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지구촌동포연대)에서는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포 소식’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사할린, 일본, 중국 동포로서 한국 혹은 거주국에서의 일상과 그 삶 속에서 느끼는 문제의식, 울림, 바람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KIN의 ‘동포 소식’을 공동 게재해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작년 여름부터 도쿄 신주쿠 오오쿠보와 오사카의 이쿠노쿠 츠루하시 등 재일동포가 다수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한국과 재일동포 등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를 동반한 집회와 데모가 반복되고 있다. 금년 2월 10일과 11일, 오오쿠보에서 일어난 데모에서는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 ‘당장 목 매달아라, 조센진’ 이라고 쓴 프랭카드가 걸렸고, 2월 24일 츠루하시에서는 여중생이 ‘남경대학살이 아니라 츠루하시대학살을 실행한다’고 말하는 등, 말들이 너무나도 강렬하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인종주의와 배외주의(排外主義) 행동이 한층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미디어를 통해 듣거나 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러한 행동은 중국계 상점이 많고, 중국인 주민도 많은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에서도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4월 21일 오오쿠부에서 개최된 데모의 제목은 ‘일본인 차별을 없애라 in 신오오쿠보(新大久保)’. 어찌됐건 국적상으로 치자면 0.5% 정도의 한국/조선적과 중국국적자가 98%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인을 차별하고 있고, 일본인은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날은 위에 나온 것처럼 특정 민족을 ‘죽인다’고 하는, 바로 제노사이드를 나타내는 단어는 아무래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런 표현은 거의 볼 수 없었지만, 그 대신에 나온 것이 ‘반일극좌집단은 몰살하자’라는 표현. ‘반일극좌집단’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또한 ‘반일극좌집단’이라면 몰살을 요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그 정반대가 되는 ‘친일극우집단’의 몰살은 용인되는 것인가. 그 데모를 진행하고 있는 주체야말로 바로 그렇지 않은가.

최근 신주쿠 오오쿠보에서 반복되고 있는 배외주의데모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분노를 넘어 피로감, 허탈감을 느낄 뿐이다. ‘재일 특권’이라든가 한국인/조선인이 일본에서 범죄만 일으킨다거나 하는 말은 이미 10년 이상 전부터 인터넷에서는 지겨울 정도로 봐 왔던 말이다. 이전에 활동했던 단체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러한 근거도 없는 추한 말들이 끈질기게 몇 번이나 계속 올라와서 정작 우리들이 만나고 싶었던 재일동포들이 홈페이지 접속 자체를 하지 않게 돼 버렸던 아픈 경험이 떠오른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가두에서 일어나게 된 현상을 직시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 재일동포들에게 평온하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 이런 배외주의에 항의하는 행동도 최근 들어 빠지지 않고 매번 일어나고 있으며, 그 규모는 회를 거듭할 때마다 커지고 있다. 그러한 반격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전부터 활동해 왔던 활동가들이 아닌 현재의 배외주의의 움직임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음을 느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심한 사람들인 것 같다. 이런 추한 배외주의에 대해 무엇인가 리액션이 일어날 정도의 ‘건전함’이 아직 일본사회에는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느끼게 해 준다.

단 그 중에서 아무래도 위화감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말이 있다. 배외주의데모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가’라고 하는 말이다. 바로 재일동포들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싫으면 조선반도로 돌아가라’라고 공격하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피차별자(피해자)를 향한 차별, 모욕의 말을 굳이 차별자(가해자)에게 사용하는 전법도 있을 수 있다는 것에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 ‘돌아가’라는 말이 정말 그 정도까지 깊은 생각을 가지고 사용되어지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필시 재일동포가 이 말에 상처받는 가장 큰 이유는 ‘돌아갈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면서 사용되어지는 것에 내포된 폭력성 때문이다. 배외주의를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 그 데모대 안에는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 신주쿠 오오쿠보라는 지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지만, 혹시 그 중에는 재일동포가 한 사람이라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 ‘돌아가’라는 말이 맹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러한 배외주의 집회/데모를 없애고 싶다. 단 그 과정에서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을 제대로 선택해 가야할 것이다. 투쟁을 고무하는 자극적인 말만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것은 너무 괴롭다. 한국의 재외동포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국에서 이러한 배외주의적 표현이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일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용서할 수 없는 배외주의 행동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의 추한 말로 응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일본인을 매도하는 것에는 응원할 수 없다. 우리들의 조국은 타자를 존엄을 가진 존재로서 제대로 보도록 노력하는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리 재일동포에게 가장 큰 응원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재일동포 3세.
NPO법인 코리아NGO센터 도쿄사무국장
http://korea-ngo.org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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