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인 올해, 한반도 정세가 풀리지 못했고 남북관계도 중도반단됐습니다. 3, 4월 북한과 미국 간의 대결구도로 한반도 제2 전쟁 위기설이 돌았고, 그 유탄을 맞고 개성공단이 잠정폐쇄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으나 그 이상의 관계개선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북미관계와 6자회담은 중국 측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과의 견해차로 지리한 공방만 남긴 채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남측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으로 1년 내내 국론이 분열된 상태이고, 북측에선 12월 장성택 숙청 사건이 터졌습니다. 통일뉴스는 <2013년 송년특집>으로 ①북.미관계 ②한국외교 ③남북관계 ④북한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전쟁 위기까지 거론되던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6월 북한의 북미 고위급회담 제안 등으로 본격적인 대화 모색기로 접어들었지만 연내에 결실을 맺지 못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한반도 위기

북한은 지난해 12월 인공위성 광명성 3호 발사에 대해 유엔안보리 제재결의가 통과되자 이에 반발해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북부지하핵시험장에서 제3차 지하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은 3월 1일부터 키리졸브-독수리 군사연습을 시작하고 북한은 3월 5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 정전협정 백지화와 판문점대표부 폐쇄 등사실상 준전시 상태를 선포해 군사적 긴장이 조성됐다.

유엔안보리는 북한의 핵실험 당일 곧바로 긴급회의를 열어 대언론성명을 내는 등 강력한 대응에 나섰고, 3월 7일 중국까지 찬성한 가운데 북한의 추가 도발조치가 있을 경우 “추가적인 중대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는 트리거(trigger) 조항이 포함된 강력한 제재결의 2094호를 채택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3월 9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유엔안보리 제재결의를 전면 배격한다고 밝히고 “우리의 핵보유국지위와 위성발사국지위가 어떻게 영구화되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고 맞섰다.

3월 11일부터 B-52 전략폭격기 등이 참여한 키리졸브 훈련이 본격화되고, 북한 최고사령부는 3월 25일 1호 전투근무태세 진입을 담은 성명을 내는 등 군사적 긴장이 높아갔고, 미군은 스텔스 전략폭격기 B-2를 처음으로 한반도 상공에 전개했다.

다행히 군사적 충돌 없이 키리졸브훈련은 끝났지만 5월초 서해 포사격 훈련과 5월 11일 미국의 초대형 핵항공모함 니미츠호의 부산 입항 등으로 군사적 긴장은 이어졌다.

한반도에서 정전 이래 가장 강도 높은 군사적 대치 국면이었다는 평가들이 쏟아졌고,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도 나왔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 북미 간 물밑접촉이 몇 차례 진행됐다는 전언도 있다.

4월 12일 방한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윤병세 외교장관과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6자회담이든 양자회담이든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고, 북한은 4월 18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을 통해 “조선(한)반도의 비핵화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군대와 인민의 드팀없는 의지”라고 이례적으로 ‘조선(한)반도 비핵화’를 거론해 주목받았다.

물론 북한은 4월 20일 다시 <노동신문> 논설을 통해 “앞으로 우리와 미국사이에 군축을 위한 회담은 있어도 비핵화와 관련한 회담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며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해 애당초 꿈도 꾸지 말라”고 선언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계속 내보냈다.

북미고위급회담 제안과 6자회담 모색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촉발된 군사적 대치 국면은 4월 말부터 완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북미간 대화 분위기는 6월 16일 북한의 국방위원회 중대담화를 통한 북.미 당국 간 고위급회담 제안으로 본격화 됐다.

중대담화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수령님과 우리 장군님의 유훈이며 우리 당과 국가와 천만군민이 반드시 실현하여야 할 정책적과제”임을 재확인하고 “전제조건을 내세운 대화와 접촉에 대하여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다.

고위급회담 의제로는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 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없는 세계건설’ 문제를 포함하여 쌍방이 원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제시했고, “회담장소와 시일은 미국이 편리한대로 정하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북미 간 대화를 앞둔 샅바싸움은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사전조치’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고, 8월 30일 방북할 예정이었던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의 방북이 북한의 초청 철회로 불발됨으로써 북미 간 대화의 문이 열리지 못했음이 확인됐다.

미국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9월 19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을 만나 “6자회담을 어떻게 재개할지, 비핵화 프로세스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추진할지에 대해 미국과 새롭고 중요한 합의를 도출할 자신이 있다”고 밝히면서 공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으로 넘어가고 각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활발하게 접촉을 시작했다.

북한은 김계관 부상과 리용호 6자회담 수석대표 등이 9월 17일 베이징에서 우다웨이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만난데 이어 18일 반관반민(1.5트랙) 9.19공동성명 발표 10주년 세미나에 참석했고, 리용호 수석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9월 24-26 베를린과 10월 1일 런던에서 열린 반관반민 회의에 참석했지만 미국 측은 현직 관리는 참여하지 않고 스티븐 보스워즈 전 6자회담 수석대표 등 전직 관리들이 참석했다.

북 측은 베이징 세미나에서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이행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으며, 베를린 회의에서는 ‘정치’는 미국 등과의 국교정상화, ‘군사’는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과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 그리고 ‘경제’는 경제제재 해제 등을 거론한 것으로 참석했던 미국 측 전직 관리들이 전했다.

이후 6자회담 수석대표들의 교차 방문과 면담이 집중적으로 진행됐으며, 특히 우다웨이 중국측 수석대표는 미국과 북한을 직접 방문하면서 조율을 시도했지만 끝내 6자회담 연내 재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미국의 외면과 북.미의 고민

결국 북한은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강조했지만 미국과 한국 등은 북한의 선제조치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고 회담이 시작될 경우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평행선을 달렸다. 일각에서는 우라늄 프로그램 중단과 검증 문제가 관건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어쨌든 적극적인 대화 공세를 펴던 북한은 미국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점차 경고성 발표를 내놓기 시작했다. 10월 23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조선반도비핵화는 결코 우리의 일방적인 선핵포기가 아니며 그것은 동시행동으로 조선반도에 대한 외부의 실제적인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데 기초하여 전 조선반도를 핵무기없는 지대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며 “외부의 핵위협이 가증되는 한 그에 대처할 핵억제력도 강화하지 않을수 없게 될 것이며 여기에서 우리는 그 어디에도 구속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북미 간 대화를 위한 모색 과정에서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일본을 방문 중이던 10월 3일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이를 위해 진정한 협상에 나선다면 우리는(6자회담 당사국들은) 대화할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과 불가침 협정(non-aggression agreement)을 체결할 준비도 돼 있다”고 말해 주목된다. 기존에 북한이 주장해온 평화협정 체결에 불가침협정이 더해진 셈이다.

또한 북한이 제기한 경제 분야에서의 제재해제 문제도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펴며 경제건설에 방점을 찍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북미 간 물밑접촉에서 경제분야 접촉이 따로 열렸다는 전언이 있으며, 에너지와 금융 부문 미국 대기업의 북한 진출도 협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 핵문제에 우선 순위를 두고 해결에 매달렸고, 새로이 G2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한.미.일 3각 동맹 구축에 주력했다. 미국이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표방하며 군사적, 경제적 대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는 과정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대화 파트너’ 북한 보다는 ‘공공의 적’ 북한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20여년 간 수많은 협상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에 올라선 북한과의 까다로운 협상에 선뜻 나설 미국 관리집단도 사실상 전무하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뒤 핵무기 보유국의 지위를 강화한데 기초해 경제발전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둬야 하는 상황에서 핵문제로 인해 국제제재의 문턱을 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으며, 대화 시도가 먹혀들지 않을 경우 또다른 무력시위에 나서야 할지를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미국은 6자회담 틀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은 북한이 핵무력 증강 속도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척시키고 있어 마냥 바라볼 수만은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고, G2시대의 경쟁자이자 협력자인 중국 측의 강력한 대화재개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최근 시리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앞장선 러시아도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지만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원칙도 강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핵 없는 세계’를 내세워 이미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오바마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 뒤 이란 핵문제가 잠정적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과정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눈길이 닿는 순간 ‘핵 없는 세계’는 현실이 아님을 절감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아픈 대목일 것이다.

결국 남북 관계의 진전 여부와, 미.중 간의 조율, 북.미 간의 물밑 조율 등 다양한 통로들을 통해 북.미 관계가 올해 상반기처럼 다시 한 번 요동칠지 대화의 길로 접어들지 내년 상반기 중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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