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전역에서는 평화행진이 계속되고 있고, 우리는 후텐마, 가데나 기지와 한의비, 요미탄의 치비치리 동굴(가마) , 사키마 미술관, 일본군위안부 김복동할머니 증언집회에 참석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

▲ 반전평화 국민행동 한반도 평화사절단은 18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로 불리는 후텐마기지를 찾았다. [사진제공 - 한반도 평화사절단]
「후텐마기지」는 1945년 전쟁시기에 건설된 것인데, 크기가 기노완시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되며, 주택가와 학교,탁아소 등이 밀집해 있는, 시내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미 정부의 럼스펠드가 직접 와서 보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라고 말할 정도이다.
아직 활주로 아래에는 많은 유골들이 있다고 한다.
기지반환을 약속하고도 대체기지가 없다는 이유로 버티고 있단다.

「가데나기지」는 세계 최대의 미공군기지이다.
원래, 일본군기지 였는데 전쟁후 미군기지가 되었단다.
기지 안에는 아직도 옛 주민들이 살고 있던 흔적들이 있고, 기지 주변마을에는 오염이 너무 심해 마을 우물물에 불을 붙이면 불이 붙는다하여 「불타는 우물」 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한밤중에도 비행훈련을 하여 그 폭음에 도저히 주민들이 견딜수가 없어 「주민 폭음 소송단」3,000명을 만들어 일부 승소를 하기도 했단다.
우리랑 이번 행사를 함께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소송단이기도 하다.

▲ 잔인한 역사를 담고 있는 요미탄의 「치비치리 가마(동굴)」. [사진제공 - 한반도 평화사절단]

▲ 한반도 평화사절단이 포즈를 취했다. 가운데가 필자. [사진제공 - 한반도 평화사절단]
요미탄의 「치비치리 가마(동굴)」을 보고나니, 우울하기 짝이 없다.
45년 4월 1일 요미탄으로 미군이 상륙하고 사람들의 피해가 커지자 미군을 피해 동굴로 숨은 주민들이 숨어, 숨어 지내다 집단자결을 한 것이다.
140명 중 83명이 집단자결을 했단다.
이 자결을, 자살이냐? 아니냐?의 해석이 분분하다.
아무튼, 강제된 죽음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 조금은 다르지만, 아니, 결코 다르지 않은 제주 4.3의,「지슬」의 그 먹먹함이...

아름다운 오키나와!
이 아름다운 땅에 기지가 없었으면, 미군이 없었으면...

왜?
... 왜? 우리는 이다지도 닮아있나?
동변상련의 마음이 자꾸들어 자꾸만 눈물이 난다.

「사키마미술관」을 가다!

▲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땅에 세운 시카마미술관 전경. [사진제공 - 한반도 평화사절단]
사키마미술관은 사키마가족이 자신들 가족들의 묘가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일을 당하자 계속적인 반환투쟁을 벌였다.
지속적이고 질긴 투쟁끝에 결국, 미군으로부터 반환을 받아내었다.
개인사유지여서 반환을 받기는 했으나, 공공의 목적에 사용하겠다 결심하고 그 가족의 이름을 따「사키마미술관」을 만들었다.
기본은, <오키나와전>을 통한, 전쟁,평화를 주제로 하고 테마별로 특별전을 한다.
고즈넉한 곳에, 아기자기한 참! 예쁜 미술관이다.
무엇보다, 만들어진 동기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더 좋타!

▲ [사진제공 - 한반도 평화사절단]

마침, 마르키 이리, 마르키 토시선생 부부의 「반타가마」전을 하고 있었다.
마르키 이리선생은 히로시마 원폭을 보면서 그 참상을 그림으로 남겨야겠다 결심을 했다고 한다.
< 남경대학살 > < 미나마타병 >등 사회적문제를 반세기동안 그려오다 오키나와전쟁의 참상을 알게 되면서 생의 마지막 그림으로 <오키나와전 >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알렸다.
6년동안 오키나와와 히로시마를 오가며 14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특히, 가마는 자연동굴을 말하며 주민들이 미군을 피해 숨어 지내다 ...강제된 죽음인 집단자결을 했던 곳이라 더욱더 전쟁의 끔찍함을 보여준다.
너무 사실적이라 무섭다.
소름이 돋는다.
< 지슬 >이 자꾸 떠올라 슬프다!
아! 답답하고 우울한 밤이다!!!

할머니와의 교류집회

▲ 오키나와 기독교대학에서 '할머니와의 교류지보히'가 열렸다. [사진제공 - 한반도 평화사절단]
「할머니와의 교류집회」가 열리는 오키나와 기독교대학엘 갔다.
마침, 일본 전역을 돌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호소하고 서명을 받기 위해 오키나와를 방문한 김복동할머니의 증언집회가 열리는 곳에 함께 했다.
윤미향대표를 비롯한 정대협식구들을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고 반갑다.

강의가 없는 토요일인데도 학생들이 많다. 자리가 꽉 찼다.
... 언론들의 카메라들도 장난이 아니다.
요즘 연일 계속되는 망언 중에 한국으로 부터 할머니가 직접 오셨으니, 어찌? 관심이 없겠는가?

할머니의 증언이 계속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훌쩍거린다.
우리랑 함께 다니고 있는 교토에서 온 오오무라상은 훌쩍거리다 못해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옆에 발랄하기만 한 여학생은 아예 손수건을 눈에 대고 있다.
할머니도 우신다!
아! ~~~~~
우리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할머니는 계속 말씀하신다.
잘못을 했으면 용서를 비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과거에도 일본정권은 잘못을 해놓고 지금도 반성은 커녕 망언만 늘어놓고 있다고...
더구나, 징용자로, 노예로 우리 동포들을 끌고 와서는 동정을 못할 망정 왜? 차별을 하냐고?
인간의 도리가 그런 것이냐고!..
아주 조용하지만 엄중히 꾸짖었다.

▲ 평화나무에 소망을 적어 붙이고 있다. [사진제공 - 한반도 평화사절단]
이 와중에도 평화나무를 한켠에 걸었다.
본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에 누가 되지 않게, 조심히..

와우!
할머니부터 쓰신다.
평화. 통일. 김복동이라고...
전쟁, 분단, 역사, 평화, 통일!
우리는 또 이렇게 한걸음씩 간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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