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혁 기자(bhsuh@tongilnews.com)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보는 미 국방당국과 주한미군의 입장이 이중성과 모호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군당국이 운영하는 <미군 연합통신(American Forces Press Service)>은 미국관리들이 남북관계 개선 이후 남북간의 계속적인 대화가 3만 7천명의 주한미군의 지위 변화를 불가피하게 수반할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직은 그것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고 20일 보도했다. 한 미국의 고위 관리는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일련의 남북관계 개선을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변화"로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변화들이 확실하거나 불가역적인 것이 아니며 진행되는 남북관계 개선 과정도 취약하다고 지적하였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보는 미국관리들의 이같은 판단은 한반도문제의 당사자인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원칙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국의 영향력 및 기득권의 약화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태도와 교차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런 점은 최근 비교적 급격한 남북관계 개선 과정에 대해 분명한 정책 대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유동적 상황임을 반영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보는 미국의 이중적이고 유동적인 태도는 김 대통령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관계의 재조정을 불가피하게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윌리엄 코언 미국방장관은 서울에서 한국관리들과 남북관계 개선의 배경과 향후 방향에 대해 공동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언 장관과 함께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차 한국에 온 미국 관리들은 남북한간에 포용적 자세를 취하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북한의 절망적 경제상황을 거론하였다. 그래서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남북 당국자간 대화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남한이 자원과 대북지원 의지 양쪽 모두를 충족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북한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이 통신은 최근 남북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요인으로 김대중 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을 꼽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취임초부터 △북한의 대남 군사행동 불용, △흡수통일 부인, △교류협력의 증진 등을 3가지 기본 원칙을 갖고 햇볕정책을 전개해 왔으며, 이에 따라 북한은 기존에 추진해 오던 통미봉남(通美封南)전략을 수정하여 남북대화에 나온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미군 연합통신>은 지난 6월 이후 매우 빠른 남북관계 개선에 전세계가 놀라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남한사회 일각에서는 김대중정부의 대북 접근태도가 성급하고 비판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국관리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관계개선에 나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통신은 또 남북관계 개선 시점에 즈음해 남한내에서 (매향리 미군훈련장 문제, 미군시설에 의한 환경오염, 한미협정의 불평등성 등으로 인한) 반미감정이 일어난 것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많은 한국인들은 주한미군이 필요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논평하였다.

그러나 이와 달리 김대중 대통령은 한-미동맹관계의 공고화와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동북아의 세력균형자로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인정하였다고 김 대통령은 설명하고 있다.

미국관리들은 현재 남북한 관계개선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화해가 지속될 경우, 주한미군의 지위나 역할이 어떻게 될지 말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80만의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주변에 전진배치되어 있으며 북한의 포는 여전히 서울을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에 따라 미국 관리들은 주한미군의 현 수준은 당분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미국 당국자들의 이같은 태도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의 재설정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북한의 군사력 및 위협을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명분으로 사용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25-26일 분단 이후 최초로 군 당국자회담을 제의한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주목되고 있다. 현재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면서 그 분위기와 가시적 조치들을 통해 판문점 유엔사령부를 사실상 유명무실화하는데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사분계선 지역이 포함되는 경의선 복구 및 도로 공사에 군 병력을 동원하거나, 남북 국방장관급 회담을 판문점이 아니라 제주도에서 여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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