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에도 미학(美學)이 필요하다. 거부를 하더라도 합당한 이유를 대거나 미학적인 표현을 사용한다면 퍽 운치가 있을 것이다. 일례로 1973년 베트남 평화협상에 대한 공로로 키신저(1923∼ )와 함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베트남 정치인 레 둑 토(1911∼1990)는 ‘조국 베트남에 아직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다. 이 같은 거부의 변이라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진실이 들어 있다. 이른바 ‘거부의 미학’인 것이다.

◆ 올해 초부터 남과 북이 관계개선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1월1일 북측은 신년사를 통해 ‘북남관계 개선 분위기 조성’을 밝히면서 ‘상호 비방 중상 중지’를 제안했다. 그러자 3일 남측은 ‘북한 신년사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이 간다’고 일축했다가, 6일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론’을 펼치면서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이에 북측은 거부를 한 후 16일 남측에 ‘중대 제안’을 했다. 남측도 이를 거부했다. 남과 북은 일련의 과정에서 각각 한 차례씩 제안을 하고 또 상대편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런데 그 거부의 모양새는 판이했다.

◆ 북측은 9일 유려한 문장 솜씨를 뽐낸 대남 통지문을 통해 남측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에 대해 “설을 계기로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하자는 남측의 제의가 진정으로 분열의 아픔을 덜어주고 북남관계 개선을 위한 선의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좋은 일이라고 본다”고 헤아리면서 “좋은 계절에 마주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정중히 거부했다. ‘좋은 계절’에 보자는 표현은 거부를 하더라도 무척 운치가 있지 않은가? 이 정도면 ‘거부의 미학’이라 할 만하다. 거부를 당하는 쪽도 그리 기분이 상하진 않을 테니까.

◆ 이에 비해 남측은 17일, △설 계기 상호 비방 중상 중단 △상호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 중지 △한반도 ‘핵 재난’을 막기 위한 상호 조치 등의 내용이 담긴 북측의 중대 제안에 대해 “비방 중상 중지 합의 위반은 북한”이라고 역공을 취하면서 전면 거부했다. 거부치고는 고약한 거부다. 해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위장평화 공세’라며 “북한이 선전 공세를 할 때일수록 대남 도발에 더 철저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상처 난 곳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22일 북한의 일련의 대화 공세에 대해 ‘상투적 행태’라며 일축했다. 도무지 상대편을 고려한 흔적이 없다.

◆ 거부를 하려고 해도 심사(深思)와 숙고(熟考)의 시간이 필요하다.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 제의를 받고 3일간의 숙려(?) 끝에 정중한 거부를 해왔다. 그런데 남측은 그야말로 내용이 풍부한 북측의 3대 중대 제안을 받고 만 하루도 안 된 시간에 졸속 거부를 선언했다. 그것도 전면 거부로 말이다. 제대로 검토나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남과 북은 어차피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금 떨어져 있지만 조만간이든 좀 있다가든 마주앉을 것이다. 남측도 훗날의 기약을 위해 거부를 하더라도 ‘거부의 미학’을 발휘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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