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 /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연재 : 자주국방의 길]을 마치며
진보적 국방정책의 필요성을 논하며 이를 위한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기를 바라며서 연재했던 [자주국방의 길]을 '신뢰구축과 평화군축'편을 끝으로 마칩니다. / 편집자 주

 지금까지의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미국에게 통째로 맡긴 우리 국방
2 연합방위체계의 문제점
3 한미동맹으로 왜곡된 우리 국방
4 자주국방이란 무엇인가?
5 진보의 자주국방론
6 신뢰회복과 평화군축

 

 민족자주정신에 입각한 자주국방은 21세기 통일을 예비하는 우리나라가 항구적으로 중시해야 할 국방사상이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이지만 통일시대를 예비한 자주국방은 전민족적 범위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전쟁을 부르는 남북대결노선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은 대결에서 화해로 방향전환을 하는 듯 하였으나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 남북화해협력 흐름은 차례로 무너져 6년만에 남북관계는 파탄상태에 빠졌으며 급기야 한반도 전쟁위험의 험악한 상황이 조성되고 말았다. 금강산 관광은 중단된 지 오래며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공격으로 규정한 이명박 정부는 5.24 조치를 통해 남북교류를 차단시켰다. 한미연합군의 대북군사훈련은 강도높게 벌어졌고 북한은 2009년과 2012년에 지하핵시험을 단행하였고 2011년에는 실제 연평도 포격전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반북단체들은 휴전선 인근에서 대북삐라를 뿌린다고 하며 그때마다 군사적 충돌을 우려한 국민들이 가슴을 졸이는 사태가 빚어졌다.

특히 올해 들어 미국은 키리졸브 훈련을 전후한 시점에 핵동력 잠수함과 B-52 전략폭격기에 이어 B-2 스텔스 폭격기를 연이어 휴전선 인근에 투입해 북한을 심히 자극하였고 미 최신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호는 아예 동북아에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나라의 방위를 책임지는 국방부가 나라의 방위를 위험에 빠뜨리는 위험천만한 언행이 “애국”이란 이름으로 버젓이 자행되었으며 이에 대한 비판은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묵살되었다. 급기야 남재준 국정원장이 송년회 자리에서 2015년 흡수통일론으로 해석될만한 발언을 노골적으로 내뱉는 등 북한정권 자극에 여념이 없다. 지금의 대북정책은 민족자주가 아니라 미국의존이며 화해협력이 아니라 대북전쟁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국상태에 빠진 현 남북관계를 끝내 해결하지 못하면 자주국방은 고사하고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유일한 대안은 자주국방

국방을 큰 나라에 기대면 큰 나라의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가게 된다.

조선이 국방을 중국에 의존했기에 병자호란의 치욕을 복수한다는 야심찬 북벌계획은 오히려 군대를 청나라에 차출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조선의 봉건왕조는 그럴수록 자주국방이 아니라 더욱 중국에 매달렸는데 그 결과 1894년에는 청일전쟁에 휘말리고, 결국 일제에 국토를 강점당하고 말았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서유럽의 베네룩스 3국과 발칸반도 동유럽의 여러 소국들도 자주국방의 태세가 약해 저마다 유럽제국주의 국가에 국방을 의존하다보니 영국, 프랑스, 독일의 전쟁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휘말려 들어가고 말았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은 군대의 작전지휘권을 미국에 넘겨주었기 때문에 1953년 정전협정에 도장도 찍지 못했다. 한국은 한미동맹의 틀에 묶여 베트남전에도 국군장병을 파병해야했고 고엽제 문제가 터져도 미국에 항의한번 제대로 못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한국정부는 미국의 이라크전에 국군을 파병하는 등 미군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국방의 의존관계가 지금껏 지속되고 있다. 자주국방을 굳건히 지키지 못하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세의 전쟁포화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은 역사의 진리이다.

그런 측면에서 분단된 조국의 자주국방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민족사의 중대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반드시 구현해야 하고, 시급히 풀어나가야 할 최대과제라 할 수 있다.

해법은 신뢰구축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외세의 개입에 맞서 남북이 함께 나라를 지킨다는 발상은 지금의 현실에선 실현되기 불가능하다. 지난 6년간의 남북관계 파탄으로 인해 남북간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북한과 한미연합군이 전쟁 발발상황에 접어들고 있는데 남북이 나라를 함께 지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측면에서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은 전쟁위기를 제거하고 자주국방을 실현할 유일한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은 2007년 합의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즉 10.4 선언에 전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10.4 선언은 3항에서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해 긴장완화의 목적이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긴밀한 협력”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10.4 선언이 단순한 긴장완화, 수동적 신뢰구축이 아니라 평화보장을 목표로 한 “긴밀한 협력”, 즉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뢰구축을 지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북은 이를 위해 10.4 선언 3항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하였다.

이는 남북의 신뢰구축을 군사적 영역에서 합의했다는 점에서 실로 획기적인 사변이었다. 이 대목에서는 특히, 서해 공동어로수역에서 군사적 신뢰구축을 논의하기로 해, 서해지역에서 남북공동경비와 공동방위의 가능성을 높였다.

이처럼 남북의 군사적 신뢰는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다. 이미 북한은 남북화해 기류에 맞춰 군사적 긴장을 낮추었던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대표적 사례가 동부전선 지구에서 금강산 관광단지를 개발했던 것과 서부전선 지구에서 개성공단을 개발했던 사례이다. 이 과정에서 금강산 일대와 개성 일대에 주둔하던 조선인민군 부대들은 후방이동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남북협력사업은 조선인민군의 후방배치를 가져와 휴전선의 군사적 긴장을 일정하게 완화했던 경험이 있다.

지금의 박근혜 정부는 남북대결, 군사적 긴장 격화에 눈에 불을 켜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내놓았던 DMZ 평화공원 조성안도 휴전선의 긴장을 완화한다는 측면에서는 그 진정성이 담보될 때 남북간 신뢰구축을 높인다는 점에서 충분히 재고해볼 수 있다.

이처럼 10.4 선언을 철저히 이행하면 남북의 군사적으로도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즉, 10.4 선언 이행이 남북통일의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군사적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자주국방의 지름길인 것이다.

구체적 실현은 평화군축까지

남북의 군사적 신뢰구축은 3단계로 추진될 수 있다.

그 첫째단계는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행동, 즉 긴장을 증폭시키는 행동을 당장 중단하는 것이다. 둘째단계는 군사적 압박수단인 군부대를 이동배치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군사적 압박수단을 축소하며 공동방위로 이전하는 단계이다.

남북이 지금과 같이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군사적 상호군축은 불가능하며 10.4 선언에서 합의된 남북공동어로수역에 대한 군사적 신뢰로 상정할 수 있는 남북공동방위개념 역시 불가능하다. 휴전선에 막대한 군사무기가 밀집되어 있고 북한이 사실상의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평가되는 조건에서 올 상반기에 실질적 핵전쟁위험이 제기되었던 사례를 볼 때, 남북간 긴장을 더 이상 증폭시키지 않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런 측면에서 남북은 일단 서로를 자극할 침략적 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 특히 한미연합군은 말로는 “연례행사”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한반도 군사훈련에 스텔스 전투기를 보내고 핵전략폭격기와 첨단항공모함을 들이밀고 있다. 국방예산을 줄이라는 압박을 받으며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철군하고 있는 미국이 세계최대 규모의, 세계최장기간의 한반도 군사훈련에 막대한 예산을 써가며 대북군사훈련을 추진하는 것이 “연례행사”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의 침략적 군사훈련에는 전쟁의 당사자인 한국정부도 적극적으로 항의해야 하며 외교적 수단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 해 일단 전쟁을 막아야 한다.

남북은 상호간 침략적 군사훈련을 중단한데 기초해 상호간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중단해야 한다. 상호간 침략적 군사훈련이 중단되면 특히 남북의 군부는 서로를 자극하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군사훈련이 실제로 중단된다 하더라도 이는 긴장고조와 전쟁촉발을 막은 것이지 훈련중단을 두고 긴장이 완화되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실제적인 긴장완화는 침략무기가 사라질 때 온전히 구현된다. 남북이 통일된 상황에서 통일한반도는 전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자주국방을 튼튼히 하며 초과된 전술무기는 군비경쟁을 격화시키는 상황이 아니라 군비감축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감축되어야 한다. 이러한 무기체계에 기반해 통일코리아는 지체없이 오바마 행정부의 핵없는 세계 구상에 화답해 전세계 비핵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분단모순으로 초래된 과잉무기를 남북이 완전통일을 이룰 때까지 기다렸다가 통일되고 나서 일거에 폐기하자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남북간 신뢰가 회복되고 긴장이 완화되는 만큼 전술무기 축소를 함께 추진하고 무기감축을 통해 신뢰를 더욱 높여 통일로 다가서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군축은, 국방의 지탱점인 군사무기와 병력을 영구적으로 축소한다는 점에서 한반도에 군사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국방체계가 전환되어야 하며 동시에 남북 상호간 매우 높은 신뢰가 구성되어야 한다. 즉, 현재 논의되어 온 6자회담의 연장흐름에서 북-미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조치가 불가피하다. 70년 가까이 휴전선에서 대치해 온 남북이 단지 침략적 군사훈련을 중단했다고 해서 한순간에 군축을 단행하자고 할 경우 군부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 자명한 이치이다.

그런 측면에서도 군축은 군부대 재배치 단계와 실제 군축단계의 2단계로 나누어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군부대 재배치는 실제 군축으로 들어가는 전 단계에서 취해지는 과도적 조치로 전술적 차원에서 전면적 군사공격을 힘들게 하는 긴장완화 효과가 있다. 이러한 부대재배치는 즉시에 상호간 공격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격력 회복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한 “군축”에 앞서서 시행될 수 있는 남북의 신뢰구축 및 검증방안이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은 주둔기지를 일본으로 이전할 수 있으며 조선인민군과 국군은 휴전선 전방배치를 후방으로 이전할 수 있다.

남북간 서로를 공격하는 전쟁훈련이 중단된다면 남북은 지체없이 전술무기와 부대 재배치에 들어갈 필요가 크다. 남북은 도합 현재 25개 군단, 136개 사단과 84개의 기동여단을 보유하고 있는데 휴전선에 집중배치된 남북의 각 군단병력들과 주한미군은 남북긴장완화에 맞추어 재배치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군병력의 기동력이 비상히 증대되면서 기동무력의 이동은 매우 신속한 수준에서 펼쳐지고 있다. 후방배치된 전투기가 전방으로 이동하는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으며 함정은 수 시간, 지상군 병력도 하루 내에 최전방과 후방을 오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의 대북전략이 뿌리부터 수정되지 않는 이상, 완전철군이 아니라 주일미군기지로의 이전배치 효과를 가져오는 것에 불과하다. 지상군의 이전배치가 진행되는 것으로 미 태평양사령부의 중추가 되는 해군과 공군무력은 커다란 변동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대 재배치는 공격무기 뿐만 아니라 전쟁물자와 군수물자까지를 포괄해야 한다. 이는 결국 주한미군의 철수뿐만 아니라 기지의 해외이전까지 포괄하게 된다.

남북과 주한미군의 군부대 재배치는 긴장완화를 위한 첫걸음이며 언제라도 전진배치하면 그 효력이 즉시에 사라질 수 있는 가역적인 조치이다. 때문에 이는 남북 상호간 군사적 신뢰를 더욱 높이는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곧바로 군축으로 이행되어 실질적인 공격무기 감축이 동반되어야 한다.

남북상호군축은 휴전선에서 발발할 경우만을 상정해 구축된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으며 미국은 태평양 사령부의 지상군 병력규모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 사례가 휴전선 인근의 지뢰제거이다. 남북간 군사적 신뢰가 구축되고 북-미간 평화체제가 구현되면 서해공동어로수역에서의 공동경비를 비롯한 남북의 공동방위는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주국방은 민족의 미래

이처럼 실질적인 평화군축과 자주국방은 미국없이 대한민국의 힘으로만 북한을 상대한다는 종래의 남북대결적 관점에서 남북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으로 군사적 신뢰를 구축해 통일을 이루고 남북이 힘을 합쳐 외세에 대항한 국방력을 구축한다는 민족통일의 관점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통일로 나아갈 때 자주국방은 국방비용이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군축의 막대한 이익을 보게 된다. 한국만 보더라도 총 30조원 이상의 연간 국방예산 가운데 20조원 가량을 군부대 인력유지에 투입하게 되는데 남북이 통일되어 공동방위체계를 구축한다면 60만 대군도 수요가 줄어들게 되며 이에 따라 국방예산은 대폭 감소하게 된다. 북한의 경우 공동방위체계로 전환 시 군수부문의 예산을 민수부문으로 전환할 여지는 훨씬 커지게 되고 북한주민경제가 더욱 탄력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 모든 자주국방의 효과는 한국정부가 6.15/10.4 선언을 이행하며 북한과 손을 잡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한국정부가 미국과 주한미군에 의존하며 대북적대노선을 강화한다면 남북의 공격무기는 언젠가 서로 불을 뿜게 되어 있다. 이 경우 한반도는 폐허가 되고 전후의 이득은 모두 미국에게 돌아가게 된다.

2차대전으로 유럽과 일본이 초토화되면서 미국이 세계의 유일재벌로 등극했던 역사가 동북아에서 그대로 재현될 수밖에 없다.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면 우리민족이 부강번영해지지만, 6.15 공동선언을 버리면 민족은 핵전쟁으로 공멸하고 그 재부가 미국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우리민족이 21세기에 잡아야 할 확고한 성장동력은 바로 통일이다. 남북이 힘을 합치면 막대한 경제발전 가능성 뿐만 아니라 지난 70년을 짓눌렀던 왜곡된 국방의 질곡을 벗고 정상적 국가방위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남북의 과도한 국방비용을 정상화할 것이며 통일코리아는 강력한 잠재력과 추진력을 가진 역동국가로 21세기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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