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이 저물고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이명박 정부 5년이 마감되고 박근혜 새 정부가 들어섰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같은 정당에 뿌리를 둔 한 통속이기에 진정한 새해가 밝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민족화해 정부가 들어서지 못하고 보수정부로 권력이 연장됐다고 해서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이 요원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회는 위기 속에 태어나고 승리는 역경 속에서 솟구치는 법이다.

미국과 중국의 동북아 쟁패, 한반도의 운명은?

2012년은 어떤 해였나? 한반도 정세 및 남북관계와 관련해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 5년이 마감되는 해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을 비롯해 한반도 주요 주변국들에서 권력이양과 정권교체가 이뤄진 해였다.

먼저, 남북관계와 관련 이명박 정부의 퇴장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만기 퇴장에 특별한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명박 정부 5년은 남북관계 최악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민족화해는 이명박 정부 들어와 민족갈등으로 바뀌었다. 지난 5년간 남북 사이에는 제대로 된 교류 협력은커녕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서 보이듯 갈등 차원을 넘어 전쟁 일보 직전까지 나아갔다. 대결지향적인 정부가 종지부를 찍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2012년에는 6자회담 참가국들에서 권력이동이 있었다. 러시아의 푸틴은 3월 대통령에 당선돼 일찌감치 권력에 복귀했다. 11월에는 G2(주요 2개국)에서 권력이동이 있었다. 미국에선 오바마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고 중국에서는 예정대로 시진핑이 최고 지도자에 등극했다. 12월에는 일본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 극우 성향의 아베가 총리로 나섰다. 북한에서는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이 등장해 2012년 한 해에 걸쳐 순조롭게 권력 승계가 이뤄졌으며, 남한에서는 12월 대선에서 박근혜가 승리했다.

그런데 향후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 이들 한반도 주변국들의 새로운 권력들은 동북아시아를 할거(割據)의 장으로 활용할 것이다. 남북관계를 악화시켜온 이명박 정부가 퇴장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무엇보다 세계적 패자로 등장한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에서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샛별 중국은 전통적으로 동북아의 강자였고 미국도 최근 태평양 국가를 선언하고 아시아로의 전략적 이동을 공식화하고 있어 양강의 쟁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에다 극우적인 일본 아베 정부가 중국․러시아와 영토분쟁을 노골화하고 한국과도 과거사․독도․위안부․교과서 문제 등에서 맞선다면 그야말로 주변국들의 우려가 현실화될 것이다. 나아가 반미를 표명하는 러시아 푸틴 정부가 힘의 정책을 추구한다면 동북아의 파고는 한층 거세질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동북아의 높은 파고에 한반도는 격랑 속에 빠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한반도에는 1세기여 전 구한말(舊韓末)의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당시 한반도는 미․일․중․러의 체스판이 되어, 이들 열강의 각축에 힘없는 조선은 중심을 못 잡고 이리 붙고 저리 붙다가 결국 일제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다. 일제 식민지는 다시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아직까지 외세의 간섭과 개입으로 연장됐다.

역사에서 찾는 교훈, 민족공조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했던가?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100여 년 전에 처음 다가온 우리 민족의 역사는 비극이었지만 이번에 반복될 수도 있는 역사를 통해 과거와 즐겁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반도의 운명을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만들어야 한다.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야 한다. 속박이 아닌 자주로 서야 한다. 이는 저절로 되지 않는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100여 년 전의 교훈인 우리 민족의 힘에 근거해야 한다.

이는 현 시기 분단된 상태에서 남과 북의 합심협력(合心協力)으로 나타난다. 다름 아닌 민족공조인 것이다. 외세에 의해 변화하는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민족공조를 성사시켜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남북은 민족공조는커녕 민족화해조차 이루지 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명박 정부 5년이 남긴 후유증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이로부터 나온 5.24조치 때문에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막판까지 천안함 사건과 5.24조치의 출구전략을 마련하면 바람직하겠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해법은 없는가? 민족공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첫 단추인 민족화해의 길로 들어서는 것인데 그 이전에 민족화해의 길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전략을 쓰자는 것이다. 박근혜 새 정부가 ‘민족화해 입구전략’을 마련함으로써 이명박 정부가 출구전략을 쓰지 못해 빠져나오지 못한 천안함 사건과 5.24조치를 무력화시키자는 것이다.

여기서 남북의 교류․협력도 아니고 민족화해도 아닌 ‘민족화해 입구전략’을 제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명박 정부 5년간에 걸쳐 켜켜이 쌓인 남북 사이의 불신과 대립이 단숨에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김대중-노무현 민족화해 정부에서 민족공조, 교류․협력이 있었기에 새 정부가 민족화해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입구전략을 세운다면 남북은 새로운 관계로 전변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 반국(半國)적 시각 아닌 전국(全局)적 시각 가져야

박근혜 새 정부는 민족의 미래를 살핌에 있어 남쪽만의 반국(半國)적 시각이 아닌 남과 북을 하나로 인식하는 전국(全局)적 시각, 즉 한반도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박 당선인의 과제에 정치개혁과 경제민주화 등 숱한 난제가 놓여있다. 이들 문제들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시급한 것은 민족문제 해결에 나서는 일이다. 특히, 분단된 상태에서 민족문제가 동전의 양면처럼 나타나는 안보문제와 통일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치개혁도 경제민주화도, 나아가 복지문제도 모두 공염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을 통해 ‘북한문제’는 외면할 수도 비켜갈 수도 없는 문제임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는가. 게다가 북한문제는 한반도 정세를 통째로 뒤흔드는 대형 사건일 수도 있음이 몇 번이고 증명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박근혜 당선인은 자신이 속한 보수정당의 한계나 개인적 캐릭터에 매몰되지 말고 전국(全局)적 시각을 갖고 대북정책에 적극 나서야 한다.

2012년 대선에서 보수세력이 승리했지만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의 가능성이 전혀 무망(無望)한 것은 아니다. 특히, 박근혜 당선인이 갖는 북측과의 특별한 관계와 남측에서 취해온 보수적인 입지를 고려한다면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면도 찾을 수 있다. 박 당선인도 후보 시절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반성 위에서 자신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시했는데, 이 정책도 민족화해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박 당선인은 2002년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바 있고 두 사람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 합의한 바 있다. 박 당선인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성사된 2002년 자신의 방북이 6.15시대의 혜택임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박 당선인은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으며 서로 공통점이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박 당선인이 언제까지 이명박 정부의 대결적 대북정책을 용인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무엇보다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는 박 당선인이 민족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그 영향력과 파괴력은 극대화될 것이다. 남측에서 보수세력은 대북정책에 강경했지만 박 당선인이 유화적 대북정책을 쓴다면 보수세력을 설득하기가 쉽고 또 진보세력도 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세력 지지 하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용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보수적인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북․미관계가 개선된 사례가 많다. 특히, 1972년 미국 보수의 대명사 닉슨 대통령이 극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양국 관계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오면서 냉전체제를 허무는 단초를 마련했다.

남북간 ‘민족화해 입구전략’의 접점, 6.15공동선언

박근혜 정부가 ‘민족화해 입구전략’을 마련하자면 남북이 용인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 새해가 밝았다.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새롭게 찾을 것도 멀리 갈 것도 없다. 남북 사이에는 금세기 들어 합의한 두 개의 선언이 있다. 다름 아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다. 특히 6.15공동선언은 7.4공동성명의 정신과 내용을 그대로 받고 있다.

7.4공동성명의 최종 합의자인 박정희와 김일성, 그리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합의자인 김대중․노무현․김정일.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였던 이들 다섯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떴다. 그러나 그들이 합의하고 남긴 문서는 민족의 화해와 단결, 평화와 통일의 이정표로 살아있다. 이제 남과 북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북측의 김정은 최고 지도자는 6.15공동선언의 이행의지를 수차례에 걸쳐 밝혔다. 남측의 박근혜 당선인도 이에 화답한다면 남과 북은 지난 5년간의 대결을 청산하고 새로운 차원의 민족화해의 길, 나아가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민족공조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박근혜 새 정부는 출범부터 5년치의 식량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백년치의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다름 아닌 ‘민족화해 입구전략’의 접점인 6.15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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