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을 넘어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고, 기차와 버스를 타고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날을 꿈꿔봅니다. 통일은 사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남의 철수가 평양의 주체사상탑에 오르고, 북의 영희가 서울의 남산타워에 오르는 날이 오면 그것이 곧 통일의 시작입니다.”- 『평양에서 태양을 보다』중어쩌면 이 글이 독자들에게 닿을 때쯤이면 이미 새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엘리엇 부 / 지식노마드 / 2012)라는 책이 있다. 온전히 책 제목에 이끌려 집어든 책이다. 하지만 여태껏 온전히 다 읽진 못했다. (그렇지 뭐, 내가.) 그럼에도 제목에서 느껴지는 어떤 만족감? 그 하나 만으로 구입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뭐, 죽기 전에는 읽지 않겠어?) 이런 믿음으로 살아간다. 아, 그 전
최근 대통령의 지지도가 50% 아래로 내려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에 대한 걱정이 크다. 그동안 워낙 살기 팍팍해서,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있을까 하던 자포자기마저 능가할 정도로 요즘 경제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후할 리 없다.지금의 어려움이 지난 20여 년에 걸쳐 쌓인 모순들의 발현이라고 말해봤자, 대
예전에도 자랑삼아 밝힌 바 있거니와,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 복은 꽤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이는 정치인을 가장한 모리배들이나, 조폭들이 말하는 종류의 그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도, 존재 그 자체로 크나큰 위안과 용기를 주는 벗들이 있고, 삶 그 자체로 조용히 나를 깨우치는 죽비 같은 분들이 계시다. 정작 그런 이들이 곁에 있음에도, 여전히 되
다른 동년배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TV를 오래 시청하지 못한다. 아니, 아예 틀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즐겨 보는 특정 프로그램을 다시 찾아보는 정도다. 그런 프로그램 역시 한정적이다.반면 싫어하는 프로그램은 꽤 많다. 모순이다. 잘 들여다보지도 않으면서 호불호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TV 관련 뉴스나 연예가 소식 등은 어느 포털을 들어가
인간이 신체적 노화현상으로 인해, 즉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보다 지혜로워진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도대체 나이는 어디로 드셨을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면에서 늘 긴장하지만, 사실 그 때뿐 이른 바 나잇값을 못하기는 매한가지다.2014년에 읽은 책을 별안간 다시 집어 들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인물
이 책이 처음 인쇄된 날이 올 4월 6일이다. 그 후 이 글을 쓰고 있는 7월 7일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말 그대로 꿈만 같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그 어떤 영화, 소설보다도 극적인 순간들이 3개월 사이 일어났고, 또 일어나고 있다.무엇보다 극적인 순간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친한 사이끼리, 연인끼리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다, 무심코 이런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아이고, 이걸 어디다 쓰니?” 돌아오는 답변, “꼭 나를 어디에다 써야만 하겠니?” 때론 말썽만 부리는 자녀에게 부모가 한탄조로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한다.생각해보면, 그렇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 어떤 숭고한 미션을 위한 것도 아니요, 세계 평화와 남북통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오늘 이후 5일이 지나면 분단 후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 그야말로 북한의 역사를 새로이 써나가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끝내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종식시키는 데에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물론 2017년 5월 출범 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안정에 무엇보다 주력한 문재인 정부의 역할도
통일운동에 오랜 시간동안 헌신해 온 동료가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더니, 곧 망설임 없이 대학원에 들어갔다. 한 번 결심하면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정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다시 공부한다는 것이, 게다가 평소 매사에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
2002년 개봉되었던 영화 에서 악역 이성재의 극중 대사 중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좀 살벌한 대사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아마 이 비슷한 대사였을 것이다. 이 대사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왜일까. 인정하긴 싫지만,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때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
과학의 진보, 문명의 진보는 우리에게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지겹도록 떠들어대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앞두고, 조금은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최첨단 과학의 시대, 인간의 평균 수명이 곧 100세를 넘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가득한 시대에, 정작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던 미세먼지로 고통받고, 온갖 기상이변으로 많은 이들이 죽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새해 들어 한반도에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다. 비록 미세먼지는 살벌하지만.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고, 북의 표현으로, ‘평창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에서 가슴 벅찬 장면을 실로 오랜만에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가능성도 높아졌다. 드디어 남북관계에, 한반도에 다시금 봄이 올 것인지, 많은 이들이 기대하
새삼스러울 것 없이, 올해도 지나간다. 아무리 올해 별일이 많았다 해도,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어쩐지 시간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시간만이 딴 짓하지 않고 성실히 제 할 일을 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 아, 물론 선생님도 고생하셨지요. 아무렴요.아무리 엄청난 일이 벌어져도, 마치 당장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릴 것만 같아도, 결
멘탈이 상당히 허약하다. 지성도, 근면함도 빈약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아마 일제 강점기 시대에 살았더라면 십중팔구 조금의 고통도 견디지 못하고 친일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기엔 독재정권의 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이명박, 박근혜 시대엔 개가 아닌 사람으로 살기 위해 버텼다. 인정할 건 인정하는 편이다.내 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마치 지구의 주인인양, 우주의 유일무이한 존재인양 자부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참화가 끊이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자명해진다. 인간은 극도로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며, 생각보다 매우 배타성이 강한 동물이다.불완전한 인간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이다.
역사의 가정은 없지만, 상상해본다. 만약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트럼프가 아닌 힐러리였다면, 현재 한반도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럼에도 같은 모습이었을까. 지금 북미 간 첨예하고도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이 달라졌을까. 우리는 전쟁의 위협을 덜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보다는 덜 부끄럽게 미국에 매달리고 있었을까.부질없는 상상이다.
나는 깨달았다.사람을 사귀는 것보다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더 어렵다는 사실을.분명 아니라고 버럭 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요즘 한반도는 참 재미없다. 북한의 높아져만 가는 핵과 미사일 능력 앞에 트럼프는 내심 안절부절 못하며 입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고, 김정은 역시 ‘당신만 드립칠 줄 아느뇨!’하며 ‘미국 늙다리’를 조롱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가끔 한탄을 한다. 경험, 경륜보다 역시 재능이 우선이라는 것을 느낄 때 그렇다. 나름대로 글을 써온 지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강산이 변하는 세월동안 정작 내 글은 요지부동 변함없이 고집스럽게 형편없다. 재능도 그렇거니와 한껏 집중해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거나 연습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할 말이 없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내 게으름은 타고 났어
요새, 아주 느닷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특히나 더, 내가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든다. 내가 말하는 늙음은 육체적인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마음의 늙음에 더 무게가 가있지 싶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뭐야, 저런 궁상은. 쓸데없잖아.”하며 속으로 은근히 비웃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마치 죽을 날짜를 받아둔 것처