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열혈 청년 김상옥(金相玉, 1890~1923) 의사는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나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와는 달리 당시 서울의 한복판 종로에서 유혈 항거를 한 열혈 독립운동가이다.나는 김상옥 의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지 꼭 100년이 되는 오늘 이 글을 인터넷 신문 [통일뉴스]에 기고한다.1. 사업가 김상옥김상옥 의사는 1889년 1월 5일, 지금의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 출생하였다. 김상옥 의사의 본관은 김해이고, 별명은
정조가 1776년에 재위했다.“아,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하지만 불령한 무리들이 사도세자를 추숭(追崇)하자는 의논을 한다면 선대왕 유언에 따라 형률로 논죄하겠다.”- 정조실록, 1776년 3월 10일추숭(追崇)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다’는 뜻이다.만약 추숭이 이루어지면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자들은 모조리 처벌하는 정치 보복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하지만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 죽음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개입하거나 논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1780년(정조 4), 연암 박지원은 종형인 박명원(
‘서사를 담은 삶들’은 현재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삶을 듣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혹자는 박정희식 산업화의 신화가 깨진 것처럼 과거 민주화 ‘운동’의 신화도 깨졌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운동’적 삶을 살아가는 많은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삶에는 역사적 서사가 담겨 있습니다. 친구가 때로는 열사가 되고 일상적인 활동이 역사에 큰 사건으로 남기도 합니다. 역사적 사실인 ‘서사’를 안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순간들을 담고자 합니다. 수수의 ‘서사를 담은 삶들’ 연재는 격주 화요일에 게재됩니다. 수수
사회(社會)의 들창벼 열섬과 바꾼 처녀(處女)『오늘의 심청(沈淸), 옥임 양(玉任 孃)의 사연』빚에 얽힌 결혼(結婚)에 (행복)幸福있으라=육순(六旬)넘은 신랑(新郞)은 손녀(孫女) 둘을 거느려=아버지는 집나간 채 소식 없고○... 열아홉 살 되는 소녀가 육(六)십오(五)세의 노인과 결혼하여 화제를 일으켰다. 고창군(高敞郡 星松面 溪堂里)에 사는 박(朴魯洙)씨의 장녀 옥임(玉任)양은 이웃에 사는 김(金在銀=65)이라는 노인과 지난 이(二)십이(二)일 김씨의 집에서 혼례식을 올리고 백년을 기약한 것이다. 사모관대(紗帽冠帶)를 하고 꽃다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성산 제2공항의 우려나는 2017년 8월 7일자 인터넷 에 「[제주담론] 사드배치,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다」를 기고한 바 있다.그 기고문에서 “강정 마을에 해군기지가 계획될 때부터, 관광객의 폭주로 포화상태에 이르면 기존의 제주국제공항을 군사공항으로 겸용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언젠가는 제주에 군사 목적을 겸한 신공항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해군기지를 엄호할 군사항공기지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전략적 목적에 의하여 중국
도화서에서 조회를 한다.“이번 십장생도 세화는 총 4좌를 제작할 것입니다. 초본은 진경산수화를 가장 잘 그리는 종 7품인 선회(善繪)가 주도해 주시오.종 9품인 회사(繪史) 1명, 정화원 5명이 참여할 것이오. 특별히 경험이 많은 체아직 화원 2명이 함께 할 것이오.”종 6품인 선화(線畵)는 도화서의 수장인 별제이므로, 선회는 별제 다음의 서열이다.선회 화원이 묻는다.“별제께서 특별히 부탁할 것은 없습니까?”“조선이 꿈꾸고 만백성이 좋아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태평성대를 표현해야 합니다.뭇 생명들은 활기차게 움직이고 풍경은 아름다
누구나 국가보안법을 피해갈 수 없다. 통일의 상대방인 북측을 온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이해하는 시선으로 대하는 것조차 때로는 실정법 위반이 된다. 국가보안법은 우리 국민 모두를 분단의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더군다나 어떤 때는 적용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적용이 안 되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법행위자 마음대로인 이러한 해괴망칙한 법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74년간이나 머리에 이고 살았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무엇보다도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평화통일 책무(제 4조)에 심각하게 위배된다. 통
겸재 정선에게 묻고 답을 얻다 ② 별제가 묻는다.“소나무는 변치 않는 절조, 대나무는 화목, 태양과 학이나 사슴은 양심을 뜻한다고 했습니다.그렇다면 십장생도는 양심이 만드는 이상향, 태평성대이겠군요.”겸재가 단호하게 대답한다.“아닙니다. 그냥 좋은 세상일 뿐입니다.”“예?”화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아니라니요? 양심을 가진 군자가 없다면 결코 태평성대는 오지 않습니다.”“수신을 통해 군자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가정을 가지런히 하고 올바른 정치의 바탕이 됩니다.하지만 이는 태평성대, 이상향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
부활된 「메이데이」 진정한 노동운동 싹 텃다= 어용노조 노동귀족과의 투쟁 =통일에의 주체세력도 이룩 ○.... 5월 1일 - 「메이데이」 - 만국의 노동자들이 휴업을 하고 축하집회와 시위행진을 통 해 국제적 연휴와 공동의 권익각호 그리고 단결과 위력을 과시하는 날이다. 1886년 5월 1일 미국의 전 노동자들은 일제히 노동을 중지하고 「8시간의 노동, 8시간의 휴식, 8시간의 교육」을 표어로 시위운동에 나섰다. 「시카고」에서는 전반적인 「8시간노동제 기성동맹」이 조직되었으며, 그 결과 「시카고」에서 8시간노동제를 요구한 3십6만6천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애류(崖溜) 권덕규(權悳奎, 1891~1950) 선생은 1891년 8월 7일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 석탄리에서 태어나 1950년 10월에 실종된 민족주의자로서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이다.보훈처에서 권덕규에 관한 관심은 다른 독립운동가에 비하여 매우 늦어 2019년에 와서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경기도 김포군은 지금의 경기도 김포시이다.1. 권덕규는 누구인가애류 권덕규는 1913년 휘문의숙을 졸업하고, 조선광문회에서 6년간 한글을 연구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장
논단돼먹지 않은 보수계 통일방안고기봉 의원류의 우론을 박한다최근 민주당의 고기봉 의원은 동아일보의 적지 않은 지면을 이용하여 혁신계를 공산당의 앞잡이로 규정하려는 어색한 우론을 전개하였다. 법과 민주주의는 자기네들만의 독점향유물인 것으로 알고 있는 민주당 인사들의 「메카시즘」적 근성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고의원의 소론을 일개인의 것으로만 여길 수 없음을 슬프게 생각한다. 연달아 노정되는 장정권의 비민주적 처사와 대혁신계 태도로 미루어 보아 고의원의 소론은 제2의 진보당 사건을 조작하고자 하는 흉모의 전주곡이 아닌가 의심해 볼 이유
겸재 정선에게 묻고 답을 얻다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년)은 36세 되던 1711년 경 문인화가로 이름을 떨치며 혜성처럼 등장한다.특히 독특한 구도와 화법으로 그린 진경산수화는 세간의 관심사였다.예조판서는 좌의정 김창집에게 연락해 겸재 정선과의 모임을 주선했다.별제와 몇몇 화원들이 겸재의 화실을 찾았다.아직 관직이 없었던 겸재의 집은 소박했다.작은 사랑방을 화실 겸 서재로 사용하고 있었다.진한 먹 냄새가 풍겼다. 벽장문 쪽에는 백 여 권이 넘는 서책과 붓과 벼루가 놓여 있고, 창가에는 사생한 그림들을 걸어 놓았다.책상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옛 제주성(濟州城)의 동문 내측을 흐르는 산지천(山地川). 이 하천은 제주시의 번화가인 동문시장 입구 맞은편에 흐르는 하천이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60년대에 산지천을 복개(覆蓋)하면서 환경이 오염되는 문제가 생기자 1995년도에 복원을 시작하여 2002년 맑은 물이 흐르는 현재의 산지천이 되었다.지금 여기에는 제주의 구도심을 살린다는 명제 아래 문화공간이 들어서고 문화성이 확장되고 있다. 내가 산지천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선창(船廠, 조선소)이 있었던 장소를 찾는 것과 조
거울다시 찾은 노동자의 날 ○.... 제75회 「메이데이」 기념식이 1일 상오 10시반 시공관에서 한국노동조합총협의회 주최로 올려졌다. 수명의 혁신정당 지도자를 비롯하여 천여 명이 모여 올려진 이날 기념식은 비록 그 규모는 간소했으나 이(승만)독재의 유제를 벗어나 노동자의 기념일을 다시 찾은 뜻 깊은 행사였다.○.... 「빵, 평화, 자유」의 이념으로 힘차게 전진하자는 「슬로간」을 높이 걸고 모여든 맹원 들은 578만의 실업자가 굶주림 속에서 허덕이는 비참한 현실을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민⋅참 양원 의장과
십장생도의 연원을 말하다별제가 화원들을 모두 모아 조회를 한다.“오늘은 특별히 홍문관 응교 나리를 모시고 십장생도의 연혁에 대해 듣고자 하오.”홍문관(弘文館)은 조선시대 학술과 언론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홍문관직은 청요직(淸要職)의 상징이었으므로 출세가 보장되었다. 정승, 판서 중에 홍문관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응교(應敎)는 정4품 관직이다.“[십장생도]의 연원에 대해 강독을 해 달라는 예조판서 대감과 별제의 특별한 부탁을 받았습니다.문헌을 찾고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더군요. 하지
제75회 「메이데이」 선언 만국의 노동자가 축하하고 시위하며 기념하는 5월 1일 제75회 「메이데이」를 맞이하였다.우리 백만노동자는 이날을 맞이하여 민주적으로 싸우기 위하여 자주적으로 뭉친 한국노동조합총협의회 기치아래 총결집하여 한국의 민주노동운동 재건과 부패 독선 악질 반민주분자를 숙청하고 복지사회건설의 역군으로 과감한 투쟁을 불요히 전개할 것을 만천하에 엄숙히 선언한다.과거 16년간의 한국노동운동사를 회고하건대 공산당과 싸우기 위하여 우리는 피를 흘렸고 조국을 지켜오는데 젊은 정열을 바쳤다. 그러나 우리는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제주의 노래비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에 시비(詩碑)나 노래비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십수 년 전, ‘서귀포 칠십리 시공원’에 서귀포와 관련된 시비 12기와 노래비 3기가 섰고, 이후에 몇 기가 늘었다. 이곳 외에도 여러 곳에 시비와 노래비가 한두 개씩 섰다.그중에는 “왜? 이것을 세웠지?”하고 의문이 들기도 하는 그냥 유행가 수준의 노래비도 있고, 내용을 음미해 볼 만한 제대로 된 시비와 노래비도 있다.시비나 노래비를 세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비(碑)는 금석학(
1714년 숙종대왕이 재위한 지 40여년이 되었다.그 해 봄, 영남에서 기근이 들었다. 한성 진율청에서는 쌀을 보냈다.날이 오랫동안 가물어 임금이 몸소 향을 피우며 묵도했다.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자 팔도의 환곡을 고루 탕감하도록 하고, 전라도 충청도의 고을에는 세금을 줄어서 내도록 했다.9월, 대신과 당상관, 종친의 70세 이상 부인에게 쌀과 고기, 면포를 하사했다.팔도 벼슬아치의 80세 이상 부인과 평민 90세 이상 여인 모두에게 쌀과 고기를 하사하라고 교지를 내렸다.다음 날 아침, 조회에 참석했다.이조판서가 보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