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평생 만든 4백 개 수정란 중의 하나와 아빠가 평생 만든 12조 개 정자 중의 하나가 우연히 만나, 평범 씨가 태어났어요. 4백 곱하기 12조…… 4,800조분의 1의 기적이군요.”평생 5억 번의 호흡을 하고, 1500번 울다 숨을 거두는 인간. 그 첫 호흡과 울음을 내지르는 태어남의 순간. 엉엉 울면서 생을 시작하는 동물
때론 그림이 문자를 능가할 때가 있다. 또한 그림이 문자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해줄 때가 있다. 사실 그 어떤 것이 우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울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을 두 번째로 읽고 난 지금, 다시 한 번 느낀다. 그 경계와 구분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1980년대 후반인가 90년대 초로 기억된다. 당시 에이즈에 감염된 이들이 집단으로 자신들의 권익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나서면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등교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을 챙겨주는 선생님들, 학교보안관 아저씨의 호루라기 소리도 들립니다. 아파트 단지 앞이기에 출근을 위해 나가는 차들이 많아, 보안관 아저씨의 지도가 필요합니다.여행용 카트를 끄는 것처럼 책가방을 끌며 오는 아이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들이 정겹습니다.
“이런 광경은 아빠도 텔레비전에서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어. 그때마다 ‘기아는 부드러운 죽음이다. 점차 쇠약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빠 자신을 세뇌시키고 있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단다! 누더기 속에서 일그러진 작은 얼굴들은 그들이 가공할 고통을 겪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어. 작은 몸들이 흐느끼며 오
저 역시 여타 속 좁은 혹은 무지한 부류에 속하기에 평론이라는 장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일 텐데 말이죠.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나 영화 등 예술에 대한 평론은 일단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때문에 제가 보기에 “아무나”가 평론이나 뭐 비판 등등을 해대면 일정
아마도 대부분 아니라고 하겠지만, 우리 안의 ‘미국’은 꽤 강고하게 버티고 앉아 있다. 여전히 말이다. 트럼프라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인물이 나타나 다소 충격을 주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 안의 ‘미국’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이들에게 미국은 변함없는 ‘우리의’ 미국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굳이 그것을 친
책이 처음 나온 것이 1994년.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이라는 개정판이 아닌 『일본의 빈곤』으로 읽었다. 11쇄판을 구입했으니, 당시 꽤 팔렸던 것 같다. 당최 언제 책을 구입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마 94년~95년 사이였으리라 추측해본다.일단 책의 내용에 대해, 사실 여부를 따진다거나 옳고 그름을 논할 생각은 없다. 16년이 훌쩍 지난 ‘한물간’ 내용
‘21세기를 위한 정원’ 프랑스 파리 앙드레 시트로엥 공원의 조경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원예가, 조경디자이너 질 클레망. 현재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를 거쳐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큰 영예로 알려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이기도 한 저자의 전 세계 정원 순례기이다. 생태주의 정원 이론가로 잘 알려진 그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유토피아니스트”라 불리기도 한다.
세상은 과연 수천 년 전보다 나아진 것일까? 문득 생각을 하곤 한다. 과학의 눈부신(사실 개인적으로 눈부셔 본 적은 없다만) 발전으로 우리는 과거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과거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암튼 그런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들리기에는 참으로 네 가지 없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문득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적어도 실현 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정말 스스로 생각한 바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만약 그 어떤 존재가, 그 어떤 무엇이 우리를 조종하고 있지는 않을까.인간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신념은 개성과 위치, 살
책의 제목이 참 아름답다. 삐딱한 것을 매우 선호하는 나를 유혹하기 딱 좋은 제목이 아닌가. 사실 동화가 꼭 그렇게 아름다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물론 주 독자층이(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이) 한창 아름답고 밝고 깨끗한, 다시 그러니까 현실과는 엄청 다른 그 무엇(판타지?)만을 보고 들으며 자라야 한다는 어른들의 무모한 바람은 이해한다.하지만(사실 이 때가 아
동성애는 성에 대한 감정이나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같은 성의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성적으로, 지적으로, 영적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며 사랑함을 뜻한다. 동성애자는 여자가 여자에게, 남자가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다. 동성애(homosexual)란 말은 1869년 페르시아의 칼 마리드 케르트베니가 처음 쓴 말로 그리스 언어인 ‘같다(homo)’와 라틴어
대부분의 성장소설은 저자의 개인적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하곤 한다. 때문에 좋은 성장소설은 그만큼 자신에게 솔직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자신의 모든 아픔과 상처, 고뇌와 함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 작품에 담겨 있는 경우, 독자들은 놀라운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이라
‘설마 그랬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짓을 했을 리가.’이렇게 소박한 심성을 가진 우리들의 ‘설마의 마지노선’을 여지없이, 그것도 무수히 박살낸 것이 바로 전임 두 정권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럼 그 두 정권 이전에는 그런 무참한 일들이 전혀 없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물론 서글픈 일들은 그 이전에도 숱하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일본 만화에 대해 그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 아니다. 때문에 ‘요시다 아키미’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이 전무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바나나 피시』에 대해서도 몰랐으니, 원체 무식함이 자랑인 녀석이다. 『길상천녀』는 제29회 쇼가쿠칸 만화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한다. 이 작품으로 스타작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라는 부재가 달려 있다. 가능성이라. 어떠한 가능성을 의미 하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껏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참으로 보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가능성’ 아니었을까. 하지만 2016년 이 땅의 민중은, 우리 시민은 철벽과 같았던 비정상의 문을 기어이 깨부수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 끝에서 가능성이
“꼴찌 팀 삼미의 옛 팬이 오늘 해태 타이거즈를 그리워한다. 강자였지만 약자의 방식으로 싸웠고 승자였지만 패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팀. 그래서 약자와 패자들도 얼음 계곡물에 몸 한 번 담그고 정신 바짝 차리면 강자의 발목이라도 한 번 물어뜯을 수 있다고 악을 쓰며 항변하는 듯했던 그 몸짓들을 그리워한다.”‘위대하신’ 전두환 각하의 넓으신 아량과 백성을 어여삐
대한민국은,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고, 알보다 조금 작은 분들도 대부분 인식하듯, 상식의 생존율이 매우 낮다.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은 지난 두 정권을 거치며 상당 부분 소멸되었고,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도, 상식의 귀환은 쉽지 않아 보인다.가슴 아픈 세월호가 3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상식과 정의는 여전히 가라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
《대부》. 내 인생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Top10 안에 넣는 작품이다. 말론 브란도의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연기와 알 파치노, 제임스 칸, 로버트 드니로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명연기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영화.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한다.대부는 이른 바 ‘마피아’에 대한 동경과 공포를 동시에 주었다. 깊은 고뇌에 찬 대부, 그리고
책을 읽기 전, 먼저 책을 읽은 분들의 서평을 읽었습니다. 일단 ‘텐구’라는 족속에 대해 설명해주신 친절한 분이 있어 반가웠고, 또한 유쾌한 소설이라는 평들이 대부분이어서 기분 좋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일본 판타지 소설은 사실 그리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몇 편 즐겁게 본 기억이 있지만, 책으로는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