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Daum영화]

베를린의 한 호텔. 북한의 정예 비밀 요원 표종성이 북한과 아랍권 국가의 불법 무기 거래를 협상하고 있다. 하지만 호텔 곳곳에는 이미 북쪽의 동향을 예의 주시해 온 국정원 요원 정진수가 현장을 급습하기 위해 잠복하고 있는 상태. 노련한 협상이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과 동시에 현장을 덮치기 위해 국정원 요원들도 발빠르게 움직인다. 그때 갑자기 제3의 인물이 거래 현장에 난입한다.

그리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빠져나오는 표종성과 공들여 추적해 온 사건을 놓쳐 버린 정진수는 운명적으로 맞닥뜨린다. 이것이 영화의 시작이다.

▲ [사진출처-Daum영화]

영화는 숨 돌릴 틈 없이 사건과 사건의 뒤를 쫓는다. 음모와 반전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꼬리를 문다. 남북 대사관이 모두 상주하고 있는 베를린의 특수성은 국내에서 무뎌진 우리의 분단 감수성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더구나 냉전 시대 동서독 대결의 역사가 담긴 베를린의 상징성은 새삼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베를린이라는 장소는 남북 대결이라는 소재에 최적의 공간적 배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쉬리>보다 훨씬 짜릿하고 현실감 있게 긴박한 첩보전을 관망하게 한다. 치밀한 액션과 촘촘한 스토리 전개 못지않게 류승완 감독의 안목은 영리하다.

▲ [사진출처-Daum영화]

생각해 보면, 분단만큼 흥미로운 소재도 없다.

일찍이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대립 구도는 문학과 영화에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해 주었다. 대표적인 것이 007 시리즈이다. 불사신 007이 벌이는 첩보전은 선과 악으로 나누어진 세계를 기반으로, 그 행위에 대한 일말의 통찰이나 의문도 없이, 죽음의 게임을 펼친다. 잘 생기고 매너 좋고 능력 있는 이 첩보원은 위험한 임무 수행 틈틈이 로맨스를 즐기는 낭만도 잊지 않아 파괴와 살상 가득한 영화를 미화시켰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007은 시들해졌다. 세계의 긴장이 느슨해지면서 숨 막히는 첩보전의 재미는 다른 활로를 찾아야 했다. 007 가방을 들고 세계를 누비며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비즈니스맨들의 활약이나 산업 스파이로는 약하다. 세계 곳곳에서 빈발하는 국지전도 좋은 소재이지만, 선악 구도로 후려치기에는 그 양상이 너무 복잡하고 뒷말이 따를 수 있다. 이제 007을 호출할 만한 자리는 오사마 빈라덴 같은 아랍의 테러리스트들이거나, 악의 축이라 일컬어지는 북한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냉전 시대가 저물고도 여전히 지구상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은 남북의 대치 상황이야말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경쟁력 있는 한류 상품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감정 이입에 최적인 ‘리얼’ 스토리이며, 어떠한 도덕적, 윤리적 고려도 필요없는 선악의 명쾌한 대립 구도를 창출할 수 있고, 게다가 적절한 비극성까지 곁들여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슬프게도.

▲ [사진출처-Daum영화]

국정원 요원 정진수 역의 한석규는 <쉬리>에서 남쪽의 정보 요원으로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었다. 1999년 개봉하여 620만 관객을 모은 <쉬리>가 제작된 것이 1998년.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분단 관련 영화는 소리 없이 변모해 왔다.

한국 전쟁이라는 민족 최대의 참상을 다룬 영화가 <태극기 휘날리며>(2004), <웰컴 투 동막골>(2005), <포화 속으로>(2010)를 거쳐 <고지전>(2011)에 이르는 동안, 남북간 대치 현실을 다룬 영화는 <쉬리>(1999), <공동 경비 구역 JSA>(2000), <실미도>(2003), <이중간첩>(2003)에서 <의형제>(2010)와 <풍산개>(2011)로 이어져 왔다.

첨예한 남북 대립이 초래한 비극성에 초점을 맞췄던 영화는 점차 체제와 이념의 일원화된 지배로부터 분리된 개인을 발견해 내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그 연장선상에 7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를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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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 인물을 축으로 구성된다. 빨갱이가 싫어서 로터리에서 좌회전도 하지 않는다는 정진수, 그리고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민 영웅 칭호까지 받은 표종성은 남북 대결의 최첨병을 담당하는 공작원들. 자신이 속한 체제와 집단의 이념을 신념화한 정진수와 표종성의 운명적인 대결이 영화의 출발 지점이다.

그런데 여기에 끼어드는 인물이 있다. 바로 북한의 장권 교체기를 틈타 권력을 장악하려는 동명수와 그의 아버지. 표종성의 우직한 충성심은 사적 야심에 불타는 동명수 부자에게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시대가 변해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정진수 역시 그 고지식한 태도로 조직 내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신념에 충실한 인물들은 이제 조직 내에서 설 자리를 잃거나 아예 제거 대상이 된 것이다. 이들은 국가나 체제와 맞서는 것이 아니다. 이 조직 논리에 충실하던 인물들은 이제 탐욕스럽거나 기회주의적인 조직의 상층부에 반하여 독자적인 길을 찾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서로 연대하거나 연민할 가능성은 없지만, 살아남기 위해 표종성은 본의 아니게 정진수와 협력하게 되고, 조직이 인정해 주지 않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정진수 역시 표종성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은 정진수와 표종성의 시대가 가버렸음을 예리하게 포착함과 아울러, 구시대적 산물의 생존 방식으로 조직의 충실한 수하인 007 대신 개인을 수단화하는 조직에 맞서 자아를 찾아가는 첩보원 본을 선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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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결이 선언된 것이 1989년이다. 이 이념적 대결 구도가 와해된 지 24년이 흐른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변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은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의 양상을 띠고 있고, 자본주의가 장악한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익’이다.

세계는 미•소의 양대 이념 진영이 아니라 다각화된 갈등과 분쟁 구도에 휩싸여 있다. 변함없이 대치하며 진영 논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남북한뿐이다. 영화에서 남북 대결은 상황적 전제일 뿐,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 관계이다. 분단이라는 소재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깔끔한 첩보 액션 영화로 재탄생시킨 감독의 현실 감각은 적어도 영화가 남북 대결을 조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행스럽지만, 분단을 이렇게 오락 영화로 소비해도 좋은가 하는 고민은 남는다.

영화는 재미있다. 잘 만들어졌다. 두뇌의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이야기를 꿰는 솜씨에다, 묵직한 존재감을 주는 조연들의 포진과 스크린을 압도하는 네 배우의 팽팽한 대립 구도가 아찔한 즐거움을 주고, 주로 맨몸을 이용해서 이루어지는 강렬한 액션은 규모와 물량의 공세에 의존하는 헐리웃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원초적 쾌감을 선사한다. 조직에서 비주류가 되어 버린 공작원들이 아내나 친구를 잃으면서 겪게 되는 인간적 고뇌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누구의 명령도 없이 고독한 작전 수행에 나서야 하는 첩보원의 운명은 속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우리는 새로운 장르 하나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한반도는 전쟁 위협이라는 양치기 소년과 함께 반세기를 살아왔다.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불안 의식을 재생산해 내면서 또 한편에서는 웬만큼 긴장이 고조되어도 주가가 꿈쩍하지 않을 만큼 위기 불감증에 걸려 있다.

근래 전에 없이 긴장이 격화되는 한반도의 상황은 이제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에도 끝이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게 한다. 분단은 영화보다 리얼한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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