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재능

어릴 적 추억은 늘 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젊은 아버지는 노모와 가족을 이끌고 그야말로 무작정 대도시로 들어왔다. 모두들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산의 변두리 공장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신발공장에 다녔고, 누이, 형제는 방목되다시피 길러졌다.

낙동강 뻘을 뒤져 게를 잡고, 재첩을 캐 용돈을 만들었다. 혹은 공장지대를 돌며 쇠붙이나 구리, 플라스틱 따위를 주워 고물상에 팔아 딱지와 구슬을 사서 놀았다. 내 책상 속에는 이렇게 주워 모은 별의별 물건이 많았는데, 나는 그것을 무슨 대단한 보물인양 소중히 보관했다.

아버지는 공장을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 저기 이사를 다녔다. 장사는 망했고, 아버지는 또 공장에 다녔다. 하지만 몇 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가끔 깊은 밤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노가다`를 시작했다. 비가 오거나 날이 추우면 아버지는 집에서 술을 마셨고. 집 짓는 일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그러나 하루 놀고 하루 일하는 꼴이어서 집안은 늘 쪼들리는 형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일하는 공사판 근처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거나 톱이나 망치, 못 따위의 공구를 가지고 썰매를 만들고, 나무 총과 활과 칼을 만들어 놀았다.

사춘기에는 공사판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학교 선생님에게는 아버지의 직업을 건축업이라고 둘러댔다. 열심히 일하신 어머니 덕분에 월셋방에서 전셋방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고향으로 들어가실 때까지 내 집은 장만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아버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기를 치거나 도둑질도 하지 않았으며, 나름대로 법과 질서를 지키며 살았다. 사실 가진 능력으로 최선을 다했다. 고향으로 들어가신 아버지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노가다를 하신다.

사촌네 화장실도 지어주고, 동네 축사며, 보일러도 고쳐주신다. 집을 짓는 일이라면 벽돌 나르는 일부터 미장, 목수, 보일러, 정화조까지 못하는 일이 없다. 그야말로 동네의 맥가이버인 셈이다. 30년 가까이 된 집을 허물고 직접 당신 손으로 새로 지으셨다. 설계도면도 없이 그냥 깜으로 말이다.

가끔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아버지와 함께 신발공장에 다녔던 친구들은 근사한 집도 사고, 회사의 공장장으로 출세를 했는데, 아버지는 역마살이 끼였는지 3개월을 버티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공장에 들어가든 2~3개월만에 뛰쳐나오셨단다. 물론 장사하는 재주는 더더욱 없었다. 밑천을 까먹는 것은 물론이고 사기를 당해 빚을 지셨다. 하지만 노가다 일은 30년 가까이 끈기있게 하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주위의 사람들은 미술을 하는 내게 부모님 중 누구의 재능을 받았냐고 묻곤 한다. 예전에는 그냥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부모님 중 누구도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에게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매인 생활을 싫어하셨다. 답답한 공장을 매번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일이 어렵거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신의 본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돈도 안되고, 사회적 가치가 낮은 노가다를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미술을 통해 뭔가를 창조하고 가치를 만드는 일을 좋아하듯이 아버지도 집을 짓는 행위를 통해 뭔가를 만들고 창조하는 기쁨을 얻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는 배우지 못하고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살고싶은 세상과 삶을 만들 기회와 능력을 아버지에게서 받았다. 나의 삶은 아버지 삶의 연장선에 서있다.

통일거리 건설장

▶통일거리 건설장/김유동/유화/100*63/1992

이번 작품은 북한화가 김유동이 그린 <통일거리 건설장>이란 제목의 유화이다. 창작연도는 1992년이다. 이 작품은 평양의 통일거리에 고층 살림집(아파트)을 짓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살림집을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 작품은 단순한 풍경화는 아니다.

그냥 감성으로 작품을 볼 수도 있지만 이성의 잣대로 분석해보자. 일단 형식면에서 유화를 사용했다. 유화의 특징은 두터운 기법을 이용해 무겁고 웅장하며 거친 느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간결하며 화사한 분위기의 조선화가 가지고 있지 못한 특징을 유화는 가지고 있다.

건설현장 분위기를 내는데는 아무래도 조선화 방식보다는 유화방식이 잘 어울린다. 이 작품이 거친 호흡, 생생한 건설현장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유화라는 기법을 사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건설장비 따위의 세부적인 묘사를 피하고 건설현장 전체를 화면에 채워 거대하고 웅장한 느낌을 낸 구성도 돋보인다. 오히려 세부를 죽임으로써 건설현장 전체의 활기찬 느낌을 이끌어냈다. 내용적으로는 건설노동자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노동행위 자체를 미화하고 있다. 또한 당이 인민을 위해 뭔가를 만들고 노력한다는 의미도 깔고 있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보아야 할 것은 당이 사회주의 건설을 힘있게 추진할 때, 인민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멀리 건설중인 아파트 벽에 붙어 있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구호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인민은 전투적인 자세로 당의 방침을 관철해야 한다. 수령과 당과 인민의 관계를 마치 사람의 뇌수와 머리와 몸으로 비유하는 북한 특유의 정치방식이 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북한미술에서는 이런 건설현장을 그린 작품이 많다. 공장을 건설하거나 대공사현장을 작품 속에 담은 것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큰 맥락을 깔고 있다. 뭔가를 만들고 창조한다는 것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치며 사람들에게 묘한 흥분을 일으키게 한다.

우리가 통일을 생각할 때, 단순히 갈라진 땅을 복원하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통일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새로운 가치와 패러다임이 필요하고, 풍부한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건설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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