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대규모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아울러 숭례문에서 세종로 방향으로 국군 시가행진이 있었다. 국가의 주요 기념일에 군사열병식을 진행하는 것은 조선인민군의 특징인데 우리 군도 국군의 날을 맞이해 5년마다 시가행진을 진행해왔다.

▲ 성남 서울공항의 국군의 날 기념식 사전행사. [사진-통일뉴스 자료사진]

제식은 군대규율과 정신력을 가늠하는 잣대

조선인민군의 열병식도 그렇지만 우리 군의 시가행진에서도, 핵심은 군인이다. 군인이 시가행진의 핵심대오가 되는 이유는 전쟁에서 군인이 수행하는 기능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입각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쟁은 단순히 컴퓨터 게임 상의 쏘고 맞추는 경기가 아니다. 전쟁은 인간의 이성과 인내성으로 지탱할 수 없을만큼의 참혹함과 쓰라린 경험, 즉 종래 경험할 수 없었던 감성의 폭풍을 안겨준다. 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들이 상당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도 전쟁행위의 잔혹함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전쟁, 전쟁행위는 컴퓨터 게임과는 달리 상당히 많은 면에서 지휘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휘관의 통제에 정확히 따르는 컴퓨터 게임의 유닛과 달리, 전장에서 군인은 이성과 감성을 가진 인격체로서, 극한 상황에서 인내심을 시험받게 된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정신력의 폭풍이 일선의 보병보다 지휘관으로 갈수록 이성의 영역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데 있다. 일선의 보병들은 눈앞의 작전대상을 공략하는데 있어 일신의 생존이 절체절명이 과제이므로 복잡한 판단력보다 눈앞의 전황에 따라 경험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상급지휘관으로 올라갈수록, 군사작전의 안목과 범위가 넓어지고 작전의 안목이 넓어지는 만큼 자신의 판단에 이성이 개입할 여지는 갈수록 커진다. 즉, 하나하나의 결정에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일선의 장병부터 지휘관에 이르기까지 정신력은 전쟁수행의 매우 중요한 요소로 제기된다. 특히 최고지휘관의 경우, 드팀없는 의지력을 갖춘 최고지휘관의 정신력이 전쟁의 명운을 좌우한다. 지휘관의 지휘능력과 부대의 전투수행능력은 정신력과 더불어 이를 집체화할 수 있는 규율성, 조직력으로 나타난다. 일사분란하고 고도로 분업화되어 있으면서 협동화되어 있는, 우리말로 사기가 충천하며 전우애가 넘치는 부대를 조직해내는 것이 지휘관의 근본역할이다.

전쟁은 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수행한다. 이는 20세기의 철 지난 명제가 아니라 21세기에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지난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변변치않은 무장력의 탈레반, 게릴라들이 세계최대 무장을 갖춘 미군에게 승리를 거둔 사례는 명확하다. 전쟁수행능력은 해당민족의 일체화되는 민족성과 문화, 군인들의 전투경험이 우선하며 군사무기는 다분히 그 하위항목에서 중요도를 갖는다.

그런 측면에서 군사퍼레이드에서 보병부대의 행진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전쟁을 수행하는 장병들의 정신력과 규율을 내외에 공개, 정신적 군사력을 시위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제식은 곧 전투력이다.

그런 면에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제식은 곧 전투력이다.”라고 하며 프랑스군의 제식훈련을 중시하였다. 제식훈련이란 사전적인 의미는 '집단적이면서도 통일성이 필요한 군인에게 절도와 규율을 익히게 하는 훈련'이며, '군인 기본정신의 함양과 절도 있는 단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행하는 훈련의 일종'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는 곧 앞으로 가, 차렷, 좌향 좌, 등의 구령에 따른 행동을 수행하는 훈련을 말한다. 제식은 곧 규율과 정신력의 외화이므로 밀집대형을 이루던 19세기에도 보병의 기본은 제식이었지만 산개대형으로 전진하는 21세기의 보병에도 제식은 곧 전투력이다.

군대에서 제식이 중요한 이유는 군대의 (외형상 드러나지 않는) 핵심요건인 정신력과 규율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클라우제비츠는 부대의 전쟁경험이 부대의 전투수행능력을 크게 신장시킨다고 하였으나 남북한의 군대가 실제 교전경험을 갖춘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군대의 전쟁수행능력은 정신력과 규율로 가늠될 수 있다.

군대의 규율은 그야말로 비참한 감정의 폭풍이 불어오는 전쟁에서 각 부대의 전쟁수행능력을 원만히 갖추게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물론 규율의 목적은 단지 작전을 아래로 강요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도 작전이 관철되게 하는데 있다. 명령이 관철되는데 있어서는 상급지휘관과 하급병사가 견해의 일치성과 입장의 동일함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지휘관과 병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다면 그런 부대의 전쟁수행능력은 전투가 격렬해지면 격렬해질수록 상대에 비해 더욱 경쟁력을 띠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각 부대들은 예외없이 제식훈련을 중시한다. 우리 군도 마찬가지로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는 것과 더불어 제식훈련으로 신병훈련을 시작한다. 이는 전투기술에 앞서 군인으로서의 조직력과 규율성을 익히게 하는 훈련이다. 다만 이런 훈련은 상급지휘관과 아래 사병간의 튼튼한 동질감에 의거할 때 비로소 빛이 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징병제에 의거하고 있는 우리 군은 지휘관과 사병의 단결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상급지휘관은 사회적 경험이 협소한 직업군인인데 반해 하급병사는 18개월 후면 사회에 복귀하는 징집사병일 경우 부대의 양적규모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부대의 단결력과 전투력을 높이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국군 시가행진과 조선인민군 열병식

그런 측면에서 우리 군의 시가행진은 군대의 전투력을 과시한다는 측면보다 시민과 군인이 하나로 어우러짐을 강조한 성격이 크다.

첫째로, 국군의 시가행진에서는 군사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장병들 보다 사관학교생도들과 특수부대원들이 훨씬 더 주목을 받았다. 이는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이들이 모두 직업군인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명령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 명령을 내리는 입장에 서 있는 장교와 하사관들이다. 실제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사병들 보다 명령을 내리는 장교들이 시가행진의 주목을 받은 것은 군의 사기를 높이는데 장교들이 적격이라는 권위주의 사고의 발로일 수 있다.

더구나 이들은 시가행진 과정에서 제식행진에 맞지 않게 무질서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보수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조선일보>는 10월 3일자 기사에서 “건군 65주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시내 가두행진 등에서 가두 행진 행렬이 활처럼 휜데다 팔 높이도 제각각이어서 장병들의 모습이 정연하지 못하고 너무 흐트러졌다는 지적이 일부 예비역 장성들을 중심으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보도한 것이다.

▲ 무질서하고 흐트러졌다는 비판을 받은 국군의 제식행진 [사진-조선일보]

결국 우리 군의 시가행진은 <정예화된 선진강군>을 보여주겠다는 국방부의 의도와는 달리 부대의 제식수준을 통해 규율성, 전투력을 내비치는 제식행진의 군사적 목적보다는 시가행진을 통해 군부의 사기를 높여주고, 국민들이 군을 좀 더 가깝게 느끼게 하겠다는 정치적 목적에 치우진 행진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조선인민군의 열병식은 그야말로 제식행진에 충실하려는 의도를 확연히 읽을 수 있다. 모든 인민군 병사들이 큰 걸음으로 내딛는 사회주의권의 힘든 제식동작을 앞뒤, 좌우 심지어 대각선 열까지 정확히 맞추면서도 시선은 한결같이 대각선 우측방향으로 고정한 채 행진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120명 가량의 중대인원을 하나의 집단으로 하는 경우, 나아가 1만명 이상의 군인들이 자발적 노력없이 오로지 강압과 통제만으로 대각선 열과 시선까지 맞춰 행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식을 전문으로 하는 의장대는 제식수준이 매우 높지만 이들이 몇 천명, 몇 만명 단위의 제식훈련을 동일한 수준으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군의 시가행진은 장병들이 웃으며 행진하며 여성연예인들이 꽃다발을 걸어주는 등 축제의 모습이 강하다. 이는 북한군 지도부에 부대의 전투력을 과시하는 군사적 측면보다 국민들에게 정치적 측면을 내세운 대 시민용 시가행진이다.

조선인민군의 시가행진은 군인들 그 누구도 웃지 않는다. 모두 결연한 표정으로 지도부를 응시하며 누구라도 근처에 물 한 모금 가져다 줄 수 있는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부대의 전투력을 과시하는 제식훈련의 군사적 측면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북한주민용보다는 미국과 한국군 수뇌부를 향한 메시지가 주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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