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 /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남북관계 개선의 희망이 싹트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을 받들어 올해의 조국통일운동에서 새로운 전진을 이룩하여야 합니다”라며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것임을 시사하였다. 5일 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며 보수적 관점으로 통일논의에 나섰다.

남북당국이 생각하는 통일의 모습은 다르지만, 통일이란 화두는 같았다. 이로부터 남북은 대화에 나섰으며 키리졸브 대북군사훈련이 예정된 정국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고위급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일사천리로 전환되리라 낙관할 수는 없다. 반북으로 똘똘 뭉친 미국과 보수세력의 대북인식은 여전하다. 대결정책의 관성은 키리졸브 훈련을 고집하는 미 국방부의 입장으로도 확인되며 남재준 국정원장의 “2015년 자유민주주의체제 통일론”으로 확인된다. 이에 본 기획에서는 현 한반도 상황을 살피고 우리민족의 과제를 연재하고자 한다.

① 대북정책 전환 없는 미국
② 충돌위험 점증되는 남북관계 살얼음판
③ 위기해결을 위한 우리민족의 과제

휴전선의 군사적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키리졸브 훈련이 시작된다. 정전체제 하의 한반도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반전평화 호소는 동전의 양면이다. 현 한반도 정국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려면 반전평화 호소가 더욱 절실하다. (필자 주)


남북당국의 통일발언은 연초부터 이어지고 있지만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는 한반도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에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패권의 균열이 점증되는 현 상황에서, 미국이 제 스스로 동북아 패권전략을 누그러뜨리고 남북관계 개선을 용인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반신불수가 되어버린 미국의 경제적 처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5년이 지났지만 미국경제는 그토록 처절한 미국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파국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2013년,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파국을 막기 위해 매월 850억 달러를 무기한으로 방출하는 3차 양적완화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매월 850억 달러의 돈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경제가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반신불수의 경제이다. 제도권에서 이른바 "미국경제의 지표상 성장"이라는 선전이 횡행한데 이는 경제위기의 본질적 모순을 어떻게든 은폐하려는 미국의 선전일 뿐이다.

미 당국이 양적완화로 금융독점자본의 부실채권을 인수하면 금융자본의 붕괴는 다소 늦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반대급부로 미 당국의 경제신용 추락을 피할 수 없다. 양적완화는 자본의 새로운 이윤창출로 2008년의 손실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미 당국이 부실채권을 대신 떠안는 부실은폐행위이다. 양적완화로는 금융자본의 손실을 결코 없앨 수 없으며 2008년에 드러난 금융자본의 거품이 미 당국으로 고스란히 이전될 뿐이다.

미 정부는 양적완화로 금융독점자본의 부실채권을 매입하고 미 국채를 사들이고 있는데 영원한 양적완화는 단연코 불가능하다. 미 국채금리를 상승시키고 달러약세를 부르기 때문이다. 미 금융당국의 10년 만기 200일 평균국채금리는 2013년 초만 하더라도 1.7%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던 것이 3차 양적완화가 이어진 이후 2014년 1월에는 2.47%까지 증가하였으며 작년 말에는 종가 기준으로 일시적으로 3.0%선을 넘어서기도 하였다. 양적완화는 또한 필연코 달러의 약세를 불러와 다른 나라들이 통화결제수단으로 달러를 기피하는 현상이 확대될 수 있다. 물론 달러의 무역결제통화비중은 지난 2009년 남유럽 재정위기에서 큰 타격을 받은 유로화 덕에 역설적으로 다소 늘어났다. 그러나 이는 유로화의 충격에 의한 반사이익일 뿐 달러화의 건전함을 확인할 근거는 전무하다.

현재 나타나는 미 당국의 채무부담 증대를 조절하지 못하면 달러가치는 지수함수적으로 추락하게 된다. 달러가치가 급격히 추락하면, 일시적 계기로 일부지역에서 달러투매현상이 나타나게 될 때 이것이 초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어 달러경제가 총체적으로 붕괴할 위험이 갈수록 증가할 것이다.

궁지에 몰린 미 당국은 결국 테이퍼링(tapering) 조치로 양적완화 규모를 조절하며 미 국가신용 관리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이미 2013년 9월부터 양적완화 조절론이 제기되었으며 2013년 12월부터 매월 50억 달러의 부실채권 매입과 50억 달러의 국채매입이 줄어들었다. 이어 2014년 1월말에는 추가적으로 100억 달러의 양적완화 규모가 더 줄어들어 현재 양적완화는 매월 650억 달러 규모로 줄어든 상황이다.

여전히 매월 650억 달러의 돈이 방출되고 있지만 금융독점자본들은 중남미와 아시아에 투자한 자금을 본국으로 거두어들여 이들 나라의 주식시장에서 무려 113억 달러가 순유출되었다. 매월 850억 달러 어치의 경제적 혜택을 쏟아내다가 650억 달러로 규모를 줄였다고 해서 아우성이 일어나는 세계경제는 산소마스크의 산소량을 줄였다고 의식불명에 빠지는 중환자와 같다. 미국경제는 이미 반신불수임이 확연하다.

회생의 가망이 없는 미국경제의 산소마스크는 미국의 군사력으로 지탱되고 있지만 미국의 군사력마저도 최근 심대한 타격을 받아 근본적 시정조치가 불가피하다.

한반도 전력투구에 나서는 미군

일반적으로 세계의 경제패권은 군사력으로 뒷받침된다. 군사력에 의거해서 경제를 수탈하고 이를 통해 세계체제 유지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19세기 이래 제국주의 국가들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21세기의 미국도 19세기 영국, 20세기의 일본, 미국과 다르지 않다. 세계국방예산의 50% 이상을 점유한 미국은 현재 국방력에 의지해 다 쓰러져가는 반신불수의 달러경제를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다.

그랬던 미국이 2013년 4월, 동북아에서 북한과 전략무기대결에서 한발 물러났다. 4월 3일, 오바마 행정부는 긴장이 지나치게 고조되어 북한지도부의 오판을 부를 수 있다며 플레이북을 잠정 중단하였다. 이어 4월 8일에는 북한의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며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연기하였다. 뒤이어 4월 12일, 존 케리 국무장관이 방한했고 대북대화 제의가 이어졌다.

미국은 굳이 북한을 상대할 필요를 못 느껴서 군사대응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다. 북-미 대결이 첨예하던 2013년, 북한은 제3차 핵시험을 단행하였으며 3월 31일에는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확고히 하였다. 핵독점을 추구하며 핵확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이 핵개발을 넘어서 핵증산을 천명한 북한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미국은 북한을 상대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상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지난 1년간 미국은 북한을 상대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절치부심하였다. 무엇보다 미국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에 군사력을 전력투구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차례로 중동에서 발을 빼 왔다. 이미 2011년부터 미국은 이라크에서 무력을 철수시켰다. 아프간에 주둔한 미국은 2014년 말까지 완전 철군할 예정이다. 2013년, 오바마 행정부는 시리아 사태에 군사개입 방안을 타진하였지만 주변국의 반대에도 이를 무시하며 침략을 강행했던 이라크전쟁과 달리,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지 않았다. 미국은 2013년 8월에 출범한 이란의 하산 로하니 정권을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미국-이란 핵협상을 도출하고 있다.

중동에서 미군의 철수가 이어지는 것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미군의 집중이 나타나고 있다.

2014년 1월 12일, 연합뉴스는 미국이 핵잠수함 정찰활동의 60% 이상을 한반도 인근해역을 비롯한 태평양에 집중배치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미국의 핵 전문가인 한스 크리스텐슨, 로버트 노리스 박사는 실전용으로 분류된 12척의 잠수함 가운데 항상 최소 8∼9척은 작전 해역에 배치돼 있는 상태이고, 이들 가운데 4∼5척은 전략전 계획에 따라 특정 목표물을 즉각 타격할 수 있는 해역에서 '초비상'(hard alert)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미군은 이미 작년부터 화학부대 250명과 공격정찰 헬기대대 380명을 한국에 배치하였으며 올해 들어서는 경기 북부에 800명 규모의 기계화 대대와 오산 공군기지에 F-16 12대와 병력 300명을 2월까지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의 완성을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월 13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한일은 역사를 극복하고 관계를 진전시켜야”한다고 밝히며 노골적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속내는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편승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하고 한반도 힘의 우위를 형성하기 위해 일본군사력까지 동원하겠다는 야심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은 동북아, 그 중에서도 대북대결에 전력투구하며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는 자기가 우세에 있을 때는 상대를 침략하지만 확고히 우세하는 확신이 없을 때는 부단히 상대를 교란시키고 동맹국을 끌어넣어 결국에는 자기 힘의 우위를 관철시켰던 미국외교의 200년 역사를 주목해야 한다.

가로막힌 저강도전쟁

군사적 해법이 여의치 않을 때 미국이 의존했던 수단은 “협력”을 가장한 자본공세와 “교류”를 가장한 정보원 잠입을 통한 기밀취득, 요인 매수였다. 미국의 내부붕괴전략은 사회주의 핵보유국에게 주되게 써먹었던 미국의 기본공식이었다. 흐루시초프 이후 사회주의 사상논쟁을 결속짓지 못했던 소련은 결국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물먹은 담처럼 허물어졌다. 미국의 1970년대 핑퐁외교도 중국이 자본주의적 개방에 무분별한 입장을 취했기에 가능했던 조치였다.

오바마 행정부도 이른바 스마트외교를 표방하며 북핵폐기에서 중국의 역할을 높일 것을 끊임없이 주문하였다. 미국은 대중국 외교의 실적이 여의치 않자 겉과 속이 항상 같지 않은 중국의 외교술까지 제멋대로 끌어들이며 북-중관계가 과거와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는 듯 선전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북한 내부에서도 지난 시기 소련과 중국처럼 사회주의 원칙과 자본주의를 절충하는 방식을 모색할 기회주의 세력이 나타나길 학수고대할 것이다. 난공불락인 트로이를 평화를 가장한 목마가 무너뜨렸듯이, 만일 북한 사회주의가 달러를 받기 위해 군사적 양보를 취하자는 “수정주의” 바람에 흔들린다면 미국은 전면적인 자본투자로 북한 지도부를 도취시키며 이면에서는 내부붕괴전략을 단행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는 바로 지난날 리비아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켰던 내부붕괴전략이다

그러나 북한의 사회주의 노선은 미국이 달러를 통한 회유를 고려할만할 틈새를 보이지 않았다. 장성택 사건을 계기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유일영도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장성택 사건은 북한체제에서는 노선 전환은 고사하고 북한의 혁명원칙을 교묘하게 비켜가는 수정의견조차 격렬한 반대로 배격된다는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미국의 대북화해는 리비아처럼 “화해를 가장한 북한체제붕괴”라는 반대급부가 있을 때 미국이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다. 북한체제의 붕괴가능성이 없는 현실에서 경제협력을 포함한 대북정책 전환은 북한체제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 주므로 미국 내에서 자발적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전무하다.

1차 세계대전을 언급한 키신저와 아베

경제위기에 빠진 미국은 한반도에서 물러설 수 없지만 한반도에서 취할 수 있는 회유책도 없다. 정국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이던 1914년의 1차 세계대전 전야를 방불케 한다. 1914년, 식민지 포화상태로 제국주의 독점이윤의 원천이었던 식민지 경제수탈이 정체되기 시작하였다.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던 영국자본주의는 1871년 통일을 이루고 보불전쟁에 승리하며 통일을 확고히 한 독일제국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독일은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강력한 군사력을 토대로 영국중심의 경제체제에 도전했다. 영국 제국주의와 독일 제국주의의 대결은 아무런 완충장치 없이 충돌로 질주한 나머지 1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고 말았다. 그러나 정작 1차 대전은 세계의 화약고였던 발칸반도에서 시작되었다.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청년이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한 것을 계기로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100년 후인 지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경제패권을 거머쥔 미국을 향해 미래의 G2인 중국이 강력히 부상하며 미-중간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경제위기에 빠진 미국은 중국경제를 병탄해야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21세기 세계 최대의 화약고인 한반도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일본의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22일 다보스에서 “현재 중-일의 경쟁적 관계에 따른 긴장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독일과 영국의 라이벌 관계와 비슷하다”며 1차 대전 전야를 거론하였다.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도 “아시아의 상황이 19세기 유럽과 비슷하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동북아 위기론을 거들었다.

물론 이들은 중국과 일본의 대결을 염두에 두고 1차 대전 정국을 발언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획책하며 구체적으로 한반도에서 강력한 대북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중-일의 갈등은 100년 전 발칸반도의 총성처럼 한반도에서 한-미-일과 북한의 충돌로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상의 상황을 종합할 때,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낮아 현 시기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온 민족이 떨쳐나서야 할 중대한 시기이며 반전평화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핵심고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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