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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말은 남쪽, 북쪽 다 철저히 지켰다” 창립 10주년 맞은 평화3000, 박창일 신부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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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8  18: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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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립 10주년을 맞은 평화3000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창일 신부와 4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제일 큰 것은 신뢰인 것 같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약속한 말은 남쪽, 북쪽 다 철저히 지켰다. 그런 신뢰가 있어서 10년간 해오지 않았나 싶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대북정책에서 가장 자주 거론하고 있는 '신뢰'라는 단어가 뜻밖에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인 ‘평화3000’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창일 신부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왔다.

인도적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오는 9일 오후 5시 서울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평화 가득 열돌 잔치’를 펼칠 예정이며, 박창일 신부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을 되돌아 보며 북측 파트너와의 ‘신뢰’가 가장 중요했다고 회고했다.

조선가톨릭교협회 장재언 위원장과 지금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강지영 전 부위원장과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온 박 신부는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항상 서로가 신뢰하면서 약속한 것은 진짜 최선을 다해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조선카톨릭협회와 평화3000이 어려움 없이 서로 이해하고 일해왔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창립 초기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를 모토로 출범한 평화3000은 평양 장충성당 안에 콩우유공장을 건립해 콩우유 원료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대북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 왔으며, 평양시체육단 운동장 인조잔디 리모델링 사업 등 다양한 협력사업을 전개해왔다. 또한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함께 펼치고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연합체인 북민협(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신부는 “이명박 정부 때는 ‘안 된다, 안 된다’하면서 ‘어쩔 수 없이 승인’해줬는데, 박근혜 정부 와서는 ‘된다, 된다’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불허’한다”고 비유하고 “지금 국민들이 볼 때는 인도적 지원을 정부가 승인해주고 활발히 진행되는 줄 알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한 북한 영유아 지원사업마저도 “의약품 중심으로 몇 가지만 아주 극히 일부만 진행”되고 있고, 그나마 지원물품을 보낸 몇 단체의 모니터링을 위한 방북마저 막혀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박 신부는 “이산가족 상봉이 안됐기 때문에 방북 승인을 보류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산상봉과 인도적 지원, 특히 모니터링 방북이 무슨 큰 연관이 있는지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며 “지금 파악하기로도 10여개 지원단체에서 물자 반출을 신청한 것으로 알지만 승인조차 안 난 상태”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더 큰 문제는 밀가루를 비롯한 식량은 전혀 반출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치상황과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은 계속할 수 있어야하고, 통일부나 정부에서 승인, 불허를 가지고 지원을 조정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며 “북민협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1988년 9월 건립된 평양 장충성당의 25주년 기념 미사를 위해 방북을 추진 중인 박 신부는 “9월에 감사미사 봉헌을 위해 방북하려했는데 정부에서 연기해 달라고 해 11월 방북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며 “11월에 장충성당에 가게 되면 25주년 감사미사를 북쪽 신자들과 남쪽 신자들과 함께하고 돼지도 몇 마리 잡고 술도 나누면서 남북이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특히 종북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나쁜 악의 단어”라며 “우리 사회가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정부와 언론이 말하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다”며 “우리 남한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어다보듯 다 아는 듯이 하는 국민들도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4일 오후 서울 중구 체부동 평화3000 사무실에서 박창일 신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인조잔디구장,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걸로 만들어줬다”

   
▲ 가장 최근 방북한 지난해 11월 18일 평양 장충성당에서 북측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오른쪽 세 번째가 박창일 신부. [자료사진 - 평화3000]

   
▲ 2008년 직항편으로 3 차례 대규모 평양.백두산 방문단이 방북했다. [자료사진 - 평화3000]

□ 통일뉴스 : 평화3000 창립 10주년을 축하한다. 10년 전 어떤 계기로 출범하게 됐나?

■ 박창일 운영위원장 : 통일운동과 대북 인도적 지원운동을 해오다가 좀 더 안정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하고 통일운동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몇 명이 모여 고민하다가 새로 법인을 만들자고 시작한 것이 10년 전이다.

□ 10년 전 창립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비교해 본다면 어떻게 평가하나?

■ 비교가 안 된다. 그때만 하더라도 정부에서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많이 할 때였고, 남북관계가 많이 개선돼 있어 사회적 분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쉬웠다. 후원회원들도 많이 동의하고 가입했고, 인도적 대북지원을 한다고 얘기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대부분 고개를 돌리고 “그놈들 왜 도와줘”라면서 ‘종북’이라는 프레임까지 들어온다. 그런 차이가 있다. 수고한다는 인사를 받다가 10년 만에 빨갱이와 종북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간략히 요약한다면?

■ 첫 번째, 대북 인도적 지원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평양 장충성당 내에 콩우유공장과 평양에 두부공장 2개를 남북이 함께 만들었다. 땅과 건물은 북에서 제공하고, 설비와 원료는 남에서 대는 합동사업이다.

인도적 지원으로 못자리용 비닐과 비료를 보내는 등 농업 지원사업도 많이 했고 북에 수해가 생기거나 하면 긴급 수해지원도 했다.

인도적 지원 외에도 교류협력사업도 했는데 큰 것이 체육교류였다. 2007년에 평양시체육단축구장 현대화사업을 했다. 남북합동사업으로 평양시체육단 소속 축구장을 인조잔디구장으로 리모델링해 현대화했다. 모든 공사는 북에서 책임지고 남쪽에서는 인조잔디와 우레탄, 페인트 등을 지원했다.

체육교류 중에서도 북에서는 ‘짧은 주로’라고 하는 ‘쇼트 트랙’ 용품지원이 기억에 남는다.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스케이트 날이 칼과 같아서 선수들이 베이는 것을 방지하는 특수 선수복 착용이 필수인데, 일본에서만 제작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에서 제작해 소트 트랙 스케이트복을 보내줘서 북한 선수들이 이태리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장충성당과의 교류사업도 꾸준히 진행했다. 남쪽에서 올라 간 신부와 수녀, 신자들이 북측 신자들과 함께 민족통일과 화해를 위해 미사를 봉헌해 왔다.

□ 다양한 지원사업을 해왔는데 보람도 많을 것 같다.

■ 특별히 2007년도 축구장을 만들어주고 난 다음에 북측 사람들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북은 천연잔디에서 연습을 할 수 없다. 눈이 오고 장마철이 닥치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인조잔디였다.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걸로 만들어줬다. 1년 12달 연습할 수 있게 돼, 북한이 2010년 월드컵에서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 진출이 확정됐을 때 북측 여러 명으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 축구장에서 북 선수들이 계속 연습해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장웅 북측 IOC 위원장이 내년도 인천에서 열리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남측 관계자를 만났을 때 우리가 만들어준 축구장 이야기를 또 했다고 들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잔디구장을 하나 더 만들어줄 의향이 있다. 비정치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서도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 승인해주기 바란다. 순수한 체육교류이고, 지원한 자재들도 한번 본드를 붙여 설치해놓으면 전용될 우려도 전혀 없다.

   
▲ 평양시체육단 축구장 인조잔디 리모델링 작업 모습. [자료사진 - 평화3000]

   
▲ 성공적으로 리모델링을 마친 축구장 전경. [자료사진 - 평화3000]

□ 10년간의 남북교류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을 것 같다. 한 가지만 소개한다면?

■ 축구장 현대화사업을 할 때인데, 개성에서 여러 번 만나서 인조잔디 문제를 놓고 논의했다. 나름대로 좋은 질의 잔디 견본을 가지고 개성에 가서 보여줬다. 북측 김호 체육단 단장이 인조잔디 거의 전문가인데 오케이해서 물자를 보냈다.

인천항에서 남포항으로 보낸 컨테이너를 찾아서 운동장까지 실어다 놓았는데, 그 사이에 김호 단장이 더 좋다는 또 다른 잔디를 발견해냈다. 그래서 더 좋은 잔디를 보내달라는 거다.

다시 협상을 해서 보냈던 잔디를 남포항을 통해 되돌려 보내게 하고 호주에서 새 잔디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우리의 예산이 다시 지원해줄 정도는 안 되니까. 그래서 다시 돌려받고 새 잔디를 보내줬다.

강지영 조선카톨릭교협회 부위원장이 사업하면서 물자를 남쪽에 되돌려 보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그만큼 잔디구장을 잘 만들고 싶었던 거다. 김호 단장이 축구장에 대해 대단히 열정적인 사람이라 하나하나 꼼꼼하게 해서 잘 만들어진 거다.

우리 기술자 3명이 한 달 동안 체류하면서 잔디구장을 만들었다. 그것도 원래 4명이 가야하는데 3명이 갔다. 한 명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부인이 갈려면 이혼하자고 해서 결국 못 갔다. 3명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해 좋은 잔디구장을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평양으로 가는 직항기를 타고 3번에 걸쳐 대규모 방북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다 다르더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평양에서 비행기 타고 백두산 가서 천지에 올라갔다. 날씨가 너무 깨끗하고 맑아 다들 환호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구름도 있다가 걷혔다가 하는 걸 봐야하는데 못 봤다고 푸념하더라.

또 어떤 분들은 북한 사람들을 보면서 동원한 사람들 아닌가 묻더라. 그래서 “선생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북쪽 사람들이 우리가 뭐 대단하다고 동원까지 했겠습니까”라고 설명해줬다.

정말 좀 더 열리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데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남북관계 발전도 어렵다.

북도 마찬가지다. 오래전에 농장에 갔을 때 농부들을 만났는데 6.15전이니까 그 사람들도 우리를 굉장히 경계했다. 남쪽 사람을 처음 만난데다가 살아온 삶이 있으니까 굉장히 경계했다. 그러나 6.15이후 다시 갔는데 많이 변했더라. 오픈된 거다.

남과 북이 당국이나 정치권은 어떻든 민간인들은 서로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교류에 어려움 겪으면서 해외사업을 많이 해왔다”

   
▲ 라오스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내과의 권선옥 이사. [자료사진 - 평화3000]

   
▲ 베트남 까마우성에 '기적의 다리'를 완공한 뒤 기념촬영. [자료사진 - 평화3000]

□ 남북간 민간교류가 전면 중단된 이후 평화3000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것 같다.

■ 2008년 이명박 정권 들어섰을 때도 대규모 방북을 했다. 직항기 편으로 서울에서 평양으로 갔고, 다시 백두산까지 가서 베개봉호텔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5.24조치 직전까지 콩우유공장에 원료를 보냈고, 보낸 물자를 확인하기 위해서 모니터링 방북도 다녀왔다.

이후에 2011년에는 수해지원 때문에 밀가루를 보내고 방북을 한 번 했고, 2012년에도 11월에 평양 장충성당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념하는 위령성월을 맞아 남북 신자들이 함께 미사하고 기도했다.

그렇지만 대체로 5.24조치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은 거의 할 수 없었고, 수해지원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평화3000은 대북지원 외에도 동남아 등 해외에서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소개해달라.

■ 원래 평화3000을 만들 때 주대상은 북한 어린이 지원이었지만, 제3세계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처음 만들 때부터의 목표에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부터 남북교류에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해외사업을 많이 해왔다.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세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

베트남에는 집 없는 사람들이 많고 다 쓰러져가는 나뭇잎 집도 많다. 무주택자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233채의 집을 지어서 무상공급했고, 메콩강 하류지역에 다리도 2개 놓아줬다. 수천명의 학생들이 등교하는데 두 시간을 돌아가야 했는데 10분 만에 갈 수 있게 됐고, 병원에 가거나 노인들이 다니시기에도 굉장히 도움이 됐다고 감사해 한다.

베트남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은 어려운 곳이 많아 초등학교를 3채 지어줬고, 백내장 환자 30명의 수술비를 전액 지원했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의 영양보충을 위해 분유 등을 계속 지원하고 있고, 의료봉사 3회, 치과봉사 3회를 통해 총 4,500명 정도에게 의료혜택을 줬다.

라오스는 유엔에서 정한 최빈국이고 루앙프라방 지역은 특히 힘든 곳으로 춘궁기에 긴급 식량지원도 했고, 뿡빠오 마을회관과 수도취수시설을 지원했다. 르앙프라방 지역 보건소 3곳을 리모델링 해줬고, 보건소에 조산용 의료장비 7식을 비롯해 기초약품 등을 지원했으며 의료봉사를 2회 가서 1,180명을 진료했다.

루앙프라방 북부국립농림대학에 버섯재배 시설을 리모델링해 주고 버섯종균 배양장비 1식도 기증했다.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대학에서 버섯종균을 배양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싸게 공급해 주민들이 고부가가치를 지닌 버섯을 키워서 시장에 비싸게 팔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이다.

필리핀에도 리잘주에서 도시빈민 어린이 75명을 위해 공부방을 만들어 학습지도도 하고 무료급식도 지원하고 있다. 학습지도 교사들의 인건비를 우리가 지원하고, 치과봉사를 1회 가서 251명을 진료했으며, 빈민 어린이를 지원하고 있다.

□ 상당히 다양한 제3세계 어린이 지원사업을 펴고 있는데, 재정 조달은 어떻게 하나?

■ 회원들이 다 감당하고, 필요할 때는 1년에 세 번 정도 대규모 모금사업을 한다. 베트남과 라오스, 필리핀 등을 지원해오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지원사업 모금운동은 잘 안 된다. 특히 제3세계 어린이 지원사업, 학교와 사랑의집 지어주는 사업이 반응이 괜찮다.

□ 가톨릭 교회에서도 협조해주나?

■ 평화3000은 일반 단체와 같은 NGO(비정부조직)다. 회원에는 가톨릭 신자도 있지만 아닌 분들도 많다. 운영위원 중에는 목사님도 있고, 회원 중에는 스님도 있다. 내가 신부이다 보니까 혹시 종교조직이 아닌가 궁금해 하기도 하지만 운영이나 모든 면에서 가톨릭과 관계없이 NGO로 활동하고 있다.

□ 북한과 동남아 외에도 활동 영역이 있나?

■ 국내사업도 하고 있다. 강원도 정선과 전북 고창, 서울 두 곳 등 네 곳의 비인가 공부방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비인가 공부방은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어 굉장히 어려워 매월 운영비를 지원한다.

그 외에 장학사업을 하고 있는데, 해외에는 베트남 초.중.고생 20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고, 라오스 수파누봉 대학교 대학생 10명에게 연간 학비와 기숙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평화통일 분야에서 일하는 활동가나 학생 10명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북 지원단체들 관계,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다”

   
▲ 평양 장충성당 안에 콩우유공장을 지어 준공식을 가졌다. [자료사진 - 평화3000]

   
▲ 평화3000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도라산 평화기행'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등 평화통일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료사진 - 평화3000]

□ 인도적 대북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지원단체들이 활로를 공동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 5.24조치 이후 모든 인도적 지원이 급감했을 때 북민협(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중심으로 다시 회원단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전에 인도적 지원단체들 중에서 큰 단체들을 중심으로 10여개 단체 관계자들이 모여서 ‘대화와 소통’이라는 네트워크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서 북민협 내에서 쉽게 접근하거나 토론할 수 없는 내용들을 모여서 계속 논의하고 토의하면서 인도적 지원의 활성화,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 평화3000이 북민협 정책위원장 단체이자 부회장 단체다. 정책위를 활성화시켜서 작년과 올해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단체들을 결집시키고 정보를 공유한다. 특별히 올해에는 몇 년간 대북지원을 못하다보니까 실무능력이 떨어진다. 물자 반출, 방북 모니터링을 어떻게 하는지 실무감각이 많이 떨어져 북민협 차원에서 실무자들과 함께 실무교육도 했다.

또한 각 개별단체들은 통일부와 접촉하면서 물자반출 문제 등을 가지고 일일이 대응하기 힘들다. 혹시 통일부에 세게 이야기했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북민협 차원에서 통일부랑 대화와 의논도 하고, 전 회원 단체들에게 회의를 통해 알려주고 설명해주고 있다.

큰 변화 중 하나는 이명박 정부 전까지는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서로가 경쟁하다시피 했다. 또 서로가 정보 공유를 전혀 안했다. 다른 단체들의 사업에 대해 대충은 알지만 자세히 몰랐다. 어려움이 닥치니까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얼굴만 알았는데 많은 회의, 특히 정책위 회의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니까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하는 일과 정보도 교환하고 있다. 북의 움직임이라든지 이런 것도 서로 검토하고 공유할 수 있어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다.

□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인도적 대북지원 현황은 어떤가?

■ 이명박 정부 때는 “안 된다, 안 된다”하면서 “어쩔 수 없이 승인”해줬는데, 박근혜 정부 와서는 “된다, 된다”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불허”한다는 것이다. 지금 국민들이 볼 때는 인도적 지원을 정부가 승인해주고 활발히 진행되는 줄 알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영유아 지원은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이야기했지만 실질적으로 영유아 지원도 의약품 중심으로 몇 가지만 아주 극히 일부만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두 단체만 지원물자를 보내고 모니터링 방북을 다녀왔다. 4단체가 승인이 나서 지원물자를 보냈지만 모니터링 방북이 보류되고 있는 상태다.

물자를 보냈으면 모니터링을 강조하는 정부가 승인하는 것이 당연하고, 단체 입장에서도 정확하게 물자가 갔는지 확인하고 그 결과를 회원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안됐기 때문에 방북 승인을 보류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산상봉과 인도적 지원, 특히 모니터링 방북이 무슨 큰 연관이 있는지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 파악하기로도 10여개 지원단체에서 물자 반출을 신청한 것으로 알지만 승인조차 안 난 상태이다.

특히 더 큰 문제는 밀가루를 비롯한 식량은 전혀 반출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5.24조치 이후 이명박 정부 때도 수해지원 등으로 밀가루를 지원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밀가루 등 식량은 전혀 승인해주지 않고 있다.

모니터링이 힘들다는 이유를 대고 있는데, 사실 민간단체가 보내는 것은 100톤, 200톤, 많아야 1,000톤 수준으로 대규모가 아니다. 영유아를 위해 의약품은 되고 밀가루는 안 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아이들이 먼저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것은 승인 안 해주고 기초 의약품만 승인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통일부측도 사실은 이 내용을 잘 알고 있다. 밀가루 지원도 이명박 정부에서 했다는 것도 실무자들은 다 알고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청와대나 관계부처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 같다.

□ 이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나 돌파구가 있나?

■ 북민협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다. 정치상황과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은 계속할 수 있어야하고, 통일부나 정부에서 승인, 불허를 가지고 지원을 조정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돈이 한 푼이라도 들어갔으면 정부의 관여를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지만, 정부 돈과 전혀 관계없이 회원들이 마음을 모은 것이다. 왜 정부가 정치적 상황, 특히 이산상봉과 연계하는지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특별법을 만들어서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주의 지원은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 일반적으로 법 제정을 통한 문제 해결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 일단은 인도적 지원단체들이 힘든 상태인 것은 사실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잘한다는 여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일반 국민들은 대북 인도적 지원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개별단체들의 노력을 통해 인도적 지원에 관해 여론화시켜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약속한 말은 남쭉, 북쪽 다 철저히 지켰다”

   
▲ 2005년 10월 제7차 방북 당시 평양순안공항에 마중나온 강지영 사무국장(오른쪽)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 평화3000]

   
▲ 2008년 9월 제26차 방북 당시 신명자 평화3000 이사장(왼쪽 두 번째)과 장재언 조선카톨릭교협회 위원장(오른쪽 두번째) 등이 건배하고 있다. [자료사진 - 평화3000]

□ 북측과 교류 과정에서 북측 인사들과도 많이 만나왔을 텐데, 남북교류가 장기간 차단된 이후 최근 북측의 기류는 어떤가?

■ 지난 5년간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이 위축돼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을 포함한 북쪽 관계자들도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새롭게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면 북쪽에서도 가급적 남쪽 인도단체와 교류단체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많이 이해해주려고 하는 기류가 있는 것 같다.

□ 조선카톨릭교협회와 오랫동안 파트너쉽을 가져온 것으로 안다.

■ 1988년 6월에 조선천주교인협의회가 생기고, 평양 장충성당이 그해 9월에 건립됐다. 그래서 장재언 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았고, 지금 조평통 서기국장인 강지영이 서기국장이었다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25년동안 천주교인들 모임이 평양에서 쭉 진행돼 왔고, 올해가 장충성당 설립 25주년이다. 9월에 감사미사 봉헌을 위해 방북하려했는데 정부에서 연기해 달라고 해 11월 방북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11월에 장충성당에 가게 되면 25주년 감사미사를 북쪽 신자들과 남쪽 신자들과 함께하고 돼지도 몇 마리 잡고 술도 나누면서 남북이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다.

□ 그간 만나온 장재언 위원장과 강지영 부위원장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면?

■ 강지영 서기국장은 굉장히 샤프하고 명확한 사람이다. 기억력도 뛰어나다. 또한 성실하고 신뢰를 중시한다. 우리들이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항상 서로가 신뢰하면서 약속한 것은 진짜 최선을 다해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조선카톨릭협회와 평화3000이 어려움 없이 서로 이해하고 일해왔던 것 같다.

장재언 위원장은 굉장히 폭이 큰 사람이다. 이해심이 많고 남쪽 사정도 잘 안다. 항상 가능하면 북측 입장보다는 남쯕 단체를 배려하려 하고 아래 실무자들에게도 남측을 배려하도록 하는 폭넓은 위원장 스타일이다. 제일 큰 것은 신뢰인 것 같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약속한 말은 남쭉, 북쪽 다 철저히 지켰다. 그런 신뢰가 있어서 10년간 해오지 않았나 싶다.

□ 보통 신부님들을 보면 성당을 옮겨다니는 걸로 아는데 10년간 같은 단체를 맡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 나는 수도회 소속 신부다. 물론 본당 신부도 했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있고 난 다음 본격적으로 사회사목 담당으로 발령받았다. 누군가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 사업을 전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회사목으로 발령받아 그 일환으로 평화3000을 전담할 수 있었다.

북 같은 경우 대남쪽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한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인도적 지원 단체들은 10년 이상 넘은 사람들도 제법 있지만 천주교 내에서는 많지 않다. 교구신부님들이 민족화해위원회에 많이 있지만 발령이 나면 다른 신부님이 맡게 돼 연속성이 없다. 저는 교구신부가 아니고 수도회 소속이기 때문에 수도회에서 발령을 받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이전에도 8년간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통일위원장을 하면서 북이랑 많이 접촉했다.

   
▲ 박창일 신부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를 모토로 삼고 있다. 스스로도 신부임을 알리는 어떤 의상도 착용하지 않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평화3000이나 박 신부님를 보면 다른 단체들과는 조금 다른 운영방식이 엿보인다. 단체 운영에 관한 소신 같은 것이 있나?

■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가 시작할 때 모토였다. 소위 ‘운동진영’에서 회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일반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회원들 거의 모두가 운동권 이었던 사람이 아니고 진짜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우리의 굉장한 장점인 것 같다.

많은 단체들이 운동권 내에서 활동하는데 폭이 좁다. 평범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를 추구한다. 그런 측면에서 유연성 있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우리 단체의 장점인 것 같다.

운영진이나 회원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들도 있지만 스님이나 목사, 심지어 무신론자까지 있고, 종교에 치우침 없이,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천주교 단체라면 천주교 내에서 간섭이 있을 텐데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구조이다.

□ 우리 국민들과 네티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특별히 젊은 친구들, 20대가 걱정 된다. 그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교육과정을 통해 주입을 많이 받은 편이고, 스스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언론과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것을 통해 대북인식이 부정적인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 개인적인 성향도 자유롭고 젊은 시절의 특성도 있겠지만 젊은 세대의 대북 인식이 나빠지고 관심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

지난 대선 때도 이야기가 좀 나왔지만 대한민국의 경제성장 동력이 거의 떨어졌다. 도약 할 수 있는 큰 카드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이다. 좀 더 남이든 북이든 윈윈(win-win)하고 상생할 수 있는 경제협력 문제에 대해서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는다면 대북인식도 나아질 것이고, 통일문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소위 우리사회 보수라고 하는 집단들은 북 없이는 못사는 것 같다. 정치집단과 사회집단도 마찬가지다. 북 내부는 모르지만 남쪽 내부에서는 공생관계가 돼 버린 것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북에만 반대하면 정의인 것처럼 돼 있는 것은 위험한 거다. 이성적, 합리적이 아니라 ‘종북’으로만 몰면 자기들은 합리화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특히 종북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나쁜 악의 단어다. 종북 낙인을 찍어 ‘인간 말종’화를 시킨다. 예수는 형제와 이웃은 물론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했는데 인간 말종으로 만들어 우리 공동체에서 완전히 배제시킨다.

우리 사회가 이를 극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약자 장애인, 노인, 외국인 노동자도 모두 다 안고 가야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정치권에서 사용한다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해 사라져야 할 용어가 종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언론 환경도 굉장히 좋지 않다. 소위 보수언론도 모든 것을 다 북으로 연관시켜 보도하고 근거 없는 보도도 너무 많다. 북쪽이 아니라 여기 사람을 가지고 그렇게 보도했다면 신문사가 문닫을 정도로 심하다. 민형사 소송에 치일 거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정정보도나 형사소송이나 손해배상 들어오는 것 없느니까 좀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근거없이 쏟아내고 있고, 국민들은 큰 언론사 보도니까 사시(斜視)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5천만이 다 대북 전문가들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도 북한에 대해 줄줄 이야기한다. 사실과 진실이 아닌 경우가 굉장히 많다. 열린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가지고 북한에 관한 상을 다 만들어 버린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봐야하고 정부와 언론이 말하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다. 국민 스스로도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대한민국을 다 알 수 있나. 특히 권력중심이나 지방은 어떤지 잘 모른다. 우리 남한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어다보듯 다 아는 듯이 하는 국민들도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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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2)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3-10-08 22:48:43
운동과 평범의 속내를 잠시 생각하게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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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열 (김병열) 2013-10-08 21:34:20
납북의 상위점은 북쪽은 정권의 주장이 있지만 민중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남쪽은 정권의 주장에 대하여 민중의 반론과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있다 북쪽의 시민은 권력에 절대 복종이지만 남쪽의 시민은 반론 저항한다 북쪽은 남쪽의 시민단체의 원조를 받는 정도로 경제적 곤궁의 상태이지만 북쪽의 주장은 이세상에 부러워할 일이 없다고 선전한다 종북이라는말은 북쪽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멍텅구리를 표현하는 말이다 남쪽의 시민이 북쪽의 실정을 모르는 것과 같이 북쪽의 시민은 남쪽의 실정을 모른다 남북정권의 책임이다 해결의 길은 남북민중의 자유왕래의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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