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상(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연구부장, 재일동포) 3. 최근년간의 우리학교 (2000년대이후 현재) 해방후 반세기가 경과하고 21세기에 접어들어선 시기 민족교육은 새세기의 동포사회를 전망하면서 새롭게 비약하여야 할 기대와 더불어 종래 경험하지 못한 난관에 봉착하였다. 본래는 인류사회발전의 추세에 맞게 일본사회에서도 국제화의 흐름속에서 또 ‘경제대국’에 상응하
오규상(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연구부장, 재일동포) 2. 총련결성 이후의 우리학교(1955.5∼1990년대말) 1955년5월, 약 5년동안의 민전활동의 문제점을 시정하고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가 결성됨으로써 재일조선인운동은 근본전환되고 새로운 발전의 길에 들어섰다. 총련결성은 민족교육사업에서도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열어놓은 사변으로 되었다. 한마디로
광복 62년을 맞는 2007년 현재 일본에는 80여 개의 한국계 학교가 있다. 그러나 동포 사회가 그러하듯 학교도 갈라져 있다. 이들 학교 중 4개의 '한국학교'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고, 80여 개는 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의 영향을 받는 '조선학교'다. 'SBS 스페셜'은 광복절 특집으로 12일 오후 11시5분 재일동포의 교육문제를 전반적으로
조선학교가 걸어온 길오규상(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연구부장, 재일동포) 짧은 글로 '조선학교가 걸어온 길'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60년이 넘는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의 로정, 조선학교력사를 정리한다는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모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민족교육이라는 용어는 조선학교라는 용어에 비하면 훨씬 넓은 개념이기는 하나 여기에서는 민족교육이 주로 조
윤수지(도쿄조선 제3초급학교 18기생) 1960년에 두 오빠와 함께 편입했습니다. 2학년 때입니다. 집근처의 일본소학교에 다녔을 때, 스즈키라는 동급생이 “히라오카平岡는 조선인이지”라는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조선인이 뭔지도 몰랐었습니다. 근처에 사는 도모코 선생님 집에도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 선생님은 “조선인은 金이나 朴과 같은 성을 쓰니까
황의중(에다가와조선학교지원모금 공동집행위원장) 조선학교를 나는 한국사회의 구세주처럼 생각하고 있나 보다. 크게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나, 반대로 조선학교를 그렇게 생각해 본 사람도 없을 듯하다. 내 눈에는 온통 그렇게 보인다. 오늘은 정면으로 쓰자. 조선학교는 재일조선인들에게 생명처럼 소중한 존재이고, 향후 재일동포사회의 통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지만
백령자(제8초급학교 50년대 입학생) 제가 민족교육을 받은 50년대는 1949년 이 발포된 후로 자기 아이들에게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배워주어야한다는 1세들의 간절한 마음이 여러 형태로 이어져간 시기입니다. 비극적인 조선전쟁과 쌘프란시스코조약체결 이후 재일동포들의 일본에서의 재류가 매우 불안정하게 되였으나 1세들은 조국을 그리면서 돈있는 사람은
황의중(에다가와조선학교지원모금 공동집행위원장) “선생님 어떻게 하면 조선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어요?” 최근 2명의 학생에게 받은 질문이다.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진지한 상담으로. 한명은 SBS스페셜의 를 보고, 한명은 지금도 상영중인 김명준 감독의 를 보고. 에다가와 조선학교 송현진 교장은 한국에서 400여
황의중(에다가와조선학교지원모금 공동집행위원장) 의 비극 그녀의 소식을 물었을 때, ‘정신병원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조심스런 답변이었다. ‘한국어 교실’에 이 있었다. 한국정부가 교육공무원을 파견, 재일동포에게 우리말과 문화를 가르치라고 하나 교실은 어디나 대부분 일본사람들이다. 동포가 있다 해도 연세 많으신 분들. 동포 젊은이들은 그만큼 보
홍한이(에다가와 조선학교 1기생) 고향;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만전리881 현주소;도꾜도 고또꾸 에다가와1-13-8 이름;홍한이(본관;관림홍가) 생년월일;1932년 3월 15일 지금은 주소를 라 합니다만 해방 전에는 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에서 태여났습니다. 그리고 국민소학교(일본소학교)에
장마 비가 오락가락하는 21일 토요일 오후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지원을 위한 콘서트를 보기위해 건국대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우중충한 날씨가 기분을 가라앉게 한다며 죄 없는 하늘만 탓했지만, 공연을 보고 난 후 돌아가는 길에선 오히려 흐린 날씨가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왜 나는 좋은 공연을 보고 난 후, 흐린 날씨에 안도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부끄러움 때
황의중(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집행위원장) 이제는 재일조선인의 삶과 역사를 이해할 때 그는 울고 있었다. 다부진 체격과 눈매에서 그는 쉽게 울 사람이 아니다. 그것도 공개석상에서. “오늘에야 드디어 한국사람들 입에서 재일조선인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2년 전 한국에 가서 말했습니다. (한국사회가) 재일조선인의 삶과 역사를 정당하게 평가
주말인 21일 오후 6시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특별한 콘서트가 열린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상임대표 김용택, 이하 지원모금)은 ‘함께 가요 우리학교 -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을 위한 희망 콘서트’를 개최하고 수익금 전액을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기부할 예정이다. 배우 권해효 씨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날 공연에는 양희은, 우리나라, 이지상 등 가수는
최근 일본을 방문해 재일 조선인 동포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탄압 실상을 생생히 취재한 김삼석 수원시민신문 대표의 취재기를 수원시민신문과 공동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김삼석 수원시민신문 대표(tongil@tongilnews.com)4월29일 일요일 아침. 오사카에서 1시간 30분정도 떨어져 있는 시가현 오쯔시에 있는 시가현 조선학교(교장 윤일화)를 찾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