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년 동안 속셈 감추고 기만극 연출해온 백악관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북의 핵추구에 대한 가장 가능성 있는 장기적 해결책이 북의 붕괴(North's collapse)와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absorption into a South-led reunified Korea)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단기적 또는 중기적 위협에 대처하는 충분한 근거가 아니다. 역사가 제 길로 들어서기까지, 북의 핵프로그램을 지체(slow down)시키고 동결(freeze)시키고 퇴락(degrade)시키는 전략이 여전히 요구되었다.”

이것은 제프리 베이더(Jeffrey A. Bader)가 2012년에 펴낸 책 ‘오바마와 중국의 부상(Obama and China's Rise)’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베이더는 오바마 집권 1기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으로 백악관의 대북정책을 이끌었던 핵심인물이었다.

위의 인용문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숨겨진 속셈이 베이더의 서술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의 서술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의 대북정책에 숨겨진 속셈은 ‘북의 붕괴와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이다. 그리고 그런 속셈을 이룰 때까지 북의 핵프로그램을 지체시키고 동결시키고 퇴락시키겠다는 것이다.

베이더는 ‘북의 붕괴와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이라고만 간단히 서술하였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의 붕괴와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이라는 말은 무력침공으로 북측 정권을 붕괴시킨다는 미국 군부의 북침전쟁론을 백악관의 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백악관은 미국의 속셈을 ‘북의 붕괴와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이라고 표현한데 비해, 미국 군부는 미국의 속셈을 ‘작전계획 5027’과 ‘작전계획 5029’에 담아놓았다. 똑같은 속셈을 그렇게 다른 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미국 군부의 북침전쟁론을 정밀한 작전계획으로 꾸며놓은 것이 ‘작전계획 5027’과 ‘작전계획 5029’다.

‘작전계획 5027’은 미국군 병력 69만 명과 항모강습단(carrier strike group) 6개를 동원하는 방대한 북침전쟁계획이다. 거기에는 미국이 ‘신속억제전력’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1단계, 북의 전략목표를 파괴하는 2단계, 대규모 병력이 북측 해안에 상륙하는 3단계, 북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4단계, 남측 정권 주도의 흡수통합을 실현하는 5단계로 전개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한 ‘작전계획 5029’는 ‘동까모’ 같은 반북테러단체나 특수전 병력을 북에 잠입시켜 특정대상물 폭파하거나 폭동, 내란, 대량탈북사태를 일으킨 ‘급변사태’로 북의 정권을 붕괴시키고 북을 점령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베이더의 서술과 미국 군부의 전쟁계획을 종합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북침전쟁을 일으켜 북의 정권을 붕괴시키고 남측 정권 주도의 흡수통합을 실현하려는 것이 미국의 속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미국은 북의 붕괴와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을 위한 전쟁을 도발하려는 속셈을 숨긴 채 지난 20년 동안 북과 여러 차례 합의문을 채택하는 사기행각을 벌여온 것이다. 또한 지난 20년 동안 미국이 북을 상대로 진행해온 4자회담과 6자회담은 물론이고 양자회담도 북을 붕괴시키고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을 추구하기 위한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1993년에 시작되어 20년 동안 끊길 듯 이어져온 북미양자회담에 끌려 나갈 때마다 무슨 협상을 벌이는 척하였던 미국이 붙들고 있었던 대북정책은 사실상 정책이 아니었다. 무력충돌이 아니라 정치협상으로 북미적대관계가 해소되어 한반도에 자주적 평화통일이 실현되기를 염원해온 모든 사람들을 대북정책이라는 이름으로 20년 동안 우롱하고 기만해온 사기극이었다.

워싱턴 정가가 대북정책을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라섰다고 알려진 정보도 사실과 다른 헛소문에 지나지 않았다. ‘네오콘’과 ‘협상파’를 구분하는 것은 미국의 음흉한 속셈을 몰라서 생겨난 착각이다. 북의 붕괴와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을 추구하는 ‘대결광신자들’만 우글거리는 소굴이 바로 워싱턴 정가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현실이 그런데도, 9.19 공동성명과 6자회담에 대한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한 채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전환적 국면이 ‘대결광신자들’의 ‘양보’에 의해 열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을 이탈한 망상이다. 음흉한 속셈을 감추고 기만극을 연출하면서 툭하면 핵타격연습을 강행해온 교활한 ‘대결광신자들’에게 무슨 공약이행 따위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기존 핵억지력을 더욱 발전시켜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을 완성하기까지

음흉한 속셈을 품은 워싱턴의 ‘대결광신자들’이 북과 협상하는 척하여 왔다면, 지난 20년 동안 북은 미국에게 속아온 것일까?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북이 ‘대결광신자들’의 음흉한 속셈을 간파하지 못할 리 없다. 북은 미국에게 속아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북은 ‘대결광신자들’을 상대로 왜 정치협상을 벌였던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북이 미국과 양자협상을 시작한 날은 1993년 6월 2일이다. 두 나라 정부대표단은 그 날 미국 뉴욕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치협상을 진행하였다. 강석주 당시 외교부 제1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측 정부대표단과 로벗 갈루치(Robert Gallucci)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 정부대표단이 진행한 정치협상을 마친 6월 11일에 북미공동성명을 채택하였다. 두 나라가 6.11 북미공동성명에서 합의한 3대 원칙은 이제껏 북이 미국에게 요구해온 것인데, 그런 사실만 봐도 당시 강력한 미사일을 동해와 서태평양으로 연속 발사한 북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미국이 정치협상에 끌려 나가 공동성명을 채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93년의 북미정치협상이 그렇게 진행된 이후 20년 동안 북은 미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여 정치협상으로 끌어내었고, 북의 군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미국은 북의 정치적 요구를 담은 공동성명 또는 합의서를 채택한 협상과정이 되풀이되었다. 북의 붕괴와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을 노리는 미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여 정치협상으로 끌어내고, 북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여 문서화한 것은, 북미적대관계에서 북이 이룩한 정치적 승리였고, 미국이 겪어야 했던 정치적 굴복이었다. 하지만, 북의 강압에 견디지 못해 채택한 그런 공동성명이나 합의서를 이행할 생각은 미국에게 처음부터 손톱만큼도 없었다. 북의 붕괴와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이라는 속셈을 품은 미국이 북과 공동성명 또는 합의문을 채택한 것이 자기들에게는 치욕이었을 터이므로, 그것을 이행하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이 북과 합의한 공약을 불이행하거나 또는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사실상 백지화된 각종 외교문서들을 열거하면, 1993년 6월 11일 뉴욕에서 채택된 북미공동성명,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에서 채택된 북미기본합의, 2000년 10월 12일 워싱턴 디씨에서 채택된 북미공동코뮈니케,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채택된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 등이다.

위의 외교문서들을 다시 읽어보면, 북이 미국을 압박하여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비핵화라는 두 가지 공약을 합의하도록 강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이 미국에게 요구해오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이 위의 외교문서들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북이 미국에게 제기해온 최소 요구이고, 북이 미국에게 제기해온 최대 요구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이다. 다시 말해서, 위에 열거한 외교문서들이 말해주는 것은, 미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여 정치협상으로 끌어낸 북이 최소 요구를 관철하려고 힘썼다는 사실이다. 북이 워싱턴의 ‘대결광신자들’을 상대로 최고 요구를 관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으므로, 최소 요구를 관철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은 그런 최소 요구를 관철하려던 노력을 접었다. 워싱턴의 ‘대결광신자들’이 북의 최소 요구를 끝내 배척하였기 때문이다. 북이 지난 20년 동안 지속해온 북미정치협상을 접고 워싱턴의 ‘대결광신자들’을 무력으로 ‘응징’하여 항복을 받아내려는 ‘반미대결전’을 앞두고 있는 현재 상황은 바로 그렇게 조성된 것이다.

둘째, 북이 지난 20년 동안 미국과 정치협상을 벌여온 또 다른 이유는 군사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북이 ‘반미대결전’을 벌이려면, 군사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은 북측 전역을 핵공격으로 초토화할 수 있는 엄청난 침공무력을 틀어쥐고 핵공갈을 일삼아온 강적이다. 그런 강적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반미대결전’에서 북이 승리하려면, 미국의 핵공갈을 봉쇄할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이 요구되었다. 그런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이 없이도 북은 ‘반미대결전’을 벌일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미국의 핵공격으로 한반도가 너무 혹심한 전쟁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북에게 요구된 것은,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초강력한 핵타격력이었다. 북은 이미 오래 전에 확보한 기존 핵억지력을 더욱 강화, 발전시켜 최고 수준으로 완성해야 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순분열탄(pure fission bomb)만 가지고서는 미국의 핵공갈을 봉쇄할 수 없었으므로,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증폭분열탄(boosted fission bomb)과 열핵탄(thermonuclear bomb)을 만들어내는 핵탄의 다종화를 실현하여야 하였으며, 그런 강력한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하여야 하였으며, 미국 본토를 타격하는 초강력한 핵탄을 불시에 발사할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전략잠수함까지 만들어내야 하였다. 인민군이 자행발사대에 싣고 이동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를 향해 쏘면, 미국에게 주어지는 대응시간은 30분이고, 또한 인민군이 전략잠수함에서 수중 발사 장거리미사일을 미국 본토를 향해 쏘면, 미국에게 주어지는 대응시간은 15분으로 줄어든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핵탄을 다종화, 소형화, 경량화하고, 그것의 발사수단인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전략잠수함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나선 북에게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핵무기공학기술과 군사과학기술이 요구되었다.

1998년 5월 30일 파키스탄에서 비공식 핵실험을 실시하였고,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8월 31일 첫 시험위성 광명성 1호를 쏘아올린 북은 마침내 자기의 핵타격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였다. 그 성공시점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북은 2008년에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북이 2009년 4월 5일 실제로 ‘반미대결전’에 돌입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북의 ‘반미대결전’은 북이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을 완성한 조건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을 완성한 북이 ‘반미대결전’에 돌입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미국은, 2009년 12월 8일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특사를 평양에 보내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하였다.

1998년부터 기간을 따진다면, 북이 치명적인 핵타격수단 한 방으로 미국의 ‘급소’를 가격하여 단숨에 쓰러뜨릴 ‘주체전법 핵타격력’을 완성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말할 수 있다. 북이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을 완성하기 위한 핵무기공학기술과 군사과학기술을 자체로 개발하려고 얼마나 많은 기술적 난제들을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며 고생하였는지는 앞으로 100년 쯤 지난 뒤에나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북은 2012년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5차 회의에서 개정된 ‘사회주의헌법’ 서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도로 북이 핵보유국으로 전변되었음을 명시함으로써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을 완성하였음을 밝혔고, 2013년 2월 13일에는 제3차 핵실험을 실시하여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을 물리적으로 입증해보였다. 제3차 핵실험에서 발생한 진동규모는 리히터 지진계로 5.1∼5.2인데, 국제적으로 공인된 켈리 킬로톤 인덱스(Kelly Kiloton Index)에 의거하여 그 진동규모를 폭발력으로 환산하면 45∼63킬로톤이다. 이것은 히로시마 만한 도시 네 개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엄청난 핵폭발력이다.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몇 차례 논증한 대로, 북이 완성한 핵타격력은 미국, 러시아, 중국과 겨룰 만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북에서 인민군을 왜 ‘백두산 혁명강군’이라고 부르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12년 4월 13일에 개정된 ‘사회주의헌법’ 서문에 북의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한 때로부터 약 넉 달이 지난 8월 2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마침내 ‘반미대결전’을 선포하였다. 동부전선 시찰 도중 인민군 주요 지휘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8.25 경축연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연설하였는데, 바로 그 연설에서 ‘반미대결전’을 선포한 것이다. 연설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금 이 시각 나의 명령을 받은 영용한 인민군 장병들은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의 무모한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전투진지를 차지하고 적들과의 판가리 결전을 위한 최후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습니다”고 말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8.25 경축연설’은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핵공갈을 참아온 북이 미국의 핵공갈을 봉쇄할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을 완성하고, ‘판가리 결전’에 즉각 돌입할 모든 타격준비를 완료하였음을 내외에 천명한 매우 중요한 연설이다. 실제로 인민군은 지난해 8월 25일 이후 자기들의 최고사령관이 돌격명령만 내리면 언제라도 ‘반미대결전’에 돌입할 임전태세를 유지해오고 있다. 미국이 북을 붕괴시키려는 음흉한 속셈을 숨긴 채 협상하는 척해온 기만의 악순환은 그렇게 끊어지고 말았으며, 이제 북미적대관계에 남은 것은 ‘반미대결전’ 뿐이다.

2009년 4월 5일에 일어날 뻔한 ‘반미대결전’

미국 소식통과 일본 소식통이 전한 말을 인용한 <산케이신붕> 2012년 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박림수 당시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장은 2009년 4월 위성운반로켓 은하 2가 발사된 직후 방북한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 출신인사에게 “만일 발사된 미사일(은하 2호를 뜻함 - 옮긴이)이 요격당하면 전쟁행위로 보고 즉시 전투기를 보내 요격미사일을 발사한 미국과 일본의 이지스함을 격침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보도는 과장보도도 아니고 오보도 아니다. 미국이 북의 위성운반로켓을 향해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북은 주일미국군과 일본자위대를 즉각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2013년 2월 6일 북측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게재된 ‘정론 - 백두산 호랑이 불뢰성 터친다’는, 당시 주일미국군과 일본자위대를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출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을 이렇게 전해주었다.

“우리는 일당백의 고향 대덕산에서 2009년 4월 인공지구위성 광명성 2호 발사 시 우리의 위성에 대한 요격을 떠드는 적들을 들부실 중대한 타격명령을 받고 출격의 순간을 기다렸던 인민군 비행대의 한 비행사를 만났다. 그는 그 때 자기들은 반타격사령관이셨던 경애하는 원수님(김정은 제1위원장)의 강인담대한 배짱과 무비의 담력에 무한히 고무되여 돌아올 항로 대신 타격목표를 더 달라, 우리에게는 출격만 있고 착륙은 없다는 자폭맹세를 다졌다고 이야기하였다.”

2011년 1월 8일 북에서 방영된 ‘기록영화 - 위대한 령장을 모시여 26’에는 인민군 전투비행사였던 정광용이 2009년 5월 29일에 남긴 유언이 나오는데, 그는 “동무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동지와 영명하신 김정은 대장 동지의 전투명령을 관철하는 길에서 육탄으로, 자폭으로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자!”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위에 인용한 <산케이신붕> 보도기사에는 당시 북의 타격목표가 북의 위성운반로켓을 요격하려고 동해에 전진배치된 미일연합함대였다고 쓰여 있지만, 인민군 전투비행대가 미일연합함대를 공격하면 전면전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인민군의 타격목표가 미일연합함대로만 국한되었을 리 만무하다. 당시 인민군의 타격목표 가운데는 미일연합함대의 전략거점들인 마이쯔루(舞鶴) 해군기지와 요코스카(橫須賀) 해군기지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해 쪽에 있는 마이쯔루 해군기지는 일본해상자위대 출항기지이고, 태평양 쪽에 있는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국 해군 제7함대 모항이다.

함경남도 함흥 부근에 있는 덕산비행장에서 마이쯔루 해군기지까지 직선거리는 844km이고, 요코스카 해군기지까지 직선거리는 1,184km다. 인민군 전투비행대들 가운데서도 정예비행대로 알려진 ‘근위56련대’가 덕산비행장에 주둔하고 있는데, 당시 전투비행사들이 출격태세를 갖추고 있었던 미그-21의 항속거리는 1,210km이고, 일류신-28 폭격기의 항속거리는 2,180km다.

미그-21 전투기나 일류신-28 폭격기에 고성능 폭탄과 항공연료를 가득 채우고 출격하면, 기체가 무거워져 항속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폭격임무를 수행한 뒤에 함경남도 기지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자폭맹세문을 쓰고 최후의 출격태세를 갖추었던 것이다. ‘반미대결전’에 임하는 비장한 각오가 보인다.

당시 북은 무인기 편대와 전자전 함대를 동해로 출동시켜 일본자위대의 방공망을 교란한 다음, 자폭공격을 맹세하고 출격한 전투기들과 폭격기들이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 마이쯔루 해군기지와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초토화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북은 인민군 항공무력의 그런 보복공격을 얻어맞고서도 미국이 반격으로 나오는 경우에 대비해 미국 본토의 여러 ‘급소’들을 한꺼번에 기습타격하는 ‘반미대결전’도 당연히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2012년 1월 8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에 이런 해설이 나온다. “만약 적들이 위성을 요격한다면 적들의 아성까지도 무자비하게 짓뭉겨버리겠다는 선군조선의 의지를 온 세계 앞에 선포하도록 하시고 적들이 덤벼든다면 원쑤들의 함선집단과 요격체계를 가차 없이 짓뭉개버리라는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이 공격명령은 2009년 4월 당시 반타격사령관으로 ‘반미대결전’ 동원태세를 지휘하고 있었던 김정은 제1위원장이 내린 명령이다. 위의 기록영화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오늘 각오를 하고 그 곳(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뜻함 - 옮긴이)에 갔다 왔다. 적들이 요격에로 나오면 진짜 전쟁을 하자고 결심하였댔다”고 말한 내용이 들어있다. 이것은 2009년 4월 5일 ‘반미대결전’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주목하는 것은, 그 날 ‘반미대결전’을 개전하기 위한 인민군 작전준비를 직접 지휘한 반타격사령관이 김정은 제1위원장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김정은 제1위원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2012년 1월 8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정은 제1위원장을 가리켜 “그의 신념과 의지가 얼마나 강하고 배짱이 센지 어떤 때에는 나도 탄복할 정도입니다. 신념과 의지에 있어서나 담력과 배짱에 있어서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반미대결전’ 개전명령을 임의의 시각에 내릴 강한 담력과 배짱을 지녔을 뿐 아니라, ‘반미대결전’에서 미국을 단숨에 꺾고 승리할 전쟁전략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북이 2009년 5월 하순에 펴낸 것으로 보이는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의 위대성 교양자료’를 <마이니치신붕>이 입수하여 2009년 10월 5일에 보도하였는데, 거기에는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는 조국통일대전의 위대한 계략을 명시하였다”고 쓰여 있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미국의 핵공갈을 봉쇄할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을 보유한 인민군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마련한 ‘조국통일대전’ 전쟁전략에 따른 훈련에 열중해왔고, 지금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최후돌격명령을 대기하는 중이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3년 2월 말 현재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반미대결전’에 앞장설 인민군 전투부대들을 시찰하면서 “전투동원준비상태를 검열”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고 수준의 핵타격력을 보유한 인민군의 ‘반미대결전’ 전투동원준비상태를 검열하고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놓고 미국은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언론보도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2010년 9월 28일 커트 캠벨(Kurt Campbell) 당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워싱턴 디씨에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토론회에서 미국이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해 “놀라울 만큼 아는 게 없다. 그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13년 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4월 초 오바마 대통령의 밀사로 평양에 파견된 조셉 디트라니(Joseph Detrani) 당시 백악관 국가정보실 비확산센터 소장은 “나는 처음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리라고 신중하게 낙관하였으나, 그는 위성발사와 지하핵실험으로 그런 낙관을 뒤집어버렸다”고 취재기자에게 말했다.

커트 캠벨과 조셉 디트라니가 각각 말한 것처럼, 미국은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무식자가 만용을 부린다는 말 그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반미대결전’ 결심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미국은 ‘키 리졸브’와 ‘독수리’라는 작전명의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는 위험천만한 행동으로 치닫고 있다. 백악관의 무지와 만용이 미국의 패전과 항복을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3년 2월 23일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박림수 대표는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미국이 올해도 여전히 ‘키 리졸브’와 ‘독수리’를 강행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하여 “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단다면 그 순간부터 당신들의 시간은 운명의 분초를 다투는 가장 고달픈 시간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북의 그런 경고는 경고발언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컷뉴스> 2013년 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요즈음 평소보다 두 배 이상 급증된 인민군 전투비행훈련이 휴일 이외에 매일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적들이 움쩍하기만 하면 다지고 다져온 무진막강한 전투력을 총폭발하여 놈들이 정신을 차릴 새 없이 호되게 답새기고 침략의 아성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려야 한다.” 이것은 2013년 2월 2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과 제630대련합부대 실전연습을 지도하면서 내린 지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