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통일전략연구협의회(회장 곽태환 교수)와 Action for One Korea(AOK) 공동주최로 법륜스님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 강연을 가졌습니다. 마침 법륜스님의 저서 『새로운 100년: 가슴을 뛰게 하는 통일이야기』를 감명깊게 읽었던 터라, 스님이 미주동포들에게 어떠한 말씀을 들려주실지 기대되었는데, 많은 참석자들이 감명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이번 LA강연과 ‘새로운 100년’ 저서에서 오늘날 민간 통일운동을 하고있거나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각과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따옴표 안은 법륜스님의 생각입니다. /필자 주


통일의 주도세력은 누가 되어야하나

시대사적 흐름으로 볼 때, “통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진입해 있으나 아직 통일의 주체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씀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와닿았다. 한국에는 수많은 민간통일운동 단체들이 많은데 아직 통일의 주체세력이 없다니…. 스님의 말씀은 1990년대 이후로는 경제력과 민주주의 질서 면에서 남한이 이미 우세해졌기 때문에 남이 충분히 자신감을 가지고 통일을 주도적으로 접근해나갈 수 있는데도, 남한은 그러한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법륜스님.(2013년 9월 6일, 로스앤젤레스 JJ Grand 호텔) 왼쪽 첫 번째 필자, 두 번째 통일전략연구협의 회장 곽태환 교수, 마지막 LA한인상공회의소 박치우 소장. [사진 - Action for One Korea]

“1960년대에는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 등 북한의 국력이 남한보다 강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통일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나온 반면에 남한은 소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남북한의 국력이 비슷해졌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연방제 통일론을 들고 나왔고, 남한은 연합제 통일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북한은 이전의 적화통일론에서 약간 양보했고, 남한은 통일론을 받아들이면서 북한의 통일공세에 대응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남한의 국력이 북한을 월등히 앞질렀습니다. 그래서 남한이 통일에 대해 더욱 공세적이 되었고 북한이 수세적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남한은 더욱 공세적으로 나가야 했는데 방어적인 습관에 젖어있다 보니 멈칫했고 남한의 통일운동 세력은 통일운동 보다는 비교적 소극적인 평화운동으로 돌아섰습니다. 결과적으로 남북 사이에 통일주도세력이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남한이 통일에 대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북한은 체제유지도 급급한 실정이라서 전 민족적 사명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남한의 경제력과 민주주의적 질서는 충분히 통일의 중심역할을 하는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남한 국민들이나 지도자들도 전민족의 운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민족사적 책임의식,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강연에서)

물론 북에 비해 남이 경제력과 체제의 우월성 만으로 통일의 주도세력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충분히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일단 ‘현실적’으로 판단할 때, 남한 위주의 통일, 즉 남한의 체제의 결점을 개선하여 통일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는 스님의 판단을 인정한다면, 지금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북한과 싸워 이기려는 리더십이 아니라, 남북을 아우르는 통합 리더십, 또한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개방성과 포용력일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배우는 통합리더십 - 개방성과 포용성

법륜스님은 통합은 무력이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닌, 타협과 포용에 의해 이루어져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역사에서 신라가 가야를 통합한 예를 이상적인 통합방식으로 꼽는다. 신라가 가야를 통합할 때 군사적으로 병합하지 않고 가야왕족을 받아들이고 가야불교를 수용해서 신라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신라가 가야의 지배층을 수용했다는 점은 신라의 통일전쟁에서 가야왕족인 김유신의 활약으로 알 수 있다. 병합한 나라의 귀족을 적대시하거나 2등 시민으로 차별하지 않고 통일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끔 중책을 맡겼다는 사실은 신라가 가야에 대해 매우 포용성있는 통합정책을 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더불어 후삼국 시대를 통합한 고려의 예에서 우리 역사상 대표적인 통합의 리더십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려초 통합적 리더십은 결국 태조 왕건의 리더십으로 설명할 수 있다. 궁예의 카리즈마 리더십은 점차 오만과 독선으로 흘렀고 오랜 기간 2인자로서 인내하며 때를 기다려온 왕건은 마침내 포용력있는 통합 리더십을 발휘해서 고려왕조 개국에 성공하지 않았는가. 신라의 경순왕도 왕건에게 나라를 맡기고, 후고구려와도 살벌하게 싸우던 견훤도 아들의 반란 때문에 결국 왕건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삼국을 통일한 신라,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우리 역사에서 3개의 나라를 하나로 통합한 경험을 두 차례 가졌다. 3개의 나라도 통합에 성공했는데, 현재의 남과 북 2개의 나라를 통합하지 못한다면 조상들에게 너무나 부끄러운 우리 후손들이 아닐까. [사진 - 용산국립박물관에서]

과거 역사에서 왕조가 바뀔 때 상대방의 지배층을 받아들이고 통합할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했다면 우리 시대에는 무엇을 의미할까. 상대방을 인정하고 ‘다름’과 ‘틀림’을 구별할 수 있는 열린 마인드, 상생을 존중하는 자세가 아닐까. 법륜스님은 현재와 같이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이 되면 ‘남은 북의 혁명열사릉을 모두 파헤치고, 북은 남의 국립묘지를 파헤치는 현상’이 올 것인데, 이러한 배타적인 태도로는 통일을 이룰 수도 없고 이루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는다.

사실 분단이라는 구조는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을 분단화 했다.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혼용한다.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틀린 생각, 나와는 틀린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어떠한 주장이 논리적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편인가 아닌가가 중요할 뿐이다.

한국인의 사고방식에서 나와 생각이 다른 남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고가 언제쯤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그래도 21세기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특히 다민족사회를 살아가는데 익숙한 해외동포들이 한국내 동포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 법륜스님 강연이 3시간이 넘도록 참석자들은 질문, 응답 시간까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이다. [사진 - Action for One Korea]

풀뿌리 운동의 자세 - 참여의 폭을 넓혀야

우리 역사에는 기존의 질서에 대항하여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집단이 꾸준히 있어왔으나 성공한 예는 극히 드물다. 스님은 ‘새로운 100년’ 저서에서 사회운동가들의 비타협적, 배타적 성향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운동권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참여의 폭을 좁게 만들고 사회개혁 세력을 소수로 전락시켜 결국 개혁세력이 ‘역사의 패배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개혁세력은 너무 순수성을 중시하고 결벽주의로 나가다보니 자꾸 소수로 전락하고 맙니다. 통합을 하려면 참여의 폭을 넓히는 전략을 써야 하는게 그게 잘 안됩니다. 적은 강한데 개혁세력은 자꾸 분열되어 소수정예로 나가다 보니 결국 역사의 패배자가 됩니다.”(p.151)

또한 운동가들은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대중들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여길 것이라는 오류에 자주 빠진다. 대다수 민중은 자기 생활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민생문제를 간과하면 안 된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모든 국민이 독립운동을 할 수는 없다’면서 모두가 운동가가 될 수는 없는 현실을 중시하라는 지적은 운동가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당위성의 함정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한다.

“10퍼센트 정도만 나라가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독립을 위해 뛰면서, 당장은 독립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나머지 90퍼센트의 이익을 위해서 운동을 하면 됩니다. 그 10퍼센트가 90퍼센트의 보통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면서 나라의 독립에 관심이 없으니까 저런 사람의 이익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독립운동도 집단 이기적인 운동이 됩니다. 통일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통일에 기여를 하면 됩니다.”(p.133)

문명사적 비전과 재외동포의 역할 - 향후 5~10년이 가장 중요

▲ 앞으로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의 기간이 통일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말씀. 남과 북을 보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해외동포들의 역할이 앞으로 중요할 것 같다.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명사적으로 볼 때 21세기 전반기에 통일한국이 이루어지면, 21세기 중반기에 동아시아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21세기 후반기 동아시아 시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대치 상황이 계속되면 남한은 북한 때문에 미국에 더 다가가고, 북한은 남한 때문에 중국에 더 가까이 가고, 결국 미중 패권 경쟁하에 남북은 종속변수로 전락하게 됩니다.”

“향후 5년~10년에 통일의 기반을 만들지 못하면 앞으로 분단이 100년 더 지속될 수 있습니다. 남북간의 협력과 미중간의 협력을 견인해 낸다면 통일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권 5년간 많이 후퇴한 남북관계가 앞으로 5년간 또 후퇴한다면 통일의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됩니다. 통일의 기회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 다시 한 번 비약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한국이 동아시아의 공동체의 중심이 될 기회도 놓치고, 천년의 꿈도 놓치게 됩니다.”

“남한의 보수 세력이 북한을 포용해 낼 수 있는 아량을 보일 때 우리 역사의 비약적 진전이 있을 것입니다. 보수는 민족주의적 관점을 가져야 하는데 남한 보수는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한국사회에서 혼란이 많은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해외동포가 이런 관점에서 머리를 맞대고 역사의 변화를 맞이하도록 합시다.”(강연에서)

우리 시대에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법륜스님 말대로 정말 분단이 또 다른 한 세기 이상 지속될 지도 모른다. 한국이 다시 한 번 비약할 수 있는, 어쩌면 고구려, 발해 멸망 이후 거의 천 년만에 오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튼실한 통일 역량은 현재 한국의 정치권의 힘으로는 기대할 수 없다. 자주성이 부족한 보수세력에 기대할 수도 없고 포용성과 개방성이 부족한 진보세력에도 기댈 수도 없다. 결국 이념을 뛰어넘는 풀뿌리 시민운동과 남과 북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해외동포들이 함께 통일 의지를 결집해 내고 새로운 통일 세력을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당찬 통일 비전을 세우고 이를 성숙된 정치력, 문화력으로 풀어갈 수 있는 통일세력을 키우는데 많은 국내외 동포들이 힘과 지혜와 용기를 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수정,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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