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8일 개성공단에서 근로자 철수와 개성공단 사업 잠정중단을 결정했다. 또 개성공단의 존폐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개성공단을 전격 방문한 김양건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는 오후에 ‘개성공업지구사태와 관련한 중대조치를 취함에 대하여’라는 담화를 발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여야 할 공업지구가 동족대결과 북침전쟁 도발의 마당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은 비극이며 그러한 개성공업지구는 없는 것보다 못하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남북간 갈등과 대립이 격화된 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래도 개성공단만은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제 남북관계 마지노선이 무너지기 직전이다. 6.15공동선언의 산아, 남북관계의 최후 보루로 불린 개성공단이 2004년 첫 생산품을 출하한지 9년 만에 존폐의 갈림길에 서는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남측의 보수언론들과 일부 당국자들은 뭣도 모르고 떠들다가 대사(大事)를 그르쳤다. 보수언론들은 북측이 달러박스인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못할 것이라느니 또 북측이 더 큰 손해이니 개성공단 문을 닫지 못할 것이라고 큰 소리 쳤다. 그러나 어찌되었나? 김양건 담화는 “남조선의 보수세력은 지금 우리가 개성공업지구를 통해 덕을 보고 있는 것처럼 떠들면서 공업지구만은 절대로 깨지 못할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우리는 경제적으로 얻는 것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남측”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개성공단에서) 만약 사태가 생기면 군사조치와 더불어 만반의 대책도 마련돼 있다”고 말해 ‘인질사태시 구출작전’ 논란에 휘말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김양건 담화는 “국방부장관 김관진은 ‘인질구출’ 작전을 떠들며 개성공업지구에 미군특수부대를 끌어들일 흉심까지 드러냈다”고 겨냥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남북관계의 완전 파탄을 의미한다. 남북관계는 어둠 속에 갇힌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 운명을 용인할 것인가?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대북 특사 파견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다. 대통령의 특별 임무를 맡는 특사란 짧은 시간에 높은 효율을 가져올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각을 다투는 현 시점에서 이보다 더 유용한 방법은 없다. 문제는 정부당국이 대북 특사 파견에 인색하다는 점이다. 반대론자들은 ‘북측에 고개를 숙이는 게 된다’, ‘북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특사를 파견했다가 아무 성과가 없으면 낭패’라는 식의 논지를 편다. 그러나 이는 대북 대결론자들의 상투적인 논리일 뿐이다. 그럼 가만있자는 것인가? 김양건 담화는 개성공단 사업 잠정중단을 결정하면서 “이후 사태가 어떻게 번져지게 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태도여하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남측이 가만있으면 개성공단은 자동으로 닫히게 되어있다. 뭔가 움직여야 한다. 특사가 움직여야 한다. 왜 그런가?

지금 시기 대북 특사를 파견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반도 정세가 계속 위기로 치닫고 남북관계가 나락으로 떨어져도 박 대통령은 주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수정 요구를 거절해 왔다. 이제 빛을 발할 때다. ‘신뢰’란 그것을 요구하는 쪽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야 상호신뢰가 형성된다. 북측에게 신뢰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남측이 먼저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대북 특사를 파견하는 것 자체가 신뢰 조성이다. 아울러 일부 언론과 김관진 장관이 깎아먹은 대북 신뢰를 회복하는 게 된다. 그러면 신뢰 프로세스가 활력을 얻고 탄력을 받을 것이다. 북측은 박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판을 자제해왔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평가를 유보해 왔다. 박근혜 정부가 대북 신뢰의 표시로 특사를 파견한다면 북측은 그에 걸맞는 화답을 할 것이다. 이후 남측은 ‘신뢰의 우월성’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선점하는 덤도 얻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 특사 파견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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