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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고3이었다!{KIN연재 동포소식(26)] 리명옥 재일조선인 3세
리명옥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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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04  05: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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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명옥(재일조선인 3세)


올해 4월부터 일본의 어떤 사립 고등학교 외국어 선택과목의 강사로 주에 두 번 조선어 수업을 하고 있다. 과목의 정식 이름은 ‘한국조선어’다. 학교 행사 때문에 한 주 건너서 오랜만에 수업이 있었던 날 교원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동료 선생님과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부산 출신인 그 선생님은 세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 부산에서 오신 어머님이 집에서 아이를 봐주신다. 그래서 전화기에 담긴 동영상속의 딸은 예쁜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었다.

나도 무심코 요즘 정신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데 동료 선생님은 길게 한숨 쉬면서 “누가 고3 학부모 아니랄까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는 대학 입시철이 시작되었고 나는 고3 학부모였던 것이다. 
 
   
▲ 고3 딸의 책상. [사진 - 리명옥]
고3 딸은 1년 전에 공부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시켜달라고 했다. 동시에 조선학교를 다니는 마지막 한 해라 지금껏 열심히 해왔던 취주악부 활동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같이 지내는 동무들과 함께 악기 연주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니까 꼭 해야겠고, 입시공부도 동시 진행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돈을 대주기는 하지만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텐데 취주악부 활동을 하라니 마라니, 대학을 가라니 마라니 하는 것은 다 본인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고3 학부모 생활이지만 이제 막바지가 되면서 불안해지고 있다.
‘내 딸 갈 데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부터 또 다른 욕심으로 인해 생기는 후회까지. 사실은 떠올랐다가 지우기를 거듭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자신도 고3이었을 때가 있었다.
도쿄조선고급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는 일부 사립대학을 제외하고는 국립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대학들이 조선학교 졸업 자격으로 입시를 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따기 위한 시험부터 봐야했다. 공부 잘하고 또 좋아하기도 하는 우리 언니는 공부를 잘해서 이른바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고 문제만 자꾸 일으키면서도 내가 보기에는 마음씨 착했던 남동생은 어느 시점에서든 마음 다잡고 공부를 해야 될 것 같았다. 나는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다지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집안 형편으로 봐서 내가 대학 진학을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입시라는 경쟁에서 살아남기에는 성질이 너무 느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도 지금도 조선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거듭 조국통일과 재일동포들의 행복을 바라고 그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라는 교육을 받게 되고 그런 다짐을 한다. 우리 동기 중에도 총련의 활동가나 조선학교 교원이 되어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길을 선택하는 동무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나로서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치고, 평생 먹고 살 수단(그것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면 더 좋고)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제빵사 학원에 다니겠다고 말씀드렸다. 쿠키며 케잌을 구워서 먹거나 동무들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을 직업으로 하고 싶었다. 내 말을 들으신 뒤 아버지는 그 일도 참 괜찮은 일이지만 일단 대학을 졸업한 후에 하면 어떨까하는 말씀을 하셨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에는 너희에게 남겨줄 만한 재산은 없다. 그래도 가족들이 다 열심히 하면 너희에게 대학 4년간이란 시간을 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니도 아르바이트 하면서 대학을 다니지만,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너하고 열심히 하면 너는 대학 4년간이란 시간을 얻을 수 있어.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뜻밖의 제안이었다.
대학생이라는 시절은 어린 아이도 아니고 완전한 어른도 아니다. 대학에서는 지식만 배우는 게 아니고 세상을 살펴보는 시절이기도 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세상 다 바꿔놓을 정도의 큰마음을 먹고 뭐든지 도전해 보거라. 그러다가 잘못해서 실패했을 때 부모들이 도와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기도 하니까 꼭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뜻은 알아들었으나 이미 고3 시절도 두 달이 지난 뒤라 시간이 없었다. 제빵사가 되고 싶은 나는 직접 관련이 있는 곳으로 영양학부와 농학부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일단 농학부를 택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해 5월부터 난생 처음으로 학원이란 곳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비교적 많이 다닌 조그만 그 학원 학원장님은 조선학교 아이들을 대학에 붙게 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었고 효율적인 공부 방법을 전수해주셨다. 농학부 학도가 되기 위해 아득바득 공부를 하기 시작한 나를 어느 날 방과 후 담임선생님께서 부르셨다.

담임선생님은 환갑이 가까운 일어 선생님이셨다. 자신이 대학을 다니실 때가 마침 조선학교 폐쇄령 때문에 한 때 거의 없어진 학교들이 다시 새로 서기 시작했을 때였다고 하셨다. 갑자기 불어난 학교와 학생들 때문에 교원이 부족했다. 학교는 임시적으로 대학생들을 선생님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때 대학을 다니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선생님은 그대로 대학을 때려치우고 30년을 계속 교단에 서신 것이었다. 수업 잘하시기로 이름난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이런 고뇌를 털어놓으셨다. 30년 동안 하루도 게으르지 않고 배우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가끔 전문 교육을 받지 못했던 한계 때문에 부끄럽고 아쉽고 억울하고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이었다. 그 당시 조선대학교를 비롯해서 일본 전국의 조선학교에 일본어학이나 일본문학을 대학에서 전공한 선생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다.

“농업 참 좋지. 식물이든 사람이든 생명을 가꾸고 키우는 일은 정말 보람 있고 성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1년에 한 번씩 변화를 볼 수 있는 식물보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 또 다른 사람들의 변화를 보는 게 더 재미있어. 30년을 그렇게 살아온 선생님이 하는 말 한 번 믿어 볼래? 선생님은 너에게는 사람 키우는 일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느껴지는데 선생님이 잘못 생각 했을까?”

그렇게 나는 일문학과 지망생이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하여 대학에 붙었다. 그때까지는 못했던 교생 실습 학점을 조선학교 실습으로 딸 수 있게 하기 위해 조그만 투쟁을 홀로 벌였고 일본학교에서 일본의 국어 즉 일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원면허증을 땄다. 그렇게 일어 교원으로 모교에 돌아갔고 평생 잊지 못할 학생들을 만났다. 2년 근무했다가 좌절하다시피 그만두었지만 후회는 없다.

퇴직을 해서 그때 조선대학교 선생님으로 계시던 고3때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기대에 보답할 수 없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열심히 했고 참 잘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결혼을 하고 아이들 엄마가 되었고 이런저런 직업들을 다 해봤다. 크고 작은 고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살고 있고 어쩌다가 또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게 되었다. 나는 여태까지 그렇게 굴러굴러 왔다.

고3 학부모로서 아이에 대한 이기적인 욕심이 생길 때도 가끔은 있지만 아이는 자기 자신의 마음과 머리로 굴러가는 걸까? 아이 아빠는 평생 일하면서 살아갈 각오가 되어있고 어디서든 의욕적으로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삶을 산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딸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니까 걱정 말라고 한다.
그 말 믿어야 배길 수 있는 고3 학부모의 겨울철이다.

[필자 소개]
재일조선인 3세. 1968년생. 현재 오사카 거주.
삼남매를 초,중,고 조선학교에 보내는 학부모.
직업은 조선어(한국어)와 일본어 프리랜스 번역과 통역.
[번역서] 재일3세 스포츠기자가 쓴『祖国と母国とフットボール』의 한글판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2010.6.15 왓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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