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2001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가 끝난지 일주일이 되건만 아직 그 여진(餘震)이 있다. 새로운 후(後)폭풍이 나올까 걱정되기도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번 행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번 8.15평양공동행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실천과정에서 봐야 한다. 이번 행사는 6.15선언에 의해 가능했고 또 그 일환으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의 초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3대헌장기념탑`에서의 남북 공동주최 개.폐막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문별 대화와 협의였다. 그런데 전자는 참가에서 참관, 그리고 불참으로 오락가락하면서 그 적(籍)을 상실했고 따라서 부문별 대화로 모든 관심이 집중될 터였다.

따라서 6.15선언의 실천과정에서 본다면 이번 행사는 그 성과가 적지 않다. 아니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현 한반도 상황에서 유일한 대화와 교류의 끈인 민간 차원의 행사가 성사되었고 또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종교인, 경제인, 문화인 등 각 계층별.부문별로 합의한 것도 많았으며 그리고 이러한 합의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민간 차원의 후속사업이 줄지어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듯이 상황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남북 민간대화 지속과 부문별 합의라는 `성과`는 가려지고 왜 3대헌장탑 부분참가와 `만경대 방명록` 건만 부각된 것일까. 또 통일의 `전령사`가 될 수 있었던 300여명의 남측 대표단은 왜 통일의 `역적`이 되어 돌아온 것일까.

이쯤 되면 대표단의 입장에서는 누구에게 라고 할 것 없이 억하(抑何) 심정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굴 탓하랴. 조건부 방북승낙을 한 정부를 탓하고 행사장소를 고집한 북측을 탓하겠는가. 아니면 침소봉대를 넘어 사실왜곡한 일부 언론과 `평양광란극`이라며 민족문제를 당리당략으로 이용한 특정 정당을 탓하겠는가. 그렇다고 의견차이를 보인 추진본부 내부를 탓하겠는가, `내` 마음 몰라주는 국민을 탓하겠는가.

이번에 문제가 된 행사장소 건과 만경대방명록 건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평양으로 출발할 때 개최장소 문제는 말끔히 정리되지 않았고, 또 평양 땅을 거의 처음 밟아봤을 300여명은 `현실은 남쪽에다 두고 몸만 북쪽에 있음으로` 해서 돌출적인 일이 일어날 소지는 충분히 있었다.

또한 그 해법도 있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원칙에 따라 조건부 각서를 받고 방북을 승낙한 정부가 국내에서 파생될 문제는 정부가 풀고 그리고 평양에서 발생한 일은 대표단이 풀면 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8.15평양행사의 과정과 전체 그리고 사실(fact)과 성과는 무시하고, 돌출과 부분 그리고 소문과 문제점만 부각시킨 일부 언론의 메카시즘적이고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모두가 속수무책이 되어버렸다.

이번 사태로 분명히 드러난 것은 6.15선언을 훼손시키고 8.15행사의 성과를 폄하하는 세력이 있다는 점과 대부분의 국민들이 아직은 6.15선언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 세력중의 하나인 일부 언론과 그 언론에 영향받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것이다.

민간통일운동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아니면 이 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든` 그 누구를 탓해야 할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누구를 탓한다고 해결된 사안도 아니고 또 현상적 위기를 타파한다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이 6.15선언에 대한 입장에서 오는 문제라고 본다. 6.15선언을 실천하려는 세력과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이 맞부닥쳤고 국민은 후자에 귀를 기울인 셈이 된 것이다. 국민이 이 광경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간통일운동은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6.15선언의 전환기적 의미에 얼마만큼 잘 대처했는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냉전시대때의 민간통일운동은 생존을 위한 성격이 강했다. 독재와 권위주의 그리고 반통일세력과 대결하자면 통일운동을 사수하는 것조차 힘겨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6.15선언 이후 민족화해시대에는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민심을 얻는 통일운동을 벌려야 한다. 이제 통일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당성과 도덕성을 얻는 시기는 지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교훈은 향후 민간통일운동이 자신의 정당성과 가치를 국민들로부터 검증을 받을 수 있느냐 아니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대표단은 몇 가지 점에서 민심을 얻는데 결정적인 패착을 뒀다.

첫째, 3대헌장탑 참가, 참관문제다. 그것이 참가든 참관이든 구경이든 국민은 대표단이 정부와의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처음부터 개최장소의 방침이 명확하지 못한 점, 주인(북측)의 요구에 대한 손님(남측 대표단)으로서의 예의 문제 등등은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대표단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 국민에게는 정부와의 신의를 저버린 것으로 되고 말았다.

둘째, `만경대정신`을 국민은 친북 발언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적 차원일 수도 있고 또 해프닝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만경대정신이란 북측에도 없는 용어이고 또 독립정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그걸 곧이 듣겠는가. 그것이 친북이 아닌 민족적 행위일지라도, 왜 그것조차 주의해야 하는지가 이번 경우에 드러났다.

셋째, 가장 중요한 건 이번 방북단이 국민들에게 무엇을 알리고 또 무엇을 하려고 했느냐 하는 점이다. 대표단은 최소한 부문별 대화와 협상을 통해 민간차원의 남북대화를 지속화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임을 알려야 했다. 그런데 평양에 가는 것만이 목적이 되어버린 형국이 되어버렸다. 누가 좋아하겠는가. 국민은 대표단이 평양에 왜 갔는지 하다못해 이들이 왜 대표단인 줄 알지를 못한다. 방북의 이유와 목적 그리고 명분을 알리는데 실패한 것이다.

이제 민간통일운동 앞에 명확한 두 가지 과제가 나서고 있다. 하나는 추진본부 내부를 추스리는 과제다. 추진본부는 민화협, 7대종단, 통일연대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가 통일의 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통일연대는 선봉적 역할을 잘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협소하다. 민화협은 남남갈등을 해결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7대종단은 보수적일지는 모르지만 분명 그 고유역할이 증명되었다. 추진본부의 3정(鼎)체제가 굳건히 서야 한다.

다른 하나는 추진본부내 세 조직이 대화와 토론을 거쳐 새롭게 힘을 합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과제다. 그 과제란 국민을 의식하고 민심을 얻는 통일운동을 하는 일이다. 민심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남북이 합의하고 전세계가 지지하는 6.15선언의 참뜻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이다. 이것이 곧 `못다한` 통일 전령사의 역할이기도 한 것이다.

분명 이번 8.15평양행사는 그 성과가 적지 않았다. 지금 언론의 뭇매에 그 의의가 가려져 있지만 앞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얼마든지 빛을 발할 수 있다. 추진본부가 내부를 수습하고 곧바로 민심을 얻는 통일운동을 한다면 6.15선언은 통일의 이정표로서 굳건히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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