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홍장 (일본 조치(上智)대학 연구원)

전번 기사 <조선적자의 내셔널아이덴티티>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조선적자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표현을 어떻게 저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언급했다. /필자 주

 

이번에는 실제로 조선적 재일조선인 청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현대 일본.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지고 있는가, 또 그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리태성(가명)은 재일조선인 4세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조선학교를 다니고 그 후 일본의 대학에 진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조선인인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조선적을 ‘심볼’로서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조선적에서 한국 국적 혹은 일본 국적으로 바꾸는 것은 조선인이 아니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 후 일본국적을 가진 친구들과 만남으로써 그러한 생각은 변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조선적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적을 바꾸는 것으로, 자신은 어쩌면 더 편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대로 (그 편리함에) 편승해도 좋은지 의문이에요. (…) 먹고살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국적을 바꾸지 않고 (조선적자에 대한 차별을) 호소하는 것이 당연히 설득력도 있죠.”

“처음에는 이북도 이남도 아닌 조선반도 전체를 가리킨다는 점에 조선적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국민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어요. 어느 쪽인가 하면 그쪽이 동기로서는 커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 다만 과연 거기까지 조선적 자체에 긍정적 의미를 찾아내는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은 좀 더 공화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파고들어 생각해 보고 싶어요. (…) 단지 지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공화국이라는 것에 파고들어 공화국에 좋지 않은 곳에 대해서까지 설명하고 책임을 짊어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이와 같이 그는 조선적을 유지하는 이유로 세 가지 의견을 말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조선적자를 배제하려고 하는 사회상황을 고발하려면 조선적을 유지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는 의견이다. 이 의견은 조선적을 유지하는 적극적인 동기로 읽을 수 있다.

다음 이야기는 한국적을 취득하고 한국국민으로 등록되는 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소극적인 동기이다. 원래 재일조선인은 일본국적을 박탈당한 시점에서 모두가 조선적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을 통일지향의 상징으로 보려고 하는 의견은 많지만, 그는 여기서 그렇게 적극적인 의미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을 선택하지 않은 결과, 조선적을 유지한다는 소극적인 동기를 밝혔다.

마지막은 ‘공화국’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그는 조선적자를 둘러싼 ‘종북/반북’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주체적으로 ‘공화국’과 관계하고자 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그의 조선적에 대한 인식은 착종돼 있다. 다만 나는 그것을 결코 부정적으로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니다. “과연 거기까지 조선적 자체에 긍정적 의미를 찾아내는 필요가 있을까요”라는 말은 조선적이 원래 일본이 조선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본국적을 박탈하고, 그 결과 부여된 것이며, 해방 후에도 계속된 일본 식민주의에 의해 강요됐다는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식민주의에 의해 강요된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된 행위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조선적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선적은 일본과 조선반도를 덮은 비정상적인 역사와 현황이 낳은 ‘왜곡’의 집약점이며, 그의 착종된 이야기는 그것과 마주 대하고 격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민족은 각 개인의 내면에 존재한다. 그것은 결코 타인에 의해 대변할 수 없다. 각 개인의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대변하지 않고 받아들여 대화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배제하지 않는 유기적인 민족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 추기: 12월 12일, 대법원이 “조선적 재일동포의 입국거부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것은 재일동포가 고향땅을 자유롭게 왕래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또한 일본의 식민주의를 추인하고 선배들이 투쟁 끝에 쟁취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판결이다. 또, 재일동포의 국가나 민족을 둘러싼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저해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 독자들은 이 판결의 부당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필자 소개]
교토대학 박사(문학). 사회학 전공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조치(上智)대학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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