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공부는 하지 않고 참 많은 영화들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시험이 다가오면 갑자기 읽지 않던 책이 보고 싶고, TV 드라마가 갑자기 재미있어지고, 영화들도 그렇게나 보고 싶었잖아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그 당시 보았던 수많은 영화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뭐 제가 기억력이 좀 좋은 편이라, 대충
내가 참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철이 없다’는 것이다. 이젠 하도 들어서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데, 다만 가끔 궁금했던 것은 과연 내 나이에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철이 든’ 것일까 였다. 궁금했다.그러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어떤 이의 글에서 불쑥 튀어난 온 이 책 제목은 그야말로 나에겐 ‘구원투수’와도 같았다. 단박에 “
인간이란 존재는 무얼까. 이 질문에 시원스런 답변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신이거나 혹은 사기꾼이지 않을까. 때론 신념과 이상을 위해 무모하리만큼 자신을 내던지고, 때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비열함의 극치로 치닫기도 하는 게 인간이다. 《카탈로니아 찬?럽?그런 면에서 여전히 많은 울림을 전해준다.책은 너무도 유명하기에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스
“국민은 자신의 주권 문서이자 국가 생활에서의 최고 강령인 헌법으로 무장해야만 한다.”가만히 있어보자. 이승만 이후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혹은 정부 중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교육을 거의 강요 하다시피 한(!) 정부와 대통령은 누구일까? 너무 쉽다. 우리는 지난 MB정권 하에서 그야말로 무지하게 공부해야만 했다.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광우병 파동으로 시작된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문제나 사달은 사람들이 생긴 대로 놀지 않고, 생긴 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물론 자기 분수를 알고 주제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어쩐지 무언가에 순응적인, 그런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뭐, 그게 뭣이 다른디?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적당한 편안함을 주
“자유 의지란 단연코 환상이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고와 의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는 배경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 우리는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상당히 도발적인 주장이다. 사실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논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 자유 의지의 존재
적어도 30대 이상이라면 어렴풋하게 ‘삐라’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MB정부 들어서, 그리고 지금 역시도 새로운 차원의, 하지만 너무나 고루한 ‘삐라’를 보고 듣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역사의 진보는 적어도 최근 10년간은 ‘동작그만’이다.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삐라는 학교 선생님이나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는 ‘위험한’ 그 무엇이었다. 저자
대학 2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그 해 겨울 입대했다. 그리고 맞이한 군대에서의 첫 여름, 특히 군대에서 졸병의 여름은 지금처럼 머리꼭지에서 김이 푹푹 날만큼 무척이나 더웠다.나름 요령피우지 않고 착실한 졸병 생활을 보내던 나는, 부대에서 나오는 잔반(음식 쓰레기) 처리를 맡아 하시는 농장 아저씨의 논으로 이른 바 ‘대민 지원’을 자주 나갔다.지금 생각해보
아무튼 따지고 들자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지난 2012년 말, 나는 참 두렵고도 절박했던 듯싶다.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모순들에 대해 적잖이 분노하고 있었던 것 같다.엄연히 국가의 주인은 국민임에도, 아니 주인을 넘어 다소 낯간지럽기까지 한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정작 국민들은 전혀! 행복하지
“이미 버려진 곳이나 마찬가지였던 개성공단에서 숨통이 멎어가는 중환자의 손목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숨을 이어보려 무던히도 뛰어다녔던 지난 4년. 사실 고통 속에 숨만 쉬는 그 환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더 큰 좌절이었다. 그럼에도… 비정상적이나마 숨통만이라도 유지되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란다.”2011년 7월, 이 책의 기획 총괄을 맡
나름 기자 생활을 제법 했다. 비록 이름 있는 큰 곳들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뛰어다닌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기도 했고, 천지분간 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난 어리석다.참여정부 시절, 김근태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직할 시기였다. 우연히 보건 분야와 관련이 있는 학술회의 취재를 맡게 되
예전 학창시절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건방지게도 한 번 읽은 책은 어지간해서는 다시 읽지 않는다. 시험을 앞두고 교과서를 2~3번씩 줄쳐가며 읽어야 했던 ‘고통의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그 후 생각해보면 기사나 여타 글을 쓸 때, 객관적 자료의 인용이나 특정인의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 들춰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두 번 이상 읽은 책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큰 외삼촌이 소천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겐 큰 오빠입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남겨진 많은 형제들을 위해, 아버지와 같이 살아내신 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슬픔이 때문에 더욱 크고 서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그 큰 슬픔을 묻고 다시 제 딸아이를 돌보며 저에게 끼니를 묻습니다.얼마 전 지인이 그만 훌쩍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시
어떤 장르의 문학이라 하더라도, 현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SF가 되었든, 미스터리 스릴러가 되었든 말이다. 아무리 허무맹랑해 보이고,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결국 그것들은 현실이라는 밑절미를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 태초 이래 새로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미스터리 스릴러물이야 더 말할 것도 없
“자신의 ‘시스템’에 맡기면 예측 가능한 삶을 살지만, 자신의 ‘나침반’을 따르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다.”누구에게나 어차피 삶은 한 번 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주위 환경의 영향이 물론 작용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삶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물론 그것은 세뇌일 뿐, 우리는 우리
순간, 심장이 그야말로 쿵! 하는 동시에 가슴이 무궁무진하게 벅차오름을 느꼈다고 감히 고백한다.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아니, 신(神)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이러한 통찰력과 예지력과 담대함과 용기를 무차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할 수 있단 말인가! 난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책은 짐짓 행
“좋은 삶을 기대하는 유토피아적 희망은 삶의 무시무시한 리얼리티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먹고 자란다. 세상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추하고, 사람들은 선한 만큼이나 악하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도 있지만, 짐승만도 못한 인간도 있는 법이다. 이러한 세속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삶의 리얼리티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환등상의 등불을 끄게 만드는 힘의
세상은 아름답다, 고 믿으며 살아가는 이들은 눈물겹지, 라며 생각하고 살아간다. 뭐, 그렇다고 내가 세상을 오직 아비규환이나 생지옥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 우주에서 딱 잘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드물다. 고로,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늘 제멋대로다.그럼에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새파란 희망 보다는 온통 잿빛, 핏빛이다. 소
먼저 오해는 마시라. 현존하고 있는 이들이 모조리 머저리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워낙 작금의 상황이 한심 답답 씁쓸 쓸쓸 우려스럽기도 하고, 아울러 남북관계에 있어 굵직한 획을 그어버렸던 이들은 말 그대로 이미 모두 이 세상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지금도 제 잘났다고 거품을 물고 다니시는 이들이 좀 많은가. 그 분들은 모두 다 잘 났다!고 말씀
최근 안타깝게도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아무 이유 없이 생면부지의 여성을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개인의 일탈이 그동안 켜켜이 쌓여있는 사람들의 분노를 다시 한 번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과연 이 끔찍한 범죄가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있는가, 뼈아픈 성찰의 시간들이 지나고 있다.벌써 꽤 지난 일이지만, 남성의 권리를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