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인 올해, 한반도 정세가 풀리지 못했고 남북관계도 중도반단됐습니다. 3, 4월 북한과 미국 간의 대결구도로 한반도 제2 전쟁 위기설이 돌았고, 그 유탄을 맞고 개성공단이 잠정폐쇄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으나 그 이상의 관계개선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북미관계와 6자회담은 중국 측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과의 견해차로 지리한 공방만 남긴 채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남측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으로 1년 내내 국론이 분열된 상태이고, 북측에선 12월 장성택 숙청 사건이 터졌습니다. 통일뉴스는 <2013년 송년특집>으로 ①북.미관계 ②한국외교 ③남북관계 ④북한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올해 3월 27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신뢰외교' 기치 아래 △북핵문제의 진전을 위한 동력 강화, △한미동맹과 한중 동반자관계의 조화.발전 및 한일관계의 안정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 유라시아 협력 확대 등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9개월, 북한 핵.미사일 문제 악화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등으로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무전략.무기력.무능의 '3무 외교'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는 혹평에 직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야심차게 내세웠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및 '동북아 평화협력구상'도 언론 보도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이명박의 '유산'과 박근혜의 '오산'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날 때 한국이 처한 외교적 환경이 결코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최악'이라는 평을 듣던 남북관계, 독도.위안부 문제 등으로 꼬일대로 꼬인 한일관계, 한미동맹 일변도로 인해 소원해진 한중관계, 2009년 말부터 협력보다는 경쟁 측면이 두드러진 미.중관계까지.

취임 초 윤병세 장관은 이를 '아시아패러독스(역내 국가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이 증대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안보협력이 뒤처져 있는 현상)'라고 표현하면서 '비핵화-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 선순환하는 접근법'을 제안했다. 이 구상의 핵심은 중국이었다. 박 당선인의 특사가 주변 4강 중 제일 먼저 찾은 나라가 중국이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3차 핵실험'과 '한반도 위기'가 잦아든 6월 하순, 박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질려있던 중국 측은 환영 일색이었으며, 관영매체들도 박 대통령의 행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환영",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원칙적 지지" 입장을 밝혔다. 또, 양측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내실화를 위해 △정치.안보분야 전략적 소통 강화, △경제.사회분야 협력 강화, △인문유대 강화 활동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남북 대화 노력과 6자회담 재개 여건 마련,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노력 등에도 공감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 합의사항들은 거의 현실화되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은 지난 11월 23일 이어도를 포함하는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며 한국 측을 놀라게 만들었다. 한국 측이 지난 8일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 확대안을 선포하자,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기회주의적 행태'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박근혜 정부가 취임 초 힘을 쏟았던 대중외교에서 거의 실익을 얻지 못했던 반면 후유증은 깊었다. 박 대통령의 '중국 중시' 발언, 당선인 특사의 첫 방문지가 중국이었다는 점, 한.중 정상회담이 과대포장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미국이 줄곧 박 대통령이 중국 편으로 기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올해 5월 박 대통령이 첫 해외순방지로 미국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와 관련 있다. 방미 당시, 박 대통령은 자기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핵무장에 관심을 가진 것 아닌가 하는 미국 내 일각의 의구심도 불식시켜야 했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관련, '재처리'와 '농축' 허용을 희망하는 박 대통령의 당초 입장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같은 의구심과 앙금이 10월초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로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다. 몇몇 미 당국자들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직시가 없는 한 한.일 정상회담은 어렵다'는 박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서도 '중국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는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이 지난 6일 박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건 좋은 베팅이 아니다", "한.일 관계의 장애요소들이 조속히 해소되어 원만한 관계 진전을 이루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의 구상과 달리 한미 및 한중관계가 뒤틀리게 된 주된 원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에 있다. 당초 박 대통령과 참모들은 일본을 북한과 비슷한 수준의 '적절한 관리대상'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의 영유권 분쟁이 미.중 간 대립으로 번지면서 동아시아 정세 전반을 뒤흔들어버린 것이다.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외교의 길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9년 12월 '코펜하겐 기후협약 당사국 총회'를 계기로 중국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양국 실무자 사이에 거의 합의가 됐던 '온실가스 자율감축 목표에 대한 국제적 검증절차' 수용을 거부함으로써 오바마 대통령을 격분시켰다. 이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아시아 회귀', 톰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은 '재균형'이라 불렀던 아태 중시정책이 본격화됐다.

미 당국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재균형'이란 기술적으로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집중됐던 군사적 자원을 주로 동남아시아 쪽으로 재분배한다는 뜻이다. 2012년 미 대선 당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의 참모였던 아론 프리드버그는 '재균형정책'을 '봉쇄적 개입정책(congagement policy)'이라 규정했다. 개입정책에다 과거 봉쇄정책의 몇 가지 요소들을 결합했다는 것이다. 그는 "20세기 초반에 미국의 전략가들이 가졌던, 적대적인 세력이 유라시아 지역을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정학적인 판단은 지금도 유효하다"며 "미국은 동맹국들의 적극적인 협력 없이는 중국의 부상에 맞서 장기적으로 힘의 우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있어, 중국은 소련과 달리 명백한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봉쇄'와 '재균형'이 갈라서는 지점이다. 또, 미국은 소련에 대항해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 '나토'라는 기구와 육상기지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중국 주변(동쪽)에는 서쪽에 필적하는 기구도 육상기지도 없다. 이로부터 지역 내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의 중요성, '공해전(Air-Sea Battle)' 개념이 나온다. 재균형 정책의 핵심요소가 동맹국이다보니 미국이 박 대통령의 '일본 때리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시민사회진영에서는 내년 4월 오바마 대통령의 한.일 순방 때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 출범 가능성이 거론된다.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한일 역사 갈등 봉합, 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MD) 통합 등이 예시되고 있다. 그때까지는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기 보다는 '북한 위협'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의 '한일관계강화' 요구에 "일본 측의 진정성있는 조치"를 거론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8월 무산됐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이나 미국 주도의 MD 가입에 부정적이다. 다만, 6자회담 재개 관련해서는 '선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며 미일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편을 택할 수 없는 한국의 고민이 묻어난다.

이에 대해서는 "대도를 버리고 샛길을 취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대북전문가)"라는 지적도 많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한미일 삼각동맹 추진의 표면적인 명분이 '북한 위협'이라는 점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 위협' 활용이 아닌 해소를 촉진하는 외교에 나서고, 6자회담 재개 관련해서도 전제조건을 고집할 게 아니라 조기 재개를 통해 동북아 화해를 촉진하라는 것이다.

지난 10월 11일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에 참고인으로 나온 <중앙일보> 이하경 논설실장도 "한국이 처한 현실은 거의 5차방정식 풀어야 한다"며 "거시적 균형감각 유지하면서 풀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자면 남북관계를 선차적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 그것 빼고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