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 /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연재 : 북한의 군사무기]에 부쳐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60년을 이어 온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대립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시험으로 핵탄두 제조능력을 입증하였으며 인공위성 발사로 대륙간탄도미사일 제조능력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늘려 경제건설을 추진한다는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북한의 군사력에 대해 커다란 견해차가 있고 이것이 정부의 현실적인 대북정책 수립을 막고 있습니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미사일을 수출하는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만은 60년대에 머물고 있다는 논리로는 연평도 포격전에서 해병대가 입은 심각한 피해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군 지휘부가 연일 대북 강경발언을 일삼는 지금, 또 다시 바라지 않는 충돌이 일어난다면, 애꿎은 우리 장병들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군사적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한다면, 수많은 군인들이 무리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라도 북한의 군사력을 제대로 짚어보고 현실적인 대북 접근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정세의 필요에 의해 연재를 결심하였습니다. 필자의 논지에 부족점이 있다면 지적해주십시오. 진지한 마음으로 지적사항을 반영하겠습니다. / 필자 주

<통일뉴스>는 3월 24일, <노동신문>을 인용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3월 23일 오중흡7연대 칭호를 수여받은 인민군 제1973군부대 관하 2대대를 현지지도하였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제1973군부대가 평안남도 지역에 있는 11군단(舊 경보교도지도국·일명 '폭풍군단') 산하 특수부대로 추정된다고 분석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수부대 현지지도가 있은 3월 23일은 제임스 D. 서먼 한미연합사령관과 정승조 합참의장이 이른바 북한의 “국지도발” 시, 미군이 자동 개입해 북한의 공격지점은 물론이며 그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응징한다는 한미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한 다음 날이다.

지휘체계를 겨눈 인민군 특수부대

<통일뉴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3월 23일, 북한군 제1973부대 2대대 1중대에 쌍안경과 자동보총, 기관총을 기념으로 주고 장병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당이 동무들을 믿고 있다, 조국통일을 위한 혁명적 대사변이 도래하면 제일 먼저 적의 심장부를 찔러 인민군대의 진짜 싸움 본때, 원쑤(원수)격멸의 의지를 보여주라”고 말하며 “모든 전투원은 자기들이 타격소멸해야 할 적들의 군사대상물과 괴뢰 반동통치기관을 손금 보듯이 꿰뚫고 그 특성을 잘 알고 있어야 일단 유사시 적의 아성에 돌입해 적의 심장부에 비수를 단번에 정확히 꽂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지난 3월 23일 특수부대 현지지도에서 권총사격 자세 시범을 보이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자료사진-곽동기]

또한 <노동신문>은 이 자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날 불의에 대대지휘관들의 권총, 자동보총사격 훈련을 조직하시고 지도하시었다”면서 “전투원들은 정치사상적, 군사기술적, 육체적으로 준비되는 것과 함께 백발백중의 사격술을 소유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명중사격 묘리도 가르쳐주시었다”고 보도하였다.

이러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발언에 비추어 보건데, 북한 특수부대는 유사시 한미연합군의 핵심기지와 한국통치기관으로 돌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최단시간 내에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전략목표들을 무력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대지휘관이면 한국군의 편재로 볼 때 소령, 중령에 해당하는 계급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대대장들의 사격훈련을 불의에 단행하였다는 것은 북한 특수부대가 특수전의 전장에서 대대장과 대대지휘부까지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된다.

특수부대란 무엇인가?

특수부대는 전선의 배후에 침투하여 적진을 교란해 전선 주력부대의 전진을 수월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배후침투 습격조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전쟁에서 배후침투, 습격조는 항상 있어왔다. 우리 민족은 임진왜란을 비롯해 일제강점기의 항일투쟁 과정에서도 민중이 직접 궐기해 일본군의 배후를 습격하는 민중봉기, 유격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전을 전문화할 목적으로 군부대를 창설한 것은 미국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Operation Overload)을 지원했던 미군의 101 공수사단과 레인저부대가 특수부대의 첫 출발이라 볼 수 있다.

▲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주도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지도, 미군은 지도 왼편의 유타해변과 오마하해변에 상륙하였다. [자료사진-곽동기]

노르망디 상륙 당시 미 101 공수사단의 작전을 Mission Albany라고 했는데, 이 부대의 임무는 노르망디 상륙의 본 작전이 펼쳐지기 이전에 6928명의 공수특전단이 먼저 배후에 낙하하여 노르망디 유타해변 내륙의 4개 둑방길을 확보해 독일군의 이동을 차단하고, 독일군의 해안곡사포 진지를 사전에 파괴하며 독일군의 통신망을 파괴하고 교통요충지를 장악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101공수사단에서만 총 443대의 C-47 수송기가 노르망디를 향하였다.

그러나 전체 공수부대가 강하하기 전 특별히 선발된 길잡이(pathfinder)들이 먼저 강하해 강하지점을 표시하기로 하였지만 낙하고도인 500피트 높이에 강한 구름이 끼여 있어서 수송기들의 편대비행이 깨졌고, 결국 강하지점 표시에 실패하였다. 이 상태에서 야간에 잠입한 C-47 443대는 예상 외로 강력한 독일의 방공망에 상당한 수송기를 손실 당하게 되었으며 수많은 수송기들이 목표지점과 동떨어진 엉뚱한 지대에 낙하산을 강하하였다. 이러한 작전혼란으로 인해 101공수사단에서만 D-day 하루에 총 182명이 전사하고 501명이 실종처리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당시 공수부대가 정확한 강습지점을 잃고 여기저기에 공수부대를 산개한 것은 오히려 독일군으로 하여금 낙하범위가 워낙 광범위해 미군의 공습작전 의도를 파악할 수 없게 해 독일군의 대응이 늦어지는 효과를 야기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후에서 지원했던 미 101공수사단. [자료사진-곽동기]

한편, 레인저부대는 노르망디의 유타와 오마하해변 사이의 프앙테뒤오크(Pointe du Hoc) 해안요새의 해안포를 파괴하는 임무를 맡았다. 레인저부대는 이틀간의 전투에 부대원의 60%가 사살당하지만 해안포를 파괴하는 임무를 완수해 이후 특수부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결과적으로 유타해변은 101공수사단과 레인저부대 등의 배후교란 활동으로 인해 2만3천250명의 미군장병들이 큰 무리 없이 상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총 3만4천500명이 상륙한 오마하해변에서 5000여명의 미군이 몰살당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후 각국은 적극적인 배후습격으로 주력부대의 작전을 원활하게 하는 특수부대의 활동에 주목하게 되고 이른바 특수부대들을 창설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특수부대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임무는 노르망디와 같이 전면전의 상황에서 주력부대의 행보를 원활하게 보조해주는 배후타격의 역할이다. 수십만 대군이 움직이는 군사작전에서는 이를 보조하는 특수부대의 활동도 사단병력 단위로 움직이게 된다.

두 번째 임무는 전면전의 상황이 아닌 평시 조건에서, 적 요인을 암살하고 정보를 탈취하며 배후를 습격하기 위해 분대 규모로 구성된 특수작전이 있을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70년대,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으며 이후 영화화되었던 북파공작원 “실미도”이다.

북한군 특수부대, 양적으로 세계 최대

<서울경제>는 2011년 2월 8일,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원유철 국방위원장 등 여야 국방위원 일부와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 북한군의 특수부대 전력이 20만명에 달하며 이 중 특수작전부대와 경보병이 각각 6만명과 14만명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하였다. 샤프 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북한 특수부대가 매우 위협적인 만큼 대비책을 마련 중”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특수부대 20만명은 양적으로 봤을 때, 평시 북한군 전력의 15%에 해당되며, 대략 20개가량의 보병전투여단 규모로 세계최대 규모이다. 이는 북한이 전쟁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특수부대의 전략작전을 동시에 20개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 군의 특수부대가 전체 1만명 수준임을 볼 때 북한군의 20만명은 상당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국방부도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특수전 병력이 20만명 규모이며 이들은 땅굴, AN-2기 등을 이용해 우리의 후방 지역으로 침투해 주요 목표 타격, 요인 암살, 후방 교란 등의 배합작전을 수행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20만명에 달하는 북한군 특수부대가 “실미도”에 나온 북파공작원들처럼 평시 습격전에 투입되어 국방백서에 적힌 대로 요인 암살, 내지는 후방교란을 수행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일례로 북한군이 요인암살, 후방교란을 목적으로 휴전선을 넘은 것은 1968년 김신조부대의 1.21 사건 이후 전무하였다. 또한 지난 60년간 휴전선 이남에서 북한군의 습격과 테러에 의해 목숨을 잃은 정부요인은 아무도 없다.

지난 역사가 이러한데 북한이 요인 암살을 위해 20만명의 특수부대를 구성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당국이 북한의 이른바 “국지도발”, 또는 무장공비의 남침이라는 환상을 유포하는 것은 남북통일에 대한 거리감을 조성하고 진보진영을 탄압해 독재정권의 수명을 늘리려는 불순한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오히려 평상시의 요인암살, 정보취득 등의 목적으로 휴전선을 넘는 행위는 그 존재감이 확연히 드러난 남측 북파공작원들로 볼 수 있다. 이들이 북파공작 시에 각종 테러를 단행하였음은 북파공작원들의 실제 증언으로 생생히 드러나고 있다.

▲ 국가유공자 대우를 요구하며 시내에서 격렬시위를 벌인 북파공작원(HID) 소속회원들 [자료사진-곽동기]

▲ 이들의 북파공작 증언은 냉전시기 수많은 공작원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북한에 잠입했던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자료사진-곽동기]

북한군 특수부대는 그 규모가 20만명에 달하는 바, “실미도”에 나올 법한 북파공작원들의 테러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부대가 아니라 노르망디 작전에 투입된 미 101공수사단과 같이 주력부대의 전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배후전선을 형성하는 부대라 보아야 한다.

결국 북한 특수부대는 소규모의 요인암살, 테러가 아니라 한반도 유사시 부대단위로 기동하는 적극적인 배후작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발언에서 특수부대의 작전을 “조국통일을 위한 혁명적 대사변”으로 특화지은 데서 드러난다.

북한 특수부대는 이 “혁명적 대사변”을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1963년 2월 6일, 김일성 주석은 군인들이 정치사상적으로, 육체적으로 더욱 단련하고 군 장비의 현대화와 진지의 요새화 등 4대 군사노선을 원만히 달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일당백”의 구호를 제시하였다고 한다. 북한군 내에서 누구보다 “일당백”의 기준으로 훈련받는 집단이 바로 북한군 특수부대이다.

특수부대원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3월 23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전투원들이 익측과 후방이 없는 적구(적 지역)에서 싸워야 하는 만큼 지형학 훈련을 실속 있게 진행하는 것과 함께 백발백중의 사격술과 무쇠 같은 체력을 소유한 일당백의 싸움꾼들로 준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어, <통일뉴스>는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군부대에서 자체로 연구제작한 전투기술기재들을 보아주었다”면서 “최첨단을 돌파할 데 대한 당의 사상을 받들고 모든 군사정치사업을 높은 수준에서 설계하고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혁신하고 비약하는 군부대일군들의 진취적인 투쟁기풍을 치하하시였다”고 인용 보도하였다.

이러한 기사내용을 통해 볼 때, 북한당국이 특수부대원으로서 요구하는 능력은 정치사상적으로 당을 따를 것과 더불어 군사기술적으로는 지형지물을 훤히 꿰뚫을 수 있는 지형학 훈련과 백발백중의 사격술, 그리고 무쇠 같은 체력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형학 훈련은 인민군 특수부대들이 유사시 휴전선 배후의 작전목표를 신속히 장악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또한 북한군이 강조하는 특수부대원의 자질은 바로 백발백중의 사격술과 무쇠 같은 체력이다.

14만명의 경보병여단

이는 북한 인민군이 상대적으로 기동력을 중시하는 군사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인민군 특수부대 20만명 가운데 14만명이 경보병여단이었다. 이들은 돌격소총과 수류탄 등 제한된 공격무기만 가지고도 상상을 초월하는 기동력을 보이는 배후침투조라 할 수 있다.

▲ 격투훈련 중인 북한군 특수부대. <뉴스한국>은 탈북자들이 북한군 특수부대가 1 : 15의 상황에서까지 격투훈련을 한다고 증언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자료사진-곽동기]

북한의 이 같은 배후침투 작전은 지난 한국전쟁 당시 미 제24사단을 포위섬멸했던 대전전투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대전전투(大田戰鬪)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7월 14일부터 7월 21일까지 대전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당시 미군은 24사단이 주둔하였지만 배후를 봉쇄한 인민군에 의해 제1기병사단과 병력을 합치지도 못하였으며 포위된 24사단은 퇴각도 못한 채 급기야 제24사단 사단장인 윌리엄 F. 딘 소장이 인민군의 포로가 되는 충격적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미 7월 5일, 경기도 오산에서 인민군과 교전하였던 미8군 제24사단은 7월 16일 밤부터 7월 17일까지 금강방어선에서 철수하여 대전으로 집결하였다. 미8군 사령관 워커는 7월 18일, 미 제1기병사단을 포항에 상륙시켜 24사단과 함께 대전을 방어할 작전이었다.

7월 12일, 대전 인근의 조치원마저 북한군에게 돌파당한 미24사단은 대전으로 들어오는 주요 도로와 다리를 폭파하고 탱크 장애물을 매설하였다.

그러나 북한군 제4사단은 7월 15일 논산을 점령하였고, 7월 18일에는 대전의 관문인 유성을 점령하였다. 제4사단 16연대는 논산을 거쳐 가수원(지금의 서대전IC)으로, 5연대는 3사단과 함께 유성으로 진입해 들어왔는데 중요한 작전은 인민군 4사단 18연대에서 일어났다.

논산에 주둔하고 있던 인민군 18연대는 미 제1기병사단이 포항에 상륙해 대전의 미24사단과 조우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하루 밤 사이에 논산에서 금산으로 우회하여 옥천계선에서 방어선을 구축해 미24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의 합류를 막고 대전을 포위한 것이다.

포위당한 24사단은 힘을 쓸 수 없었다. 대전전투에는 미군 3,933명이 참가하였는데, 1,150명의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미군 48명이 전사하였고, 228명이 부상당하였으며, 874명이 실종되었다. 급기야 사단장이었던 딘 소장은 후퇴할 길을 잃고 산지로 숨어들었지만 이후 인민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대전전투에서 미군이 충격적 패배를 당한 근본원인은 인민군 보병연대의 기동력에 있었다. 이들은 하루 밤 사이에 논산에서 금산으로, 직선거리로도 하루 밤 사이에 45km를 강행군하여 포위망을 구축해 미군의 판단을 앞질렀던 것이다.

14만명에 달하는 인민군 경보병여단은 대전전투의 경우에서와 같이 한반도 유사시 이러한 기동력에 의거한 신속돌파, 우회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주력부대인 기갑사단의 전진을 보장하려 기도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형학과 백발백중의 사격술과 더불어 무쇠 같은 체력을 강조한 데에는 이러한 작전적 판단이 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특수전은 전자전과 배합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군은 북한군의 경보병여단에 대해 자신 있는 눈치이다. 지금은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도 아니고, 한미연합군의 레이더 정보망이 매우 조밀해, 인민군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다. 결국 교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화력인데, 기동력을 강조한 경보병여단의 경우 무장이 약할 것이 분명할 것인바, 보병부대의 기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21세기 전장에서 압도적 화력으로 인민군의 작전을 분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군은 최근 전자전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일례로 지난 2011년 있었던 연평도 포격전 당시,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이상우 위원장은 인민군이 전파교란을 단행해 연평도의 대포병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 대포병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 K-9 자주포가 인민군 포진지를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민군이 보유하고 있는 배후침투수단으로는 해상침투용 호버크래프트와 공중침투용 AN-2기가 거론된다. 문제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아군의 레이더망이 북한군의 동태를 추적, 분쇄할 수 있겠지만, 북한군이 전자전을 단행하며 군사작전을 수행할 경우에도 대비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군은 최근시기 벌어지는 휴전선 일대의 GPS 교란상황도 북한군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수전이 전자전과 배합될 경우, 북한군 경보병여단이 신속한 전선돌파를 시도할 때, 위력이 배가된다.

3월 23일에 있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는 북한군의 이러한 작전적 의도를 일정하게 내비쳤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국지도발” 상황을 빌미로 한반도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20만에 달하는 북한군 특수부대가 전파교란과 더불어 휴전선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한반도 핵전쟁을 상정한 플레이북을 잠정중단하고 대북전쟁을 실제 단행하지 못한 하나의 이유가 된다고 분석할 수 있다. 
 
(수정, 28일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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