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14일과 16일 두 차례 평양오리고기전문식당을 찾았다. 평양단고기식당처럼 한 개의 요리로 전문화를 시도한 평양 식당 중의 하나였다.

“반갑습니다. 저희 식당을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차에서 내리자 박순희 접대원, 리경희 접대원을 비롯한 평양오리고기전문식당 여러 봉사원이 나와 남쪽에서 온 손님을 반겼다. 식당의 감자필 지배인은 “우리 식당은 1968년에 처음 문을 연 오리고기전문식당입니다. 김일성주석께서 ‘우리 주민들이 오리고기를 널리 먹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에 따라 지금까지 오기고기전문식당으로 봉사해 오고 있습니다”라고 식당의 연혁을 들려주었다.

▲ 김자필 지배인, 공훈요리사, 박순희 접대원(맨 오른쪽. 그 뒤가 리경희 접대원), 평양오리고기전문식당의 요리사와 봉사원들(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미란 접대원). [자료사진 - 민족21]
식탁에 앉자 김미란, 리경희 접대원이 준비한 코스요리를 차례로 내왔다. 오리발 익힘요리와 오리발에서 뽑아 만든 묵이 처음 나왔다. 느끼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뒷맛이 깨끗했다. 그 다음으로 오리가슴구이, 기름에 익힌 오리위(똥집)요리, 오리고기찹쌀완자찜(일명 고슴도치), 신장요리, 오리고기골튀기, 간볶음이 차례로 나왔다.

김미란 접대원은 “오리고기골튀기는 3마리의 오리머리로 만듭니다. 그러니까 이 코스요리를 다 드시면 오리 세 마리를 먹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설명을 곁들였다.

▲ 평양오리고기전문식당의 코스요리. [자료사진 - 민족21]
마지막은 옥돌에 끓인 오리고기탕국밥. 남쪽의 육개장과 비슷하겠지 생각했는데, 시원한 국물과 담백한 맛이 전혀 달랐다. 김 접대원은 “공훈요리사가 직접 만든 요리입니다. 배가 부르시더라도 다 드시면 여름보양식으로 좋습니다”라며 권했다. 그의 요리설명이나 봉사 솜씨가 남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던 안내원이 슬쩍 귀띔했다.
“저 접대원 동무가 우리 공화국에 몇 안 되는 공훈접대원입니다.”
2003년 8월 15일에 공훈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북한의 접대원 중 공훈칭호를 받은 사람은 10명 내외. 평양상업대학 안에 설치된 3년제 식요리전문학원을 나와 20년 가까이 ‘봉사일꾼’으로 일했다고 한다.

공훈 칭호 받은 후 생활비 2배 이상 인상

“올해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마흔입니다.”
“공훈칭호를 받으면 임금도 오릅니까?”
󰡒국가적으로 여러 혜택이 주어집니다. 생활비(임금)도 공훈 칭호를 받은 후 14,000원에서 32,000원으로 올랐습니다“라고 말했다.

2002년 ‘번 수입에 의한 평가’, ‘생산자 위주의 가격 조정’을 골자로 하는 사회주의관리개선조치(7.1조치)가 실시되면서 봉사부문 노동자들의 생활비가 2,000원 정도로 책정됐는데, 2003년 14,000원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성과급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공훈 칭호를 받은 후 생활비가 또 2배 이상 인상된 셈이다.

김 접대원은 “손님이 많을수록 생활비(임금)도 그만큼 올라간다”며 “친절한 봉사와 다양한 음식으로 손님 접대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진지한 표정에는 ‘공훈접대원’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듯했다.

7.1조치 이후 ‘실리주의’가 북한 사회에 광범위하게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수익과 실적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수익과 실적에 따라 성과급에서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도 “사회주의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얻는 것은 경제조직사업에서 지켜야 할 중요원칙”이라며 “사회주의분배원칙을 실시하는 데서는 평균주의를 없애고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물질적으로 많은 몫이 차례지게 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평가받게 하여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 김미란 공훈접대원이 식당 입구까지 나와 배웅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부위별로 특색 있는 음식을 개발한 평양오리고기전문식당도 평양의 다른 식당, 상점들과 마찬가지로 수익증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7.1조치 4년이 지나면서 평양에서는 상점, 식당 뿐 아니라 공장, 농장까지 ‘일한 만큼, 번 만큼’ 분배받는 새로운 시스템에 적용해 가는 모습이 확연했다.

식당에는 20여명의 접대원이 봉사하고 있었다. 박순희(32) 접대원은 특이하게 통계전문학원을 나와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하루에 1천명 정도 봉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저희 식당은 두단오리공장에서 오리고기를 독점 공급받을 수 있는 보장체계가 세워져 있습니다.”
김 지배인의 말이다. 평양 락락구역에 있는 두단오리공장은 부지면적 72정보, 건축면적 11만㎡ (생산건물 60개동, 보조건물 80개동 등 총 145개 동)의 대규모 오리공장으로 2000년대 중반 개건.현대화가 돼 매년 수천 톤의 오리고기와 알을 생산한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오자 요리사, 접대원 등 봉사원들이 나와 손을 흔들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김미란 접대원은 차가 있는 곳까지 배웅을 나와 “또 오십시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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