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 사월혁명회 대외협력위원장 머릿글 저는 1959년 4월에 청주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고2로 진급한 1960년 4월에 4월혁명을 맞았습니다. 자유당의 횡포가 기승을 떨치던 시기에 마침 4월 18일 청주시내 전체 학생들이 일어나 3·15부정선거를 규탄하였습니다. 이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청주농고생들이 학교의 황소를 몰
한상권 / 덕성여자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 1. 문제 제기 1960년의 4월 민중항쟁을 일상적으로는 ‘4월혁명’이라 칭하는데, 여기에는 한국역사에서 민중의 힘에 의해 정권 교체를 성취한 의의를 높게 평가하려는 뜻이 있다. 4·19직후 정부는 이를 ‘민주혁명’이라 칭하였다. 헌법재판소도 4·
최단옥 / 사월혁명회 전 공동의장(인천대학교 명예교수) 1. 前史 : 몇 년 전부터 이미...1960년의 4월혁명은 단순한 부정선거에 대한 항쟁이 아니었다. 쌓이고 쌓인 사회적 적폐에 대한 항쟁이며, 봉건적 사회구조를 마감하는 체제전환의 계기였다.1956년 봄, 충주고교 3학년 초에 관례대로 교기 기수로서 앞장 선 가운데 3학년 전원이 유력자의 강연장에 참
전덕용 / 사월혁명회 공동의장(씨알의소리 전 창간편집장, 소설가) 그동안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다.당시 20대의 시퍼런 청년이었던 4월의 주역들은 백발이 성성한 80대 노인이 되었다. 반세기를 훌쩍 지나 두세대가 이어 태어난 세월이 지난 것이다.흔히들 4월혁명을 미완의 혁명이라 말한다.그것은 혁명의 주체가 학생 신분이었고, 정권을 장악 묵은 사회제도를 혁파
“정부는 이번에 MBC 문화방송이 촬영·보도한 KAL858기 추정 동체를 즉각 인양하고 조사하여야 한다.”가 지난 23일 미얀마 안다만 해역 현지취재를 통해 보도한 KAL858기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즉각 인양해달라고 피해자 가족들과 관련 단체가 촉구하고 나섰다.‘KAL858기 가족회’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위원회’는 30일
는 23일, 1987년 115명의 승객을 태운 채 사라진 대한항공(KAL) 858편의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미얀마 안다만 50미터 해저에서 발견했다고 단독보도했다.대구MBC 심병철 기자 등 MBC 특별취재팀은 이날 보도에서 “MBC 특별 취재 팀은 1년 가까운 추적 끝에 미얀마 안다 만의 50미터 해저에서 KAL 858기로 추정되는 동
“우리 큰애가 세 살, 작은애가 6개월 돼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둘 다 아빠를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고, 아빠를 잘 모른다.”(고 최만구 부인 연제원)“주위에서 말렸다고 한다. 여태까지 쉬지 못하고 허리가 안 좋으니까 비행기는 무리다. 월요일날 가라. 부득부득 가겠다는 거다. 나중에 사실을 알고 보니까 11월 29일이 결혼기념일이었다. 결혼기념일날 늦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가수 김광석은 그렇게 노래했다. 과거청산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너무 늦은 정의도 정의인 걸까?’이명박 정부 때 중단된 과거청산을 새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빛을 못 보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를 되살리기 위한 법
국정원, 대법원 판결에 따라 에 ‘무지개 공작’ 문건 추가 공개 국가정보원이 추가 공개한 ‘무지개 공작’ 문건에는 일본 여권을 가진 ‘하치야 신이치’(김승일)과 ‘하치야 마유미’(김현희)를 “북괴와 연계된 인물로 추정”했고, 사건 전후 9일에 걸친 이들의 동선이 이미 파악된 것으로 나타나 있어 주목된다. 당시
1987년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편 사건을 대통령선거 등에 활용한 공작이 담긴 이른바 ‘무지개공작 문건’을 추가 공개하라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국가정보원(원장 서훈)이 항소했지만 대법원은 8월 30일 이를 기각했다.이에 따라 ‘대한 항공기 폭파사건 북괴 음모 폭로 공작’, 이른바 ‘무지개 공작’ 문건 중 그동안 비공개된 하치야 신이치(김승일),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KAL機[기] 실종事故[사고] 報告[보고]”(2016070046, 2쪽). 1987년 11월 29-30일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외무부 청와대 보고서 제목이다. “실종”이라는 말이 주목된다. 정확한 장소, 원인, 생존자 여부 등을 모르지만 비행기가 사라진 것만은 분명한 상황. 이 점을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 실종이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정보공개 청구로 외교부 문서를 포함한 KAL858기 자료를 봤을 때도 느꼈지만, 올해 공개된 비슷한 자료를 다시 보며 분명해진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1983년 아웅산 사건과 1987년 대한항공기 사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아웅산 사건은 북쪽이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버마/미얀마 아웅산 묘역에 폭탄을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지금도 그렇지만 1980년대 한국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었다. 정부는 이 교민들을 KAL858기 관련 대북규탄 활동에 적극 동원했다. 1988년 1월 14일 당시 외무부 국제기구조약국은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대책 보고” 문건을 작성한다. 여기에는 “미.일 등 지역에서 교민들에 의한 자발적 북한 규탄 데모
지금까지 〈천안함 범죄 완전 증명〉 시리즈를 통해서 조작이 불가능한 물리적 증거를 이용한 인과관계 검증으로 천안함의 반파 원인을 완전히 증명하였습니다. 그동안 신문방송과 인터넷에서 반파원인으로 제기된 ‘백령도 해안에서 좌초(해군), 어뢰폭발(국방부), 기뢰폭발(일부 전문가), 그리고 잠수함 충돌(신상철 전 조사위원)에 의한 반파가 모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흔히 언론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생명으로 한다고 이야기된다. 물론 (공정성과 객관성의 개념 자체에 대한 논의를 떠나) 이 원칙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예컨대 KAL858기 사건 관련해 국내 언론이 ‘받아쓰기’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곧, 언론이 적극적인 취재나 검증 없이 정
지금까지 10회의 연재를 통해서 ‘해군이 주장한 좌초, 국방부가 주장하는 어뢰폭발,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한 기뢰폭발, 그리고 신상철 전 조사위원과 네티즌이 주장하는 잠수함 충돌에 의한 반파가 모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완전히 증명했습니다. 또한 제가 주장하는 수밀문 폐쇄가 조작이 불가능한 모든 물리적 증거들과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습니다.오늘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진 KAL858기 대북규탄 작업에는 1988년 2월 9~24일까지 열린 ‘항공법에 관한 국제회의’도 포함됐다. 이 회의는 유엔 아래에 있는 전문기구로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부를 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주최했다.노재원 당시 캐나다 주재 대사(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외무위원장
지난 글(7월 15일)에 ‘반파 후 서로 다른 함수와 함미의 부력’을 이용한 인과관계검증으로 ‘해군이 주장한 좌초, 국방부가 주장한 어뢰폭발,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한 기뢰폭발, 그리고 신상철 전 조사위원과 네티즌이 주장한 잠수함 충돌에 의한 반파’가 모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민국의 수밀문 폐쇄주장이 ‘함수와 함미의 서로 다른 부력’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한국의 이른바 우방국을 중심으로 많은 나라들이 KAL858기 사건 관련해 (북쪽을 지칭하거나 그러지 않는 형태로) 규탄성명을 발표한다. 대북제재 조치가 발표되기도 했는데, 정부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있었다.일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1988년 1월 18일 박쌍용 당시 외무부 차관은 오타 히로시 한국 주재 일본대사
지난 글(7월 8일)에 스크루 프로펠러의 손상 모습을 이용한 인과관계 검증으로 어뢰폭발, 기뢰폭발, 그리고 잠수함 충돌을 포함하는 어떠한 외부충격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민국의 수밀문 폐쇄 주장이 스크루 프로펠러의 손상 모습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오늘은 ‘천안함의 반파 후 함미와 함수가 보인 서로 다른 부력’을 이용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