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정애 / 재일동포, 양심수후원회 회원

 

▲ 관악산 목적지에 오른 6.15산악회 회원들. [사진제공-6.15산악회]
이번 산행은 너무 빨리 온 느낌이었다. 5.18 행사 일정 때문에 둘째 일요일로 앞당겨져서 1주일 빠르긴 했지만 매달 산행 날짜가 다가올 때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나?’ 한다. 한 달에서 가장 긴장되는 1주일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전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토요일 밤 12시에는 잤는데 새벽 2시에 깼다. 그 후 번개와 우레, 그리고 심한 빗소리로 새벽 내내 못 잤다. 지금 장판 밑에 물이 새는 방이 있는데 이 폭우로 그 방에서 물이 넘쳐나면 어떡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더더욱 못 잤다. 이대로 폭우가 쏟아져서 산행이 취소되지 않을까... 6.15산악회(회장 권오헌)는 비바람이 와도 눈보라가 쳐도 절대로 산행이 취소되지 않는다. 어쩜 전쟁이 터져도 산행을 결행하지 않을까 한다. 겨우 다시 잠들었는데 남편 김익 씨가 일어나서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깼다. 벌써 7시 반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낙성대 전철역에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나와 6.15산악회를 맞았다. [사진제공-6.15산악회]
이날 목적지인 관악산은 우리 집과 정반대인 서울 강남에 있다. 낙성대역에 도착한 것이 8시 58분이었다. 늦으며 안 된다고 뛰었다. 지하철 구내를 걸어가는데 김영승 선생님 뒷모습이 보였다. 선생님한테 인사를 드리고, 선생님한테 뛰시라는 말도 못하고 “저희는 먼저 가겠습니다!”하고 다시 뛰었다.

김영식, 박희성 선생님이 생활하시고, 김익 사무국장이 일하는 양심수후원회 사무실이 있는 낙성대 ‘만남의 집’은 낙성대 8번 출구 쪽에 있다. 8번 출구로 나가 ‘만남의 집’으로 가서 자고 싶은 생각을 겨우 참고 늘 이용하는 계단과 반대편에 있는 1번 출구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을 때 박희성 선생님이 급하게 내려오셔서 ‘이제 와 계셔. 빨리 올라와!’라고 하셨다.

우리는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님이 오셨다는 것을 알았다. 일정이 생기셔서 이날 같이 등산을 못하게 되었는데도 일부로 우리 6.15산악회 회원들에게 인사하러 오신 것이었다. 오랜만에 뵈는 이정희 대표님의 얼굴은 나 못지않게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항상 미소를 짓고 계셨다. 악수를 나누면서 이정희 대표님이 “이번에 어렵게 들어오셨죠?”라고 하셨다. 고마웠다. 일개 당원의 안부를 생각해주시니 말이다. 그것이 이 분의 매력인 것 같다. 내가 이제까지 만나본 다른 정치가와는 확실히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잘 있었어?”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신석진 당대표 비서실장님이셨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민족21>에 2년 연재되고 2010년에 보리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책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체류기’에서도 등장하시는데 2006년 8.15행사 때 처음으로 남쪽 통일운동단체를 찾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그 당시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편집장님이셨던 분이다. 격자무늬의 봄느낌의 재킷과 바지를 삽상하게 입으신 석진 형은 여전히 날씬하셨고 7년 전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았다. 등산복을 입은 우리 총각 형님들과 비교하면 안 되지만 좀 세련된 느낌이었다.

▲ 멀리 관악산 주능선이 보인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나는 특별히 당 활동을 하진 않았으나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당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당원이었다. 우리 양심수후원회 다음으로 사랑하는 단체(?)였다(물론 6.15산악회, 통일뉴스, 민족21도 내가 사랑하는 단체들임!). 작년에 수구세력들이 ‘조총련 출신 종북 리정애가 통합진보당 당원’이라고 떠들었을 때 당에 피해가 갈까 봐 탈당하겠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해주어서 참 고마웠던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 때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섭섭한 감정도 많았다. 이유는 무엇이든 가장 힘을 모아야 할 때 분열된 당의 모습을 보며 너무나 크게 실망했다.

내가 사랑했던 당이 과연 이런 것이었나? 하도 실망이 커서 ‘탈당하고 싶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오갔다. 내가 탈당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친한 사람들이 당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당은 예전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 못 되고 있으며 노동자, 농민,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운동권 사람들과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민중들이 진보당 기치 아래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그런 당을 만들어 줄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이 날 새로 만든 깃발이 왔다. 이전 것보다 한반도 하늘색이 진하고 멋있다. 게다가 조금 작아져서 이제 깃발로 뺨맞을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이정희 대표님이 이야기하시는 것을 열심히 듣고 있는 바로 그 때, 깃발이 내 얼굴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깃발을 들고 있었던 것은 역시나 김익 씨였다.

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김현수 형님이시다. “언제 왔어요?”라며 반겨주셨고 악수를 나누웠다. 현수 형님은 여러 집회는 물론, 봄과 가을에 두 번 있는 민가협 어머니들의 서울대 장터도 3일 동안 빠짐없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도와드리는 너무나 착하고 착한 형님이시다. 이번에도 14일부터 17일까지 다 나가신다고 한다. 형님과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늘 내가 가는 곳에 계셨고 어느 새 친해지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와서 웬만한 분들은 다 얼굴을 뵈었는데 아직 못 뵈어서 어떻게 지내시나 했기에 참으로 반가웠다.

강태희 언니가 내 얼굴을 보고 피곤해 보인다고 하셨다. 너무나 피곤했다. 잠이 완전히 부족한데다가 왜 산행 때 언제나 이렇게 컨디션이 안 좋을까? 눈이 아프고 비염이 심했다. 확실히 피가 모자란 느낌이었다.

드디어 출발

▲ 모두가 정상을 향하여. [사진제공-6.15산악회]
드디어 출발이다. ‘만남의 집’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장을 보는 낙성대 시장을 지나갔다. 낙성대 시장은 참 괜찮은 시장이다. 우리 동내 시장보다 훨씬 활기차고 전통시장의 좋은 점이 많이 남아있다. 마치 시골 장터처럼. 떡집이 많아 먹음직스러운 떡들을 여러 개 봤더니 아침을 먹고 갔는데도 배가 고파졌다. 시장을 빠져나와 잠깐 빵집 앞에서 멈추었다. 창문으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박희성 선생님이 ‘아침 안 먹었냐?’며 빵케익을 주셨다. 역시 우리 할아버지. 손녀를 챙겨주시긴. 요즘 손녀 자리를 뺏길까 봐 걱정이 많았는데 기우였나 보다. 그것을 맛있게 먹고 있었더니 김남순 형님이 그 빵집에서 사 오신 크루아상을 주셨다. 양손에 빵을 들고 먹고 있는데 모성용 형님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많이 먹는데 왜 살이 안찔까?”라고 하셨다. 김익 씨가 옆에서 바로 “그 살이 다 여기로 왔습니다!”며 터지기 직전의 풍선과 같은 자기 배를 가리켰다.

진실을 고백하면 나는 살찌지 않은 체질이 아니다. 옛날 10키로 살찐 적이 있다.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교(조대) 입학 후 여름방학에 오사카 집으로 돌아간 나를 보고 가족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조선대학교를 ‘편입생’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말 100일간 운동’을 해야 했다. ‘100일간 운동’은 일본 고등학교를 나와 우리말을 못하는 편입생들이 100일 동안 우리말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하루빨리 우리학교 출신 동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특별훈련과 같은 것이다. 아침은 6시에 배구를 하고 밤은 12시를 넘을 때까지 학습과 총화를 해야 했다. 잠이 많은 나한테는 참으로 고문과 같은 나날이었다. 그런 속에서 아침 배구 시합을 한 오빠, 언니, 동무들이 바라지(사식)를 갖다 주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그런 시간에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지도원 언니들이 남기면 안 된다며 억지로 먹이는 바람에 언제 나도 그 새벽의 바라지를 즐기게 되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된 어느 날, 오랜만에 외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조대에서는 수업은 치마저고리, 그 외 생활시간은 츄리닝으로 지낸다. 외출하는데 늘 입던 바지를 입으려고 하는데 허벅지에서 위로 안 올라간다. 처음엔 바지가 작아진 줄 알았다. 빨래를 잘못하거나 해서. 그러다가 내가 엄청 살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충격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뭐, 아무리 먹어도 설마 그때처럼 될 일은 없겠지. 그러나 혹시 모르지 중년이 되면 엄청 뚱뚱해질지도. 아무튼 건강을 위해서도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20년 전에 그 특별훈련을 받았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우리말로 산행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10키로 살찐 것은 진짜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도중 주택가를 지나갔는데...
리정애 : 조용하고 산이 가까워서 공기도 좋고. 낙성대가 참 좋은 동내인가 봐.
박희성 선생님 : 그럼!
리정애 : 선생님들도 계시고 일로 이사를 오고 싶네.
김익 : 여기 산 밑이라 벌레가 무지하게 많아.
리정애 : 그래도 바퀴벌레는 많지 않을 거 아냐.
김익 : 바퀴벌레도 많아!
리정애 : ...

관악산 둘레길을 쭉 올라가는데 뒤에서 ‘닭대가리’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것이 들렸다. ‘닭한테 겁을 주면 닭은 세 발짝 물러나는데 왜 자기가 겁을 먹었는지 모른다. 그 정도 기억력과 머리가 나빠서 “닭대가리”라고 한다.’ 우리 산악회는 산을 타면서 우리말 공부도 할 수 있다. ‘그럼 닭하고 쥐는 어느 쪽이 머리가 더 안 좋을까요?’ 물어보려다 쥐가 은근히 교활한 동물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오사카에 남겨둔 내 등산바지

▲ 산행 도중 휴식을 취하자 김영식 선생님이 운동기구로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도중 휴식을 취하는데 윤경 언니가 “언니는 오늘 선생님들과 같이 도중까지만 올라갈게”라고 하셨다.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른 세 글자. 배.신.자.(언니, 미안합니다!) 오늘은 언니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겨우 올라왔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으시냐고. “그러면 점심은요?”라고 물어봤더니 점심은 다 같이 먹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게 하세요.”

“너 그 등산바지를 어떡했니?” 윤경 언니가 물으셨다. 잘 질문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들어올 때 오사카는 이미 더웠다. 요즘 서울 날씨 정도라고 하면 누구나 다 겨울용 등산바지가 필요 없다는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래도 망설이는 나한테 어머니가 다음에 갈 때 가져가준다고 하셔서 마음먹고 두고 왔다. 그래서 동생이 준 츄리닝과 내복을 입고 지난 산행도 이번 산행도 올라가야 했다.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 유혹을 몇 번이나 느끼면서...

래곤 형과 윤경 언니가 나한테 등산바지를 사주라며 서로 양보하시는데 윤경 언니의 최신 스타일은 예쁘지만 나에게는 너무 작을 것 같다. 나는 래곤 형 스타일, 옛날식 등산바지가 마음에 든다. 색깔도 좋고. 여기는 아저씨도 아줌마도 등산복을 아주 갖추어 입는다. 윤경 언니 지적대로 츄리닝을 입고 산행 다니는 부부는 드물 거다. 재작년 가을에 사서 진짜 산행 때에는 한번밖에 못 입은 내 등산바지. 여자용은 작고 허리 위까지 오는 것이 불편해서 남자용을 찾아서 3시간 동안이나 윤경 언니와 김익 씨를 데리고 헤매다 겨우 찾은 내 등산바지. 오사카에서는 그냥 평상복이 되고 말았지만 드디어 진짜 산행에서 그 실력을 발휘할 때가 왔는데... 오사카에 남겨둔 내 등산바지가 너무 그립다.

숨은 좀 막히긴 했지만 비교적 쉬운 코스였다. 관악산, 별거 아니네. 어느새 비염도 좋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서울이라 해도 역시 산의 공기는 좋은가 봐. 예전에 서울에서 살 때에는 몰랐는데 이번에 들어와서 서울의 공기가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지 많이 느꼈다. 아리수도 은근히 냄새가 난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도저히 ‘믿고 마실’ 수 없다. 그래도 사방이 다 산이라 자연이 풍부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 신록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 산뜻한 초록색의 산을 만끽했다.

“정애, 다리 괜찮아?” 권오헌 선생님이 걱정해 주셨다. 지난 산행기에 다리가 아팠다고 쓴 것을 보시고 ‘다리가 아팠다는 것도 모르고...’라고 너무 많이 걱정해 주신 것이다.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잠깐 고민했다. 실은 아침에 낙성대역에서 대기 중 다리를 X자로 해서 서 있다가 이상하게 돼서 복숭아뼈 부분을 삔 것이다! 북한산의 칼바위를 내려가다 삐었다면 모를까 아무 것도 없는 평지에서 모양 빠지게 그런 일이 생길 줄이야. 그때 발에 느껴진 충격을 생각하면 이렇게 산을 올라가고 있는 것이 기적과 같다. 전혀 괜찮다고 말씀드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아프다고 말씀드릴 수도 없어서... 겨우 낸 대답이 “아프지만 괜찮아요!”

전원이 목적지에 오르다

▲ 이날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드디어 이날 목적지 깃대봉에 도착하여 다른 회원들이 올라오는 것을 기다렸다. 양원진 선생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일동이 박수를 쳤다. 예전에는 늘 같이 최종 목적지까지 올라가셨는데 요즘 몸이 안 좋으셔서 지난 북한산 산행 때도 도중까지만 올라가셨다. 올해 85세가 되시니 그 연세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오늘은 전원이 다 같이 끝까지 목적지까지 오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코스가 편하니까 좋았고 무엇보다 성취감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6.15산악회 옛 대깃발을 모시고 단체사진을 찍는데 아줌마들이 우리를 보고 “운동권들도 멋있네~”라고 했다. 요즘 듣기 힘든 소리를 들으면서 참 기분이 좋았다. 산을 다니면서 “무슨 단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이날도 어떤 아저씨가 깃발을 든 김익 씨한테 물어봤는데 그냥 사실만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을 설득,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렵다.

서울에서 살면서 재일조선인과 운동권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재일조선인도 운동권도 그 나라에서 소수자로 속한다. 계속 국가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자기 신념과 양심을 지키며 어렵게 산다. 어쩌면 주변 사람들한테 차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설마 여기서는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집주인이 거부해 월세집을 구할 수 없는 일은 없겠지? 일본도 남쪽도 노골적인 우익화로 우리에게는 살기 힘든 나라다. 최근에 김익 씨가 지하철에서 통합진보당 관련 책을 읽고 있었는데 김익 씨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그것을 보고 “‘종북’이라는 말을 알아요?” 하며 “그 놈들이 다 없어져야 해” 하며 엄청 열받는 말들을 내뱉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는 정말로 이상한 나라다. 지금 2013년인데 70년 전의 독일이나 일본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 10년 동안 숨어있었던 것들이 요즘 너무 큰 소리 치고 다니는데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는 생각이 든다.

▲ 즐거운 점심식사. [사진제공-6.15산악회]
드디어 한 달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왔다! 32명이 다 같이 앉을 수 있는 넓은 곳을 찾아야 해서 좀 걱정했는데 다행히 관악산 주인이신 양희철 선생님이 계셔서 생각보다 쉽게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양희철 선생님은 다른 산악회 회원이셔서 늘 우리와 함께 못하시는데 이번에 우리 6.15산악회가 둘째 일요일에 산행을 하는 바람에 참가하실 수 있었다. 양희철 선생님, 권오헌 선생님과 함께 2008년 1월 금강산 수정봉 정상에 오른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이제 1년에 한번은 금강산에 올 수 있겠구나!’ 했는데...

빨리 앉을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나는 늘 선생님들과 같이 앉지만 바로 윤경 언니를 찾았다. 이날은 래곤 형이 운좋게 윤경 언니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셨다. 김치 종류도 맛있었지만 ‘멸치 호박씨 볶음’이 제일 맛있었다. 결혼해서 여기 음식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게 되도록 나름 연구도 했고 오이소박이 같은 것도 만들어 봤지만 1년 반의 공백으로 다 잊어버렸다. 앞으로 윤경 언니를 요리 스승으로 모실 것이다. 내 서울 친정은 낙성대이지만 윤경 언니는 서울 친정어머니다. 어머니라고 하기엔 너무 젊으셔서 실례지만 집안 일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 언니한테 물어본다. 어떤 세제가 좋은지, 무슨 커피믹스가 제일 맛있는지, 집에 곰팡이가 피었는데 어떡하면 좋은지 등등. 오해가 없도록 말하자면 일본이면 그런 것 다 아는데 아무래도 생활습관도 다르고 무엇보다 집에 TV가 없어서 자본주의 정보가 안 들어오니까 모를 수밖에...

▲ 식사후 휴식시간. [사진제공-6.15산악회]
점심 후 시간 여유가 있어서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당연히 못다 한 잠을 채우기로 했다. 자고 있어도 여러 소리가 들린다. 멀리에서 정태 형이 젊은 여성회원과 대화하는 소리, 래곤 형이 순석 형과 대화하는 소리... 아침에 총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6.15산악회 총무이신 나순석 형님이 늦게 오신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어제 늦게까지 술을 드셨나 봐. 순석 형이 없어서 6.15산악회는 조용했다. 그때 마당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총무 나순석 형님이 도착하신 것이다. “새벽에 낚시에 갔다가 오느라 늦었어”, “정애가 있으면 못 가니까 정애가 출장 갔을 때 저도 데려다 주세요”라는 김익 씨의 소리도 들린다. 뭐?! 왜 내가 있으면 낚시를 못 가냐. 그냥 마음대로 갔다 오시지...

래곤 형이 김익 씨한테 6.15체육대회를 앞두고 축구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신다. 맞다, 체육대회! 나는 벌떡 일어났다. ‘제발 남자들이 축구 좀 이겨달라고요!’ ‘아무리 제가 이어달리기 1등을 해도 안 되잖아요!’ 나는 이래 뵈도 재작년 ‘6.15체육대회’ 이어달리기에서 두 번 다 1등 해서 MVP와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은 사람이다. 당연히 우리 양심수후원회가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과 형님들이 못나서 2년째 우승을 놓치고 있다. 체육대회 실행위원회 모임 때 범민련 남측본부 인옥 언니가 “올해 내가 1등 하려고 했는데 니가 들어와서 못하게 됐어”라고 하셨는데 당연히 올해 6월 6일에도 1등할 것이다!!

6.15산악회의 자랑, 산상강연

▲ 권오헌 회장이 산상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좀 잤기 때문에 머리가 맑아졌다. 뒤풀이 3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상강의도 아주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계환 대표님이 ‘한미정상회담’에 관한 강의를 하셨다. 남쪽에서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미국’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일제시대 친일파들이 일본을 찾아간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이런 준전쟁상태에서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는데 결국 특별한 성과 없이 ‘북의 변화’라는 일방적인 내용으로 끝났다.” 큰 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그러게. 친구와 싸웠을 때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니가 모두 다 나쁘다, 너만 사과해, 내 말만 들어. 이런 일이 통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라와 나라의 관계 또한 일방적으로 통고만 해서 대화가 성립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앞에서 ‘특별한 성과 없이’라고 말했지만 특별한 성과는커녕 아주 세계적인 망신을 하고 온 것은 이제 온 국민이 아는 사실이다. 이날 회원들의 회화 내용도 다 이것에 관한 것이었다. 강의는 이날 ‘메인’인 그 사건으로 이어졌다. 윤창중. 인선 당시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경력을 보고 어떻게 이런 사람이 대변인으로 임명하지? 언제 사고를 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기대대로, 아니 기대를 훨씬 넘었다.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 대변인이 ‘정치를 완전히 망쳤’으며 무엇보다 ‘지성의 절개’라는 말이 가장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여성 대통령 대변인이 외국에 나가서 공무 중에 성추행을 했다는 어마어마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켰는데 이것보다 더한 망신이 우리 민족 역사상 예가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을 처음 알았을 때 나 같으면 내 나라 수치를 외국에서 크게 터뜨리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피해자가 재미동포였다는 것을 알고 납득했고 그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국인이라도 미국에서 고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범죄에 엄격한 미국이기 때문에 이 정도 문제가 커진 것이 아닐까. 여기서 고소해봤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고 일본이라도 이렇게까지 안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일본이 남쪽보다 성범죄가 훨씬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일본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일본 네티즌들이 비웃고 있는 글을 봤다. 참으로 쪽팔리는 나라다. 예전에 영사관에서 국적을 안 바꾸는 이유를 쓰라고 해서 ‘하는 짓이 창피해서 안 바꾼다’고 쓴 적이 있다. 실은 이때 ‘쪽팔려서’라고 쓰려고 했는데 조금 부드럽게 쓴 것이다. 하도 창피한 일들이 많아서 그때 무엇 때문에 창피하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다음 그런 기회가 있으면 망설임 없이 ‘쪽팔려서’라고 쓸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남쪽에서 살고 싶냐? 자주 받는 질문이다. 김익 씨마저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여기에는 우리 선생님들이 계시고 6.15산악회 언니, 형님들이 계시잖아. 그리고 이제 남편까지 있다. 그런데 나한테 여기가 아니라 다른 어디서 살란 말인가!

이어서 이계환 대표님의 “권력이 대변인 컨트롤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미 소고기 문제가 터졌을 때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박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최근 한반도 위기를 해소하려는 남북관계 개선 노력보다 한미동맹에만 치우쳤다”는 이야기에 많은 회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권오헌 선생님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강의를 하셨다. 최근에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국보법을 자꾸 개정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셨다. “‘이적단체’를 ‘범죄단체’로 규정하려는 것이다. 이명박이 범민련에 이어 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규정했는데 이것은 자주통일단체의 씨를 완전히 말리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서 사상의 자유가 없다. 지금 통일단체들은 물론, 정당, 사회단체 할 것 없이 탄압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당연한 이치인 통일까지 막으려는 것이야 말로 반국가가 아닌가. 긴급조치 1호가 생각난다. 요즘 옛날 사건들에 대해 긴급조치는 위법이라는 무죄판결이 나왔다. 시대가 바뀌고 구성원의 이익관계가 바뀌면 언제 국가보안법도 위법이 될 것이다.”

정봉주 민주당 전 의원이 감옥에 있을 때 양심수후원회에 편지를 보내왔다. “... 열린우리당 시절 국보법폐지 못했던 것이 통탄할 아픔으로 다가오더군요... 더 열심히 노력해서 함께 양심수 없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이 약속을 꼭 지켜주기 바란다.

여행증명서 발급 안 해주고 있어

▲ 조심조심, 하산길 [사진제공-6.15산악회]
단체소식, 개인소식 전달시간에 김순자 어머니가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좋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김순자 어머니는 억울하게 ‘삼척간첩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게 되셨고 이번에 34년 만에 무죄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 나라에는 국가권력으로 인해 억울하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억울하게 사는 사람이 없는 나라가 되기에는 한없이 멀다.

내 최근 상황을 회원들한테 설명했다. 이번 입국 시 5월 6일이 만료기간인 여행증명서로 들어왔다. 5월 2일에 외교통상부 여권과에 가서 신청을 했는데 벌써 1주일 이상 지났는데도 외교통상부는 그후 여행증명서를 발급 안 해주고 있다. 발급 받고 싶으면 오사카로 가는 비행기표나 가는 날짜라도 말하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김익 씨와 담당 여직원이 통화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뒷목이 땡겼다. 나는 혈압이 낮아서 이제까지 살면서 그런 증상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요즘 자주 혈압이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요즘이라는 것은 5년 전 정도부터를 말한다.

일제시대 때 본의 아니게 고향땅을 떠났다가 이국에서 온갖 고난을 겪은 사람들의 자손이 다시 고향땅을 찾아와 고향땅이 좋아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런 겨레를 받아주기는커녕 아주 내쫓으려고 하고 있다. 나는 이 나라에 살 권리가 있다. 무엇보다 이 나라 출신자의 자손이기 때문이고 이 나라 남자와 결혼하여 법적인 증명서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법무부는 ‘조선적동포도 한국국적자’라는 검토의견을 냈다. 법이 그렇다는데 법을 안 지키려고 하는 것은 여기가 법치국가가 아니기 때문인가.

이러니 유능한 인재를 놓치는 것이다. 나야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재일조선인이지만 그 동안 남쪽은 한국국적 동포인 추성훈, 이충성과 같은 국제적으로 통하는 운동선수들마저 받아드리기는커녕 막 버렸다. 결국 일본으로 귀화시키는 원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기 조국이라고 생각한 나라에 버려진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이제까지 일본으로 귀화한 그들이 너무나 싫었고 이해 못했지만 이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일본에 우리가 모르는 제2, 제3의 추성훈, 이충성이 한없이 많이 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니까 확실히 아침에 다친 발목이 더 아파졌다. 그냥 올라올 수 있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놔두면 체육대회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그러면 인옥 언니가 너무 좋아하실 것이다. 사실 인옥 언니는 내 라이벌이 아니지만 내 다음으로 젊은 여자이기에 충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 산행기를 쓰는 동안 발이 곰발처럼 됐다. 발등의 혈관도 없어졌다. 빨리 침을 맞아야 하는데... 나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병원도 갈 수 없다. 치과도 다녀야 하는데 말이다. 사랑니가 잘못되어 수술할 예정이었는데 급하게 들어오게 된 바람에 수술을 못하게 된 것이다. 나머지 5년 그냥 놔두면 큰일 나는데 어떡하지...

이상하게 2차로 끝난 뒤풀이

▲ 하산도중 체력단련장에서 운동기구로 운동을 하는 회원들. [사진제공-6.15산악회]
이번 산행기도 내가 쓰게 되어 눈치를 챈 김익 씨가 내려갈 때 아주 잠깐 도와주었다.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였다. “남자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하는 소리가 들려 왠지 날카롭게 반응해서 봤더니 어떤 좀 튼튼한 아저씨가 빈약해 보이는 아저씨한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몸이 좀 튼튼한 아저씨는 자기 옷을 올려 배를 보였다. ‘허걱!’ 거기에는 실망스러운 늘어진 배가 있을 뿐이었다. 우리 회원들의 탄탄한 배를 보여주어야겠구먼. 운동기구로 열심히 운동하는 척하는 회원들 모습을 돌아보았다. 늘 ‘이 근육을 보시오!’라고 팔 근육을 자랑하는 김익 씨의 배는 그 아저씨와 뭐라 다름없을 것 같았다. “지방에 가려진, 권상우도 부러워할 정도의 王자”는 이제 평생 보기 힘들 것 같다. 우리 형님들은... 다들 1년 반전에는 지금보다 괜찮지 않았을까... 그나마 상근 형님과 현수 형님이 괜찮나? 거기서 떠나면서 오히려 우리 선생님들이 훨씬 날씬하시고 몸이 좋으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속에서도 89세가 되시는 류기진 선생님을 모시고 그 아저씨 앞에 갔어야 했는데...

2차 뒤풀이 중에 심재환 변호사님이 오셨다. 아침에도 오셔서 잠깐 같이 등산하시다 일이 있어서 가셨는데 다시 오신 것이다. 참 반가운 손님이셨다. 옛날 <민족21>인가 양심수후원회 주점(?) 티켓을 내가 맡아서 판 적이 있었는데 티켓을 받지 않고 돈을 많이 주셔서 잘생기고 참 좋은 분이라는 인상이 있었다. 나중에 <민족21>의 편집기획위원이시고 이정희 대표님 남편이시라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란 것이 기억난다. 지난 달 양심수후원회 월례강좌에서 뵈었는데 앞으로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다.

이날 뒤풀이는 이상하게 2차로 끝났다. 2차에서 너무 비싸고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어서 그런지 돈이 이제 없어져서 그런지, 아니면 김재선 대장님이 1차에서 빠지셔서 그런지... 다 같이 사당역까지 갔는데 도중에서 심재환 변호사님, 순석 형, 정태 형, 영호 형님의 모습이 안 보인다. 어디로 가셨을까... 방향이 같은 윤경 언니와 우리 부부는 누가 내려오는지 지하철플랫폼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6.15산악회의 또 한 쌍의 부부, 한정아 언니와 김남순 형님, 그리고 남동생이신 한광규 형님이 내려오셨다. 한광규 형님과 현수 형님은 이번 체육대회 때 양심수후원회에서 뛰시기로 약조하셨다는 것을 명기한다. 그런데 아까 이분들과 같이 내려오시던 모성용 형님의 모습이 안 보인다. 이상하다. 혹시 호출을 받고 다시 올라가셨나? 설마, 개찰구에서 들어오시는 것을 봤는데. 우리 셋이 여러 억측을 해 보았다. 그때 윤경 언니 전화가 울렸다. 모성용 형님은 화장실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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