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마지막 관문, ‘초강력 흡입여과실’를 통과하다본관 입장을 위해 마지막 무빙워크(moving walkway)를 올라탄 후 벽면에 걸린 실록사진들을 구경하며 가니 어느새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마지막 관문에 도착했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에 나올법한 이 통과 코스는 한 사람씩 줄을 서서 천천히 입장해야 하는데 이곳을 빠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밤에도 특수조명과 달빛으로 위용을 드러내는 태양궁전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관저로 사용했던 ‘금수산태양궁전’을 내가 처음 구경한 시기는 2012년 9월 말-10월 중순이었다. 그 이후 너댓차례 방북 시마다 지속적으로 궁전 외형의 변모과정을 지켜보았으며 체류기간에 시내를 이동하거나 지방 현지답사를 위해 오고 갈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왕릉 부근 명당에 위치한 해외동포애국자 묘나와 일행은 평양시 중심부에서 약 22km(60여 리) 정도 떨어진 해외동포애국자묘역을 가기 위해 자동차로 약 1시간 남짓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 직전 부근 교차로를 지나던 중 차창 밖을 자세히 살펴보니 마침 동명왕릉 입구 진입로와 왕릉 능사인 정릉사가 보였고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휴전선 철조망을 자르는 펜치가 되겠습니다정전협정 60주년을 사흘 남겨둔 2013년 7월 24일 해질 무렵, 나와 일행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숙소인 양각도호텔 고층 룸에서 첫날밤을 맞았다. 공항에서 숙소로 오는 차량에서 안내원과 영접위원들과 이런저런 나눈 대화가 밤새 귓가에 맴돌았다.“알고 계신대로 내일 아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분단의 쓰라린 통증을 무언극으로 보여주다나는 지난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신미리 애국열사릉을 찾았다. 이곳은 1급 중앙 국립묘지라는 특수성과 함께 고인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치적 평가 외에도 대립적 관계에 있는 남북간의 체제 정통성의 경쟁이라는 무언의 긴장감이 암묵적으로 서려 있는 곳이다.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북한은 195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평양과 혜산에 각각 혁명열사릉을 개장하여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평양 대성산에 위치한 혁명열사릉은 개장이후 지금까지 외부세계에 널리 공개되고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혜산의 혁명열사릉은 그 위치나 영상물자료조차 외부세계에 원활히 제공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원래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해방 70년, 분단 70년, 통일의지가 안보인다올해로 우리 겨레는 일제로부터의 해방 70주년, 미국에 의한 분단 70주년, 그리고 한국전쟁 정전(휴전)협정 62주년을 맞는다. 그 과정에서 삼천리 반도는 둘로 절단 나고 그 아픔 때문에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신음으로 70여 성상을 모질게 살아왔다. 그러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와 일행은 평양에서도 유명한 통일거리에 위치한 하나음악정보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을 참관하는 도중에 담당 해설사로부터 내부 시설물에 대한 통상적인 설명을 듣던 중에 우연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이곳이 바로 김 위원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공항검색대의 ‘전화기 회수’에서 ‘카카오톡 메시지’까지나는 이번 방북 체류 중에 평양에서 서울로 틈틈이 카톡을 보냈다. 물론 학술원과 개인적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카톡이었으나 내 카톡을 받는 사람들이 메시지 내용을 읽은 후 무심코 나에게 보내준 답장은 ‘서울에서 평양으로 카톡을 전송한 무시무시한 국가보안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북한 우표에 눈을 뜨다나의 초등학생 시절은 좀 내성적인 성격 탓이었는지 무언가를 수집하는 취미를 조용히 즐겨왔다. 특히 여름방학이 되면 학교 과제물인 ‘식물 채집’과 ‘곤충 채집’을 충실하게 제출하여 매번 선생님의 칭찬과 상장을 휩쓸었으며 어느 때인가부터 거기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읍내와 동네 인근 구멍가게를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 북경에서 합류했던 미 법무장관 출신의 진보인사 램지 클락(Ramsey Clark)은 “미군에 의한 학살범죄는 6.25전쟁에서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은 남북간의 긴장을 심화시켜 분단을 지속시키고 같은 민족끼리 서로 악마화하여 적으로 간주하도록 만들어져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반미와 항미’보다는 ‘용미’의 지혜를 모아 ‘극미’의 단계로해외에 살며 남북을 오가며 보니 7.27정전협정으로 휴전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미군에 의한 한반도(조선반도)에서의 학살적 범죄행위들은 여전히 남과 북에서 진행 중에 있었다. 그 근거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아직까지 일관되게 ‘전쟁위협’은 물론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복수.하.리라’ 어머니의 한 맺힌 증언신천박물관을 방문한 첫날에 만나고자 했던 ‘복수.하.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삼남매의 어머니는 바로 이옥후(리옥후)라는 이름의 70대 아주머니였다. 신천학살 피해자인 그녀는 사건 당시 7살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70대 중반으로 접어든 할머니가 되었다. 학살사건 당시 미군에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신천박물관측의 주장들을 듣고 있노라면 표면적으로 볼 때는 ‘반미’를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박물관의 용도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선동)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6.25전쟁 중에 발생한 모든 학살 행위들을 볼 때 인민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은 ‘작전으로서의 학살’이 더 많았던 반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지금과 같이 남북이 적대적인 상황에 있을 때는 해외 교포의 입장에서 남북을 오가며 양측 사회를 소통하게 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사회 통합 운동을 벌인다는 것이 매우 힘들다. 화평케 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철저한 중립을 지켜야 하기에 나는 항상 객관성과 주관성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긴장과 고뇌의 끈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두 곳으로 나눠진 73인의 넋을 만나다6.25 전쟁 기간에 남에서 북으로 올라간 재북인사들의 유해를 공식적으로 안장한 묘역은 현재 두 곳이며 묘기의 공식적인 숫자는 73개에 달한다. 한 곳은 평양시 형제산 구역에 있는 ‘신미리 애국열사릉’인데, 이곳에는 김규식, 조소앙, 조완구, 류동열, 윤기섭, 오하영, 엄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나는 이번 방북기간에 모두 서너 차례에 걸쳐서 평양 외곽의 시골 농촌지역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황해북도에서의 가을걷이 추수작업과 황해남도의 신천군을 비롯하여 평야와 곡창지대를 둘러보기 위해 아침 일찍 차량으로 평양호텔을 출발했다. 평양 시가지를 빠져 나가며 역포구역을 중심으로 펼쳐진 평양평야를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단군은 분단시대 통일 아이콘이 될 수 있나?나는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자문과 함께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그러 했듯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민족화합과 화해협력’을 부르짖으며 부지런히 남과 북과 해외를 오가다 보면 얼어붙은 비무장지대(DMZ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우리 민족은 그동안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을 목적으로 주입한 “단군은 원래 곰이었고 너희는 그의 자손”이라는 의도적 왜곡을 아무런 검증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당했으며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교묘한 왜곡을 그대로 믿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일제는 오히려 자신들은 2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이라며 근거 없이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다른 부서에서 차출된 안내원과 운전기사 안내원 일행을 만나자 나는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마치 길 잃어버린 미아가 엄마를 만난 듯 반가웠다. 더구나 얼굴을 대충 훑어보니 내가 말을 편하게 해도 좋을 정도로 젊고 착해 보이는 안내원과 기사였다. 영접 나온 일행이 아무도 안보이자 사실 나는 속으로 “뭐가 잘못 된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