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지구촌동포연대)에서는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포 소식’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사할린, 일본, 중국 동포로서 한국 혹은 거주국에서의 일상과 그 삶 속에서 느끼는 문제의식, 울림, 바람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KIN의 ‘동포 소식’을 공동 게재해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이전 글에서 ‘더블’의 존재와 직면했을 때, 우리는 기존의 역사관과 민족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하는 상황에 놓인다고 언급했다. [이전 글 보기]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역사관.민족관을 재구성 해 나가야 하는가. 아주 어려운 문제이지만, ‘더블’인 당사자는 일상적으로 <일본인/재일조선인 = 가해자/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시선을 실제로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으며, 그 의미에서는 현실의 절박한 문제로서 역사관.민족관을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더블’인 Y씨는 “가해와 피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내 질문에 대해 “자신은 가해자이기도 피해자이기도 하다”고 대답했다. 이 말은 두 가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하나는 고교시절에 만난 재일조선인 친구에 대한 왕따를 둘러싼 경험이다. 그의 친구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 친구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Y는 왕따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왕따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그것을 방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조선인성(朝鮮人性)’도 상처받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결국은 왕따를 방관함으로써 차별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회고했다. 즉 그는 이 경험을 통해 가해/피해 관계는 당연히 선천적으로 고정된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취하는 방법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항상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가 있다는 이해를 가지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그의 할머니를 둘러싼 입장에 관한 경험이다. 그는 ‘일본기독교 개혁파교회’의 목사로 일하고 있지만, 그 단체의 전신인 ‘일본기독교회’는 식민지 당시 조선인 교인에 대해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결국은 조선인교회를 강제로 병합시킨 역사가 있다. 한편 그의 할머니는 재일조선인교회의 열성적인 기독교인이었다. 즉, 그는 일본 교단에 속한 목사로서는 가해자의 입장이고, 할머니의 손자로서는 피해자의 입장에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험은 그가 ‘더블’인 것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인간은 차별하는 측과 차별받는 측으로 구분하는 방법’에 의문을 갖게 되었고, 내가 처음에 언급한 바와 같이 ‘더블’로서의 역사관.민족관을 구축해 나가게 되었다. 그는 기독교의 기본 개념 중 하나인 ‘원죄론(原罪論)’에 따라, 가해자이기도 피해자이기도 하는 자신의 입장을 ‘죄책(罪責)’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이 사고방식에서는 자기 자신이 저지른 죄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윗세대가 전쟁에서 저지른 가해행위에 대한 부채도 스스로 받아 안고, 또한 일본 사회에 ‘죄의식을 키워내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까지도 개인의 죄책으로 추궁 당한다. 즉, 그는 할머니가 ‘조선인 기독교인’으로 입은 피해도 ‘죄책’으로 계승해 자신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자신의 역사성을 묻고자 할 때, 사람은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에 얽매이지 않고 한 사람의 주체로서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각각이 역사에 대해 “과거의 고통과 죽음에 대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곽기환, 2006,「차별과 저항의 현상학」)의 감각을 가지고 그것을 타자와 공유했을 때, 거기에는 재일조선인/일본인/‘더블’이라는 카테고리에 의존하지 않는 공동성이 창출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Y씨 자신은 그러한 공동성의 가능성을 느끼고 ‘죄책’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더블’로서 일상을 사는 가운데 구축해온 역사관은 차별.억압구조를 없애가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이념이 무엇인지를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필자 소개]
리홍장
교토대학 박사(문학). 사회학 전공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조치(上智)대학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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