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5일 금강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설 계기 이산가족 2차 상봉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60여년 만에 만나는 가족들의 애간장 끓는 사연은 필설로 다 옮길 수 없지만 현지 취재진이 전해온 소식 중 눈에 띄는 대목들을 소개한다.

◯ “어머니! 내가 언제 올지 몰라 대문을 안 잠그고 살았단 말이오”

▲ 2차 상봉 첫날인 23일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단체 상봉에서 남궁봉자 씨가 북측 아버지 남궁렬 씨를 60여년 만에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사진 -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2차 상봉에 참여한 88가족이 이산의 아픔을 겪게된 과정과 이유도 가지가지였지만 주로 한국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헤어지게 된 경우가 많았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60여년을 살아가며 제사를 지낸 가족도 적지 않았고, 대문을 닫지 못한 채 자식을 기다리다 먼저 세상을 등진 부모도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여름,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간 약혼자를 따라 북으로 간 홍순석(80) 씨의 생사를 모른 남측 가족들은 “무당들에게 물어보니 홍순석 씨가 다 죽었다고 해서 영혼결혼까지 시켜줬다”며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기쁨을 누렸다.

“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꿈결에 너 엄마 한 번 만나면...”
5년 전에 남쪽에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떴다는 말을 딸을 통해 전해들은 북측 남궁렬(87) 씨는 “엄마가요, 아버지 많이 기다렸어.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고...”라는 말에 “진짜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었다... 나도 이번에 올 줄 알았는데 이름이 안 나오더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여동생 전경숙 씨가 북측 오빠 영의 씨에게 “엄마가 오빠 나가시고 대문을 안 잠그고 살았어요”라고 말하며 두 여동생이 흐느껴 울자, 영의 씨는 “어머니! 내가 언제 올지 몰라 대문을 안 잠그고 살았단 말이오”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세 남매는 부여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북측 김재곤(84) 씨는 당시 지식인으로 공부를 많이 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죄와 벌>, <죽음에 이르는 병 등> 재곤 씨가 읽던 책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1991년 세상을 뜬 어머니는 유언으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지만 너희들 나중에 좋은 세상 오면 재곤이 잊지 말고 반드시 찾아라”고 말했다.

북측 박계화(82) 씨는 3명의 여동생을 한꺼번에 만났다. 계화 씨는 남쪽 동생 금화(78), 추대(71), 금순(65) 씨와 경북 군위에서 살았는데 결혼 후 출가해 전쟁통에 헤여졌던 것. 금순 씨는 “우리 네 자매가 키와 체형이 똑같을 게 뻔해서 뭘 살지 고민도 안하고 우리가 입는 옷으로 샀다”고 말했다. 네 자매는 첫 상봉에서 소녀들처럼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다.

북측 형 권병철(84) 씨의 아들 철남의 사진을 본 제수 김정애(66) 씨도 “눈이 쑥 들어간 게 이 집 식구가 맞다”며 “눈이 정말 똑같이 쏙 들어갔다”고 한눈에 혈육을 알아봤다.

◯ “조국을 위해 한목숨 바친 아버지야”

▲ 북측 리형우(80) 씨가 23일 첫 단체 상봉에서 남측 가족들에게 보여준 훈장과 메달들. [사진 -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2차 상봉은 북측 가족이 남측 가족을 찾는 방식이라 북측 가족들은 대체로 북한 체제에서 나름대로 ‘잘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훈장과 증서 등을 보여주기도 하고, 살아온 과정을 자랑스레 설명하면서 국가와 최고지도자의 배려를 언급하기도 했다.

남측 최고령자 이오순(96) 씨를 찾은 북측 남동생 조원제 씨에 대해 임춘봉 씨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나온 걸 보니까 북에서 정말 비중있는 분인가 보다”고 말했다. 조원제 씨는 “조국해방전쟁승리 노병대표이고, 아들 중 하나는 황해남도에서 공과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동생을 만난 북측 박재선(80) 씨는 “장군님 모시고 기념촬영 한 번 했고 원수님 모시고 기념촬영 한 번 했고, 우리 맏아들도 기념촬영, 둘째 아들도 기념촬영 다 했다”고 자랑했으며, 남측의 여동생 최양자 씨를 만난 북측 오빠 최준규 씨는 아버지가 받은 ‘사회주의 애국 희생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 앞에 절을 올리고 껴안고 울었다. 최 씨는 “조국을 위해 한목숨 바친 아버지야”라고 기렸다.

최형소(80) 씨는 훈장과 함께 ‘최형소 동지 전국지식인대회 참가자’라고 써진 확인증과 학사증, 부교수증을 보여줬고, 북측 관계자는 “학사증, 부교수증이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잘 나가시는 분이란 의미”라고 귀띔해줬다.

북측 오빠 신덕균(86) 씨를 만난 신수석 할머니는 “우리들 중에 이 오빠가 제일 공부도 잘하고 품성도 착하고 그랬다”며 “북한에서도 대학 나오고 마을 간부도 했다고 한다. 훈장도 많이 받았더라. 어렵게 살고 그랬으면 만나도 가슴 아팠을 텐데 이렇게 잘 지내시는 것 보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 “술기운을 빌려 좀더 친해졌으면 좋겠는데”

▲  2차 상봉 첫날인 23일, 금강산면회소에서 남측 주최로 열린 환영만찬에서 북측 김휘영(87) 씨에게 동생인 남측 김화규 씨가 음식을 먹여주고 있다. [사진 -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환영만찬장에서 동생 유정희 씨가 북측 오빠 류근철(80) 씨에게 뽀뽀하고 있다. [사진 -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오후 7시 10분 경 금강산 면회소에서 시작된 만찬은 테이블마다 첫 상봉에서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위하여”, “건배”를 외치는 소리와 배경음악 ‘반갑습니다’가 어우러졌다. 준비한 술 중에 ‘대박’ 막걸리도 있어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북측 오빠 류근철(81) 씨는 여동생들이 잡채와 생선구이를 계속 떠먹여주자 “이제 됐다”고 했지만 류정희 씨는 “맛있어, 생선 이거 한 번만”이라고 또 권했다. 남측 조카 류문희 씨가 “뽀뽀해 드려요”하자 여동생 류근배 씨가 밝게 웃으며 오빠의 오른 뺨에 뽀뽀했다.

오후 첫 상봉에서 ‘탐색전’ 탓인지 어색한 분위기였다는 남측 동생 박창혁 씨는 형님 창성(84) 씨가 고령으로 약주를 못 한다고 하자 “술기운을 빌려 좀더 친해졌으면 좋겠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유일한 부녀상봉으로 관심을 모은 남궁열(87) 씨의 딸 남궁봉자(61) 씨는 죽을 아버지 앞으로 당기며 “죽이에요”하면서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다가 죽이 흐르자 냅킨으로 닦아드렸다. 봉자 씨는 식사할 생각을 전혀 않고 아버지를 먹여드리고, 먹는 모습만 지켜보고 있었다.

◯ “통일의 봄 앞당기자”

▲ 2차 상봉 첫날인 23일, 금강산면회소에서 남측이 주최한 환영만찬장은 '건배' 소리가 드높았다. [사진 -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상봉 첫날인 23일 저녁, 남측 적십자사가 주최하는 환영만찬장에서 남북 측 단장이 만찬사를 했다.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인 김종섭 남측 단장은 “아직도 수많은 이산가족들은 남과 북으로 헤어져 가족 친지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산가족들이 한분이라도 더 살아계시는 동안에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다 같이 적극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리충복 북측 단장은 “우리는 북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중대제안을 내놓았으며 그를 실현하기 위한 첫 출발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마련하였다”며 “오늘의 상봉을 시작으로 북과 남은 마음을 합치고 뜻을 모아 대결과 분렬의 곬을 메우고 통일의 봄을 앞당겨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되돌아 온 남측 취재기자와 남쪽에 정통한 북측 안내원

이번 2차 상봉의 최대 해프닝은 남측 기자가 23일 북측 출입경사무소(CIQ)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온 뒤 밤에야 다시 들어갈 수 있게 된 일.

남측 공동취재단의 일원인 S 기자는 23일 오전 11시 10분경 북측 CIQ에 도착해 제일 먼저 통관 절차를 밟던 중 노트북에 북한 인권관련 자료가 있는 것이 발견돼 북측이 사죄문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사죄문 작성을 거부한 S기자는 결국 “나가라”는 북측의 최종 통지를 받고 오후 4시경 남측 동해선 출입경사무소로 되돌아왔지만 남북간 지속적인 조율을 거쳐 관련 파일을 삭제하고 구두로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재입북 하기로 합의하고 밤 10시경 북측으로 향해 공동취재단에 합류했다.

한편, 남측 기자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눈 북측 적십자 안내요원은 “1월에 마식령 스키장을 가보려 했는데 이번 행사 때문에 가보질 못했다. 행사가 끝나면 스키장부터 가려 한다”고 말하고, 스키장 주로가 10개나 된다고 자랑했다. 여기에 더해 “거기는 4월, 5월까지는 계속 눈이 온다. 그리고 여름에는 풀밭스키를 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지성 선수를 거론하는 등 남측 사정을 잘 아는 듯한 이 요원은 “우리는 비방중상을 중단하라는 우리 중대제안을 내놨는데도 남측 언론들은 통제가 안 된다는 핑계만 댄다”며 “이렇게 좋은 행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데 또 표족한 기사가 나올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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