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송환대상 장기수 문상봉 선생이 15일 오전 1시 30분 영면했다. 고인은 28년간 감옥생활을 했고, 북녘 강원도 고성에 부인과 2명의 자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88세.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2001년부터 낙성대 만남의집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시다가 2010년부터 건강이 나빠져 요양원으로 모셨는데 지난해 연말 급격히 상태가 악화됐다”며 “오늘 오후에 장례절차를 논의하겠지만 3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라고 전했다.

▲ 서울 대방동 보라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빈소는 서울 대방동 보라매병원 장례식장 1호에 마련됐으며, 17일 발인해 화장장을 치를 예정이다.

고인은 192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중국 흑룡강성 용안현에 이주했고, 8.15해방 후 중국 팔로군에 자원입대한 뒤 북한으로 귀국해 인민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등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었다.

북한에서 1956년 결혼해 딸 정애.정옥이 출생했고, 1958년 해상공작임무를 시작해 1960년 경북 영일만에서 체포,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28년간 옥고를 치렀다.

권오헌 명예의장은 “수감 중 잔혹한 고문으로 강제전향 당했지만 2001년 2월 6일에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촉구 기자회견을 하면서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는 성명을 내고 2차 송환 대상자가 됐다”며 “고향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반가운 소식이 들릴 때마다 눈이 번쩍 빛나곤 했다”고 회고했다.

권 명예의장은 “전형적인 군인으로서 말씀이 별로 없고 성격이 꼿꼿하셨다”며 “건강이 괜찮을 때는 집회나 행사에 꼭꼭 참여하고 행진도 많이 했는데 건강이 나빠져 활동을 못하시다 평생 염원하던 통일조국도 못 보고 고향의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故 문상봉 선생 약력

1925년 12월 6일 평안북도 용천에서 중농의 가정 3형제 중 장남으로 출생
1939년 용천 동학공립심상소학교 졸업
1941년 일제의 폭압을 피해 가족과 중국 동북지방 흑룡강성 용안현 해림촌으로 이주
1942년-1945년 사이 일제의 징병 영장을 거부하고 피해다니다가
1945년 8월 붙잡혀 징용으로 끌려가다가 탈출, 11일 만에 조국광복을 맞으심
1946년 중국 모택동군의 팔로군에 자원입대 
           조선인들로 구성된 인민해방군 166사에 배치되어 국민당군과 전투
1948년 화북지구 대회전 참전
1949년 164사 김창덕부사단장의 인솔로 조국으로 돌아오심 
          조선인민군 5사단으로 편성, 정찰병으로 활동
1950년 전쟁시기 동부전선-강원도 고성-경북 영덕, 영일, 포항비행장까지 진군
1955년 군 제대 
          남포의 815조선소에 배치-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하심
1956년 장영복님과 결혼, 딸 정애․정옥 두심
1958년 조국통일사업-해상공작임무
1960년 7월 경북 영일만에서 체포-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무기형 선고 
          이후 서울, 대전, 전주 형무소 등으로 수형생활
1987년 4월 11일 형집행정지로 28년 옥고끝에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하심 
          출소 후 전주시내 진선미꽃집에서 일하심
2001년 2월 6일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 신청 
          3월 서울 낙성대 만남의집으로 오시어 공동체 생활을 하심
2010년 7월 29일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하시어 봉천동 청운복지센터에 옮겨 요양하심
2012년 1월 31일 강서구 천사노인요양원으로 옮기심
2013년 2월 15일 오전 1시 30분 오랜 옥고의 후유증을 앓아오시다가 통일조국을 보시지 못한채 돌아가심

* 자료제공 - 민가협양심수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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