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 1923년 9월 관동대지진꼭 백 년 전,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59분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중부에서 사가미만(相模灣) 동부, 스호(房總) 반도에 걸친 일대를 진원지로 한 대지진이 일본 간토(關東) 지방을 엄습하였다. 지진의 진도는 7.9였다.마침 그때가 점심시간이었기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대화재가 발생하였고, 피해는 남간토 일대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시즈오카(靜岡)와 야마나시(山梨) 두 현의 동부에까지 미쳤다. 첫 지진 이후 5일 오전 6시까지 여진(餘震)은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두 점의 [도산서원도(陶山書院圖)]가 있다. 한 점은 영조와 정조시대에 예림의 총수라 일컬음을 받는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실경산수이고, 다른 한 점은 작가 미상의 실경산수(實景山水)이다.표암 강세황은 화조(花鳥)와 금충(禽蟲)을 비롯해 산수(山水)와 인물에 이르기까지 그림의 여러 분야에 능하였고, 글씨도 잘 썼다. 또한 그는 당대의 비평가이기도 하여 여러 작품 위에 화평(畵評)을 남겼고, 특히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1815년 이후)를 일찍이 발탁
세상 (4)/ 사회의 축도, 유질물이 대부분 전당포(典當鋪)사회(社會)의 축도(縮圖), 유질물(流質物)이 대부분(大部分)“돈 없다고 잡지도 않고, 자유당(自由黨)때보다 더해졌습니다.” 〇... 「근간 시중 상가 경기가 불양하온 관계로 매월 유질물(流質物) 경매에 막대한 손해를 당하옵기...」 - 시립전당포 창구에 붉게 써 붙인 공고문의 첫 머리는 이렇다.물건을 맡기고 기한이 되어도 찾아 못가는 세상살이의 그늘을 이 글귀는 웅변한다.대출최고액 一만환을 四개월 기한으로 三부 五리라는 싼 이자로 쓰지만, 세월이 흘러가도 갚을 길이 없는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조선중기의 창석(蒼石) 이준(李埈, 1560~1635)은 선서하였다. 선서(善書)란 ‘글씨를 잘 썼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현전하는 그의 작품은 간찰(簡札)마저도 매우 희소하다.창석 이준과 그의 형 이전(李㙉)은 조선중기에 형제간의 우애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인물이니 만치, 이전과 이준 형제의 유묵은 조선시대에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선호되었지만, 좀처럼 볼 수가 없다. 특히 이전의 유묵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것이 없어 그 수준을 평하기가 불가능한 것 같다.1. 창석 이준의
논단민족 자주적 평화통일의 기본방향 (상)=남북협상을 통해 통일의 길로 나아가자= 이재춘우리 민족의 유일한 과제인 통일의 기본방향은 민족자주적인 평화통일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그것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침해 당함을 불원하며 피지배를 원하는 민족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50평생에 아직 한 번도 조국의 통일독립국에 생을 영위해 본 적이 없는 비참하고 애절한 역사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번만은 생전에 조국의 통일을 보고 죽어야겠다는 민족의 염원을 한결같이 절규한다. 이 당연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들이 그러하고, 이 점에서 서울방송(SBS) 는 특별하다. 의혹이 있거나 이상한 사건을 이야기하기(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내는 이 방송은, 역사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SBS의 김현희 사건 방송2023년 10월 26일 방영된 예고편에 따르면, 는 다음 주 11월 2일 목요일 늦은 10시 20분 1987년 김현희-KAL858기 사건을 다룬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 사건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승객과 승무원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기존의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의 관점에서는 삼성사와 문화류씨(文化柳氏)와의 관련성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제 삼성사에 관한 나의 관점을 논하고자 한다.1. 구월산이냐? 평양이냐? 백두산이냐?환웅이 하늘로부터 하강했다고 하는 삼위(三危)태백이 어디인가? 묘향산인가? 구월산인가? 백두산인가?일연(一然, 1206~1289)의 《삼국유사》에는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이라 하며, 그 주에 “즉 태백(太伯)은 지금의 묘향산(妙香山).”이
김학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시민모임 독립’과 ‘지역사’(지도에 역사를 새기는 사람들)가 선정한 10월의 근현대사적지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입니다. 은 최근 국방부가 육사 교정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 이전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를 우려하는 시민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 필자주‘장군의 귀환’과 ‘장군의 위기’2021년 8월,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유해는 카자흐스탄에서 국내로 봉환되어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사설통일의 전진을 위하여=남북학생회담을 남북정치회담으로 생각하는 집권당의 위대한 무식= 이른바 「스티븐슨」결의안이 통일에 관한 좌표를 적어도 6⋅25사변 이전의 선까지 회복시킨 것이라면 민통련 학생들의 남북접촉호소와 그에 대한 북한측의 즉각적인 반응은 기왕의 남북협상을 연상시키는 상태까지 문제를 추궁한 것으로써 요즘 우리 주변의 통일문제를 에워싼 동태는 실로 괄목할만한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통일문제는 모색의 단계에서 구체적 실천의 단계로 옮아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그러나 아무리 통일문제가 현실적 실천의 단계에 옮아졌다하더라도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476년 병신년에 [안동권씨세보] 3권3책이 목판본으로 간행되었고, 1565년 을축년에는 [문화류씨세보] 10권10책이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흔히 [안동권씨 성화보]와 [문화류씨 가정보]라고 통칭하는 족보이다.이에 대한 일면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번 고찰에서 필자는 이 두 족보의 내용을 검토하여 다른 문중에서도 임진왜란 이전에 세보를 편찬한 사실이 있음을 논하고자 한다.1.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임진왜란 이전 고족보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최고본 족보는 조선 성종(재위 1469~1494
제1차남북협상을 회상하며 - 저 산너머 통일은 있을 것인가 (2) 송남헌 협상참가 인사박해남북의 양극세력들은 회심의 미소 미⋅소양대세력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인하여 국토의 양단, 민족의 분열, 또다시 재통일을 위한 국제회담, 즉 모스크바 삼상회의결정, 이러한 과정을 밟아 1946년 제1차 미⋅소공위가 서울에서 개최되었으나 실패에 돌아갔다. 나는 미⋅소공위의 실무에 당무하였던 한 사람으로서 그 당시를 회고하여 제1차 공위 실패의 책임은 소련측에 돌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당시 남한에는 아직 좌익세력이 완전 조직화되지 못하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인간은 말(말씀, 言語)로 생각하고, 글(글자, 文字)로 궁리한다. 우리 민족의 말은 단군 이전부터 형성되었고, 민족의 역사를 이어 가면서 발전하였다.우리 선조들은 한때 한자를 썼고, 지금 쓰는 우리 글자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명칭으로 1443년에 세종대왕이 창제한 후 1446년에 반포하였으니, 올해는 『훈민정음』 창제 580주년이다. 세종대왕의 공로는 우리 글자를 만든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언어를 우리 글로 정리하도록 하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잡아 놓
거울 저 넘어에도 조국의 땅이 있다.========이 철길 ……… 이 혈맥을 이어야〇... 「한민족의 분단의 비극」이 인류사상 오늘과 같이 애절하였던 때가 있었던가? 아니 약소민족의 의사를 짓밟고 강대국의 뜻대로 한민족을 이렇도록 슬픈 분단의 설움을... 단장의 쓰라림 속에 처박아 둔 일이 있었던가! 〇... 싱싱한 푸르른 오월과 같은 싱싱한 젊은 학도들이 참다못해 울부짖는 「남북학생회담의 제창」은 이국의 하늘과 같이 멀어지기만 하던 북으로의 길을 다시금 더듬게 한다. 경의선이 멀리 만주 땅으로 이어 닿고 대동강가에 깃들인 꿈을 더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1945년 분단 아래 수많은 단일 민족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여러 참사를 겪었다. 그러함에도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를 망각하는 방법으로 현재 사회를 영위했다.불과 작년에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는 벌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정의는 사라지고, 유가족의 눈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유족의 슬픔을 닦아주려 하지 않는다.마찬가지로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편 실종 사건(폭파 사건)’도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진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907년 7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자정 순국한 이준 열사는 순국하신 지 56년이 지난 후 1963년 9월 30일 김포공항을 통하여 환국하였다.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47-1 건국빌딩 본관 1층에 상청(喪廳)을 차려 조문을 받았고, 10월 4일 지금의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산127-1에 안장하였다.1943년 10월 25일 오후 8시에 소련의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서거하신 홍범도 장군은 2021년 8월 15일 환국하여 18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안장되었다.1. 이승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조선왕조에서 제주목에 많은 목사를 파견하였다. 홍순만의 『제주목사에 관한 서설』(1991)에 의하면 조선시대(1392~1910년) 528년간 제주목사를 역임한 사람은 총 286명이다. 이 수는 미부임 자를 제외한 수이며, 평균 재임기간은 대략 1년10개월 정도이다.제주목사 재임기간이 6개월을 넘기지 못한 경우가 28명으로 9.7%, 1년을 넘기지 못한 목사가 65명으로 22%이다. 재임중 사망한 사람이 21명으로 7%, 재임중에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압송하거나 파직된 경우가 68
세상(世上) (3)반사회(反社會)의 범죄(犯罪) 물가(物價) 오르고 실업자(失業者) 늘어가난 속에서 범죄(犯罪) 만들고혁명(革命) 한 해에 2만7천여건 발생(二萬七千餘件 發生) 〇... 범죄는 반사회 행위의 적극적인 증거로 제시된다-. 가난이 있는 곳에 범죄가 있고, 부(富)가 있으면 범죄가 없는 법이다. 질서가 잡히지 않는 곳에 도둑이 있고 정치가 혼란한 사회에 사기와 배임이 생긴다. 부패가 있으면 횡령이 따르고 먹고 살 수 없게 되면 협박 공갈이 앞선다. 실업자가 많은 사회에 절도가 득실거리고 위정자가 무능하면 총칼을 함부로 휘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의 「탐라록(耽羅錄)」은 『영주창화시(瀛洲唱和詩)』의 이칭(異稱)이다. 「탐라록」의 원고본 『영주창화시』가 남아 있다는 것은 간간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 원본을 ‘2023 제주고서전’에서 공개 전시하여 여러 전문가의 관심을 끌었다.1. 석북 신광수와 「탐라록」, 즉 『영주창화시』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는 젊어서부터 문명(文名)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대시인(大詩人)이다. 채제공(蔡濟恭, 1720~1799), 이헌경(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조선시대 한 마을의 호구(戶口)를 집성한 기록을 호적부 또는 호적대장이라 말하고, 그 초안을 호적중초(戶籍重草)라고 한다. 반면에 말(馬)을 집성한 기록, 즉 말의 적부(籍簿)는 마적, 또는 마적부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다수의 말이 있을 때 각 말의 특성을 기록한다.이러한 마적부는 전존(傳存)하는 것이 매우 희소하다. 그런데 이번 ‘2023 제주고서전’에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400여 년 전의 마적부가 출품되었다. 현존하는 마적부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1. 헌마공신 김만일과 그 후
공동선언문=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결성준비위원회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결성준비대회는 오일 「북쪽의 형제들과 더불어 광휘로운 조국의 내일을 토론하기 위하여 남북학생회담의 광장으로 나아가자」고 엄숙히 선언하였다. 대회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을 통하여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은 국내외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 비판한 다음 「전근대성과 식민성 예속성과 군사기타성을 깨끗이 청산한 자주⋅민주⋅평화⋅번영의 조국」을 이룩하기 위하여 남북학생회담으로 나아가자고 외쳤다. 또한 공동선언문은 세계사적 현 단계는 식민지반식민지에 있어서의 민족투쟁의 승리, 평화적 공존에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