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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영혼에 대하여- 황인숙1순수한 영혼과 타락한 현실간의 대립이환멸, 이라는 책을 읽었다.그것이 뭐가 환멸이야? 자랑이지.타락한 영혼과 순수한 현실, 의 대립, 이야말로,하긴 순수한 영혼아, 네가 어찌 환멸을 알겠니?2영혼이란 게 몸 안에서불덩이처럼 굴러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멀미가 난다.속이 울렁거려.토할 것 같아. 영혼이든 뭐든.나는 영혼이나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4.0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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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가장 사나운 짐승 - 구상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3.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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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정체불명의 슬픔을 표본하다 - 이경임 나비 한 마리가 내게로 날아온다 어지럽다, 멀미가 난다, 울컥 토할 것만 같다 나비가 창틀에 앉는다 나는 숨을 죽이고 나비의 한쪽 날개를 잡는다 나비의 다른 쪽 날개가 허공에서 파르르 떤다 나비의 몸에서 꽃가루들이 흩날린다 나비의 두 날개를 포개어 잡는다 위태롭던 한 마리의 정적이 고요해진다 고요해진 슬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3.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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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봄의 언어- 헤르만 헤세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이들은 다 안다.살아라, 자라라, 꽃피워라, 꿈꾸어라, 사랑하라,기뻐하라, 새로운 충동을 느껴라.몸을 내맡겨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백발노인들은 다 안다.노인이여, 땅에 묻히거라,씩씩한 소년에게 네 자리를 물려주어라.몸을 내맡겨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코로나 1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3.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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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개미 - 이선영 개미 한 마리가 방안을 기어다닌다 개미가 내 몸에 닿을까 봐 나는 개미를 피해 자꾸 방을 옮겨다닌다 방이 좁아진다 나는 지친다 개미 한 마리가 방 하나를 다 가져간다 내 마음의 방안에 개미 한 마리가 기어들었다 개미가 온 방안을 돌아다닌다 나가지 않는 개미 한 마리를 피하려다 내 마음의 단칸방 하나가 통째로 개미의 차지가 된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3.0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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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맨 위, 맨 아래 - 알렌 알렉산더 밀른 아가 아가 어디 가니? 저기 저기 저 언덕 꼭대기까지. 자꾸자꾸 올라가서 맨 위에 닿을 때까지 나는 나는 자꾸자꾸 올라갈 거야.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 그랬다간 어쩔래? 그럼 다시 맨 아래로 내려오지 뭐. 대학 시절 여러 종교 단체를 전전했다. 사이비 종교로 비난 받는 단체들에도 가 보았다. 고물고물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2.26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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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파랑새 - 한하운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군대에 가는 게 싫어 정신질환 진단을 받기를 바란다는 한 청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의 미술학도라고 한다. 정신질환자가 되었다가 나중에 취직하기 힘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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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20.02.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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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마른 물고기처럼 - 나희덕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벼야하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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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20.02.1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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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그날 -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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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20.02.0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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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참 우습다 - 최승자작년 어느 날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나는 깜짝 놀랐다나는 아파서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내가 57세라니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20.01.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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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나는 사람인가 간다인가? - 최승자 한 사람이 앞으로 간다. 두 사람이 뒤로 간다. 세 사람이 옆으로 간다. 네 사람이 돌아간다. 사람은 행위인가 존재인가? 사람이 간다인가, 간다가 사람인가 ................................ 간다가 간다. 간다가 간다 간다가 간다 간다가 간다. 간다가 간다 간다가 간다 최승자 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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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20.01.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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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산해경을 읽으며- 도연명초여름 초목은 나날이 자라고집 둘레 나무는 잎가지가 무성하다 새 떼는 깃들 곳에 즐거워하고나 또한 내 집을 사랑하노라 이미 밭 갈고 씨 뿌렸으니 이제는 나의 책을 꺼내 읽는다내 사는 곳 거리에서 멀리에 있어 친한 이도 수레를 돌리어 간다즐기어 혼자 봄 술을 마시며정원의 나물 뜯어 안주를 한다가는 비는 동쪽에서 나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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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20.01.1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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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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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20.01.0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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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자유 - 김남주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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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20.01.0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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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외로움의 폭력 - 최승자 내 뒤에서 누군가 슬픔의 다이나마이트를 장치하고 있다. 요즈음의 꿈은 예감으로 젖어 있다. 무서운 원색의 화면, 그 배경에 내리는 비 그 배후에 내리는 피. 죽음으로도 끌 수 없는 고독의 핏물은 흘러내려 언제나 내 골수 사이에서 출렁인다. 물러서라! 나의 외로움은 장전되어 있다. 하하, 그러나 필경은 아무도 오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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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19.12.2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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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올페 - 김종삼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만든 얘기다 나는 죽어서도 나의 직업은 시가 못 된다 우주복처럼 월곡(月谷)에 둥둥 떠 있다 귀환 시각 미정 내가 가진 첫 번째 직업은 철도공무원이었다. 기관조사. 기관사를 보조하는 자리였다. 그 당시엔 철도고등학교라는 철도공무원을 양성하는 국립고등학교가 있었다. 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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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2019.12.1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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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국화 - 호시노 토미히로 기쁨이 모인 것보다 슬픔이 모인 게 행복에 가까운 듯한 느낌이 드네 강한 사람들이 모인 것보다 약한 사람들이 모인 게 진실에 가까운 느낌이 드네 행복이 모인 것보다 불행이 모인 게 사랑에 가까운 듯한 느낌이 드네. 어린 시절, 나는 학교만 다녀오면 채소밭으로 갔다. 나와 동생들은 한 골씩 차지하고서 밭을 맸다. 형제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9.12.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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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사생 대회 날 - 양정자 나무 몇 그루 물감으로 범벅해 놓고 시라고 몇 줄 끄적끄적해놓고 야성의 눈을 번뜩이며 온통 푸른 숲속을 들쑤시고 다니며 개구리도 잡고 풀나비도 쫓고 칡뿌리도 캐어보는 아이들 모습이 시보다 그림보다 더욱 아름답네 연둣빛 나무 사이로 아이들 재깔거리는 말소리 웃음소리 망초꽃 무리처럼 다닥다닥 피어나 잔칫집처럼 풍성하고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9.12.04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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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의자였는데 - 김언희 의자였는데 내가앉으니도마였다 베개였는데 내가베니작두였다 사람이었는데내가안으니 내가안으니포장육 손톱발톱이길어나는포장육 막다른데가따로없었다 꽃한송이꽃절벽 사람하나사람절벽 여기이절벽에서저기저 절벽으로내입에서내어놓은 거미줄에매달려간댕 간댕건너간다끊어 질듯끊어질듯 나는 가끔 악몽을 꾼다. 고향에 갔는데, 돌아올 수가 없다. 버스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9.11.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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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음주(飮酒) - 제5수- 도연명 사람들 사는 데 농막 짓고 살아도 수레 타고와 시끄럽게 찾는 이 없노라왜 그런가 가만 생각해 보니 마음이 멀어지다 보니 사는 곳마저 외지구나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꽃 따서 들고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가을 산색 저녁나절 더욱 아름답고 날새들 짝지어 집으로 돌아오는구나 이러한 경지에 참된 뜻이 있으니 말로는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고석근
2019.11.20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