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외교관례 깨질 만큼 악화된 한미관계

2013년 2월 25일에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외국 경축사절들이 참석하였는데, 꼭 참석했어야 할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미국의 경축사절로 참석했어야 할 국무장관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 날 취임식장에 나타난 미국의 경축사절은 존 케리(John F. Kerry) 국무장관이 아니라 톰 도닐런(Thomas E. Donilo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이었다. 서울에서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된 시각, 존 케리 국무장관은 전용기를 타고 영국 런던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다른 나라 국가수반 취임식에 어떤 급의 미국 정부관리를 경축사절로 보내느냐 하는 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하는 외교사안이므로, 경축사절 파견은 미국이 경축사절을 보내는 나라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들 가운데 하나다.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미국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국무장관을 경축사절로 보내지 않고 그 보다 한 급 낮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보낸 것은, 미국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인 현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 직후 청와대에서 각국 경축사절들을 연이어 접견하였는데, 태국 총리, 일본 부총리, 중국 국무위원, 칠레 전 대통령,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 싱가포르 전 총리 순으로 만났다. 그 날, 미국의 경축사절 도닐런의 모습은 청와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축사절 접견은 이튿날 계속되었는데, 호주 총독,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인도네시아 부통령, 페루 부통령 순으로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접견일정 둘째 날에 가서야 호주 총독의 뒤를 이어 미국의 경축사절을 만나준 것은, 국무장관보다 한 급 낮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축사절로 보낸 미국에게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집권 2기에 들어선 오바마 정부와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 한미관계가 갈등을 겪고 있다는 판단은 비단 경축사절 문제만 보고 확대해석한 것이 아니다. 취임식 전부터 한미관계에 아래와 같은 갈등현상이 나타나고 있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특사 방미 요청을 거절한 미국

2013년 2월 6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였다. 그는 박근혜 당시 당선인이 미국에 보낸 정책협의대표단을 이끄는 단장 자격으로 방미한 것이다. 원래 남측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전에 주한미국군사령부를 굴욕적으로 방문한 뒤에 특사부터 워싱턴에 보내는 것이 한미관계에 정착된 관례인데, 이상하게도 박근혜 당시 당선인은 특사단이 아니라 정책협의대표단을 워싱턴에 보냈다. 아직도 그렇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활동하던 지난 2월 초에는 무슨 정책이 아직 나올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특사단을 보내는 외교관례를 벗어나 생뚱맞게 정책협의대표단을 보냈으니, 누가 봐도 한미관계에 뭔가 심각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다.

원래 대통령 당선인의 방미특사는 외교관례에 따라 당선인 친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전하는 임무는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한구 정책협의대표단 단장은 특사가 아닌데도 박근혜 당시 당선인의 친서를 가지고 워싱턴에 갔다. 박근혜 당시 당선인이 특사를 통해 보냈어야 할 친서를 특사가 아닌 사람을 통해 미국 대통령에게 전한 것은, 박근혜 당시 당선인이 특사를 워싱턴에 보내려고 했으나 미국이 거절하는 바람에 특사를 보내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미국의 거절로 특사 자격을 갖지 못한 채 워싱턴에 나타났으니,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그런 그를 만나줄 리 없었다. 미국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정책협의대표단은 워싱턴에 도착한 날, 6.25전쟁 참전 기념비 또는 조선왕조 말기 공사관 건물 같은 곳이나 한가하게 둘러보면서 방미 첫날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정책협의대표단을 만나준 미국 정부 관리들은 국무부 부장관, 국무부 정무차관, 국방부 부장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차관급이었다.

어떤 나라가 워싱턴에 특사를 보내는 경우, 미국의 특사 접견 일정은 방미 전에 외교통로를 통해 미리 확정되는 법이다. 그런 외교관례에 따라, 박근혜 당시 당선인도 정책협의대표단을 워싱턴에 보내기 전에 미국 국무장관의 정책협의대표단 접견을 요청하였으나 미국은 그 요청마저 거절하였다. 이처럼 특사 방미 요청을 거절당하고, 국무장관 접견 요청마저 거절당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숨긴 채 워싱턴에 나타난 정책협의대표단은 워싱턴 주재 남측 언론사 특파원들에게 마치 국무장관 접견일정을 현지에서 조절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으나, 그것은 자기들의 체면치레를 위한 촌극이었다.

이제껏 남측 역대 대통령들이 공식출범을 앞두고 한미관계에서 시행한 외교관례는, 취임 전에 특사단을 워싱턴에 보내 친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전하고, 미국 대통령은 국무장관을 대통령 취임식 경축사절로 서울에 보내 남측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하는 것이었다. 이런 외교관례를 돌아보면, 2008년 1월 23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워싱턴에 보낸, 정몽준 국회의원을 단장으로 한 특사단은 백악관에 들어가서 조지 부쉬(George W. Bush)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하였고, 부쉬는 정몽준 단장과 악수하며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미국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국무장관을 경축사절로 보냈고, 그보다 앞서 2003년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는 콜린 파월(Colin L. Powell) 국무장관을 경축사절로 보낸 바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한미관계에서 생겨난 갈등으로 이번에 그런 외교관례가 깨져버렸다.

박근혜 당시 당선인은 미국이 거절하는 바람에 특사를 워싱턴에 보내지 못하고 베이징에만 보낼 수 있었다. 2013년 1월 21일 김무성 새누리당 전 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사단이 베이징에 가서, 양제츠(楊潔篪) 중국 외교부장을 면담했고, 전인대 부위원장, 외교담당 국무위원, 당대외연락부장, 외교부 상무부부장을 두루 만났고, 1월 23일에는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접견을 받고 친서를 전달했다.

특사를 맞아들인 중국의 태도와 특사를 거절한 미국의 태도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보인다. 지금 친미수구언론들은 갈등현상을 은폐하고 있지만, 한미관계는 외교관례가 깨질 만큼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과 함께 줄줄이 터진 핵악재들

박근혜 정부가 공식 출범하기 전부터 한미관계가 심한 갈등을 겪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파악하려면, 2013년 1월 중에 박근혜 당시 당선인의 공식활동을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의 1월 중 공식활동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심각한 사태는 2013년 1월 15일에 일어났다. 그 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폐지하고, 그 위원회의 권한과 업무를 새로 설치하려는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겠노라고 밝혔다. 원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11년 3월 11일에 대통령 직속 독립기구로 출범하였는데, 당선인 시절의 박근혜 대통령은 그 위원회를 폐지하고 미래창조과학부에게 그 위원회의 권한과 업무를 넘긴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박근혜 당시 당선인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폐지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자력안전위원회 존폐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핵정책에 직결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주목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자력안전위원회 폐지결정이 현재 진행 중인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과 맞물리면서 한미관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에 관련하여 아래의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2013년 1월 하순 박노벽 외교통상부 한미원자력협정 협상전담대사가 워싱턴에 가서 로벗 아인혼(Robert J. Einhorn) 미국 국무부 비확산 및 군축 담당 특별보좌관과 만나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기 위한 협상을 벌였다. 거의 같은 때에 김건 한미원자력협정 실무단장도 워싱턴에 가서 리처드 스트랫퍼드(Richard J. K. Stratford) 미국 국무부 원자력안전안보과장과 만나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기 위한 별도의 협상을 벌였다.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기 위한 쌍방의 협상은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협상에 내장된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력하고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선인 시절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남측 각지에 산재한 23개소의 원자력발전소들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spent fuel)를 처리하는 핵재처리 권한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가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건식처리공법(pyro-reprocessing)을 협정 개정을 통해 보장받으려는 것은 무기급 핵물질을 추출하겠다는 소리이며,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게 아니냐 하는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이므로, 핵재처리 문제는 한미관계에 갈등의 파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원자력발전소만 가동하는 전 세계 비핵국가들 가운데 미국이 핵재처리권을 허락한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그 밖의 다른 비핵국가들은 원전을 가동하고 있으면서도 핵재처리를 금지당하고 있으며, 그런 나라들의 핵활동은 미국의 상시적인 감시를 받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는 협상에서 핵재처리권을 미국에게 요구하고 나섰으니, 미국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한미관계가 심한 갈등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에 더하여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핵악재가 줄줄이 터졌다.

첫째, 남측의 핵재처리를 금지한 한미원자력협정은 1974년에 체결되었는데, 그 협정의 시효는 2014년 3월에 만료된다. 그래서 남측과 미국은 그 협정을 개정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는 중이다.

그런데 남측 국회와 미국 연방의회가 각각 협정안을 비준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산정하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끝내야 하는 시기는 2013년 상반기로 당겨진다. 핵재처리권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문제를 2013년 상반기에 처리해야 하는 급박한 일정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들이닥친 첫 번째 핵악재다.

둘째, 2013년 2월 12일 북이 실시한 제3차 핵실험은 미국의 세계 핵통제체제를 무너뜨리고 북미관계를 뒤집어버린 제6핵강국이 등장하였음을 알린 엄청난 사변이었다. 그 엄청난 사변은 당시 공식취임을 앞두고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치적 치명상을 입혔다. 북미관계를 뒤집어버리며 핵강국으로 등장한 북을 상대할 아무런 방책도 그녀의 시야에 보이지 않을 터이니, 북의 제3차 핵실험은 그녀에게 들이닥친 두 번째 핵악재다.

셋째, 북의 제3차 핵실험으로 속이 뒤집힌 새누리당에서 충격적인 핵개발론이 거론되었다. 이를테면, 북이 제3차 핵실험을 실시한 날, 정몽준 새누리당 전 대표는 보도자료에서 “우리 스스로의 핵억제력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핵개발 불가피론을 주장하였고, 이튿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는 핵개발 당위론이 난무하였다.

그들의 핵개발론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가뜩이나 날카로워진 미국의 신경을 한층 더 자극하였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핵개발론을 들고 나와 한미관계 갈등을 더 격화시킨 것은 그녀에게 들이닥친 세 번째 핵악재다.

핵재처리권 확보를 향한 그녀의 강한 집념

<연합뉴스> 2013년 2월 4일 보도에 따르면, 2013년 1월 하순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미국은 협정을 개정한다 해도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권한을 허락할 수 없다는 금지선을 그었다고 한다. 또한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KBS> 2013년 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2년 연기하자고 제의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한미협상이 핵재처리권을 놓고 난항과 긴장을 겪고 있던 민감한 시기에 박근혜 당시 당선인이 미국에게 보여준 태도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고 말았는데, 그 사연은 이렇다.

2013년 1월 16일 박근혜 당시 당선인은 서울을 방문한 커트 캠벨(Kurt Cambell) 당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비롯한 미국 정부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핵폐기물 처리 문제가 대선 공약으로 국민들께 말씀드렸던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인 만큼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국제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을 제안하고 논의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박근혜 당시 당선인은 2013년 2월 1일 서울을 방문한 에드워드 로이스(Edward Royce) 미국 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원자력협정이 개정되도록 관심을 갖고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의 이런 발언들은 핵재처리권을 허락해달라는 강한 메시지를 미국에 보낸 것이다.

주미한국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당시 당선인이 미국에 보낸 정책협의대표단은 웬디 셔먼(Wendy R. Sherman)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한 박 당선인의 입장과 의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특사 방미 요청을 미국에게 거절당하고 정책협의대표단을 워싱턴에 보냈으면, 그들이 워싱턴에 가서 민감한 현안에 관한 발언을 자제했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핵재처리권을 확보하려는 자신의 의사를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에게 정책협의대표단을 통해 공식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미국을 계속 자극하였다.

위와 같은 사실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핵재처리권을 확보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다.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마지막 으뜸패(matador)’를 미국에게 꺼내놓고 말았으니, 새로 설치하려는 미래창조과학부장관에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을 내정한 것이 그것이었다. 2013년 2월 17일 박근혜 당시 당선인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미국 국적자(당시)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을 미래창조과학부장관에 내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남측 핵활동을 감시하는 임무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수행하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바로 그 감시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인물을 핵활동부서의 총책임자로 내정한 것은, 미국이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인물을 핵활동부서의 총책임자로 내세웠으니 미국은 더 이상 반대하지 말고 핵재처리권을 허락해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에서 “새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가 창조경제를 선도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부부처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미래창조과학부만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그녀가 미래창조과학부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백악관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미국을 자극하는 행동만 계속하고 있고,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재처리권 요청을 들을 때마다 1979년의 악몽이 기억 속에 떠오르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 악몽은 미국의 비확산정책을 거역하고 핵재처리 강행으로 핵무기를 기어이 만들려는 야망과 집착에 사로잡힌 유신독재자를 제거하기 위해 10.26 사태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였던 미국의 과거경험이 불러내는 악몽인 것이다.

미국의 비확산정책을 거역한 유신독재자가 결국 자기 심복의 손에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던 때로부터 34년이 지난 오늘 바로 그 유신독재자의 딸이 청와대에 들어가서 핵재처리권 확보에 그토록 집착하고 있으니, 미국이 그녀에 대해 어찌 섬뜩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핵재처리권 확보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1970년대에 그녀의 아버지가 미국의 비확산정책을 거역하며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였던 전철을 밟아가는 행동이다. 한미관계가 심한 갈등을 겪게 된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유신독재의 핵그림자 바라보는 미국의 살벌한 시선

서울 외교가의 소식통이 전한 말을 인용한 <스카이데일리> 2012년 12월 19일 보도기사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는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본다는 내용의 비밀전문을 백악관에 보냈다고 한다. 미국이 남측의 대선마다 개입공작을 벌여 선거판세를 좌우해왔다는 사실은 ‘위킬릭스’가 폭로한 주한미국대사관 비밀전문들에서도 드러난 바 있는 공공연한 비밀인데, 위의 보도기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지난 대선에서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가 문재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백악관에 보고하였다면, 그것은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이 문재인 후보를 당선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2012년 12월 15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독재자의 딸에 대한 백악관의 불편한 시선’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의 2012년 대선개입공작은 실패하였고, 미국의 기대는 꺾이고 말았다. 미국의 2012년 대선개입공작이 왜 실패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미국이 왜 생각을 바꿔 문재인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있다. 만일 유신독재자의 딸이 대권을 잡을 경우, 1970년대에 미국의 비확산정책을 거역하며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였던 유신독재의 핵그림자가 청와대에서 또 다시 어른거리게 될 것을 우려한 미국은 그런 과거사와 무관한 문재인 후보를 당선시키는 쪽으로 공작방향을 전환하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미국의 그런 우려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되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이 박근혜 정부에게 핵재처리권을 허락하는 ‘특혜’는 미국이 자기의 핵확산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핵확산을 막으려는 미국의 비확산정책은 미국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미국의 국익들’ 가운데서도 최상위 ‘국익’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자기의 최상위 ‘국익’을 훼손시키면서 박근혜 정부에게 핵재처리권을 허락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핵재처리권 확보를 향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집념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살벌한 시선으로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나타나지 않았던 존 케리 국무장관이 3월 중에 서울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는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청와대를 바라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심사가 얼마나 뒤틀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3월 중에 열릴 박근혜-케리 회담에서도 핵재처리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관계에 일어난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파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핵문제와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 좀 다른 점이 있다면, 1970년대에 그녀의 아버지는 군사정권 독재자답게 미국의 핵확산정책을 거역하면서 ‘비합법적인 핵개발’에 집착하였던 반면, 오늘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여 핵재처리권을 확보하는 식으로 ‘합법적인 핵개발’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합법적인 핵개발’ 요구가 미국의 강제로 가로막혔을 때, 박근혜 정부가 ‘비합법적인 핵개발’로 은밀히 돌아설 ‘배반의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오늘 미국을 끝없이 괴롭히는 큰 우환거리다.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핵재처리권 확보에 집착하는 행동은 미국의 비확산정책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다. 청와대에 어른거리는 유신독재의 핵그림자를 미국은 어떻게 걷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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