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최근 한반도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남북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새 대통령의 취임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미 취임사 모두에서 “지금 글로벌 경제 위기와 북한의 핵무장 위협과 같은 안보위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현 정세를 진단하면서 ‘안보문제’를 중요하게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대목에서 처음부터 “북한은 하루빨리 핵을 내려놓고, 평화와 공동발전의 길로 나오기 바란다”며 ‘핵포기’를 다그친 건 상대에 대한 예가 아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북한에 대한 첫 인사 치고는 고약하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취임사 어디에도 평화문제나 통일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안보문제만 무성하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 한반도 정세가 매우 엄중한 건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출범 초부터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의 후유증 앞에 서 있다. 안보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취임사에서 평화문제와 통일문제가 실종되고 안보문제만 부각된다는 건 그만큼 그의 국정철학의 빈곤함과 비전제시의 협소함을 반증할 따름이다. 이 정도라면 분단시대와 정전체제에 사는 대통령인가 의심이 들 정도라 아니할 수 없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0시를 기해 제18대 대통령으로서의 업무를 시작했다. 그 첫 업무로 군 통수권을 공식 인수받으면서 합동참모본부에 핫라인을 통해 정승조 합참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북 감시ㆍ경계태세를 확인하고 점검한 터였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는 안보문제를 이미 강조했지 않은가.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지론대로 ‘튼튼한 안보’ 다음에는 당연히 통일문제와 남북문제에 대한 입장을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보이는 건 ‘행복한 통일시대’와 같은 추상적 용어뿐이다.

그나마 “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한민족 모두가 보다 풍요롭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며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꺼낸 것은 다행이라고 치자. 그러나 곧바로 “서로 대화하고 약속을 지킬 때 신뢰는 쌓일 수 있다”면서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진전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신뢰문제’를 일방적으로 북측에만 미루고 있다. 박 대통령은 신뢰의 표시로 북측에 대화를 제시했어야 했다. 상대편이 먼저 신뢰를 보이라는 건 신뢰의 표시가 아니라 일종의 강요다.

분단된 한쪽의 대통령 취임사는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민족에게 평화의 분위기와 통일의 전망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통일의 전망은커녕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어떠한 단서조차 내놓지 않았다. 하다못해 남북이 그간 합의한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피력하지 않았다. 오직 대북 안보의식과 지어 대결의식조차 보인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줄곧 ‘국민행복시대’를 강조했다. 분단국가에서 평화문제와 통일문제에 대한 전망 없이 안보문제만 강조해서는 진정한 국민행복시대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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