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어쩌면 싸움을 벌인 뒤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는 형제지간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기까지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아마 이 형제들은 죽을 때까지 화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럴 경우 형이 너그럽게 품어주고, 만나서 얘기를 들어주면 관계는 풀려나갈 것입니다. 남과 북의 여건을 볼 때 한국이 형의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다 유연한 마음으로 북한을 대한다면 갈등을 풀어나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월 20일 흥사단 미주위원부 LA지부가 미주중앙일보 이원영 논설위원을 초청하여 강연을 마련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 이해와 통일비전'이라는 강연을 흥사단 회원들과 AOK 회원들이 함께 경청하며, 풀뿌리 통일운동의 열망을 차곡 차곡 마음에 담았다.

미주지역 풀뿌리 시민단체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바래지 않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단체인 흥사단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하여 현재까지 100년이 넘는 녹록치 않은 세월을 이어오면서 도산정신을 연마하고 구현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작년 8월 한국에서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흥사단이 1997년에 민족통일운동본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데, 미주지역에서도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원영 기자는 2012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해외동포 통일 토론회에 미주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 5.24 남북교류 금지 조치 이후 한국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김정은 시대 북한의 변화상을 생생하게 취재 보도한 바 있다. 이원영 기자의 강연내용을 기사로 정리했다.

▲ 2014년 2월 20일 흥사단 LA지부가 마련한 “김정은 시대의 북한에 대한 이해와 통일비전’ 강연 [사진: 정연진]

▲ 강연하고 있는 이원영기자 [사진: 정연진]

남북관계에서 언론의 역할은

“제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기사와 강연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전하고, 통일에 대한 비전을 키워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느낀 바로는 우리가 '통일'이라는 단어를 너무나 까맣게 잊어버렸고, 북한에 대해 너무나도 부족한 이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교류와 통일 시대의 파트너인 북한에 대해 많이 알리고,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독일 통일과정에서 언론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의 언론 현실과 대비되면서 부러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갑자기 무너진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동독 주민들이 서독 언론을 신뢰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동서독은 분단 상황에서도 서로 특파원을 상주시켰으며, 동독 주민들이 서독 TV를 시청하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었습니다. 동독 주민들은 체제 홍보에 치중하는 동독 관영매체와 자유로운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 서독 언론을 비교했으며, 특히 서독 언론이 보도하는 동독 관련 뉴스가 정작 동독 매체보다도 더 정확하고 믿을 만하다고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서독 언론은 동독 주민들을 적대시 하지 않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점을 동독 주민들이 느끼게 했습니다.

그렇게 신뢰를 쌓았던 서독 언론이었기에 "동독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장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고 서독 언론이 보도하자 동독인들은 이를 100% 신뢰했고, 실제로 베를린 장벽을 향해 폭발적인 탈출 행렬을 이루게 했던 것입니다.

저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언론이 담당했던 역할을 생각하면서 과연 남북한 언론은 민족화합과 통일시대를 대비하며 민족의 동질성과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안타깝게도 남북한 언론은 민족동질성을 구축해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보다는 서로 적대감과 이질감을 높이는 데 더 많은 공헌을 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저는 북한 취재를 다녀온 후 첫 번째 칼럼으로 '언론, 이혼변호사가 되지 말자'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남북한 언론이 꼭 별거중인 부부의 재결합을 방해하고 이혼을 부추기는 이혼변호사의 역할을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폐쇄사회인 북한의 언론에 기대할 것은 별로 없겠지만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는 대한민국 언론이 적대감과 이질감을 부추기는 이혼변호사의 역할에만 충실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칼럼의 내용이었습니다.

분단이라는 미친 짓

저는 2012년 10월, 8일간 평양과 지방도시를 둘러보았습니다. 첫날 공항에서 내려 숙소로 들어가는 동안 '내가 여길 왜 왔지?'하는 후회가 스쳤습니다. 공항에서부터 느껴지는 뭔가 극도의 이질적인 분위기에 몸과 마음은 굳어지고, 지구촌 최고의 오지에 간 것보다도 더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도 몸을 뻣뻣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대동강변을 따라 도심 한가운데로 돌아오는 산책을 하면서 어제와는 전혀 다른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 나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저는 광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생각해보았습니다.

▲ “사람들의 말이 쏙쏙 들린다. 간판도 눈에 쏙쏙 들어온다. 아, 잃어버린 나의 반쪽 나라에 왔구나.” 2012년 10월 김일성광장 앞의 이원영기자 [사진제공: 이원영]

왜 어제와 지금의 기분이 이렇게 다를까? 생각해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이 쏙쏙 들립니다. 간판을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김새도 똑같습니다. 아, 여기가 어디 낯선 오지가 아니라 단지 우리가 잃어버렸던, 잊어버렸던 우리나라의 반쪽이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가 지금 반세기 넘게 무슨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하는 한탄을 내뱉었습니다. 아마 여기에 있는 어떤 분이라도 북한 땅을 처음 밟게 된다면 저와 똑같은 심정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너무도 망각한 채 살고 있는 것입니다.

▲ 아침 출근길 중학생 오케스트라가 경쾌하고 씩씩한 음악을 연주해 하루를 시작하는 시민들의 의욕을 붇돋고 있다. 2012년 10월 평양 [사진제공: 이원영]

중국과 대만, 3불 정책에서 배우자

저는 요즘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이전, 그러니까 불과 5, 6년 전에는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만나면 남북관계를 무척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당신 나라는 남북정상회담도 했지 않느냐, 개성공단도 있지 않느냐, 금강산 관광도 하지 않느냐...하면서 통일을 향해가는 남북한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우리의 남북관계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연평도 포격, 천안함 격침, 5•24 남북교류 전면중단 조치, 북한 핵실험, 전쟁위기,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급격하게 악화되어 왔습니다. 최근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2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은 어떻습니까. 두 나라는 정치적인 '통일'이란 말을 서로 불신했습니다. 서로 자기들 주도의 통일로 해석했기 때문에 한쪽은 흡수될 것이란 불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만의 마잉주 총통은 2008년부터 소위 '3불정책'이라고 하여 통일을 하지 않고, 독립을 하지 않고, 무력을 쓰지 않는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이후 중국-대만은 비정치적 분야에서 급격한 교류가 이뤄집니다. 현재 양국은 1주에 600편의 비행기가 오가며, 연간 700만명이 왕래합니다. 대만 인구의 10분의 1이 중국 영주권을 갖고 있어 교류, 사업에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사실상의 통일'이 이뤄진 것입니다.

중국과 대만이 불과 5, 6년 만에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내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안에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이 올 것이란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만 개인적인 느낌이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한반도 내외의 환경과 역사적 방향성을 감안할 때 필연적인 흐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 민족문제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확신합니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아웃사이더였을 때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을 받고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장시간 개별 독대를 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그려보면서 언젠가는 박 대통령이 가슴에 담았던 열정을 실현하고자 하는 날이 올 것이란 강한 예감을 받습니다. 민족과 통일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박 대통령은 품고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듭니다.

▲ 이 때 미주동포 방문단은 북한 도착시에는 항공을 이용했지만 출국시에는 매우 이례적으로 평양에서 압록강까지 북의 내지를 철도로 여행할 수 있었다. 열차에서 바라본 북한 농촌의 모습. 농촌지역에 아파트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2012년 10월 [사진제공: 이원영]

▲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철도여행시 거친 정주역 풍경. 2012년 10월 [사진제공: 이원영]

‘사실상의 통일’을 준비하자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해외파입니다. 개혁, 개방 의지가 강합니다. 경제 발전을 위한 갈급함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손을 잡을 곳은 남한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한국도 성장 동력이 한계에 부닥쳐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시절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북한을 일방적으로 따돌릴 때 우리는 북한과의 교류, 협력, 통일에 대한 절실함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잘 나갈 때이니까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한계에 다다른 느낍니다. 분단국가의 약소함도 느끼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덩치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영토도 키우고 인구도 늘려야 합니다. 북한과 손잡고 교류하고 나아가 통일을 향한 큰 걸음을 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 통일 하면 마치 무척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통일 비용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당장 어느 날, 물리적인 통합을 이루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정치적 통일은 아마도 한참 후, 우리 다음 세대의 숙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서로 교류하고, 장사도 같이 하고, 무력도 줄이고, 함께 코리아의 이름으로 국력을 키우는 것으로 만족하면 됩니다. 연방제를 하든, 연합제를 하든, 그건 일단 교류하고 신뢰를 쌓은 다음에 논의해도 됩니다. '사실상의 통일'은 그런 정치적인 장치 없이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 정주역에서 마주친 북의 한 가족. ‘사진 한장 찍어도 되냐’는 기자의 요청에 아무 거리낌없이 가족이 함께 여유로운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제공: 이원영]

그런 ‘사실상의 통일’이 눈앞에 곧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 사실 남이나 북이나 지배계층은 통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기득권층은 잃을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민초들이 통일 열망을 키워야 합니다. 민초들이 통일열망을 키워 정치인들을 움직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함께 통일시대를 열어갈 북한을 적대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남북이 소통하고 화해하려면 적대적 시각을 극복해야 하는데, 전쟁을 겪은 남북 당사자들은 이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서로를 편견없이 바라보고 특히 남이 북에 대해 포용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외동포들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두 배로 넓어질 나의 조국, 잘라진 허리가 다시 이어진 한반도 조국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두 배로 커지는 나의 조국,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비전의 확장은 통일 조국이 선사하는 가장 감격적인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사실상의 통일'로 나아가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실천적인 준비를 해나가는 통일 역군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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