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만나면 정(情)이라도 들겠지요. 요즘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남북 실무회담을 보며 드는 생각입니다. 아무런 성과나 합의 없이 벌써 다섯 차례나 만났으니 이렇게라도 자위를 해봅니다.

제1차 회담이 이달 초에 시작했으니 한 달에만 벌써 다섯 번을 만나고 제6차 회담을 오는 25일에 예약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남북이 회담하는 게 타성화 돼, 의미 없는 대화의 연속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간 다섯 차례의 회담에서 북측은 그래도 처음부터 합의안 초안을 갖고 나오고 그 다음부터 수정안을 갖고 나오는데 비해 남측은 빈손으로 나오거나 원래 안만 고집해 북측으로부터 “불손하고 무성의하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평행선을 긋던 남북이 22일에 열린 제5차 회담에서 다소 진전된 안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완전 합의에 이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듯싶습니다.

지금 남과 북의 쟁점은 개성공단이 가동 중단된 원인이 어느 쪽에 있냐는 것입니다. 이는 책임규명과 더불어 재발방지로 나아가는 문제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시시비비를 따지자는 것인데 이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양측이 모두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개성공단이 잠정 폐쇄돼 있는데 그 마지막 행위는 남측이 취한 개성공단 인원 전원 철수라는 중대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앞서 북측이 근로자들을 철수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북측도 근로자를 철수시킨 게 남측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와 국방장관의 언사 때문이라는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기억해 봅시다. 당시 남측의 일부 언론들이 ‘북, 달러박스 개성공단 출입에는 노터치’니 ‘개성공단 폐쇄시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북’이니 하면서 북측이 절대로 개성공단 문을 닫지 못할 것이라고 자극했으며, 또한 김관진 국방장관은 개성공단 인원들의 인질사태 운운하며 군사적 구출작전을 하겠다고 사실상 개성공단 폐쇄를 조장하고 유인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원인을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공허한 논쟁이 될 뿐입니다. 원인을 밝히기가 쉽지 않으며, 설사 원인을 따지더라도 남북 양측에 다 책임이 있을 텐데, 한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는다면 승복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의 현격한 입장차라면 회담이 결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과 북은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개성공단 정상화만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의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거꾸로 말해 이번 개성회담이 파탄나면 남과 북 사이에는 만나거나 대화할 수 있는 접점이 없어집니다. 따라서 먼저 판을 깨는 쪽이 평생 그 부담을 안고 가야 하기에 어느 쪽도 먼저 회담 결렬 선언을 하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하게나마 회담이 연장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무한정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개성회담에도 종착점이 있습니다. 7월27일이 정전협정일이고 다음달 19일부터 22일까지 한미 합동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이 진행됩니다. 을지연습에 북측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7월 한 달 사이에 대여섯 번이나 만났다면 정이 들대로 들었을 것입니다. 이 달이 가기 전에 남이나 북이나 개성공단 가동 중지의 원인이 반반씩 있다고 대담하게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나머지 문제를 풀어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기를 바랍니다. 그게 ‘고운 정 미운 정’ 든, 남북만이 할 수 있는 지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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