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영 통신원: 지난 9월 21일 ‘11월 2일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기념하여 자주독립대행진을 합시다’라는 호소문을 발표하셨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 자주독립대행진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정해랑 추진위원장: 올해는 3·1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주권자전국회의에서는 그 뜻을 기리고 앞으로 맞이할 백년은 지금까지의 백년과는 달라
23년간 남북 교류협력 현장을 누빈 전문가답게 남북이 함께하는 공동 개발, 지속가능한 남북교류협력의 제도화 등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여러 계획이 거침없이 나왔다.지난달 24일 정부 공공기관인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으로 취임한 강영식 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같은 NGO(비정부조직)에서는 제안은 하지만 집행이 쉽지 않았다.
"남북 상호 간 서로 이익이 되고 결국에는 공동발전으로 나아가는 협력의 방식"남과 북의 교류협력사업은 초기 다급했던 순간 단순 식량지원으로 시작해 곧 개발협력으로 전환했으나 그 시도가 채 완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절의 10년을 지나는 동안 이심전심으로 '상호이익과 공동발전을 위한 남북교류협력'으로 갈래가 정해지고 있는 듯 하다.지난 2일,
1907년 7월 14일,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고종의 밀사 이준이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며 할복자결했다는 것이다. 그의 비분강개한 할복자결 소식은 온 민족의 가슴을 울렸고, 해방후 첫 열사 기념사업회로 ‘일성 이준 열사 기념사업회’가 독립운동 명망가들의 대대적 참여로 구성됐다.그러나 112주기를 맞는 오는 14일,
해외동포 사회를 들여다보면 한반도 분단 만큼이나, 남이냐 북이냐를 두고 편을 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건너간 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하지만 분단 이전, 일제 강점기 시기에 노동자로 떠나야 했거나, 강제로 끌려갔던 상황에 놓여 해외동포로 남게 된 이들은 하나였던 한반도를 그리워하며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최근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는,
“그런데 내가 무슨 예견을 한 건 아닌데 어떤 측면이 뇌리를 스치듯 했다. 그래서 당황스러우면서도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아직도 좀 멀고 험난한 길을 가야되는 거구나’ 불현듯 정세의 긴박함이랄까 그런 게 쫙 와닿았다.”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부터 본격화된 민간교류 19년간 현장의 중심에 서왔던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지난달 23일 중국 선양(심
"한마디로 얘기해서 국가 정통성의 중심에 광복회를 올려 놓고 싶어요. 민족진영, 민족세력의 맏형 노릇을 하겠다는 거에요. 우리가. 광복회가. 결국은 그것이 통일문제와 연결이 돼요. 대한민국의 국가 정통성이라는 걸 친일 세력들이 주도해 왔어요.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하는 세력들이거든. 이 기득권층을 독립유공자들과 민족세력으로 교체해 내는 것이 대한
지난해 남북정상이 4.27 판문점선언을 통해 2007년 10.4선언 합의 사업 중에서 1차적으로 추진하기로 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이 1년이 지나도록 미국의 반대로 흐지부지되고 있어 안타까움과 함께 공분이 커지고 있다.남북 정상이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동, 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연내 착공식을 하겠다고 한 합의도 지난해 12월
“저는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신자들이 함께 모여 교황님과 함께 ‘반전반핵 한반도 평화미사’를 봉헌하고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의 내용이 성취되기를 기도하는 광경을 한번 상상해봅니다.”한반도 평화를 위해 꾸준히 기도하고 실천해온 윤종일 신부는 3일 양평 두물머리 인근 수도원에서 와 가진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의 원폭피해지역을 방문하고 이어
“경남교육청 소속 학생 오케스트라와 북한의 학생 오케스트라가 만나 협연을 펼치는 예술교류의 장을 열자.”박종훈 경상남도 교육감은 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북측에 남북교육 교류사업의 하나로 학생 오케스트라 협연을 제기했다. 그는 그 이유로 “남북의 학생들이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갖추어, 변화에 쉽게 적응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바
역사적인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앞두고도 흥이 나지 않는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채 남북간 대화마저 사실상 끊긴 탓이다.정부가 준비 중인 판문점에서의 기념행사에 북측은 응하지 않고 있고, 민간단체들의 임진각 행사도 남측 단독행사에 불과하다. 6.15남측위원회를 비롯한 통일운동단체들은 27일 임진각에서 ‘DMZ 평화 손잡기’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수밀문 폐쇄’ 주장, ‘수밀문 폐쇄에 의한 반파’, 좀더 길게 한다면 ‘좌초 후 수밀문 폐쇄에 의한 반파’다. 여기서 핵심은 수밀문 폐쇄가 반파의 직접적 원인이고 46 장병들의 사망 원인이라는 거다.”올해 1월 (밥북 출판사)를 출간한 ‘한민국’ 심리학 박사가 천안함
"이북과 교류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의 접근방식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먼저 조사하고 그걸 중심으로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먼저 그쪽에 알려주고 남과 북이 만나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하려고 한다."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카페에서 만난 전영일 조각가와 배인석 화가는 흔히 미술이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회화와
"My success will be history!"세속적 성공을 꿈꾸는 여느 젊은이가 머리맡에 써놓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 글은 지난해 8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 구속되었다가 6개월여가 지난 올해 2월 1일 보석으로 풀려난 김호 에이치비이노베이션 대표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서비스 프로필에 공개한 글이다.그가 꿈꾼 성공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파주-개성을 아우르는 중간지대에 전 세계인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디엠지(DMZ) 평화공원을 만들어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공원', '강제동원 피해자 추념공원'을 만들자는 것이 리종혁 선생의 제안이었다. 지난해 11월 남북 합의문에 추모공원 계획도 있었고 옥류관은 이곳에 유치한다는 방안이다."지난해 10월 두 차
“제정구 의원의 마지막 화두는 통합과 상생이었다. 현재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 시대를 열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오는 9일 ‘빈민운동의 대부’로 사회 정의와 통합, 상생을 외치다 쓰러진 고 제정구 의원 20주기를 맞아 그를 정치적 스승으로 둔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렇게 말했다.9년의 세월을 정치권에서 함께 한 조정식 의원은 누
홍휘은 통신원 (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 ‘자주사상을 가져라’□ 홍휘은 통신원: 고국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김성수 독한문화원 원장: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산소에 가서 인사드리는 것과, 현재 책을 쓰고 있는데 우선 책을 한글로 쓰고, 이것을 발표한 다음에 한국 학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비판도 듣고 해서 좀 더 완성을 시키려고 왔습니다. 독일어로 번역을
“통일은 됐어!”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평양을 찾아 김일성 주석과 포옹하고 ‘4.2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돌아와 수인(囚人)이 된 늦봄 문익환 목사(1918~1994). 아니 시인 문익환. 1989년 벽두에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는 ‘잠꼬대 아닌 잠꼬대’ 시를 쓰더니, 실제 저지르고 말았다.“문목(
우리는 직접민주주의의 힘을 경험한 바 있다. 2016년 겨울, 1700만의 촛불은 광화문을 가득 채웠고, ‘박근혜 탄핵’을 요구했던 우리 앞에 국회는 무릎을 꿇었다.직접 민주주의가 대세가 되고 있는 세계적 흐름 앞에, 직접 민주주의가 가진 최고의 힘을 경험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과제다.평상시에는 국회에 맡겨두고 ‘이것도 나라냐’ 수준으
"서로의 공통분모가 무엇일지를 먼저 고민하고 어떻게든 입장 차이를 좁혀서 정부·정당·국회·지자체·민간단체 등 민족 구성원 전체가 모이는 그릇이 될 '민족공동행사를 위한 다자 참여 준비기구'(민족공동행사 준비기구)를 만들자."23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 카페에서 만난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