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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남북관계 정상화 의지 보여줘” 북쪽 안중근 의사 유적 답사한 윤원일 사무총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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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1.21  15: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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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윤원일 사무총장이 지난 14일 남포공원 '안중근선생기념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 -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북쪽에서 안중근 의사를 통해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의지를 남쪽에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4박 5일간 방북해 북측이 최초로 공개한 안중근 의사 집터 등을 둘러보고 온 윤원일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홍수와 태풍 피해 후유증으로 많은 공사에도 불구하고 한 달 이상 길을 내고 성의를 보여 참관하게 해줬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와 고문 차인현 신부, 사무총장 윤원일, 안중근학교 교장 신성국 신부, 안중근의사독립민주평화음악회 음악감독 이영국 선생 등 10명은 이번 방북 기간에 남포지역은 물론 처음으로 신천지역 청계동 유적을 참관했다.

윤원일 사무총장은 2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소재 한 커피숍에서 <통일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방북 결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먼저 방북 이틀째인 14일 이들은 안중근 의사의 유적을 찾아 남포특별시 소재 남포공원과 남흥중학교를 둘러봤다.

   
▲ 삼흥중학교 역대 교장 중 초대 교장으로 안중근 의사가 자리잡고 있다. [사진제공 -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 남흥중학교 간판과 명칭 변경표. [사진제공 -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윤 사무총장은 “남포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비는 1965년 3월 26일 만들어졌고, 남흥중학교 터에 있던 비석을 남포공원으로 1999년에 옮긴 것”이라며 “1965년에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은 북쪽이 일찍 안중근 의사를 주목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흥중학교는 안중근 의사와의 인연이 깊은 곳이다. 안중근 의사가 1906년경 진남포성당에서 돈의학교 야학을 진행하다 지금의 남포시 와우도구역 동흥동에 삼흥학교를 세웠다. 1907년 안중근 의사가 무장투쟁을 떠나자 학교는 쇠락했고, 일제는 1910년 이곳에 풍전소학교를 만들었다.

이어 1945년 해방 후 남포시 지산인민학교로 운영하다가 46년에 남포 제1인민학교로 개명했지만 전쟁 중에 소실이 돼 1957년에 남포시 제6중학교로 신축해서 운영해왔고 지금은 남흥중학교로 개명해서 운영 중이다.

그는 “남흥중학교는 북 전체에서 굉장히 우수한 학교”라며 “공부도 잘하고 예능 쪽으로도 탁월한 학생들을 많이 배출해 중앙정부로부터 표창 받거나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한 학생들도 많더라”고 전했다. 또한 “7대 교장 송정실(여) 교장은 뛰어난 체조선수 출신으로 자애로운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 15일 남측 인사로서는 최초로 방문한 안중근 의사가 살았던 청계동 집터. 작은 표지석(사진 중앙)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제공 -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셋째날인 15일에는 안중근 의사가 여섯 살 때 이주해 살았던 황해남도 신천군 석교리 소재 천봉산 밑 청계동을 찾았다.

윤 사무총장은 “청계동은 신천읍내에서 천봉산 올라가는 길로 가다보면 석교리가 나오는데, 산 속으로 찻길을 타고 가는 길”이라며 “(안 의사가) 1884년에 그리로 이주했는데, 130년 전이면 깊고 인적 없는 첩첩산중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중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왼쪽 편에 서원저수지라는 큰 저수지가 나오는데 인근 50여호를 이주시키고 현재는 식수원으로 이용 중이라고 한다.

그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조그마한 내가 흐르는데 내를 3개를 건너가야 하는데, 자갈을 깔아 차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한 달 동안 공사를 했다더라”며 “도착하니까 앞쪽으로 천봉산이 있고 깃대봉이 보이고 터가 굉장히 넓더라. 조금 계단식으로 돼 있는데, 아래쪽에 안중근 의사 집터가 있었다”고 전했다.

안 의사 집터는 ㅁ자 형으로 가로.세로 12m 정도였고 1952년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돼 1956년에 농장원들이 신축해서 살았지만 서원저수지가 식수원이 되면서 주민들을 모두 소개시켜 지금은 ‘안중근 열사 집터’라는 작은 표지석만 세워져 있다.

   
▲ 한국전쟁 중 불탄 청계성당의 빈 터. [사진제공 -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집터에서 10여m 뒤편으로 걸어 올라가면 언덕이 있고 그 언덕 너머 아주 넓은 평지가 나타나는데, 깃대봉을 향한 좌측은 말을 매어놓는 곳이었고, 오른쪽에 청계성당이 있다. 성당에는 50여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고 성당 안은 마루로, 지붕은 양철로 돼 있었다. 해방 후에는 이 성당에서 성인학교를 운영 문맹퇴치운동을 벌였고, 한국전쟁 중 소실돼 복원하지 않은 채 터만 남게 됐다.

그는 “여러 번 요청했지만 전에는 길도 없고 험해서 못 간다고 했는데, 개천을 건널 수 있도록 자갈까지 깔아 편의를 제공해 준 북측의 성의와 고생했을 사람들에게 굉장히 고맙다”고 인사했다.

또한 “안중근 의사가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고, 열강들 사이에서 힘을 길러서 자주독립하려고 했던 꿈이 청계동 일대에 배어 있는 듯 했다”며 “남북이 같이 역사관을 회복하고 힘을 합쳐 미래로 이어가야 한다는, 남북관계 회복을 염원하는 북측의 의지가 느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이번 4박 5일 방북기간 동안 북측은 조선종교인협의회 장재언 회장을 비롯해 이산옥 여성회장, 최대용 서기국 부국장과 조선가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조영민 부위원장 등이 모든 일정을 함께 했다.

그는 “이번 방북 일정은 철저하게 안중근 의사와 가톨릭에 초점을 맞췄다”며 안 의사 유적지 방문 외에 평양 장충성당에서의 미사와 고려동포회관,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 등을 참관했다고 전했다.

4년 만에 다시 평양을 방문했다는 그는 “평양이 많이 바뀌었다”며 “도로 정비를 다시 많이 한 것 같고 건물들도 많이 들어섰다”고 말했다.

특히 “위락시설이 여러 개 늘었고, 만수대 옆 아파트 단지와 창광거리 고려동포회관 같은 새로운 건물도 많이 생겼다”며 “유경호텔 외관을 정리해놓으니까 도시가 새로워 보이고, 인라인스케이트가 인기인 것 같더라”고 전했다.

   
▲ 장재언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왼쪽)이 4박 5일의 방북 일정을 함께 했다. [사진제공 -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그는 이후 사업계획으로 “신천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만드는 사업을 제안했고 북쪽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의논해봐야 할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다”며 “내년 완간 예정인 안중근 의사 전집 27권에 쓰일 북측 자료들을 요청했는데, 가능한 한 남북 공동으로 발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한 2010년 안 의사가 순국한 중국 여순(旅順)에서 100주기 남북 공동 추모행사가 진행된 뒤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중단됐던 남북 공동 추모행사를 내년에 다시 추진할 예정이다.

그는 대통령 선거와 관련 “한국의 정치제도는 친일과 독재로 만들어진 정치제도”라며 “제도보다 먼저 국민적 공감대, 역사관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먼저 야권 대선후보들이 확고한 역사관과 가치관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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