘리는 것”으로 조사가 마무리 될 것인가, 아니면 “꼼짝 없이, 자기 자신이 꼬리가 되어 (정말) 잘리는 것”으로 조사의 방향이 잡힐 것인가?

<검찰은 이처럼 김 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자 마지막 3차 조사에선 “문서를 누구에게 부탁해 위조했는지 정확히 확인해 줄 것”을 요구하며 김 씨를 귀가시켰다.(위 동아일보 3월 8일 같은 기사 인용)>

막다른 골목으로 떠밀린 김 씨는 “국정원이 시켜서 한 일”이라거나 “자기도 잘 모르는 A 씨, B 씨가 최종적인 위조 범죄자다” 등 위 기사에서 검찰이 말하는 “오락가락 진술”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검찰이 “국정원의 누가 사주했는지”로 조사 방향을 틀었다면 김 씨의 자살 급선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다른 말은 다 못 들은 척, 쾅쾅 대못을 박는다. “다음 조사에서는 문서를 위조한 자를 밝혀라” 끌어다 댈 실존인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위 기사처럼 김 씨는 벌써 진술을 하지 않았나. “내가 문구를 써줬다”고.

꼬리를 자르면 피가 튄다!

<검찰에서 세 차례 조사받은 그는 지난 5일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하기 앞서 아들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대한민국 국정원에서 받아야 할 금액이 있다”고 했다. 이어 “2개월 봉급 300X2=600만원,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과 수고비”를 거론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는 “지금 국정원은 ‘국조원’(국가조작원)입니다. ‘국민생활보호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맞게 운영하세요”라고 적었다.(‘간첩사건 증거 조작, 몸통 제대로 밝혀야’ 중앙일보 3월 8일 기사 인용)>

협조자 김 씨는 세 번째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오후 영등포의 한 모텔에서 오른쪽 목을 칼로 긋고 그 피로 ‘진실’을 알리는 글을 모텔 벽에 적은 다음 침대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발견되었다.

충격적 사건이 ‘날 것’ 그대로 전파를 타면서 그의 주장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국민이 아는 만큼 언론도 ‘아는 체’를 하느라, 갑자기 호들갑이다.

<앞서 김 씨는 검찰에서 “국정원 직원의 요청으로 싼허세관 공문을 위조해 넘겨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어제(7일) 검찰이 그간의 진상조사 체제에서 수사 체제로 공식 전환한 것도 범죄 혐의가 포착된 데 따른 것이다. (위 중앙일보 같은 기사 인용)> 또는 <국정원이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김씨를 위조의 단독범으로 만들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국정원이 간첩 증거조작 지시했다면 국보법 처벌’ 중앙일보 3월 8일 기사 인용)> 등이 다 그런 하품 나는 기사들이다.

헷갈리지 말자. 검찰이 조사를 수사로 전환하고,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양 “국정원의 꼬리 자르기”를 지적한 시점은 김 씨에 대한 세 차례 조사를 마친 때가 아니다.

언론이 전하는 것처럼, 그가 검찰에서 “국정원이 시켜서 한 것”임을 누누이 진술했어도 검찰은 귀를 닫았다. 대신 “문서를 위조한 자가 누구인지” 색출하는데 집중, 김 씨를 정조준했다. 그랬던 검찰이 갑자기 왜 회전문을 탄 것일까?

피가 튀었기 때문이다. 꼬리를 자르려다 얼굴에 피범벅을 하기 싫으면 칼을 내려놓으라, 이것이 김 씨가 자살(시도)을 통해 전달 또는 쟁취하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원세훈도 김용판처럼 곧 무죄 판결 되겠구나, 암시를 받을 수 있다.

<최근 퇴임 1년을 맞은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기념사업회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5일 알려졌다... 기념재단이 설립되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에 따라 일정 부분 국고가 지원된다.(연합뉴스 3월 5일 기사인용)>

업적도 없고, 인기는 더욱 없고, 오직 비리혐의로 떡칠이 된 전직 대통령, 그러나 거기도 건드리면 피가 튄다. 몸통도 꼬리도 구별이나 차별 말고 모두 싸안고 가면, 행여 꼬리에 작은 상처라도 날까, 노심초사 오히려 더욱 챙기는 깨알 지도력으로 계속 가면, 그럼 무사할까?

간첩조작사건의 본질은 지방선거 조작

<국정원이 왜 이렇게 무리를 하며 유 씨한테 간첩 혐의를 씌우려 했는지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규정해 박원순 서울시장을 흠집 내려고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유 씨를 옭아매려 했다는 분석이 많다. (돈 주고 공문서 위조·진술 짜깁기... 국정원 ‘총체적 조작극’ 한겨레 3월 8일 기사 인용)>

그랬다. 뚜, ‘경고’는 벌써 1년 전에 울렸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여당.정부기관.민간단체.학계를 총동원해 박 시장을 ‘제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내부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이 나왔다... 또한 학부모 단체, 경총.전경련, 저명 교수.논객, 언론 사설.칼럼, 자유청년연합.어버이연합 등 범보수진영 등 민간단체로 하여금 비난 여론을 조성하게 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박원순 시장 제압’ 국정원 문건 입수‘ 한겨레 2013년 5월 15일 기사 인용)>

문건의 진위 여부는 아직 분명히 가려지지 않았다.(검찰은 2013년 10월 7일, 이에 대한 민주당의 고발을 각하했다) 그러나 그 경고가 현실로 나타난 것만은 분명하다.

<국정원이 지난해 1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발표하자 ‘서울시’라는 말이 붙은 것만으로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표적이 됐다. 보수 성향 단체들은 서울시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시장을 성토했다. 시의회에서도 새누리당 측은 “간첩에게 공무원 지위를 유지시켜줬고, 탈북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니 박 시장이 책임져야 한다”고 추궁했다. 당시 구속된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유우성씨가 임용된 것은 박 시장 취임 이전 오세훈 전 시장 시절인 2011년 6월이었지만 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박원순.정보기관 끈질긴 악연... 선거 앞두고 '긴장감'’ 뉴스1 2월 25일 기사 인용)>

밑 빠진 독에 또다시 물을 부어서야

국정원과 검찰이 유우성 씨 2심 재판부에 제출한 문제의 그 조작된 증거는 판결을 뒤집고도 남을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 씨가 곧 있을 2심에서 유죄를 받는다면 저들의 악착같은 의지나 압도적인 화력을 볼 때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치명상을 입는다. 그리고 수도권의 야권 후보들도 강력한 유탄을 맞는다. 영남은 더욱 상처가 크다. 이것보다 더 정교하고 더 확실한 선거 개입, 선거 조작이 또 어디 있을까?

김 빼고, 초 치고, 지지고 볶고, 공갈빵에 꽃 장식까지, 6월 지방선거를 자기들 입맛대로 요리하려는 권력기관의 주방 장악 시나리오가 한 참 전에 벌써 시작되었고, 요사이 더욱 열기를 뿜는 중이다, 이것이 김 씨 자살(시도)의 두 번째 암시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쳐 만들기로 한 통합신당 지지율이 새누리당 지지율을 앞질렀다는 첫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4일 주간 <일요신문> 인터넷판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2~3일 이틀간 전국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정당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통합신당이 43.8%의 지지도를 기록해 43.3%의 지지도를 기록한 새누리당을 오차범위 내인 0.5%p 앞섰다. 무당층은 8.7%로 나타났다. (뷰스앤뉴스 3월 4일 기사 인용)>

야권 표 분산, 어부지리가 사라지고 ‘1 : 1 구도’가 점차 가열 될수록 ‘유혹’은 하늘에 닿을 것이며, 지난 대선 관권부정선거를 쓱쓱 문질러 지우는 것을 보며 ‘용기’는 땅을 가득 채울 것이다.

선거를 주무르던 장관을 선거 직전, 후보로 차출한 것은 선거관리 사무에 종사하는 모든 공무원에게 은밀히 통하는 칼을 뽑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 후보의 입을 빌려 잘 되기를 바란다, 공개 지지, 공식 응원한 것은 여당 후보 모두가 잘 되기를 바란다, 대놓고 선거 운동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청와대 비서관이 여당 출마희망자들을 면접, “나가라, 말라”하는 세상에서 무슨 선거 공정성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지난 대선은 밑 빠진 독이었다. 수리를 하지 못했으니, 이번 지방선거 역시 밑 빠진 독이다. 이 봄이 가기 전 특검을 시작하자.

특검이라도 움직여야, 관련자들이 거기 불려 다니는 정도라도 되어야, 선거 공정성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

이 봄에 특검? 막연하지만은 않다. 겨울을 난 촛불이 아지랑이를 따라 넘실대지 않는가.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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