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평화운동센터 방문

▲ 방일 이틀째인 16일, 평화사절단은 평화행진 준비로 한창인 ‘오키나와 평화운동센터’를 방문했다. [사진 - 한반도 평화사절단]
방일 이틀째인 16일, 평화사절단은 평화행진 준비로 한창인 ‘오키나와 평화운동센터(이하 평화운동센터)’를 방문하였다. 평화운동센터 사무실 곳곳에는 평화행진에 사용할 몸자보, 손마이크, 휴지 등이 쌓여 있었고, 16일 오후 4시로 예정된 ‘평화행진 결단식’ 준비로 분주하였다.

평화운동센터는 일본 ‘평화.인권.환경을 위한 포럼’(이하 평화포럼)의 지역단체로, 간담회 자리에는 평화운동센터의 오오시로 사무국장대행(사무국장은 현의원 출마 상태이다)과 평화행진 준비차 방문한 평화포럼의 야스나리 사무국장이 함께 하였다.

오오시로 선생은 평화행진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였는데, 동, 서, 남 세 개의 구간으로 진행되 는 이번 평화행진에는 약 1,60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할 예정이며, 세 개의 행진단이 모이는 19일 현민대회에는 약 2,500여명 정도가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사회의 다양한 성향들을 반영하여 원하는 행진단에 참여토록 한다고 하는데, 평화운동센터는 헤노코 기지에서 출발하는 동쪽 행진단에 참여한다고 하였다.

▲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한반도 평화사절단 손미희 공동대표와 최은아 팀장이 평화운동센터 관계자들과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한반도 평화사절단]
한반도 평화사절단은 오키나와와 한국은 미군 주둔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한반도의 미군주둔은 정전체제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바 평화협정 체결운동은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소개하였다. 7.27 평화대회를 비롯하여, 국제평화선언, 국제평화심포지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이 사업에 대한 연대와 초청의 의사를 전달하였다.

평화포럼의 야스나리 사무국장은 일본 사회운동이 대체로 지역별로 진행되고 있는 데 반해, 평화포럼은 전국적 연계망을 갖고 있는 유일한 단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표시하였다. 또한 평화포럼이 아시아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면서 역사와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평화의 밑거름이라고 지적하고, 정부를 넘어 NGO간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평화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올해 7.27에 한국에서 진행되는 국제평화대회에 평화포럼과 평화운동센터에서도 연대할 것이며, 참가단을 모집할 계획임을 밝혀왔다.

오키나와 전쟁의 상흔 속에서 분단의 현실을 느끼다

▲ 오키나와 최남단 이토만 지역의 ‘히메 유리’ 평화의 탑. [사진 - 한반도 평화사절단]
평화운동센터와의 간담회를 마치고, 평화사절단은 오키나와 전쟁의 역사가 진하게 배어있는 남부지방으로 향했다. 오키나와는 일본 정부가 태평양 전쟁 당시 이른바 ‘본토’ 지역에 대한 마지막 방어선으로 상정했던 지역으로, 일본군은 전역을 통틀어 오키나와에서만 유일하게 현민을 총동원해 지상전을 벌렸고, 특히 오키나와 남부지역에서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 최대 규모의 전투가 벌어졌다. 고유한 역사를 지닌 채 발전해 오던 류큐 왕국이 일본에 의해 점령당한 이래, 자신들이 일으키지도 않은 전쟁의 무대가 되어 최악의 희생을 강요당한 것이다.

처음 방문한 곳은 오키나와 최남단 이토만 지역의 ‘히메 유리’ 평화의 탑으로, 간호학도대가 집단 자결한 비극이 어린 곳이다. 전쟁 당시 모집된 백합(히메 유리) 간호학도대가 오키나와를 점령하기 위한 미군의 대대적 폭격과 전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절벽에서 집단 자결하였다고 한다. 오키나와에서는 일반주민의 희생자가 군인 사망자 보다 훨씬 많다고 하는데, 미군의 엄청난 폭격과 공격으로 인한 희생도 컸지만, 곳곳에서 이같은 집단 자결의 비극이 일어난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한다.

▲ 평화자료관 외곽에 세워져 있는 '한국인 위령탑'. [사진 - 한반도 평화사절단]
평화의 탑에서 오키나와 평화자료관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각 지역에서 징용된 병사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곳곳에 있었고, 평화자료관 외곽에는 ‘한국인 위령탑’이 세워져 있었다. 1975년 세워진 이 위령탑에는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이름이 전면에 새겨져 있다. 63년 한일수교협상 당시 일제 침략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배상조차 받지 못한 굴욕적 협상을 맺은 것도 모자라 모든 개인청구권 마저 말소시켜 버린 박정희가 일본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의 넋을 기린다며 뻔뻔하게도 제 이름을 새긴 위령탑을 세워놓은 것이다.

오키나와 평화자료관은 야외에 전쟁당시 사망자의 명단을 새긴 비석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일본군, 미군, 그리고 징용으로 끌려온 식민지 국가의 청년들 등 전쟁의 가해자와 희생자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식민지 나라에서 끌려온 희생자들은 명단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일례로 당시 조선인의 경우 약 1만명의 희생자가 있다고 추산되고 있지만 실제 비석에 새겨져 있는 이름은 450여명에 불과하다.

평화자료관에는 당시 국적이 모두 ‘조선’이었을 희생자들의 이름이 지금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으로 구별되어 기록되어 있다. 태평양전쟁이 한반도에 미친 상처, 분단의 흔적은 이곳에도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전시실은 크게 다섯 구획으로 나누어 전시를 하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 이전의 역사를 다룬 ‘오키나와 전으로 가는 길’, 태평양 전쟁 과정에서 미군이 오키나와에 대대적인 폭격을 퍼붓고 점령을 단행했던 시기를 다룬 ‘철의 폭풍’, ‘지옥의 전쟁터’, 당시 주민들의 기억을 담은 ‘증언’, 전쟁이후 지금까지 미군기지에 점령당해 있는 시기를 다룬 ‘태평양의 요석’ 순이다.

평화자료관 전시실은 전쟁의 참상을 매우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차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자료들도 많은데, 전쟁의 원인, 특히 일본의 태평양 전쟁 도발의 책임 부분과 전쟁 전후 미군의 패권정책 등은 충분히,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

미군정을 겪었고 전쟁당시 미군의 학살, 전후 미군 주둔으로 인한 피해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당사자로서, 오키나와 주민들이 미군에 갖는 분노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애초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미군 주둔의 전제인 미일동맹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전쟁에 대한 공통의 평가를 도출하기까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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